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솔루트 보드카는 술꾼이라면 다들 한 번쯤 마셔보는 보드카입니다. 스웨덴의 대표적인 보드카 브랜드로, 전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보드카 중 하나이기도 하죠. 전 앱솔루트 코코넛과 피치를 제일 좋아합니다. 아… 내 간이야…
일전에 앱솔루트 보드카가 앱솔루트 코리아라는 캠페인을 선보였습니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한 광화문 촛불 집회를 주제로 삼았죠. 그런데 이걸 불편해하시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아무래도 앱솔루트 보드카가 술이란 점, 자신이 직접 참여한 집회를 상업적인 광고로 이용했다는 점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겨우 너네 술 광고하라고 내가 집회에 나간 거 아니다. 집회에 돈 한 푼 보태준 것 없으면서…’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 손으로 만든 집회의 이미지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불쾌할 수 있는 건 당연합니다.
만약 앱솔루트가 아닌 브랜드였다면 저 역시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타이밍이 장사네.’라고 말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앱솔루트는 기본적으로 광고와 예술을 결합해오던 대표적인 브랜드라는 점을 먼저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술의 한 분야로서의 광고
우리는 ‘광고’라고 하면 노골적으로 상업성을 띤, 어딘가 순수하지 못한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나 디자인이 그렇듯이 상업성과 예술성을 딱 잘라 구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팀 버튼의 애니메이션이라도 순수한 예술로 보기 어렵고, 돈 받고 파는 상품이라도 장인 정신이 숨 쉬고 있다면 상업적으로만 이해하기도 어렵죠. 광고 역시 그렇습니다. 광고계에 몸담은 사람들은 예술성과 상업성, 이 두 가치 사이를 진지하게 탐험하는 전문가들입니다.
노골적인 홍보 스타일의 극단에 있는 것이 홈쇼핑 류의 광고라면, 그 반대의 극단도 있습니다. 여러 아티스트와 콜라보를 한다던가, 사회적 이슈를 다뤄서 공동체에 기여하는 방식의 광고가 그렇죠. 다음은 일본에서 참여예술 형태로 만들어진 구글 브라우저 광고 ‘좀 더 탭을 즐깁시다(もっと。タブを楽しもう。)’입니다.
앱솔루트 보드카의 아트 마케팅
앱솔루트는 광고 예술사에 남을 독보적인 행보를 걸어왔습니다. 그래픽 디자이너 제오프 헤이즈(Geoff Hayes)의 아이디어를 기초로 만들어진 ‘앱솔루트 퍼펙션’이 그 시초였죠. 아무런 설명 없이 후광을 받는 병 하나만 한가운데 대담하게 배치한 뒤 헤일로를 그려놓고 “앱솔루트 완벽함(ABSOLUT PERFECTION)”이라는 카피를 박은 게 전부였습니다.
이 광고는 미국 내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며, 미국에서 제일 잘 팔리던 보드카 브랜드인 ‘스톨리치나야’의 판매고를 훌쩍 뛰어넘는 데 일조합니다. 그전까지는 러시아산 보드카가 제일이었는데, 난데없이 스웨덴산이 왕좌를 차지한 거죠. 전 세계에서 제일 많이 팔리는 막걸리가 콜롬비아산이고 그러면 좀 자존심 상할 것 같네요.
이후로 앱솔루트는 이 기본 포맷을 이용하여 다양한 문화와 예술, 그리고 사회적 이슈를 접목하고자 했습니다. 병의 형태를 은유하고 ‘앱솔루트 + ○○○’라는 카피를 박는 것이죠. 이 스타일은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어 앱솔루트 공식이 아닌 개인 작품도 많이 생산됩니다.
앱솔루트 아트 시리즈
앱솔루트는 아티스트들과 콜라보를 많이 진행해왔습니다. 말이 필요 없는 앤디 워홀과의 콜라보입니다.
그 후로도 키스 해링(Keith Haring), 케니 샤프(Kenny Scharf), 로버트 인디아나(Robert Indiana), 홀리 존슨(Holly Johnson)을 비롯하여 디자인, 패션, 조각으로 이어집니다. 잠재력 있는 신인 예술가를 발굴하는 데에도 앞장서죠. 아래는 ‘마망’이라는 거미 구조물로 유명한 조각의 거장, 루이즈 부르주아와 2003년에 콜라보한 작품입니다.
