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꿈’이라는 말은 굉장히 희망적인 말이기도 하지만 굉장히 절망적인 말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꿈을 통해 희망을 보지만, 누군가는 꿈을 통해 절망을 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꿈은 희망인가요? 절망인가요? 누구나 다 희망에 가까우면 좋겠지만, 어쩌면 절망에 더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저에게 있어 꿈은 희망보다 절망에 가까웠습니다. 어릴 적 저는 꿈을 꾸는 게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꿈을 꾸기 위해서는 성적이 좋아야 하고, 집이 평화로워야 하고, 부모님이 돈이 많아야 했습니다. 이것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꿈을 이루기 위해선 금수저가 되어야 한다고 하죠.
너무 부정적으로 세상으로 본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부정할 수 없는 우리가 사는 오늘의 모습입니다. 얼마 전 JTBC ‘말하는 대로’에 출연한 사회학자 오찬호 씨는 거침없는 팩트 폭력을 가했습니다.
“한국 사회는 죽도록 노력해서 평범해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저는 오찬호 씨의 말에 공감합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은 우리가 지금 이렇게 죽도록 노력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커다란 꿈을 이루기 위해서인가요? 내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인가요? 이 질문은 쓸데없는 질문이 아니라 지금 꼭 우리가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볼 질문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평범해지기 위해서 남들과 똑같이 주입식 교육을 받으며 대학에 왔고, 대학에 와서도 남들과 똑같이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일을 얻기 위해 아등바등하죠. 그러한 노력 중 하나가 많은 사람이 매달리는 고시 시험입니다. ‘공시족 40만 시대’는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사회학자 오찬호 씨가 집필한 『대통령을 꿈꾸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에는 영화 ‘족구왕’의 장면을 인용해서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영화 ‘족구왕’에서는 한국의 “청춘들이 갇혀 있던 덫을 은유나 상징 없이 그대로 드러낸다.”는 평을 받는 명대사가 등장한다. 군대를 제대하고 ‘연애를 꼭 하겠다는’ 설렌 마음으로 학교에 복학한 주인공 홍만섭은 기숙사 선배에게 뜻밖의 강요를 받는다.
선배: 너 무슨 과야?
만섭: 민족의 혈, 생활경영대 식품영양학과…….
선배: 음……. 공무원 시험 준비해.
만섭: 근데 저는 공무원 시험에는 별로…….
선배: 너 토익 몇 점이야?
만섭: 토익은 아직 본 적 없습니다.
선배: 학점은?
만섭: 평점 2.1…….
선배: 음……. 공무원 시험 준비해.꿈이 무엇이든 딱히 도드라지는 어떤 것이 없다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고 현실적이라는 조언. 규민이도 무수하게 들었다. 은정이는 어디에 있는 학교인지도 모른다는 충청권 소재의 ‘그런 학교’, 이른바 ‘지잡대라 불리는 지방대’에 다니는 규민이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학교생활의 시작이었다. 본인의 입장은 상관없다. ‘주변’이 그렇게 강요한다. “여기가 너의 종착지라 생각하지 마라! 더 높은 곳으로 가라! 어떻게?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 된다! 그게 가문의 영광이다!”
- 오찬호, 『대통령을 꿈꾸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59쪽
여러분은 이 장면이 어떻게 느껴지시나요? 이 장면은 낯설기보다 오늘날 우리 세대가 마주하는 장면입니다. 꿈과 목표를 통해서 진취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자세를 잃지 않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슬픈 자화상 같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마주하는 것 또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을 꿈꾸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는 너무 적나라하게 우리가 사는 사회를 묘사합니다. 책의 시작부터 우리 사회의 폭력성을 언급하고, 저자는 공무원이 되려는 한국의 청춘들을 나약한 존재로 봐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우리 사회의 현실을 말합니다.
어떤 사회에서나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만만치 않다지만 한국은 유독 더 고통스러운 20대를 보내야만 합니다. 이것은 20대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방향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책의 한 인물을 통해서 우리 사회를 이렇게 진단하고 있습니다.
평범하게 살아도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건 무슨 고귀한 이상이 아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건 이런 사회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함이어야 하지, 잘못된 사회 속에 ‘홀로’ 살아남기 위함을 강구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상식적인’ 공적 시스템 안에서만 사적 행복이 ‘상식적으로’ 보장될 수 있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역으로 “사회가 병들면 개인도 병들기 마련이다.” 한국이 딱 그러하다. 한국에서 겪는 젊었을 때의 고생은 ‘그게 원인이 되어’ 그 후에도 개인을 고생시킨다.
