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 혐오에 가득 찬 극우주의자 천여 명이 외국인 집단 거주 아파트 앞에 모였다. 그들은 “외국인 추방, 하일 히틀러”를 연신 외쳐 댔으며, 아파트에 돌과 화염병을 던졌다. 아파트 거주민이 대부분 가족 단위로 여성과 아이들이었지만 이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들은 화재 진압을 하러 도착한 소방차까지 막고 폭력을 휘둘러 댔다.
5,000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들은 극우주의자들의 폭동을 저지하기는커녕 오히려 불타는 아파트와 혼비백산한 외국인들, 무차별하게 구타당하는 경찰관들을 보며 박수를 치고, 즐거워했다.
사건 전개만 읽으면, 히틀러 집권 시기에 일어난 사건인 듯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는 1992년 민주주의를 표방한 통일 독일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는 전쟁 이후 독일에서 최악의 외국인 혐오 공격으로 꼽히고 있다.
잔혹한 나치즘의 역사적 교훈으로 철저하리만큼 성숙한 역사의식과 자기반성이 투철한 독일 사회였기에 이 사건(이하 로스톡 사건으로 명명)은 독일 국민들에게도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정부 실패로 인한 동독 주민들의 박탈감, 불안감이 외국인 혐오 범죄로 분출되다
사회학자들은 이 사건을 비롯해 구동독 지역에서 외국인 혐오 범죄가 구서독보다 현저히 높은 현실에 주목한다. 이는 구 동·서독 지역의 소득 차이에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동독의 갑작스러운 몰락으로 인한 정부 실패와 이로 인한 불안감, 무기력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독일 통일은 서독에 의한 동독의 흡수 통일이었으며, 이는 사회주의 국가의 실패를 의미했다. 통일 이후, 자본주의 사회에 비해 턱없이 경쟁력과 생산성이 낮았던 구 동독 지역의 수많은 공장들이 시장 경제의 논리 하에 폐쇄되었고, 이는 구 동독 주민에게 실업을 의미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정부는 국민들이 굳게 믿었던 밥줄이었으며, 모두가 소위 철밥통으로 불리는 안정적인 일자리와 수준 높은 복지를 누렸다. 이런 정부와 시스템의 해체로 인해 구 동독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적자생존의 시장 경쟁에 내맡겨졌다. 통일의 기쁨도 잠시, 이들은 심지어 존재, 생존(Existenzangst)에 대한 불안감에 빠지게 되었다. 로스톡 시의 경우, 동독 시절 조선업으로 활황을 누렸기에 박탈감과 좌절감은 더욱더 컸다.
이에 설상가상으로 1992년 유고 내란이 일어났다. 독일 내 난민 신청자 수가 평년에 비해 두 배나 증가했다. 실업 상태의 동독 주민들은 일자리 창출에 쓰여도 모자랄 돈이 난민에게 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독일 헌법에 따라, 독일에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인간은 국적에 상관없이 최저 생활비를 지원받으며, 오늘날 기준으로 이는 주거비와 한 달 생활비 400유로에 달한다)
순식간에 자본주의와 세계화 흐름에 내던져진 구 동독 주민들은 이민자들을 자신의 일자리와 복지 혜택을 빼앗아가는 경쟁자로 인식하게 되었고, 이에 걷잡을 수 없게 커진 반난민 이민자 정서와 불안, 좌절감은 로스톡 사건에서 분출된 것이다. 1992년 이후, 외국인 혐오 범죄는 급격히 증가한다.
이렇듯 정부 실패와 사회 안전망의 축소, 외국인 수의 급작스러운 증가는 반이민자 외국인 혐오 정서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유럽의 복지 국가는 세계화, 정보화, 자동화로 인해 정부 실패의 위기에 놓여있다. 4차 혁명과 세계화로 복지 국가의 중추 역할인 일자리가 급격히 줄어들었으며, 이로 인해 정부는 만성 적자에 허덕이게 되었고, 이는 또 다시 복지 국가 모델을 위협했다.
세계로 확대된 치열한 경쟁에서 국가 역시 세일즈에 발 벗고 나서야 했고, 친기업 정책을 추진하며, 국유 재산을 팔아 치웠다. 이 과정에서 노동은 유연화되었고, 복지 혜택 역시 줄어들었으며, 세금 부담은 기업에게서 노동자 계층으로 넘어갔다.
