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
2013년 7월 18일, 태안의 한 사설 해병대 캠프. 학교 수련회에 참가했던 다섯 명의 고교생이 파도에 휩쓸려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해경의 수사결과 드러난 사건의 전모에 따르면, 캠프 교관은 수영을 해선 안 되는 바다에 구명조끼도 없이 아이들을 뒷걸음질로 들어가게 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 과정에서 ‘갯골’이라 불리는 바닥이 움푹 파인 지점에 학생들이 빠졌던 것이다.
증언에 따르면, 교관은 그 와중에 구조에 나서는 대신 호루라기를 불며 빨리 나올 것만을 재촉했다. 조사 결과 당시 교관 중 절반 이상은 자격이 검증되지 않은 교관이었으며, 교관의 수도 부족했고, 응급처치는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반면 또 다른 증언에 따르면, 교관들이 과도한 얼차려는 물론 성희롱까지 자행했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한편 학교 측은 당시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교장과 교사들이 한 횟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는 정황이 포착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한 학부모는 당시 현장에 도착한 교장이 술 냄새를 풍겼다고 증언했다.
그야말로 벗겨보면 벗겨볼수록 이해할 수 없는 막장의 연속이다. 학생들의 일정이 끝나기도 전에 술자리를 가진 인솔자들, 실력도 자격도 없는 교관들, 안전은 쌈이라도 싸 먹은 듯한 훈련 내용 등. 하지만 놀랍게도, 다섯 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적인 사고가 아니라면, 이 모습은 여느 수련회에서나 볼 수 있는 뻔한 모습들이다.
말하자면, 어른들이 별것 아니라 생각하는 그 수련회들은, 당장 올해 태안에서 일어난 것 같은 비극이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막장들이라는 얘기다.
극기훈련 또는 수련회, 그 지독히도 불쾌했던 기억
90년대 중후반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가장 끔찍했던 기억을 하나 꼽으라면 역시 수련회 – 극기훈련 때의 기억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개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참여해야 했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서슬 퍼런 교관들이 “놀러 온 줄 아느냐”며 소리를 질러댔다. 군대에서도 사라졌을 법한 얼차려가 반복됐다.
그 화룡점정은 역시 2박째 밤을 장식하는 캠프파이어 때였는데, 그 비합리적인 폭력을 휘둘러대던 ‘교관’들은 갑자기 가족애의 수호자로 변신하여 문득 “집에서 고생하는 부모님을 생각해보라, 여러분의 오늘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다” 따위의 감성 돋는 멘트로 순진한 아이들의 눈물을 쏙 빼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자면 – 이게 뭔 생쑈야.
생각해보면 그 교관들 중 제대로 된 자격을 갖춘 이가 있기나 했을까 싶다. 산악 등반 훈련을 하며 ‘극기’를 이유로 정상에 오를 때까지 물을 주지 않는다거나 하는 일도 있었고, 유격 훈련을 본떠 만든 것으로 보이는 프로그램은 최소한의 안전장비도 갖추지 않고 행해졌다. 인솔을 맡은 교사들의 자격 역시 말할 필요도 없어서, 밧줄을 타다 손에 열상을 입은 학생을 두고 “극기훈련이니 이 정도는 버텨야 한다”며 응급처치를 거부했더랬다.
족구나 해야 할 대한민국 학교 중에서도 가장 미친 것들을 집적해 10나노급 공정에 넣고 돌리면 그때 아마 수련회라는 괴물이 태어날 것이다.
당연히 어린 나이에도 그 괴물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고, 적어도 우리나라가 그럴듯하게 발전하고 나면, 좀 많은 것이 변해있으리라 믿었더랬다. 그때는 몰랐던 것이다. 크툴루 신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그 광기의 집적이 이십 년 후에도 여전히 살아있을 것이라고는.
완벽하게 다운그레이드되었습니다.
수련회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역시 군대 훈련일 것이다. 아침 구보에 PT 체조, 유격 훈련을 흉내 낸 정체불명의 밧줄들과 구름사다리, 악악대는 조교들까지. 심지어 취침 점호까지 있다니, 이건 뭐 대놓고 짭이다.
