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The New York Times에 Claire Cain Miller가 기고한 ‘How to Close a Gender Gap: Let Employees Control Their Schedules’를 번역한 글입니다.
일터에서 이른바 성별 격차(gender gap)가 발생하는 주된 원인 중 하나는 한번 출근하면 퇴근할 때까지 쉬지 않고 쭉 일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범, 혹은 회사 측의 기대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별 격차는 같은 업무를 해도 여성이 남성보다 임금을 덜 받고, 유리천장 때문에 임원직까지 오르는 여성이 흔치 않으며, 아이가 태어나면 주로 여성이 일을 그만두고 육아를 맡는 상황 등을 모두 아우릅니다. 특히 남성보다 여성이 육아를 도맡는 경우가 많은데, 육아와 장시간 근무는 병행하기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버드대학교 경제학과 클라우디아 골딘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근무 시간이나 근무하는 곳을 노동자가 각자 사정에 맞춰 유연하게 정할 수 있도록 하면 성별 격차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이런 유연근무를 신청했다가 급여나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를 사회과학에서는 ‘유연근무의 덫(the flexibility stigma)’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회사에 유연근무 규정이 있는데도 선뜻 이를 신청하는 직원이 좀처럼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구직 포털사이트 워크(Werk)는 인력을 채용하려는 회사와 협의를 거쳐 아예 구인 공고에 유연근무 조항을 넣었습니다. 취직한 뒤에 어렵게 말을 꺼내야 하는 부담을 사전에 없앤 겁니다.
워크 웹사이트에 올라오는 모든 일자리는 숙련된 기술을 갖춘 경력직 일자리로, 근무 시간이나 근무 장소를 얼마간 유연하게 정할 수 있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100% 재택근무부터 집과 사무실 근무를 병행하는 조건 등을 다양하게 고를 수 있고, 근무 시간도 9시부터 5시까지 정시에 구애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시간을 골라 지원할 수 있습니다. 출장을 얼마나 자주 가게 되는지도 미리 정해진 기준을 보고 고를 수 있습니다.
직원들은 따로 사유서를 제출하지 않고 그때그때 근무 시간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갓난아기 때문에 밤에 한숨도 못 잤거나, 부모님을 모시고 밤사이 응급실에 갔을 때 상사에게 보고 걱정, 출근 걱정, 회의 걱정 없이 가정사부터 돌보라는 배려입니다. 전직 컨설턴트 애나 아워바흐와 함께 워크를 창업한 변호사 애니 딘은 이렇게 말합니다.
“‘죄송해요, 아침에 우리 애가 먹은 걸 다 토해서 지금 출근이 어려울 것 같네요.’ 이런 말 꺼내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전체 회사의 80%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들 유연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고들 해요.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허울뿐인 규정인 경우가 상당히 많죠.”
아워바흐와 딘은 각자 첫 아이를 낳은 뒤 워크 같은 새로운 고용 알선 창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의기투합했습니다.
아직 워크의 실험은 걸음마 단계입니다. 워크를 통해 구인 공고를 내는 회사 대부분이 중소기업이고, 채용 대상도 대부분 고학력, 경력직 여성으로 부서장 직급입니다. 교육 수준이 낮거나 처음부터 시간제로 일하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에게는 유연근무제도 자체가 애초에 꿈 같은 소리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들에게 노동과 육아를 병행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죠.
출산 후 육아와 일을 힘겹게 병행하거나 하나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엘리트 여성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워크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탄생했습니다. 높은 교육 수준을 요하는 경영직이나 고소득 법조인 같은 전문직종에서도 성별에 따른 불평등이 존재합니다. 오히려 불평등이 더 심한 측면도 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긴 근무시간과 유연성 부족을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다시 말해 일터에서 얼마나 시간을 보내느냐가 성공에 큰 영향을 미치는 직종에서 불평등이 크다는 겁니다. 사회학자들도 고학력 여성들이 직장을 그만두는 주된 이유로 유연한 근무를 허락하지 않는 일터를 꼽았습니다.
결국 이는 기업에서 근무하는 사람 가운데 여전히 남자가 여자보다 훨씬 많은 결과로 이어집니다. S&P 500에 드는 회사의 전체 임원 가운데 여성 임원의 비율은 4%입니다. 워크를 창업한 딘은 말합니다.