유럽을 위협하는 또 다른 정부 실패의 위기 – 조세 경쟁과 Social dumping
세계 무대에서 점점 작아지는 유럽은 경제적, 외교적, 정치적 권력을 지키고자 유럽 연합을 만들었다. 유럽 내에서 재화, 노동, 자본, 서비스 이동의 장벽을 완전히 없애 버렸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정책이나 법규는 각국 정부에 위임함으로써, 조세 제도와 최저 임금 등 노동 규정은 국가마다 상이했다. 기업들은 이를 악용해 가장 낮은 세율과 가장 저렴한 임금을 제공하는 나라를 입맛에 따라 고른 후 최저 비용으로 생산된 재화를 아무 제한 없이 EU 전역 내에 판매해 최대한의 수익을 올렸다.
이렇게 자유 무역으로 키운 파이의 달콤함은 무한 조세, 일자리 경쟁으로 자본가에게만 돌아갔고, 노동자에게는 자본가들이 먹어 치운 후 남은 부스러기만 돌아갔다. 세계화와 자유 무역이 부의 양극화를 야기시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위 표는 1981년과 2012년 EU국가와 미국의 법인세 변화를 보여준다. 토마스 피케티의 『자본론』에 따르면 국가들은 EU 단일 시장 내에서 세수 확대를 위해 무한 조세 경쟁에 돌입했고, 이에 EU 내 법인세 및 이윤세는 끝없이 낮아지고 있다.
여기서 이득을 보는 건 당연히 자본가와 기업들이다. 기업들은 세금이 가장 낮은 곳에 자회사를 설립한 후, 세금이 높은 국가에서 발생한 이윤을 자회사 이윤으로 보고하여, 손쉽게 세금을 탈루한다. 2013년 애플의 세금 탈루 스캔들 이후, EU는 EU 내 세금 규제를 통일하고 강화하겠다고 천명했으나, 2016년 IKEA는 또다시 10억 유로에 달하는 세금을 탈루했다.
한편, Social Dumping은 EU 단일 시장 내에서 임금과 사회 보장세 등 노동비용의 무한 경쟁으로 비롯된 사회 현상이다. Social dumping은 고용주가 단일 시장 조건을 악용해 비용 절감을 위해 최저 임금, 유급 휴가 등 사회적 규제를 피하거나, 위반하는 행위를 말한다. Lohn Dumping은 독일 표현으로 Wage Dumping으로 해석될 수 있는 데, 이민자의 유입이나, 공장의 해외 이전 등으로 노동비를 절감하는 행위를 말하며, Social dumping과 wage dumping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아래 표와 같이 최저 임금 격차가 어마어마한 상황에서 기업들은 당연히 동유럽으로 이전할 동기를 갖게 된다.
EU 내에는 최저 시급 제도를 시행하지 않는 국가도 많다. 2013년 벨기에 경제 장관은 독일의 지나치게 낮은 인건비로 인해 불공정한 경쟁과 social dumping이 초래되고 있다며, 최저 시급을 도입할 것을 종용하며, 공식적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2016년 이후로 독일에 최저 임금제가 도입되어 시행되고 있다.
또한 유럽 연합은 고용주들이 피고용주를 착취할 법적 구멍을 방치해 놓았는데, letter company 규정과 ‘계절노동자’가 그 예이다.
Letter company 규정에 따르면, 유럽 내 자유 이동(free movement) 규정에 따라 회사는 등록 주소가 아닌 다른 곳에서 영업을 할 수 있고, 이 경우 노동 및 세금 규정은 등록 주소를 따르게 된다. 이로 인해 수많은 파견 회사들은 폴란드나 포르투갈 등 임금이 저렴한 유럽 국가에 등록을 하고, 실제 노동자 파견은 상대적 고임금 지역에 함으로써 차익을 남기는 것이다.
가장 극단적 경우를 생각하면, 회사를 임금이 가장 저렴한 루마니아에 등록한 후 노동자를 룩셈부르크에 파견시켜 루마니아 최저 임금을 주어도 된다. (물론 파견 여부 및 출신 국가에 상관없이 최저 임금이 지불되어야 하지만, 제3국을 낀 파견직의 경우 감시와 통제가 힘들뿐더러, 이것이 거의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위 표에서 알 수 있듯이 고용주는 사회 보장세가 저렴한 국가의 노동자를 고용함으로써 노동비를 절감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사회 보장세가 높은 복지 유럽 국가 자국 노동민은 일자리 경쟁에서 패배하게 된다.
