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포스팅한 애니메이션 ‘발레리나’ 이야기입니다. 기다렸던 작품이라 개봉하자마자 가서 봤는데요, 평일 낮이긴 했지만 성인들끼리 온 것은 저희 일행밖에 없고 다들 엄마 손 잡고 발레치마 입은 꼬꼬마 관객들이더군요. 아이들이 주 관객이라 걱정했는데, 영화 전개가 워낙 스피디하고 화면의 아름다움이 한시도 눈을 떼기 어려워 매우 정숙한 관람이 되었습니다. 영화의 재미는 기대 이상이었어요. 스포가 약간 있지만 몇 줄 써볼까 합니다.
매력 넘치는 캐릭터들
부르타뉴의 고아원 출신으로 발레리나라는 어려운 꿈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우리의 주인공 펠리시. 파리오페라발레단의 무용수가 되기 위해 파리로 갑니다. 아주 멀게는 빨간머리 앤 이후, 꽤 멀게는 인어공주 에리얼 이후 매우 오랜만에 만난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여주인공인데요. 물론 라푼젤이나 엘사와 안나 자매를 이 계보에 넣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 아이는 결이 좀 다릅니다. 덕분에 내내 엄마 미소, 이모 미소 지으며 펠리시의 모험담에 함께했습니다.
펠리시의 고아원 동기로 그녀와 함께 고아원을 탈출해 파리로 향하는 빅터. 발명가가 꿈인 그는 에펠의 조수가 됩니다.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에펠탑의 완성에 빅터의 손길이 조금 더해졌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펠리시와 라이벌 관계를 이루는, 발레리나를 꿈꾸는 또 한 명의 소녀 까미유. 최고의 테크니션인 라이벌과 가슴을 울리는 감동적인 연기를 선보이는 주인공 캐릭터는 <유리가면> 이후 재능 있는 소녀가 주인공인 이야기에서 하나의 전형이 된 듯합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의 핵심은 감동이고, 그 감동을 전달하는 것이 주인공의 역할이고 보면 이러한 구도는 이야기의 마르지 않는 샘물이죠. 그리고 이 라이벌과의 결말도 소녀만화답게 훈훈합니다.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오데뜨는 열정만 있고 기본기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펠리시를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트레이닝시킵니다. 펠리시의 훈련과정은 따로 영상으로도 편집되어 있는데 발레팬들에게는 특히 즐거움을 주는 장면들입니다.
인상적인 장면들
파리에 도착한 펠리시의 여정에서 숨이 막히는 첫 번째 순간, 가르니에극장과 조우하는 펠리시입니다.
그리고 펠리시가 목격한 발레의 압도적인 아름다움, 프리마 발레리나 로지타의 그랑주떼 장면입니다. 말하자면 어린 펠리시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순간인데요, 이 장면은 결말의 중요한 복선이기도 합니다.
영화의 묘미는 스토리 전개보다 오히려 아름답고 섬세한 배경에 있습니다. 영화 홈페이지에 자료가 등록되어 있지 않은데 영화 초반부, 부르타뉴의 초원을 묘사한 오프닝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명장면입니다. 배경은 19세기 파리지만, 현대의 우리도 잘 알고 있는 랜드마크들이 등장해 반가움을 더해줍니다.
펠리시의 사랑스러운 모험담, 안타까운 것은 발레를 배우는 여아와 그 엄마를 핵심타깃으로 삼았는지 자막판이 거의 없고 대부분 더빙판이라는 점인데요. 저도 아침 일찍 부지런을 떨면 자막판을 사수할 수 있었겠지만 개봉날이 하필 또 너무 추운 날이라 포기하고 집 가까운 상영관에서 더빙판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흥행 추이를 보니 이틀 동안 2만 명 스코어라 그리 오래 걸어두진 않을 것 같아요. 이미 개봉 첫날 부터 하루 한번만 상영하는 등 다른 큰 영화들에 밀리고 있는 추세인데, 같은 소녀 어드벤처물이라 할 ‘모아나’의 기세가 워낙 좋기도 하고요. 지인과 함께 영화를 보고 나니 발레를 좋아하는 분들이 같이 보면 더 재미있을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쁜 건 같이 보고 널리 알려야죠^^
원문: 윤단우, 그녀의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