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시각으로 2월 12일 밤, 미국 음악계 최대의 축제 ‘제59회 그래미 시상식(Grammy Awards)’이 열렸다. 역사와 전통 그리고 매년 그래미 시상식만의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축제답게 많은 음악팬이 집중했다.
비욘세와 아델의 대결
이번 그래미는 현시대를 대표하는 두 디바 비욘세(Beyonce)와 아델(Adele)의 대결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비욘세는 작년 발매한 앨범 ‘Lemonade’로 이번 시상식에서 총 9개 부문 후보를 올리며 본인의 커리어 최대의 수확을 올릴 계획에 있었다. 역시나 아델도 작년에 발매한 앨범 ’25’로 본상 주요부문에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그래미 시상식의 본상(General Fields) 주요 4부문은 다음과 같다.
- 올해의 앨범(Album of the Year)
- 올해의 노래(Song of the Year)
- 올해의 레코드(Record of the Year)
- 올해의 신인(Best New Artist)
결과는 아델의 압승이었다. 본상 주요 4부문 중 신인상을 제외한 3부문의 상을 독식하며 총 5관왕에 올라 최우수 어반 컨템포러리 앨범(Best Urban Contemporary Album)과 최우수 뮤직비디오(Best Music Video), 두 개의 상에 만족해야 했던 비욘세를 압도하고 올해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래미 시상식 역사에서 주요 본상 4개를 모두 획득한 아티스트는 크리스토퍼 크로스(Christopher Cross)와 아델밖에 없다. ‘Rolling in the Deep’이란 메가 히트곡이 나왔던 2012년에도 아델은 주요 부문 중 세 개를 휩쓸며 두 번의 시상식에서 주요 부문 3관왕이란 위업을 달성해냈다. 이쯤 되면 그래미 시상식의 주관인 ‘미국 레코딩 예술 산업 아카데미(National Academy of Recording Arts and Sciences)’가 아델을 얼마나 아끼는지도 잘 알 수 있다.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극찬을 받았던 비욘세의 앨범 ‘Lemonade’가 단 한 부문도 성과를 못 내 아쉬움을 표하는 팬들이 적지 않았다. 지난해 힙합 뮤지션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가 11개 부문에 후보를 올리고도 본상을 하나도 획득하지 못한 장면이 함께 겹쳤다.
하지만 비욘세는 수상 여부와 관계없이 만삭의 몸을 이끌고 올라와 왜 본인이 퍼포먼스의 여왕인지를 증명했다. 황금빛으로 무대를 물들이고 임신한 상태라도 그녀의 가창력과 무대장악력은 언제나 최고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수상 여부와 관계없이 가장 빛났던 아티스트는 비욘세였다.
올해의 발견, 찬스 더 래퍼
비욘세의 본상 무관만큼이나 가장 이변이 되었던 것은 찬스 더 래퍼(Chance the Rapper)의 2관왕이었다. 본상 중 올해의 신인상은 한 해 동안 차트에서 정말 좋은 성적을 보였던 체인스모커(Chainsmoker)가 받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주인공은 찬스 더 래퍼였다.
찬스 더 래퍼의 수상이 놀라운 건 단순히 차트 성적이 더 좋았던 체인스모커를 이겼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그래미 역사상 최초로 정규앨범을 내지 않은 가수가 수상했다는 점이다. 힙합 씬에서 믹스테이프는 주로 정규앨범 발표를 앞둔 신인 래퍼들이 내는 습작에 해당한다. 찬스 더 래퍼는 믹스테이프만으로 빌보드 차트 8위에 오르며 신인상과 최우수 랩 앨범(Best Rap Album) 상을 획득했다.
그래미답지 않은 방송사고
올해도 그래미는 역시나 신구 뮤지션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최고의 무대를 준비했다. 아델의 히트곡 ‘Hello’를 시작으로 포문을 연 그래미 시상식은 위켄드(The Weeknd)와 다프트 펑크(Daft Punk)의 협연과 에드 시런(Ed Sheeran)의 무대로 이어졌다. 최고의 인기 뮤지션인 브루노 마스(Bruno Mars)와 케이티 페리(Katy Perry)도 빠질 수 없다. 힙합 그룹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와 앤더슨 파크(Anderson Paak) 역시 흥겨운 무대를 꾸몄다. 존 레전드(Jonh Legend)의 독무대 역시 인상적이었다.
그중 가장 기대를 모았던 메탈리카(Metallica)와 레이디 가가(Lady Gaga)의 무대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훌륭한 무대였다. 다만 최고의 음향 수준을 자랑해왔던 그래미 시상식답지 않게 메탈리카의 보컬 제임스 헷필드(James Herfield)의 마이크가 나오지 않는 음향사고가 발생해 레이디 가가와 마이크를 같이 쓰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음향사고로 제임스 헷필드의 강력한 보컬을 제대로 전하지 못해 많은 시청자의 비난을 샀다.
시상식의 주인공이었던 아델도 일종의 방송사고를 냈다. 그녀는 지난 크리스마스 세상을 떠난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을 위한 헌정무대에서 감정이 벅차올라 라이브 도중 공연을 끊고 다시 무대를 시작했다. 평소 무대공포증이 있다고 고백했던 아델이었으나 그래미 시상식 같은 큰 공연 때마다 유독 불안한 모습을 보여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샀다.
레전드들을 위한 무대
언제나 최고의 공연으로 음악팬에게 보답하는 그래미 시상식은 그 콘텐츠 역시나 다양했다. 최고의 영국 팝그룹 중 하나인 비지스(Bee Gees)에 대한 헌정무대를 비롯해 유독 많은 전설적인 아티스트들이 세상을 떠난 작년 한 해를 기리며 조지 마이클과 프린스(Prince)를 다시 추억했다.
특히 프린스의 헌정 공연을 맡은 브루노 마스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프린스의 곡을 재해석하며 경이로운 기타 연주 실력까지 보여줬다. 그가 왜 현재 최고의 남자 아티스트인지를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문화의 다양성
그래미 시상식이 이렇게 수많은 사람에게 주목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매년 후보의 선정 기준과 수상 기준에 대해 뒷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지만 명실공히 최고의 음악 축제로서 그래미는 항상 최고의 공연을 꾸몄다. 다만 그게 전부였다면 60년에 가까운 전통이 만들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미 시상식은 매년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스토리와 콘텐츠가 있는 시상식이기에 대중들은 항상 다음 축제도 기다린다. 주요 부문에서의 흥미진진한 대결 구도, 만삭의 몸을 이끌고 나와서도 최고의 실력을 보여주는 아티스트의 공연, 레전드들을 소환해 보여주는 찬란한 역사 회고, 신구 아티스트의 조화 등 올해 그래미 시상식만 해도 이야깃거리는 풍성하다.
예를 들어 시상자로 자주 나오는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경우 무대에 설 때마다 항상 본인의 눈이 안 보이는 상황을 활용해 웃음을 준다. 이를테면 보이지도 않는 수상자 용지를 열심히 본다거나 수상자의 이름이 적힌 쪽을 카메라에 비추며 “너네는 누군지 안 보이지?”와 같은 농담을 한다. 한국 시상식에서는 보기 드문, 대담하면서도 유쾌한 장면이다.
아래의 짧은 영상이 위의 이야기와 결을 같이하는 내용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잠시 감상해보자.
또한 저 해는 대표적인 남성 동성애자 스타 샘 스미스(Sam Smith)의 해였다. 장애인과 유색인종, 성소수자 같은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그래미만의 콘텐츠, 우리가 그래미 시상식을 매년 챙겨보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원문: 고덴의 영화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