심지어 유럽연합 재판소는 임금 경쟁을 부추기기까지 한다. 독일에서 외국인 파견 노동자가 법정 최저 시급의 반도 안 되는 임금을 받고 일해 소송이 제기되었으나, 유럽 연합 재판소는 현지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의 동등한 대우는 서비스의 자유 거래를 막을 수 있다고 판결했다.
Social Dumping과 저학력 노동자 계층, 그리고 브렉시트
이러한 소셜 덤핑은 언어나 지식이 요구되지 않는 저학력 노동자 계층에게 특히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
노르웨이를 예로 들면, 2009년도에 건설업, 제조업, 요식업에서 동유럽 출신 파견 노동자 비율은 무려 각각 33%, 39%, 32%에 달했다. 이 파견 노동자들의 임금 및 사회 보장세 등이 노르웨이 노동자보다 턱없이 낮으며, 이 과정에서 노르웨이 노동자들은 실업 상태로 전락했음은 불 보듯 뻔하다.
이쯤 되면, 왜 노동자 계층이 EU에 강하게 반대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는 브렉시트나 독일 극우 포퓰리즘 정당의 지지자들 중 왜 저학력 노동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가를 설명해준다. 저학력 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해 EU에 반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들에게 EU가 가져다준 이익은 허상에 불과하며, 이로 인해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을 더 느꼈을 것이다. EU를 통한 금융업의 번창, 수많은 교환 학생 제도, 학술 연구 지원금 등 EU의 각종 혜택 중 이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EU가 가져온 장기간의 평화는 배부른 지성인들이나 하는 헛소리쯤으로 들리지 않았을까?
일자리 창출과 친기업 정책의 딜레마에 빠진 복지 국가의 실패로 인해 정치적 무력감에 빠진 시민들은 정치권이 발 벗고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하리란 믿음을 가졌을 리가 없었다. 특히 EU 연합 탄생 이후 크고 작은 권한들이 EU로 이양되면서 정치적 무력감과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는 더욱더 커졌다. EU 금융 위기 이후,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하는 EU 정치인의 무능함은 이를 더 악화시켰다.
복지 국가 실패와 강제된 세계화, 외국인 혐오 야기
이 상황에서 문제의 화살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돌아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책과 법규와 달리 외국인의 급격한 증가는 피부로 느끼는 구체적인 변화였다. 반면 날로 전문적이고, 복잡해지는 법규들로 인해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설명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이에 사람들은 간단한 답과 해결책을 원했을 것이고 사회적 약자에게 화풀이하고 싶은 유혹도 커져만 갔을 것이다. 주변 건설 노동자들이 하나둘씩 해고되고 그들이 동유럽 출신 저임금 노동자로 대체되는 것을 보면서, 원인은 이민자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일자리 경쟁은 차치하고라도, 외국인 범죄와 문화 충돌, 테러를 연신 보도해대는 신문도 이에 한몫했을 것이다. 외국인 혐오 정서는 오히려 외국인 비율이 낮은 지역에서 더 큰데, 이는 외국인에 대한 부정적 언론 보도의 영향이 크다.
반면, EU의 허술한 조세 제도를 악용해 10억 유로라는 어마어마한 세금을 탈루한 IKEA는 아직도 유럽인들의 사랑받는 가구 브랜드인 점은 참으로 의아할 뿐이다.
하지만 위에서 보았듯, Social dumping과 같은 EU 내 사회적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이민자 유입이 아닌 통일된 규제와 정책이 부재한 불완전한 단일 시장과 자유 무역 체제의 분배 정의 실패이다. 영국 국민들은 이미 불공평, 불완전한 EU 연합에 브렉시트로 응답했으며, 전 세계 보호 무역주의 및 외국인 혐오 열풍 역시 이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
이러한 근본적 원인이 지속되는 한 유럽 연합의 도미노 탈퇴와 극우 포퓰리즘의 선전, 이민자 혐오는 계속될 것이며, 이는 EU 국가의 경제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에 커다란 위협이 될 것이다. 나날이 거세지는 외국인 혐오는 이유 있는 화풀이이기는 하지만, 변명일 뿐 절대 정당화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민자들 역시 이 체제의 희생자일 뿐이기 때문이다.
원문: MultiKul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