학습참고서 시장의 붕괴가 심상찮다. 물론 거품 시장이 무너지는 측면도 무시하지 못한다. 이 시장이 붕괴히는 가장 큰 이유는 학령인구의 감소다. 학생 수가 크게 줄고 있으니 책 판매가 주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의 고2, 중3은 학생 수가 특별하게 적다. 게다가 김영란법 시행 이후 채택영업이 불가능해졌다. 학생 수가 30% 줄고 교사들이 채택료를 받고 학생들에게 책 구매를 강요하던 것이 불가능해지니 책 판매가 크게 줄고 있어 신학기 이후가 걱정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채택료가 사라지는 것은 당연하고 학생들은 선진국처럼 학습참고서가 아닌 교양서로 공부해야 마땅하다. 이 시장의 축소가 교육적인 측면에서는 바람직한 측면이 없지 않다.
이 시장이 축소되는 원인은 더 있다. 수능에서 영어 등급 컷이 도입되면서 영어 학원들이 어려워졌다. 영어학원이 침체되니 영어교재의 판매도 줄었다. 더구나 학원들은 자체 교재를 개발해서 사용하는 바람에 서점에서 책이 팔릴 이유가 없다. 특목고 특수도 사라졌다. 특목고의 경쟁률이 높아 중학생들이 참고서를 사서 열심히 공부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으니 이로 인한 수요도 크게 줄었다. 사교육 시장을 줄이겠다며 키운 EBS 교재로 인해 학습참고서 출판사의 위기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도깨비 책방’, 이렇게 어설픈 행사로 구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이런 이유로 학습참고서만 취급하는 생계형 서점들이 위기다. 중형서점들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그렇게 해서 중형서점들이 사라지면 단행본 시장도 기대할 수 없다.
오프라인 책 판매시장이 크게 위기에 봉착했다. 문체부가 최근 발표한 ‘출판문화산업 진흥 5개년 계획(2017-2021)’에 따르면, 출판 산업의 규모는 2015년 기준 4조 3백억 원으로, 전년 4조 2천 3백억 대비 4.8% 감소했다. 앞으로 이 매출이 얼마나 줄어들지 모르겠다. 이중 단행본 출판시장의 규모는 1조 5천억 원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이중 인터넷서점 매출이 2015년에 1조 1,512억 원(2014년 1조 2,804억 원)이었다니 이미 오프라인서점 매출은 엄청나게 축소되어 있었다.
이렇게 축소된 시장을 키우려면 근본적인 정책전환이 필요하다. 법제부터 뜯어고쳐서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야 한다. 송인서적 부도로 인한 출판계와 서적계를 달랜다는 목적이 있겠지만, 문체부가 한국서점조합연합회와 한국중소출판협의회와 함께 벌이는 ‘도깨비책방’ 같은 이벤트를 벌이는 것을 보면 문체부는 출판시장을 근원적으로 혁신하려는 의지가 없이 깜짝 이벤트로 국민의 눈을 잠시 가리려는 데에만 혈안이 된 것 같다.
‘도깨비 책방’은 서울의 예술의 전당과 대학로예술극장 씨어터카페, 부산의 남포동 메가박스 부산극장 본관 4층 등 전국의 주요 도시의 공연문화 중심가 7개소에서 오늘(22일)부터 25일(토)까지 책을 나눠주는 행사다.
그런데 선정된 책들이 졸렬하다. 물론 양서가 일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중소출판협회가 한 주체가 되다 보니 책의 질이 중구난방이다. 한 번 먹어보고 감탄하는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이 손님을 꾸준히 끌게 마련이다. 그러나 종이에 잉크만 묻히면 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졸속으로 선정한 책의 질이 좋을 리가 없다. 그런 책을 읽고 독자들이 책에서 멀어질까 두렵다.
많은 이들이 책 목록을 보고 이구동성으로 혀를 찼다. 이런 행사를 주최할 능력이 되지 않은 단체를 동원하니 이런 수준밖에 되지 않는 게 당연해 보인다. 나는 이런 행사 자체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아무리 다급해도 선심성으로 어설픈 닭모이를 뿌리는 짓을 제발 멈춰주었으면 한다.
어쩌면 저런 기관이 없어도 된다
지난주 독서운동을 논의한던 한 회의에서 한 독서운동가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말도 안 되는 계산을 해보자. 전국에 1만 2천 개 학교가 있다. 하지만 1만 개만 있다고 치자. 이 학교들에 사서 교사를 배치하면 1만 명이 필요하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이들의 연봉이 2,000만 원이라고 치자. 20조가 있다면 그들에게 100년 동안 연봉을 지급할 수 있다. 교육의 백년대계를 세우는 일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돈을 4대강으로 환경을 망치거나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모두 날려버렸다.
대기업들이 문화행사에 지원하던 예산도 지난 몇 년간 모두 사라졌다. 그 이유를 몰랐었지만, 최순실을 끼워 넣으면 모두 해결된다.
기가 막힌다. 어제 국제펜클럽한국본부·한국문인협회·한국작가회의·한국소설가협회·한국시인협회 등의 문학단체들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한국문학번역원 등의 예술지원 공공기관장들은 모두 물러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기관들의 기관장과 간부들은 그야말로 정권의 개가 되어 문화말살에 앞장섰었다. 그러니 기관장만 물러날 것이 아니라 기관 자체를 해체하고 민간에 완전히 사업을 위임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저런 기관이 없어도 된다. 학교의 사서교사들이 좋은 책을 골라 읽게 만들면 출판시장이나 문학 시장은 저절로 활성화된다. 저런 공공기관을 만들어 낭비하는 예산을 들여 학교도서관이나 공공도서관은 일정 수준 이상의 책을 구비하면 출판문화는 저절로 꽃피울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그런 정책을 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닭모이나 새우깡을 나눠주는 분배정책으로 독버섯을 키우면서 문화말살을 즐기고 있을 따름이다.
원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