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테슬라 모델3을 사전주문한 이후 계속 테슬라에서 더 상위 모델인 모델S와 모델X를 사라고 러브콜이 온다. 적자에 허덕이는 테슬라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안타깝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 그냥 확 질러버려?’ 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나도 모르게 손이 ‘당신의 테슬라를 선택하세요!’ 버튼을 클릭하였고 (다행히 ‘구매하기’ 버튼은 안 눌렀다), 여기저기 사이트를 둘러보다가 문득 든 생각이 있다.
테슬라는 자동차 회사가 아니구나!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핵심 (기존) 자동차 기술의 부재
자동차 회사가 기술력을 자랑할 수 있는 부분 중 으뜸으로 파워트레인을 꼽을 수 있다. 테슬라는 파워트레인의 핵심인 엔진이 없다. ‘동급 대비 최대 마력’ 등의 광고 문구로 성능을 자랑하는 대신 테슬라는 모델별로 주행거리를 제일 처음 알려준다.
2. 소프트웨어의 강조
제원에서 가장 먼저 보여주는 사항은 OTA 업데이트 기능 (자동으로 공중 주파수를 이용하여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는 것). 역시 옵션 사항에서도 제일 먼저 보여주는 것이 오토파일럿 기능. 왠지 테슬라 차체는 소프트웨어를 팔기 위한 포장 박스인 기분?
3. 온라인 직판, 쇼룸, 그리고 사전 주문
테슬라의 판매 채널은 온라인 직판이다. 쇼룸은 테슬라 자동차를 실제로 보고, 궁금한 점을 직원에게 직접 물어볼 수 있는 역할만 한다. 온라인 직판이기 때문에 가격 흥정도 없고 (미국에서 유일하게 가격 흥정이 가능한 것이 자동차인데!) 복잡한 서류 작성, 그리고 그 고통 후에 따르는 자동차 인계 경험도 없다. 더욱이 모델3의 경우는 몇 년 후에 인도받는 가정하에 사전 주문.
2년 후에 나올 소나타를 사전 주문하겠는가? 심지어 몇 년 후에 나올 신형 아이폰을 지금 사전 주문하겠는가? 자동차 회사는 물론, 굴지의 IT 회사들도 하기 힘든 일을 테슬라는 일궈냈다.
4. 숨길 수 없는 SaaS 스러움
모델 S나 X를 잠깐이나마 생각했던 이유는 월 $593불에 2년 리스 기간이라는 ‘핫 딜’ (이라고 쓰고 그래도 겁나 비싼)이 나와서였다. ‘그냥 미친 척 하고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을 싹 가시게 한 것은 옵션의 가격 정책 때문이었다.
테슬라를 리스할 경우 모든 옵션들은 월 구독 형식으로만 선택이 가능하다. 오토파일럿처럼 서비스인 경우 이해가 되지만 (기존 자동차를 구입할 때도 XM radio나 내비게이션의 실시간 교통 정보 같은 경우 월 구독료를 받는 경우가 있다) 서비스가 아닌 제품에도 모두 구독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던 것이다. (예: LED 안개등 등이 구성되어 있는 프리미엄 패키지, 트렁크 시트 등).
뭔가 SaaS 형식으로 판매되는 소프트웨어를 구입하는 느낌이 든다 (케바케지만, 장기적으로 소비자가 돈을 더 많이 내는 경우가 많음).
무인자동차 시대는 크게 두 가지의 길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자동차 소유가 무의미해지는 우버의 시대, 그리고 자동차 소유가 발전하는 테슬라의 세상.
테슬라는 이런 미래의 갈림길에서 새로운 자동차 거래 패러다임의 초석을 성공적으로 다질 수 있을까?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상상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 질문의 대답이 펼쳐지고 있는 시대에 이미 살고 있기 때문이다.
원문: Andrew A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