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라틴어로 ‘기쁘게 해주리라 I will please’라는 뜻. 그 자체로는 아무런 효과가 없는 약물이나 처치(주사, 수술, 그 외의 모든 치료)가 환자의 병세를 완화시키는 효과를 발휘하는 현상을 통틀어 말한다.
이 현상은 18세기의 의학 문헌에서도 보고될 만큼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당시에도 의사들이 효과가 없을 줄 알면서도 단지 환자의 소망을 들어주기 위해(기쁘게 해주려고)서 의미 없는 처치를 행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환자는 병세가 일시적으로 호전되는 현상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플라시보 효과의 존재는 너무도 명확해서 FDA(미 식품의약품안전청)를 비롯한 거의 모든 국가검증기관에서는 약물이나 처치의 효과를 검증할 때 반드시 ‘효과를 검증할 약물이나 처치를 받은 집단vs아무 처치도 받지 않은 집단’의 비교가 아니라, ‘진짜 처치를 받은 집단vs가짜 처치를 받은 집단’의 비교를 하도록 규정해놓았다.
플라시보 효과의 발생원인은 크게 4가지다.
- 나을 거라는 환자의 기대.
- 환자 자신의 낫고자 하는 동기.
- 그 처치에 대한 관성화된 믿음.
예를 들면, 광고나 뉴스를 통해 그 효과를 알고 있다면 당연히 자기에게도 효과가 발휘될 것이라고 믿게 된다. 마지막은 이런 요인들이 뇌를 속여서 결과적으로 분비하게 만드는 내인성 아편의 양.
보통 환자가 진짜 약이라고 속았을 때만 플라시보 효과가 발휘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환자의 믿음은 저 요인들 중 하나일 뿐이다. 나머지 요소가 충분히 강하다면 심지어 환자 자신이 그 약이나 처치가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플라시보 효과가 발휘될 수 있다. 특히 관성화된 믿음의 효과가 처치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플라시보효과의 강도도 처치의 종류에 따라서 달라진다. 해리엇 할 박사Harriet Hall는 그 순서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같은 가짜 약이라도 정제 알약보다는 캡슐 약이 더 플라시보효과가 크고 정제 알약이라도 크기가 크면 더 플라시보 효과가 커진다. 가짜 약이라도 하루 복용량이 많을수록 플라시보 효과도 커지고 알약의 색깔에 따라서도 플라시보 효과가 달라진다.
뿐만 아니라 가짜 먹는 약보다는 가짜 주사제가 더 플라시보효과가 크며, 가짜 침 치료가 가짜 먹는 약보다 더 플라시보 효과가 크고 가짜 주사제보다는 가짜 수술이 더 플라시보 효과가 크며 비용이 비쌀수록 플라시보 효과도 커진다.
플라시보 효과는 환자의 내부 면역체계와 진통물질 분비체계를 일시적으로 자극하고 활성화시킴으로써 통증이나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병의 원인이 바로 그런 면역체계의 일시적인 불안정 때문이라면 실제로도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 일시적인 효과가 지난 다음에는 면역체계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고 완전히 녹다운 되버린 상태가 되므로 플라시보 효과가 나타나기 전보다 상태가 더 악화되는 것이 보통이다. 최악의 경우엔 플라시보 효과에 매달리느라 제대로 치료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플라시보 효과는 우리의 마음이 몸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환자가 신체적 증상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으면, 실제로 일시적이나마 그 효과가 발휘되는 것이다. 플라시보 효과는 실제로 효과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수많은 사이비 치료법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게 어떤 처치이든 아무리 사기라 할지라도 처치를 받기만 하면 일시적으로는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게다가 비싼 돈을 낼수록 플라시보 효과도 더 크기 때문에 크게 사기를 치는 사이비 의사일수록 더 효험있다는 소문이 돌 수 있다.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다. 플라시보 효과가 진짜와 가짜를 가리지 않고 발휘된다는 건 실제 약효 속에도 플라시보 효과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실제로 효과가 있는 약이나 치료를 받고 얻는 효험의 일부도 플라시보 효과라는 이야기다. 고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고 있더라도 그게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는 더 좋다.
원문: 싸이코짱가의 쪽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