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로 남자는 이래야 되며, 여자는 저래야 된다”
우리들은 어릴 적부터 성인이 된 지금에 이르기까지 어른들에게 이런 말을 귀에 박히도록 들어왔다. 물론 현대에 이르러서 자유분방하고, 기성세대의 말에 의존하지 않는 세대들이 증가하면서 이런 말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부쩍 줄어들었다.
세계적으로 진실이 되어가는 ‘남자는 집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그 뿌리가 너무 깊어 쉽사리 뽑아낼 수 없는 고착된 통념들 일부가 여전히 사회문화적으로 깊숙이 내재되어 있다. 여기서 좀 더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다 보면, 한 세대의 행동을 규정하게 되는 민간신앙으로도 발전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집을 살 수 없는 남자는 신붓감을 찾기 위해서 투쟁을 벌이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이야기 같지만, 중국에서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대표적인 민간신앙 중 하나이다. 대놓고 말해서, 집 살 능력이 없으면 결혼하기 힘들다는 전설(?)이다. 그런데 중국 미혼 남녀 사이에서는 전설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중국 연안 도시에 거주하는 젊은 세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 조사에 의하면, 여성들의 4분의 3이 남편감을 고를 때 중요하게 따지는 능력 중 하나가 집을 살 수 있는 능력이다.
다음은 이와 관련해서 베이징에서 사는 28세 기혼 여성과 인터뷰한 내용이다.
“만약 내가 지금 결혼을 안 한 상태이고, 당신이 나에게 지금 당장 결혼 상대를 소개시켜 준다고 쳐요. 그런데 그 남성이 집을 장만할 정도로 경제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게 문제에요. 그럼 그 사람이랑 결혼하지 않을 거에요. 왜냐구요? 난 보다 현실적인 여성이 되길 원해요. 난 스무 살 내기 여성이 아니라고요.”
영화나 드라마처럼 오로지 사랑 하나로만 결혼하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야속하고 각박하지만, 우리들은 현실세계에 사는 인간이다. 그러니 일반적으로 일생일대에 단 한번의 선택권이 주어지게 되는 배우자 선택을 하는데 있어서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리바이어던>에서 홉스가 말했던 “만인의 만인을 위한 투쟁”보다 더욱 치열한 투쟁이 벌어지는 곳이 바로 오늘날의 결혼 시장이 아닐까?
능력 있는 남자의 상징 ‘집’, 부동산 상승의 헬게이트를 열다
앞서 말했듯이,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왔던 사회적 통념이나 인식이 우리의 행동에 끼치는 영향은 상당히 크다.
이런 이유로 중국 미혼 남성들은 결혼시장에서 자신의 순위를 상승시키기 위해 주택 구매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그저 서로간에 더 많은 지출을 하게 되어 끝내 집값만 더 올리게 되는 레드오션으로 치닫고 있는 현실이다. 마치 브래드 피트 주연 <월드워 Z>에서 좀비들처럼, 벽 너머에 있는 ‘신부’를 쟁취하려고 너도 나도 달려들어 벽을 타고 기어 올라가다 보니 산(집값)만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것이 바로 과열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부동산 시장을 잡으려는 중국 정부의 총체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집값이 안정되지 않는 다양한 이유 중 사회문화적인 측면에 해당되는 이유이다.
여성도 돈을 보태지만, 여전히 집값에 눌리는 남자의 어깨
물론 이제는 중국 여성 중 70%가 예비신랑들이 집을 사는 데에 돈을 보태고 있으며, 결혼한 여성들 약 30%가 공동명의로 집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중국 내에서 부부간 공동 명의를 놓고 법적인 분쟁이 증가하고 있다고 하는데, 여기선 논외로 하겠다.
여하튼 얼마나 기여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집 마련에 대한 부담이 남성뿐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전가되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부담은 남성이 어깨에 잔뜩 지고 있다. 이런 실제 상황을 잘 보여주는 몇 개의 데이터가 있다.
<차트1>과 <차트2>를 보면 중국의 부동산 시장이 얼마나 과열이 된 상태인지 한눈에 인식이 가능하며, 왜 중국정부가 그토록 집값을 잡으려고 하는 이유를 엿볼 수 있다. 중국의 집값은 “노무현 정부 따위! 3배는 빠르다!”라며 빠르게 치솟고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차트3>이다. 해당 차트는 중국의 성비(가로축)와 주택구입 능력(세로축)을 인포그래픽으로 나타낸 것이다. 보다시피, 남녀성비 불균형이 큰 지역일수록 소득 대비 내 집 마련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특히 시골(주황)보다 도시(파랑)에서 그 정도가 심하다.
결국 “남자는 자고로 집이 있어야 결혼하게 된다”라는 웃지 못할 민간신앙이 남성들의 마초이즘을 부추기고 있는데, 아직까진 터지지 않았지만 곧 터지게 될 버블인 셈이다. 물론 결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순위 경쟁 때문에 생긴 것이지만 말이다. 안타까운 마음을 자아내는 대륙의 남성들이 처한 현실이다.
남자의 집값 부담, 중국만의 일일까?
하물며 중국만 이럴까?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 중에서 ‘중국’이란 단어를 ‘한국’으로 고쳐놔도 절대 안 어색할 만큼 우리나라 결혼시장에서 남성들이 벌이는 전쟁은 월드워 Z 그 자체이다. 한때 어느 대형 결혼 정보업체회사에서 미혼 남녀를 대상으로 집안, 재력, 학벌 등으로 등급을 매겨 표를 만든 것이 공개되면서 뭇 남성과 여성들에게 폭풍 분노를 사지 않았던가? 물론 현실로 들어가면 다들 좀 달라진다. 그래서 필자가 아직 솔로인 게 아니겠는가(…) #변명
그리고 더욱 불안한 현실은 우리나라에서도 젊은 세대뿐 아니라 기성세대를 포함 모든 세대를 통틀어 집 장만하는 것이 힘들어도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6월 2주 기준 서울 아파트 가구당 평균 매매가는 5억 3,351만 원인데, 1분위 근로자가구의 월평균 소득(145만1,743원/1분기 기준)을 모두 저축한다고 해도 서울에서 내 집 마련에 걸리는 시간은 총 30년 8개월(368개월)로 나타났다.
조금만 고생해도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점점 넘사벽이 되어가고 있다. 페북의 한 친구분 이야기대로, 차라리 아파트 나 주택 구매를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집을 지어버리는 것이 더 현명한 판단으로 느껴질 정도이다. 아… 땅값도 비싸지(…)
아내도, 집도, 그저 하룻밤의 꿈인 시대로…
결론적으로 대륙의 남성이든 반도의 남성이든 간에, 이들에게 있어서 내 집 마련의 꿈뿐만 아니라 좋은 배우자를 만나 행복한 신혼생활을 하겠다는 꿈도 점점 멀어져 가고만 있다. 그저 한 때 보수의 워리어 문학가로 자리매김했던 이문열 선생님의 소설 한 구절만이 떠오를 뿐이다.
필론이 한번은 배를 타고 여행을 했다. 배가 바다 한가운데서 큰 폭풍우를 만나자 사람들은 우왕좌왕 배 안은 곧 수라장이 됐다. 울부짖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뗏목을 엮는 사람‥‥‥ 필론은 현자(賢者)인 자리가 거기서 해야 할 일을 생각해 보았다. 도무지 마땅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 배 선창에는 돼지 한 마리가 사람들의 소동에는 아랑곳없이 편안하게 잠자고 있었다. 결국 필론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돼지의 흉내를 내는 것뿐이었다. – 이문열, <필론의 돼지> 중
참조 기사 : Econom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