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 19일, 나는 Spansion이라는 반도체 회사의 인턴으로 실리콘밸리의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 회사를 필두로 SAP Labs에서 한 번 더 인턴 과정을 거친 후 엑센츄어, 그리고 현재의 링크드인까지 실리콘밸리에서 10년 넘게 일을 하고 있다. 물론 실무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다. 하지만, 이런 전문지식의 습득보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문화와 관습’이 더 기억이 남는다.
문화와 관습이라는 것은 몇 번 본다고 체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직장 생활을 10년 이상 한 지금도 미국의 회사 문화가 어색할 때가 있지만, 다행히 10년 전보다는 좀 더 자연스러워진 것 같다.
나의 지난 10년을 되돌아보며, 2006년 여름 Spansion의 문을 열고 첫 직장을 맞이한 과거의 나에게 다음과 같은 ‘실리콘밸리 회사 생활 팁 top 10’을 알려주고 싶다.
1. 이메일
- To와 cc를 구분하여 사용하자. To는 이메일 수취인, cc는 이메일 내용을 참고해서 알고 있어야 하는 사람들만 포함할 것. cc가 있는 경우는 꼭 전체회신을 할 것. (지메일은 전체회신을 기본 옵션으로 설정해 놓을 수 있음)
- 이메일은 간결하고 목적이 분명하게 쓴다. Bullet point도 좋다. 하지만 소설은 쓰지 말자. 안부는 짧게 묻는 것은 좋지만 너무 오버하지 말자. (‘Hope you had a great weekend!’ 정도)
- 이메일을 받았으면 수신 확인차라도 답변을 하도록. (Got it. Thanks!)
2. 회의
- 30분이 기본. 정말 중요하면 60분. 60분이 넘어가면 회의를 아예 잡지 말자.
- 회의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가급적이면 ‘발표’는 생략하고 논의로 바로 들어간다.
- 회의에 꼭 필요한 사람들만 부르고, 눈치 보여도 회의 중에는 컴퓨터와 휴대전화 사용하지 말자고 건의할 것.
3. 대화
- 이메일, 메신저 등을 잘 활용할 수 있어도 꼭 사람들과 직접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자. 사람과 대면할 때의 경험을 100% 재현시킬 수 있는 도구는 아직 없다.
- 두괄식으로 대화를 풀어나가자. 결론부터 말해야 혹시 중간에 중요한 일로 상사가 불려 나가더라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4. 업무 시간
- 업무 시간을 정해놓지 말아라. 늦게 출근한다고 눈치 볼 사람 없고 사장님보다 늦게 있는다고 인정해주는 사람 한 명도 없다. 일한 시간이 아니라 일해서 나온 결과로 평가받는다. 눈치 때문이 아닌, 더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회사에 늦게 남길.
5. 상부 보고
- 결재 떨어지기 기다리다가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마라. 너의 결정 능력을 믿기 때문에 회사에서 너를 뽑은 것이다. “Ask for forgiveness, not permission.”
- 모든 결과에 대해서 투명하게 보고하도록. 안 좋은 결과라고 이상하게 포장하지 말고, 좋은 결과를 오버해서 자랑하지 마라. 다들 똑똑해서 좋은 것, 안 좋은 것 말하지 않아도 기가 막히게 파악한다.
6. 노가리 까기
- 실리콘밸리도 가끔씩 나가서 동료들이랑 ‘노가리 까는’ 것을 좋아한다. 회사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단, 대화를 공유할 만한 주제가 있어야 한다는 점. 무한도전이나 추신수 경기만 보지 말고 미드 <왕좌의 게임>과 한국인이 한 명도 없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경기를 관람하여 대화거리를 만들어보자. (특히 짝수 년도인 지금!)
- 아, 그리고 노가리 까면서 탄생한 실리콘밸리 회사들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지?
7. 복장
- 멋드러진 양복은 제발 집에 두고 출근하자. (Spansion 첫날 양복 입었음;) 심지어 구글의 복장 규정은 ‘you must wear something’이다.
- 양복이 아쉬우면 비지니스 캐주얼이 정답이고, 편하게 청바지랑 남방 입는 게 제일 무난하다.
- 잘 모르겠으면 상사와 동료들의 스타일을 따라 하면 된다.
8. 적극성
- 일은 찾아서 하는 것이더라.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은 보통 자신들이 하기 싫어 떠넘기는 경우거나, 아무나 할 수 있는 차별화 되지 못한 일이 대부분.
- 적극적으로 질문 및 반박을 하는 훈련을 하자. 상사의 의견에 ‘적극 반대’해도 논리가 합당하면 ‘찍힘’이 아닌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다.
9. 술자리
- 실리콘밸리 친구들도 술 먹고 노는 거 엄청 좋아한다! 이럴 때 한국인의 장점을 극대화 시키자!
- 술자리는 회사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자 마련한 것이다. 아무리 급하고 중요해도 가급적이면 업무 이야기는 하지 말자.
10. 우선순위 정하기
- 일은 끝이 없다. 중요한 것, 의미 있는 것을 우선시하고 나머지는 무시하자.
- 업무뿐만 아니라 인생의 우선순위도 꼭 생각하자. 내일 사장에게 보고하는 문서가 내 딸의 첫걸음마 순간을 목격하는 것보다 더 중요할까?
원문: Andrew A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