하지만 사실 이 군대의 훈련조차도 수련회처럼 주먹구구로 행해지진 않는다. 물론 무기를 직접 다루는 등 위험성에 있어 비교도 되지 않는 훈련이니만큼 수많은 사고가 일어나지만, 어쨌든 이런 사고를 피하기 위한 여러 대책을 세우고 실행한다. 예를 들어 사격 훈련 때는 총구 방향이 과녁을 벗어나지 않도록 잠금장치를 한다거나, 긴 행군 때 구급차가 늘 동반하는 것 등이 모두 이런 대책의 일환이다. 때로는 그게 오버리액션이 되어 빨간약으로 가글을 시키는(…) 경지에 도달하기까지 하지만.
하지만 대부분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수련회가 오히려 그런 안전 대책이 한참 부족하다. 훈련에 의료인력이 제대로 동반하지도 않고, 그 정체불명의 짭유격(…) 장비는 하나같이 조악하다. 숙소는 엉망이고 관리 인력도 없다. 교관을 비롯한 관리자들은 미성년자에 대해서도 모르며, 훈련에 대해서도 모르고, 수련에 대해서도 모른다. 사고나 질병에 대처할 능력이 없음은 물론이다.
정말 대한민국에 행운에 행운이 겹쳤다면야 이런 안전 따위 제대로 말아먹은 막장 운영에도 사고 없이 잘 넘어갔을지도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땅이 그 정도로 복을 타고난 땅은 아닌 모양이다. 사고는 꾸준히도 일어났다. 전국을 뒤흔들 정도로 거대한 사고도 있었다.
끔찍한 사고
1999년 경기도 화성의 한 청소년수련원. 갑작스럽게 타오른 불길은 544명의 참가자가 자고 있던 수련원 숙소를 삽시간에 휘감았다. 컨테이너를 쌓아 만든데다 가연성 내장재가 가득한 임시 건물은 순식간에 불탔다. 방이 59개인 숙소에는 소화기가 16개뿐이었고 화재경보기는 작동하지 않았다.
이 참사로 스물세 명이 숨졌다. 네 명은 교사와 강사였다. 열아홉 명은 유치원생이었다.
1999년 우리 사회를 슬픔과 분노로 가득 채웠던 씨랜드 화재 참사. 그것은 당시 수련회장의 안전시설 미비, 관리자들과 인솔교사들의 미흡한 대응, 지방자치단체와의 검은 커넥션까지 수련회를 둘러싼 온갖 부조리의 집합이었다.
학교 수련회는 아니지만 비슷한 종류의 극기훈련 프로그램으로 ‘국토 대장정’이 있다. 이름만 보면 거룩한 애국심이 마구마구 고취될 것만 같지만(…), 사실 이는 온갖 사건사고의 온상이었다. 2012년에는 국토 대장정에 나선 10대 청소년들을 국토 대장정의 총대장이 폭행하고 성추행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더 무서운 일은 문제의 총대장이 오 년 전에도 참가자들에게 가혹행위를 한 이유로 징역형을 받은 적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국토 대장정에서의 성추행 사건은 2005년에도 있었다. 이름은 좀 다르긴 하지만, 육영재단이 주최했던 국토순례 행사에서도 총대장이 참가자를 성희롱했다는 의혹이 일어난 것이다. 당시 여러 언론은 육영재단의 박근영 이사장이 대책회의 중이던 학부모들에게 찾아와 “그래서 당신 딸이 강간이라도 당했냐, 임신이라도 했냐”는 폭언을 쏟아붓고 학부모들에게 재단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며 고소 의사를 밝혔던 일 등을 보도했는데, 덕분에 육영재단은 전국적 공분의 대상이 되었다.
이 사건들은 성격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비슷한 뿌리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극기훈련’ 류의 집단 프로그램이 가진 막장성이다. 애당초 자격 없는 이들에 의해, 최소한의 안전조차 확보하지 않은 프로그램들이, 제대로 된 관리 없이 실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총체적 난국이 때로는 사고로, 때로는 성 추문으로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 셈이다.
혼돈, 파괴, 망각
그러나 사고가 반복되는 와중에도 대체 변하는 것이 없다.
1999년의 씨랜드 참사 때 언론은 씨랜드와 지자체 사이에 뇌물 등이 오간 ‘검은 커넥션’이 있었다는 정황을 보도하기도 했다. 사실 지자체와의 검은 관계까지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상상했겠느냐마는, 적어도 학교와 수련원의 ‘검은 커넥션’은 엔간한 학교 관계자라면 다들 아는 비밀 아닌 비밀이었다.