앱솔루트 + 개념
영화나 영화배우를 주제로 한 시리즈도 있습니다. 앱솔루트 사이코는 영화 사이코에서 가장 명장면인 샤워 씬을 테마로 했습니다.
마릴린 먼로의 가장 유명한 사진을 테마로 한 작품도 있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리즈입니다.
재미있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고르는 것도 정말 힘듭니다…
앱솔루트 익명, 정말 기발하지 않습니까?
앱솔루트 국가 및 도시 (feat. 랜드마크)
그중에서도 오래전부터 나라나 도시 등 장소를 콘셉트로 제작된 시리즈들이 유명합니다. 이 시리즈의 특징은 각 나라나 도시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을 잡아내려고 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다음은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햅번이 타고 다니던 스쿠터 베스파가 떠오르는 앱솔루트 롬입니다.
이건 뉴욕의 유명한 현수교인 브루클린 다리네요.
역시 제네바는 스위스 시계의 성지죠.
모차르트, 하이든, 슈베르트 등 음악의 거장들이 나고 자란 음악의 도시 오스트리아의 빈도 있습니다.
드라큘라의 배경인 트란실바니아도 있습니다.
할리우드 하면 영화, 영화라고 하면 무대가 아니겠습니까? 무대 뒤를 상징한 작품으로, 카피까지 뒤집어 놓은 센스에 감탄했던 작품입니다.
벨기에의 브뤼셀이라고 하면, 역시 오줌싸개 소년 조각부터 떠오릅니다.
세계에서도 가장 유명한 동물원이 있는 샌디에이고. 앱솔루트 병이 보이시나요?
재즈의 도시 뉴올리언스도 있습니다. 병 디자인을 시각적으로 은유하는 기법이 정말 멋집니다.
정말 오피셜로 만든 것일까 의심되는 앱솔루트 사이공…
도쿄도 있어요. 초밥이란 건 굉장한 장인 정신으로 만드는 미각 예술이죠.
서울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앱솔루트 서울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한국의 전통문화도 좋지만, 이런 방패연이나 오방색 개념만으로는 한국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민주화를 향해왔던 역동적인 현대사가 더 한국다운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앱솔루트 보스턴입니다. 보스턴 차 사건을 테마로 했기 때문입니다. 아직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이던 시절, 북아메리카 주민들이 영국으로부터의 차 수입을 저지하기 위해 보스턴 항에 정박한 배에 실려 있던 홍차 상자들을 바다에 버린 사건이죠. 미국 독립사에서 중요한 사건입니다.
앱솔루트 바스티유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단두대에 보내 버렸던 것처럼 병의 목을 잘라 버렸습니다. 과감하고 심플하죠.
그리고 나온 것이 앱솔루트 코리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이야말로 가장 한국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어느 나라 시리즈보다 가장 멋지다고 느꼈습니다.
다만 우측 하단에, ‘책임감 있게 즐겨라’가 걸립니다. 이건 앱솔루트가 평소에도 일관적으로 내걸고 있는 카피이긴 합니다. 술은 즐기되, 책임을 지라는 의미지요(취하면 감형해주는 어디와는 비교됩니다). 그런데 다만 이 작품에다 박아놓으니 ‘책임감 있게 집회하는 시민이 되어라’ 같은 꼰대질처럼 느껴질 소지가 다분합니다. 별다른 의미는 없었을 것 같지만 그래도 이런 부분이 조금 아쉽습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내가 만든 집회인데 어떤 놈이 이걸로 돈을 버나?’라기보다 한국의 이미지가 방패연에서 촛불 집회로 바뀌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앱솔루트 캠페인이라고 하면 그래픽 아트 및 광고사에 중요하게 취급되는 자료라서, 이런 게 하나 만들어지고 나면 두고두고 자랑할 수도 있고
앱솔루트 끝으로
끝으로 재미있는 거 하나 올리겠습니다.
추신. 앱솔루트는 오피셜로 만든 광고도 많지만, 워낙 많은 패러디 및 개인 제작자들의 2차 창작(?)도 많아서, 모두가 오피셜로 나온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어요. 앱솔루트 코리아는 오피셜이네요.
추신 2. 재미있는 광고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실을 수가 없는 게 너무 아깝습니다. 뭘 보여줄까 뒤적거리며 고르고 빼다가 시간이 술술… 그래서 앱솔루트 보드카의 광고 시리즈를 모은 보드를 만들었으니 구경해보세요.
원문: 괴벨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