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에 나오는 탐정이나 수사물 드라마에 나오는 수사관들은 주어진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을 특정하기 위해 다양한 증거들을 사용하고는 한다. 이를테면 범행 시각의 알리바이, 증언들, CCTV나 사진, 혹은 지문과 같은 물리적인 증거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이러한 증거들보다 한 사람의 몸에 남겨진 흔적들이 더 많은 사실을 말해주기도 한다. 발걸음을 떼어 놓을 때 양쪽 발끝이 향하는 각도나 펜을 쥐고 있는 손가락의 파지법, 굳은살이 박힌 위치 같은 것들. 대부분의 경우, 그러한 디테일들은 많은 사람이 간과하고 넘어가는 것들이다.
그래서 어느 똑똑한 탐정이나 수사관이 이러한 사실들을 지적해 낼 때마다 작중의 인물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지만, 사실 유능한 탐정이 짚어내는 사실들은 그들 자신의 소유물인 육체 그 자체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어떻게 말하면, 인간은 육체에 의해 한계지어져 있기에 그 사실을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는 존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몸을, 그것도 벗은 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어려운 행위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에두아르 마네의 그림 〈올랭피아〉를 둘러싼 일화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매춘부가, 벗은 몸을 드러내고, 그것도 감상자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다는 점이 당시 관객들로부터 반발을 산 나머지, 어쩔 수 없이 관객들이 그림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그림을 높이 걸어야만 했다는 일화는 벗은 몸과 그것을 드러내는 일, 그리고 그것을 보는 일이 불러일으키는 양가적인 감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과연 벗은 신체가 야기하는 부끄러움, 혹은 불편함이 ‘벗은 몸’ 그 자체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1. 드러내는 몸
‘입고 벗음’의 개념이 인간에게만 존재하기 때문인 건지, 나체는 일반적으로 성적인 함의를 지닌 것으로 이해되고 또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그것이 성 산업 종사자의 몸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Marie Hald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녀의 졸업 학기 프로젝트를 위해서, 그녀는 덴마크 동부에 사는 성매매 노동자인 Bonnie의 삶을 렌즈에 담았다.
Bonnie가 어린 아들과 놀아주는 장면, 불이 꺼진 부엌에서 영수증을 펼쳐놓고 무엇인가를 골똘히 적어 내려가는 장면과 그녀가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장면은 언뜻 보면 양립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의 살갗에 남은 오래된 문신도, 어린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손도, 엎드리거나 누워 있을 때 자연스럽게 꺾이는 그녀의 발목도 전부가 Bonnie를 이루는 구성 요소들이다.
Bonnie는 사진 프로젝트에 참여함으로써, 그녀는 그녀의 직업으로 규정되는 존재에 그치지 않는, 온전한 한 명의 인간임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실제로, 다양한 상황 맥락에 관여하고 있는 그녀의 신체에 주목함으로써 한 명의 개인으로서의 Bonnie의 삶이 그려지기 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 신체는 개인을 드러내는 가장 긴밀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그리고, 배제되는 몸
그러나 오히려, 인간 존재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배제되고 지워지는 육체 역시 존재한다. 그런 몸들은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메세지를 전달하는 효과를 가진다. 이를테면 장애인의 몸이나 트렌스젠더의 신체가 그러한 경우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위스의 장애인 인권 단체 Pro Infirmis 의 «Because who is perfect?» 프로젝트는 일반적으로 감추어야 하는 대상으로 여겨지는 장애인의 몸을 전면에 드러낸다. 그리고 이를 위해 그들이 택하는 방법은 장애인의 신체를 본뜬 마네킹을 만드는 것이다.
절단되어 한쪽이 더 짧은 다리, 비틀린 척추, 지나치게 작은 몸통을 재현하기 위해 이미 만들어진 마네킹의 부분들이 갈려 나가고, 또 덧붙여진다. 완성된 마네킹을 경이에 찬 눈길로 쳐다보다가 자신의 의족을 마네킹에게 착용시키고 그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참여자의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낯선 감흥에 사로잡히게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마네킹들은 실제로 취리히의 옷가게 쇼케이스에 진열된다. 이 프로젝트를 지휘한 Alain Gsponer가 제작한 짧은 영상에는 화려한 신상을 걸치고 있는,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과는 사뭇 다른 형태의 마네킹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이 담겨있다.