하지만 씨랜드 참사에도 불구하고, 이런 비리의 악습은 전혀 타파되지 않았다. 2010년, 서울/수도권의 전현직 교장 157명이 수학여행 및 수련회 등 학교 행사에서 뒷돈을 받은 혐의로 적발되는 일이 벌어졌다. 다들 뻔히 알면서도 쉬쉬할 정도로 공공연한 비리가 그제야 터진 것이다.
국토 대장정의 성 추문은 말할 필요도 없다. 5년 전 같은 혐의로 형을 선고받았던 인물이 또 멀쩡하게 총대장 노릇을 하고 있을 정도다. 이쯤 되면 국토 대장정이란 행사가 아직도 존재한다는 것이 놀라울 지경이다.
이 망각은 정말이지 어이없는 블랙코미디로 치닫기까지 한다. 2013년 7월, 태안에서의 비극이 일어나기 두 주 전, 조선일보에 국토 대장정 관련 기사가 실린다. 그러니까 위에 소개한 그 사건 – 2012년 국토 대장정에서 성 추문으로 문제가 됐던 바로 그 총대장이, 2013년 또 국토 대장정을 준비중이라는 내용의 기사였다.
세상에나.
수련회의 ‘정상화’가 아니라, 악습의 ‘폐지’가 필요하다
해병대는 ‘해병대 캠프’라는 이름을 함부로 쓸 수 없게 한다고 한다. 실제 이런 비슷한 사고가 터질 때마다 각계각층에서는 ‘정부의 관리 강화’를 주문하곤 한다.
조선일보의 기사도 말미에서 “당연히 관리하는 정부기관이 있는 줄 알았다”는 학부모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이런 사설 프로그램들이 죄다 정부의 ‘제대로 된’ 감독 관리를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저런 허가 절차를 도입할 순 있겠지만, 수련회 시설 사상 최악의 참사를 일으켰던 씨랜드도 당시 인허가를 받은 시설이었다.
그러하므로 사실 해답은 하나 뿐이다. 우선 부모들이 저런 악습에 아이들을 참여시키기를 거부하고, 나아가서는 아예 저런 악습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성인이라면 본인이 생각하기에 불합리한 일이 일어난다거나 하면 스스로 어느 정도 그 불합리한 처사에 대해 저항할 수가 있다. 항의를 하거나 지시에 불복하거나, 여차하면 캠프를 떠나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정말 심각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이런 자기방어도 불가능한 상황이 올 수도 있겠지만, 그런 극단적인 경우까지는 배제하고 생각하자.
하지만 미성년자에게는 그런 게 불가능하다. 나이가 어릴수록 그 정도의 판단력을 가지기도 힘들 뿐더러, 만일 폭행이나 성범죄 등이 일어나는 최악의 상황에 치닫더라도 미성년자는 그 캠프를 떠나기가 쉽지 않다. 그 캠프를 떠나는 순간 그 아이는 외간 땅에 혼자 떨어지고 만다. 일단 호기롭게 떠날지라도 그 이후엔 별다른 대책이 없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캠프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극기훈련’ 류의 프로그램은 하나같이 정상이 아니다. 자격 없는 교관들이 군대의 그것을 조악하게 모조한, 안전은 쌈 싸먹은 위험한 프로그램을 시행한다. 이건 사건이 터진 수련회에서만 보이는 게 아니다. 아이들이 수련회라면 으레 생각하는 모습이 바로 저렇다.
혹 신뢰할만한 인솔자가 있다면 괜찮지 않겠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학교 관계자, 그러니까 교사들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 해병대 캠프에서 일어난 비극은 그 ‘신뢰할 만한 인솔자’라는 게 사실은 학생들의 일정이 끝나기도 전에 회에 소주 먹으러 가는 사람들이라는 사실까지 드러냈다.
그래도, 수련회를 정말로 개혁할 수도 있지 않을까?
다른 질문이 나올 수도 있다. 자격을 갖춘 교관, 의료인이 동반하고 안전 설비를 완벽하게 갖춘 체계적 훈련, 문제 발생 시 즉시 현장에 도착할 수 있는 인솔자 등이 모두 갖춰진다면, 수련회를 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수련회가 조악한 짭이 아니라 진짜 제대로 된 훈련 프로그램을 갖추더라도 여전히 수련회는 악습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다음 글에서, 한 줄의 의문을 출발점으로 이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수련회가 정말 수련에 쓸모가 있으며, 극기훈련이 정말 극기를 도울 수 있을 것인가”. 그러니까 좀 더 직설적으로 얘기해, 대체 이 프로그램들이 쓸모나 있느냐는 의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