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7년 전, 학교 선생 노릇 10년을 지나고 있을 때 ‘수업 혁신’이라는 화두를 처음 스스로 진지하게 안아보았다. 학습연구년제가 도입된 첫해 대상자로 선정되어 한 학기를 학교 밖에서 여유 있게 지내게 되면서였다.
이런저런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면서 그간 내가 ‘학교’에서 해온 ‘수업’을 돌아보았다. 학교(교육) 밖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경험과 생각을 들으면서 내 수업을 스스로 평가해 보았다. 문제가 많았다. 자괴감을 안은 채 내가 가르치는 방식, 교실에서 학생들과 관계를 맺을 때 취하는 태도, 나의 언어와 의식을 비판적으로 객관화해보려고 노력했다.
나름 ‘뜨거운’ 시간을 보낸 뒤 학교로 돌아갔다. 연구 기간 6개월 사이에 고민한 내용을 교실에서 실천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협력수업’을 시도했다. 가슴 벅찬 순간들을 만났다. 좋은 일이었으나 흔치 않았다. 협력수업의 요령과 그에 대한 철학의 빈곤 때문이었겠지만 협력수업에서 진정한 협력을 찾기 힘들었다. 오히려 크고 작은 분열과 경쟁과 혼란을 경험할 때가 많았다.
‘토론수업’을 했다. 나나 학생들 모두에게 교과 주제를 확장하고 심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실제로 토론다운 토론은 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우리 모두가 가진 배경지식이 부족했다. 경청하기와 말하기의 기술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우리의 언어가 말꼬리 잡기식 게임으로 빠져나가곤 했다. 토론수업을 할수록 토론이 싫어지는 것 같았다.
‘모둠수업’ 형식을 자주 응용했다. 옹기종기 머리 맞대고 앉아 대화를 주고받는 학생들 모습이 흐뭇했다. 그러나 한 반당 보통 8개를 넘는 모둠 수가 혼자 아우르기 벅찼다. 모둠 조직의 황금률이 있을까. 서로 불화(?)하고 갈등하는 학생들이 한 모둠에 들어갈 때가 있다. 그들로 하여금 무언가를 함께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 참 어려웠다.
내게는 협력수업과 토론수업과 모둠수업을 지탱하는 감각과 역량과 의지가 두루 부족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협력수업을 주창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토론수업의 중요성과 의의를 새기며 스스로를 독려했다. 모둠수업을 하지 못하면/않으면 무슨 커다란 죄를 짓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협력과 토론과 모둠 따위의 말들로 이루어지는 ‘수업혁신’ 담론에 기꺼이 동참했다.
2.
언제부터였을까. ‘수업혁신’이나 ‘수업개선’과 같은 말들이 거북하게 느껴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머리와 가슴이 한참 뜨거워져 있을 때 ‘혁신’과 ‘개선’과 같은 말들이 어떤 진실처럼 다가오곤 했었다. 교사에게 수업은 크든 작든 부족함과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혁신을 통해 개선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은가. 그때마다 속으로 더 크게 ‘혁신’을 부르짖었다.
그러다 천천히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 협력 없는 협력수업과 토론이 사라진 토론수업과 따로국밥 같은 모둠수업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수업혁신’을 위해 교실 수업을 공개하고, 이런저런 방식으로 교사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특정한 이론이나 방법론에 따라 수업을 분석하고 연구한다는 게 조금 우스웠다. 그 모든 과정에서 만나는 언어와 생각과 행동들이 혹시 ‘정답 수업’을 찾기 위한 몸부림 같은 것이 아닐까. 무시로 그런 생각들이 떠올라 나를 괴롭혔다.
3.
수업에 ‘정답’이 있을 수 없다. 백인백색(百人百色)이다. 그런데 그즈음 나는 내가 중시하는 교육철학과 교수법과 학생관이 ‘정답’이라는 생각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정답 수업’을 향한 몸부림이 절실해지면 절실해질수록 완전한 수업에 대한 열망이 함께 자랐다. 내가 하는 수업에 대한, 자기최면에 가까울 것이 분명한 확신이 커졌다.
나의 오만과 경솔에서 비롯된 태도였다는 게 밝혀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답 수업이라고 생각한 수업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러면서도 내 머리는 ‘이게 정답이야’를 외치게 했다. 가슴이 답답했다. 부끄럽고 혼란스러웠다.
나와 다른 동료 교사들을 ‘오답 수업’을 하는 문제교사로 치부하기도 했다.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삐딱해져 갔다. 나에게는 그들을 판별하고 평가하는 어떤 기준이 있었다. 나 자신이 정답을 모르니 그것이 무엇이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는 힘들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것들에 강박적으로 집착했다. 갈수록 스스로를 통제하기 힘들었다.
4.
왜 그랬을까. 지난 10여년 간 주로 ‘수업’과 ‘교사’에 초점이 맞춰진 학교혁신정책(?)의 동학(dynamics)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의 근본을 손대는 일에 미봉과 땜질로만 그친 교육 당국에 대한 염증도 작용한 것 같다. 이런 문제를 포함하여 좀 더 설득력 있는 설명의 논리를 끄집어내기 위해서는 나 자신에 대한 깊이 있는 심리 분석이 필요할 듯싶다. 차후의 과제로 미뤄 둔다.
이제는 ‘정답 수업’을 향한 강박이 없지 않으나 별로 크지 않다. 내면의 혼란과 통제 불능을 경험하는 일이 드물다. 당연히 그리했어야 할 터인데, 학교와 교실을 ‘모자이크’로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양한 생각과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모여 각자의 ‘삶’을 형성해 나가는 곳이 학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이 ‘수업’만이 아니라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무언가를 해야 하는 곳이라면 말이다.
학교는 모두가 공통적으로 지켜야 할 대표적인 규칙들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동시에 교사들 각자가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수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중략)
교사들 내부에서 동료의식을 갖고 연대하며 서로를 지원할 수 있게 하려면, 무엇보다 좋은 교사가 되는 데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수업에서 매우 확고한 태도를 취하는 교사가 아이들의 정신을 망가뜨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자유롭게 행동하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못한다는 생각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부당하다.
– 요하임 바우어(2014), 『학교를 칭찬하라』, 궁리, 74쪽.
우리 모두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교육의 ‘진실’이 있으리라 본다. 학생들이 배움에 대한 높은 동기와 열정을 가지고 학교에 온다, 배려심과 공감과 협동의 자세로 친구들을 만난다, 자신만의 고유한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본다 등등.
‘정답’에 빠져 있을 때, 나는 ‘진실’에 이르는 길이 하나라고 보았다. 그렇지 않다는 것, 좋은 학교와 좋은 교사가 되는 길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다는 것을 학교 안팎에서 많은 선생님들을 만나고 책들을 읽으며 깨달았다.
바우어 박사가 정확히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좋은 교사가 되는 데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기만 하다.
원문: 정은균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