혹자는 불편한 기색을 감출 수 없는 표정으로 빠르게 그 앞을 지나가기도 하고, 혹자는 마네킹이 취하고 있는 포즈를 따라 하기도 한다. 어떤 젊은이는 그 앞에 멈춰서서 사진을 찍고, 어린아이는 보호자의 손에 이끌려 가면서도 고개를 돌려 아이가 아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의 마네킹을 바라본다. 그 아이는 마네킹이라는 형태를 빌어 전경으로 드러난 장애인의 몸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3. 혹은, 몸을 드러내기
스스로가 트렌스젠더라는 것을 인식하고 성전환 과정을 밟기로 한 Lorelei Erisis에게,신체 이미지의 부재는 하나의 장벽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성전환 과정이 어떤 양상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알고 싶었지만, 그녀가 찾을 수 있었던 것은 포르노뿐이었다. 이러한 경험으로 인해, Lorelei는 자신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사진가인 Jennifer Loeber와 함께 트랜즈젠더의 몸을 드러내는 일련의 사진 작업을 진행하게 된다.
이들의 작업은 Lorelei가 트랜스 여성으로서 그녀가 생각하는 여성성을 수행해나가는 과정을 담은 사진들과, 시스젠더 여성인 Jennifer의 성장 과정을 담은 사진들을 병치하는 것으로 완성된다. 어떻게 보면 기이하다고도 할 수 있을 트랜스 여성의 신체를 담은 이미지와 우리에게 익숙한 백인 여성 청소년의 성장 과정을 담은 이미지의 교차는 우리가 몸에 부여하는 의미가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4. 지금 이곳에서 ‘누드’를 말하다
인간의 몸은 그 자체로 그 소유자에 대해 많은 사실을 말해주지만, 그 말들은 너무나 쉽게 지워지거나 오해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리고 그것은 많은 부분 신체를 바라보는 막연한 관습에서 비롯한다.
〈레드홀릭스〉의 작업 역시 이러한 관습에서 벗어나서 인간 신체를 조명해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 납작한 기호로 해석되고 소비되기 마련인 인간의 몸을 그 자체로 재조명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한 여러 작업 중 하나로 진행된 것이 누드모델과의 화보와 인터뷰로 구성된 〈폴리페몬 브레이크〉 프로젝트다.
〈폴리페몬 브레이크〉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들이 모델로 일하게 된 계기는 그들의 골격, 체형, 체성분 분포만큼이나 다양하다. ‘대학원 여성학 논문을 쓰기 위해 인터뷰 사례를 수집하다가 누드모델로 삶의 진로를 튼 레즈비언, 누디스트 무브먼트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세일즈맨…
이들의 육체는 이들이 삶을 통해 축적해온 (혹은 제거해온) 결과물인 동시에, 미술 작업자들에게는 그들이 재현하고자 하는 세계를 이해하고 재구성할 수 있게 도와주는 가이드이기도 하며, 모델 개인이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의 하나이기도 하다.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그들이 가진 육체에 대한 생각부터 직업인으로서 갖는 자부심과 고충에 이르기까지, 벗은 몸을 익숙한 방식으로 바라볼 때는 쉬이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폭넓게 다루었다.
이들의 작업은 화보와 인터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다양한 매체와의 접목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중 하나가 ‘〈폴리페몬 브레이크〉 누드아트’라는 브랜드명으로 진행되는 퍼포먼스 공연이다. 지난 2016년 10월 홍대 스퀘어라운지에서 ‘레드 어셈블리’의 부대 행사로 시작한 퍼포먼스 공연은, 2017년에 3차례의 단독 공연을 거친 바 있다. “몸은 몸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명제를 전제로 하는 이들의 공연은 ‘몸의 억압과 자유’라는 주제로 오는 9월 정규 공연 오픈을 눈앞에 두고 있다.
당신은 ‘벗은 몸’을 어떤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습니까?
앞서 언급했듯이 〈폴리페몬 브레이크〉라는 제목은 그리스 신화의 등장인물에서 비롯한 제목이다. 그런데, 신화를 뜻하는 영어 단어 ‘myth’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신화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근거 없는 믿음’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이기도 하다.
우리가 몸을 바라보는 방식은 과연 어떤 신화에 갇혀 있는가? 그것을 판단할 좋은 기회를 놓친다면 제법 아쉬울지도 모르겠다.
누드아트 퍼포먼스 〈폴리페몬브레이크〉 공연: 펀딩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