- 앞의 책, 53쪽
최근 한국 사회에 터진 어느 사건은 그 어느 때보다 불평등을 더욱 눈에 띄게 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노력 여부를 따지기 전에 사회가 너무나 병들어 개인이 죽어가고 있는 상황이죠. 최근에 대선 후보를 사퇴하겠다고 밝힌 인물은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고 말했지만 이제는 그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능력주의를 한 사회에 적용할 때는 ‘경쟁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이 공정해야만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여기서의 공정은 기회. 과정. 결과의 평등을 뜻한다. 한국에서 기회의 평등이 얼마나 요원한 소리인지는 앞서 충분히 이야기했다. 이미 한국은 비록 불평등하더라도 ‘이 악물고 버티다 보면’ 가능한 그런 수준이 아니다.
그리고 이 상황은 청춘들이 노량진에 몰려드는 것과 무관치 않다. 그나마 가장 공정한 시험이 바로 공무원 시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앞의 책, 77쪽
오늘날 한국 사회는 마냥 열심히 한다고 잘 풀리는 사회가 아닙니다. 이제 노력이 부족하다거나 열정이 부족하다는 말로 개인을 폄하하지 못합니다. 이미 능력주의를 선호하는 시스템 내에서 출발과 과정 자체에서 격차가 너무나 커졌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나마 공정한 시험인 공무원 시험을 찾는 겁니다.
슬픈 일은 청춘들만 공무원 시험을 찾는 게 아니라 부모님들도 먹고살 걱정을 하라며 공무원 시험을 자녀에게 권한다는 점입니다. 저 또한 20대 대학생이기에 어머니께 자주 그런 말을 듣곤 합니다. 특히 제 친구가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가 추가로 7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일이 영향이 컸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다면 분명히 좋을 거예요. 취업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나름 그 일에서 보람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런데 저는 도무지 공무원에서 어떤 저만의 비전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꿈을 꾸기 위해서 공무원이 되는 게 아니라 현실을 위해서 공무원이 되어야 하는 것이니까요.
저는 어디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고, 자유롭게 글을 쓰면서 살아가는 삶을 원합니다. 하지만 블로그를 통해서 열심히 글을 쓴다고 해도 먹고사는 데에 있어 어려움을 피하기 힘듭니다. 지금도 대학개강을 앞두고 등록금 때문에 늘 걱정을 안고 지내고 있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이 비슷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사는 사회는 꿈과 현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만약 현실을 선택하더라도 최소한의 인간적인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일은 너무나 얻기 힘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공무원 시험에 발을 돌립니다. 공무원이 되면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으니까요. 가슴 아픈 일입니다.
『대통령을 꿈꾸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는 어떻게 보면 너무나 차가운 책입니다. 우리에게 현실은 장밋빛 세상이 아니라는 걸 정확히 보여줍니다. 마음 한구석에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생각한 오늘이 사실은 절망에 가깝다는 걸 느끼게 해줍니다. 부정적인 해석을 한 게 아니라 팩트입니다.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 저자는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대신 저자는 우리가 이 사회를 넘기 위해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독자들에게 던집니다. 그는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 이렇게 말합니다.
많은 이들이 ‘억울하면 강자가 되라’는 식으로만 말한다. ‘성공한 사례’를 찾아서 마치 누구나 그렇게만 하면 삶의 구렁텅이에서 구원받을 것처럼 포장한다.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준다는 주술을 외우는 것도 잊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사회가 할 일을 우주에 맡길수록 현실은 더 잔혹해진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노량진에서 고생하는 누군가에 대한 안쓰러움’이 아니라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시민으로서의 직무를 유기한 스스로’를 발견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집필되었다. 사회는 ‘개인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개인들의 변화’만이 해법이다.
나도 ‘남들처럼’ 인간답게 살아야 할 권리가 있고 남들도 ‘나처럼’ 자신의 존엄성이 지켜져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끊임없이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 앞의 책, 243쪽
이 책을 읽으면 아마 우울한 기분에 괜히 깊은 한숨만 나올 수도 있을 거예요. 책을 읽지 않고 제 글을 읽은 것만으로도 인상을 찌푸리며 ‘빌어먹을……. 진짜 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이라는 말을 무심코 흘릴지도 모르죠. 저도 그렇습니다. 이루고 싶은 꿈을 찾아 그 길을 가고 있지만, 늘 아슬아슬하거든요.
“한국에서는 도대체 무엇을 꿈꿀 수 있을까?”
이 질문 앞에 우리는 경쟁에서 버티거나 경쟁을 피해 또 다른 경쟁을 해야 하는 삶이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주저앉지 않을 사람에게, 사회학자 오찬호가 말하는 한국 사회 보고서 『대통령을 꿈꾸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를 추천합니다.
원문: 노지의 소박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