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잘 모르는 대상일수록 호기심과 불안감, 공포감을 갖는다. 복잡한 분석보다는 언론이나 대중 매체가 제시하는 단순한 그림만 보고 결론을 내리고 싶어한다. 단어만으로도 이국적인 ‘외국인’이 바로 이 예이며, 몇몇 언론들은 잘 팔리는 기사를 쓰기 위해 외국인 역시 인권을 가진 인간이라는 점은 무시한 채 ‘외국인’, ‘중국인’, ‘외국인 불법 체류자’로 뭉뚱그려 외국인 혐오 감정을 부추긴다. ‘외국인’이 ‘내국민’의 안녕과 안전을 위협할 때 그 두려움과 공포감은 극에 달하기에 외국인에 의한 범죄와 일자리 쟁탈은 언론의 단골 가십 거리이다.
청년 실업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일자리 경쟁은 이미 충분히 민감한 사안이다. 여기에 언론은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마냥 기사를 써댔다.
쪼잔하기 그지없다. 많이 줘봤자 최저 시급쯤 되는 편의점 알바 자리가 중국인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못마땅한 것이다. 생계 유지형 알바로 월급 벌어봤자 어차피 다 한국에서 쓰고 갈 텐데 그렇게 인색하다.
중국인 학생 역시 한국인 학생처럼 똑같이 등록금 내고 학교 다니고, 똑같이 재정적 압박에 시달리는 데 합법적으로 알바를 하는게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외국 유학 중인 한국 유학생들이 힘들게 알바를 하는 건 장하고, 애틋하지만, 중국 유학생들이 한국에서 알바하는 건 눈엣가시다. 이 기사는 “왜 대학생들이 왜 편의점 알바 자리에 연연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은 던지지도 않았다.
한 학기당 500만 원이 넘는 등록금, 유학생 유치 경쟁에 전념하는 대학들, 턱없이 부족한 청년 일자리 등 사회 구조적인 문제는 언급되지 않았다. 중국인, 한국인 유학생 대비 알바 인원 비율과 같은 통계 자료 역시 당연히 없다. 중국인 학생만 없어지면, 과연 문제는 해결되는 것일까?
이 기사의 출처인 조선일보는 당연히 한중 FTA는 좋다고 한다. 무관세로 중국에 파는 건 좋지만, 중국 유학생들이 고작 편의점 알바를 하는 건, 우리 대학생들 생계에 위협이다.
외국인들 때문에 먹고 사는 것도 힘든데, 이제는 외국인들이 내 안전까지 위협한다. 다음 기사 제목을 보자.
기사 제목만 봐도 중국인들과 불법 체류자들이 우리 국민의 안전에 커다란 위협을 끼친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오고, 심지어 중국인들에 대한 분노감, 반감까지 든다. 기사 내용을 찬찬히 훑어봐도 그렇다. 심지어 정확한 숫자까지 제시한다.
2016년 8월까지의 외국인 범죄는 총 39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57건보다 54.4%나 증가했습니다. 이 중에서 중국인이 저지른 범죄가 279건으로 7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 기사 본문 중
중국인이 저지른 범죄가 70%라니 독자들은 “역시 미개한 중국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기사는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총 관광객 중 중국인 비율이 86.8%라는 점은 쏙 빼놓았다. 전체 그림을 보면 사뭇 다른 그림이 보인다. 중국인의 범죄가 많은 건 절대적으로 중국인 관광객이 많아서이며, 상대적 비율로 보면 중국인 관광객들은 다른 국적 관광객에 비해 적게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이다.
이 기사는 어떠한가?
기사는 불법 체류자와 범죄와의 상관관계를 뒷받침하는 구체적 자료도 없이 불법 체류자가 사회 안전에 위협이라도 되는 양 묘사해놓았다. 오히려 사실은 정반대로, 불법 체류자의 범죄율이 더 낮은데도 말이다.
실제 제주도 외국인 범죄율은 어떠할까? 완전한 그림을 보기 위해 이번에는 내국인 범죄율과 비교해보자.
