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대학에서 만화 관련 교육 과정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A. 대학에서 만화 교육을 받는 것이, 개별 데뷔하거나 기성 창작자의 스튜디오에서 수련하거나 기타 사교육(학원류)을 받는 것과 어떤 ‘대학다운’ 차별점이 있을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당장의 창작 기술에 머물지 않고, 미학적, 문화적, 나아가 과학적(!) 맥락을 장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사회적 의미도 생기죠.
Q. 각 대학에서 앞다퉈 만화 관련 학과나 전공을 개설하던 시절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아쉽거나 부족한 점, 문제점과 개선 방안은 무엇일까요?
A. 90년대 중반~00년대초 정도의 붐에서, 실기 기능 위주로 개설되곤 했죠. 미술창작계열으로 놓는 것이 문제인 것은 당연히 아닌데, 문제는 만화를 여러 학문분야와 접목시키며 확장시키는 근본적인 길보다는 창작인 양성에만 안주하는 (성장한계가 뻔히 보이는) 안일한 길을 선택했다는 것이죠. 커리큘럼 개발의 한계인데, 타분야 학자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노력이 상당히 등한시되었죠.
예를 들어 맥클라우드의 ‘만화의 이해’를 각 학과들이 너도나도 교과서로 쓰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아이디어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만화와 인지과학’ 같은 과목, 하다못해 ‘만화와 정보시각화’ 같은 과목은 개발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나마 비즈니스 방향으로는 문화콘텐츠 산업론에 입각한 경영 분야 접목이 꽤 이뤄진 경우들이 있지만, 그 경우 반대로 정작 만화의 독특한 특성들이 묻히곤 하죠.
Q. 만화 보다는 애니메이션에 치우쳐 있고, ‘창작인’보다는 취직을 위한 ‘기능인’ 양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습니다만?
A. 이것은 한국사회에서 대학 일반의 한계이기도 하죠. 관련업계 일자리 수요라는 현실적 한계를 대학이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애니 기술을 장착하면 게임회사 취직도 더 수월하죠.
Q. 만화 관련 학과들이 우후죽순 늘어났던 게 기성 만화인들의 자리 만들기 라는 느낌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우후죽순 늘었던 것은 90년대 중반의 사학 설립 붐 속에서, 만화가 쿨한 새로운 문화산업(!)으로 이미지가 상승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더 현실적입니다. 당대의 ‘기성 만화인’들이 대단한 학계 권력을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니까요. 또한 기성 만화인들이 만화가 대학의 분과학문 또는 학제간 학문으로서 기능하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역할들을 고루 소화해낼 수 있었다면 아무 문제가 아니었겠죠. 하지만 현실은, 창작 기능 분야에만 인력이 넘쳤던 불균형이 있었습니다.
Q. 해외의 만화 교육과 비교해보면 어떤가요? 해외 사례에서 배울 점은 없을까요?
A. 일본 교토세이카대학의 만화전공, 미국 만화연구센터(CCS) 등도 기본적으로는 실기 위주 커리큘럼으로 창작 인력 육성을 목표로 합니다. 기본 방향성들이 크게 다르지 않은데, 한국의 90년대 후반처럼 급작스런 우후죽순 학과 설립 열풍이 불었다가 다시금 새로운 유행을 찾아 학과들이 통폐합하든지 이름 바꾸든지 하는 식이 아니라 소수 프로그램들이 계속 내실을 다져나가는 식이라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입니다.
Q. 국내 만화 비평과 연구가 제대로 뿌리 내리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만화 발전을 더디게 하는 요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만?
A. 비평과 연구가 뿌리내리지 못했기에 발전이 더딘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잘 뿌리내리면 발전이 더 잘 이뤄질 수는 있죠. 우선, 업계와 접점이 전혀 없고 여기저기 긁어모은 철학 개념어와 버즈워드로 대충 채워 넣은 자기 만족용 “학회지”식 비평/연구는 애초에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만화 발전을 위해 필요한 비평/연구라면 1)작품을 읽도록/읽지않도록 만들고자 하는 목표가 뚜렷한 리뷰, 2)실제 창작환경 개선, 미학적 표현 강화와 재미 요소 발전 등에 직접 접목될 것을 목표로 하는 것들입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예전에 이렇게 정리한 바 있습니다.
Q. 비평과 학술 연구와 관련해 대학 교육에 있어서 돌파구는 없을까요?
A. 만화 비평/연구는 현재의 시장성도 희박하며 앞으로의 전망도 밝지 않아서, 그런 것에 관한 대학 만화학과 커리큘럼을 만들어줄 기관은 드물 것입니다. 오히려 역으로, 더 많은 분야와 만화의 핵심 특성들의 다리를 놓아주면 자연스레 발전할 수 있습니다. ‘만화와 역사’, ‘만화와 미디어문화’, ‘만화와 정보시각화’, ‘만화와 지각심리학’, ‘만화의 사회학’, ‘만화 저널리즘’ 같은 것이 늘어나야 합니다.
Q. 앞으로 만화 교육 과정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좋을까요?
A. 만화 창작자를 넘어, 다양한 방면에 종사하되 만화 전문가가 되는 것에 도움이 되는 코스들을 강화해야 합니다. 영화과에서 독립영화 오뙤르보다는 영상전문가를 양성하자는 것과 비슷한 발상이죠. 복잡한 강연내용을 만화기법으로 풀어내며 인기를 얻은 RSA Animate 시리즈가 하나의 좋은 예입니다. 그런 것을 해내려면 만화 창작 실기 교육만이 아니라 정보시각화론, 저널리즘 방법론 등이 결합되어야 합니다. 사실 창작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데생 채색 스토리작법 뿐만 아니라 ‘취재’에 대한 교육이 도움되죠.
Q. 초·중·고등학교 교과과정에 있어서 만화 관련 교육의 필요성은 없을까요?
A. 초중고 교과과정은 만화 교육은 뭐 됐고, 헐뜯고 방해만 안 해주면 그저 고맙습니다(핫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