“여성도 당연히 임원이 되고 싶어 하죠. 그렇지만 임원이 되기까지 과정을 헤쳐나가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요. 즉, 기업 임원이 되려면 삶의 어느 순간은 적어도 매일 16시간씩 주말도 없이 일에 파묻혀 지내야 하는데, 대개 바로 그때 여성들에게 기대되는 역할이 일 말고 또 있기 마련이죠. 그 역할까지 제대로 해내려면 하루에 16시간씩 일할 수 없고요.”
퓨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일하는 엄마의 70%가 유연한 근무 일정을 보장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답했습니다. 일하는 아빠 가운데 같은 답을 한 비율은 48%로 상대적으로 낮았습니다.
유연근무제는 이직률을 줄입니다. 일과 가정 사이에서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도 줄어듭니다. 이는 7개 대학의 연구진 10명이 지난해 12월 공동으로 발표한 논문을 비롯한 대부분 연구가 일관되게 가리켜 온 결론이기도 합니다. 다만 많은 연구의 근거로 쓰인 실제 유연근무 사례들은 선택 편향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은데, 회사가 유연하게 일정이나 근무지를 조정할 수 있게 배려하는 직원들은 대개 근속 기간이 길거나 상당히 유능한, 다시 말해 회사가 깊이 신뢰하고 웬만해선 놓치고 싶지 않은 직원들일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워크를 통해 직원을 채용하는 회사들은 아마도 다른 경로를 통해서는 지원하지 않았을 훌륭한 인재들도 원서를 낸다고 말합니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안경을 만드는 기업 로어케이스(Lowercase)를 창업한 제라드 마스치 대표는 최근 워크를 통해 회사 홍보팀장을 뽑았습니다. 파트타임, 재택근무가 기본이고, 매달 열리는 전체 회의에만 회사로 나오면 되는 조건입니다.
“이번 주에는 일을 많이 못 하든, 밀린 일을 이번 달 안에 시간을 내 처리하든 저는 크게 개의치 않아요. 어디서 일하느냐도 마찬가지죠. 결국, 제게 중요한 건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느냐겠죠. 유연한 근무 조건 덕분에 신이 나면 자연히 일의 능률도 오르기 마련이죠.”
플로리다 주 포트 마이어스로 발령받은 남편을 따라 이사한 33살 에린 파스 씨도 워크에서 새 직장을 찾았습니다. 두 살배기 딸 아이가 있고 뱃속에 둘째를 임신한 파스 씨는 집에서, 파트 타임제로 일할 기회를 찾고 있었습니다. 워크에 해당 조건을 검색한 결과 세 가지 일자리를 발견했고, 파스 씨는 그 가운데 하나인 비영리단체 대상 컨설팅업체 콜렉티브 굿(Collective Good)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회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무언지, 또 제게는 뭐가 중요한지를 CEO와 직접 이야기할 수 있는 통로가 있다는 것만 해도 제가 전에 일자리를 찾아볼 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죠.”
파스 씨는 일주일에 10시간 베이비시터를 고용하고, 그 시간과 딸아이가 잠든 시간에 일합니다. 예정된 회의는 화상으로 진행하고,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에 갑자기 처리해야 할 일이 생기면 아이에게 잠깐 아이패드를 들려주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처리하죠. 둘째를 출산하고 출산휴가를 쓴 뒤에는 정규직으로 전환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유연근무제의 효과는 여러 차례 증명됐지만, 그렇다고 유연근무제를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먼저 남녀를 고루 배려하지 않은 해결책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학교 수업이나 급식처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공간에서 해야만 하는 일도 많습니다. 직원에게 근무 시간과 근무지를 유연하게 고를 수 있게 하려면 역설적으로 어떤 직원들은 반드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곳에서 일하게 되기도 합니다. 가전제품 쇼핑몰인 베스트바이(Best Buy)는 유연근무제를 시행했다가 철회하기도 했습니다.
성별과 일터 문화 등에 관해 다양한 의제를 제기해 온 싱크탱크 뉴아메리카(New America)의 앤마리 슬로터 소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노동자 스스로 유연하게 근무 시간과 근무지를 결정해 일해도 무리 없이 굴러가는 직업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시간에 한 데 모여 일하는 것만큼 업무 성과를 평가하기 쉬운 방법은 없죠. 결국, 이 문제는 직원 개개인보다도 업무를 지시하고 성과를 평가하는 매니저들의 인식을 바꿔야 하는 문제입니다.”
원문: 뉴스페퍼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