이렇게 보면 오히려 상대적으로 외국인이 내국인에 비해 훨씬 적게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기사들은 제주도 내 증가하는 외국인 범죄 건수가 제주시 관광 정책이 자초한 사실 역시 의도적으로 무시한다.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공중도덕이 부족한 중국인들이 아닌, 단기적 이익에 급급한 제주도 난개발, 상업적 개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언론사에 따르면, (다른 언론사도 마찬가지지만) 중국인 관광객은 많이 와도 문제, 적게 와도 문제이다. 중국인 범죄를 비판하다가도, 중국인 관광객 수 감소는 우려할 일이다. 중국인들은 나에게 돈은 벌어줘야 하지만, 절대로 문제를 일으켜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전체 외국인·내국인 범죄 현황은 어떨까? 다음 표를 보면 오히려 외국인 범죄 비율이 내국인 범죄 비율보다 낮음을 알 수 있다. 불법 체류자 범죄자 역시 다른 그룹과 같은 비율로 검거된다는 것을 가정하면, 외국인 범죄 비율은 이보다 더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불법 체류자의 범죄율은 합법 체류 외국인보다 낮다!)
물론 살인·강도의 경우 외국인 범죄율이 내국인 범죄율에 비해 월등히 높다며 외국인에 대한 불안감을 정당화하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외국인 범죄자에 비해 절대적으로 외국인 비범죄자가 훨씬 많다는 것이다.
2013년 외국인 범죄율은 1%가량으로, 우리가 만나는 100명의 외국인 중 99명은 비범죄자다. 한국인 100명 중 범죄자는 2명, 외국인에 비해 두 배이지만 한국인 범죄가 무섭다고 한국인을 혐오하는 한국인은 없다.
언론들은 외국인과 관련한 사회 문제들을 부풀리고 왜곡 보도하거나 반외국인 감정이 들도록 부분적인 현실 묘사만 제시한다. 평범한 진실보다는 무서운 환상이 더 잘 팔리기 때문이다.
물론 외국인의 범죄나 문제들을 무시하자는 것은 절대 아니며, 모든 문제을 언론 책임으로 돌릴 수도 없다. 또한 언론들은 자신들이 사실만을 보도했으며 매체 특성상 구조적 문제나, 전체적 그림까지 다룰 수 없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외국인 관련 보도의 경우 언론은 그 사회적 책임을 더욱더 특별히 고려해야 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외국인은 우리가 모르는 대상이기 때문에, 언론의 보도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고정관념을 형성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세계화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이상, 언론은 사회적 책임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꼭 외국인 혐오를 경계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혹자는 아예 외국인 출입을 금지하고 현재 거주 외국인을 추방하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세계화 흐름을 거스를 수 없으며 다양한 문화와 국적의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로 외국 의존도가 높은 만큼, 국내 체류 외국인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외국인들의 국내 경제 기여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관세 없이 외국에서 직거래하는 것과 싼값에 해외여행 가는 것은 좋으면서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많아지는 것이 싫은 건 그냥 놀부 심보다.
값싸고 예쁜 옷, 고급 축구공, 향긋한 커피 등 상대적 부자로서 우리가 즐기는 것들은 지구 저편의 사람들이 열악한 상황에서 세계 최저 임금을 받으며 일한 결과다. 이 사람들이 조금 더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한국에 온다는 게 그리 큰 잘못일까?
더욱더 중요한 것은 외국인 역시 이름을 가진 인간이라는 것이다, 누군가의 아버지이거나 소중한 자식이라는 것이다. 외국인 문제가 많다 하더라도 선량하게 살아가는 외국인들이 대다수이며, 단순히 일반화하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집단이다. 국적만 다를 뿐, 우리와 동등한 인권을 가진 인간인 것이다. 경상도인이 전라도인 일자리를 뺏어 갔다느니 서울 사람들은 성범죄자라느니 하는 뉴스가 없는 것처럼, 국내 출신일 경우에는 출신 지역이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아직도 시민 대다수가 영어를 못하고 해외여행은 사치인 상황에서, 우리는 하룻밤 사이에 우리의 가치관을 세계화시킬 수 없다. 어쩌면 우리는 세계화 시대에 맞추어 세계화되도록 강요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함께 사는 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인 지금 조화롭고 다양성이 풍부한 삶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며, 그것이 언론의 사회적 책임이다.
원문: MultiKul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