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9일은 포항야구장에서 ‘2013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올스타전’이 열리는 날이다.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최고 스타들이 한 자리에 모여 ‘별들의 잔치’를 벌이는 날이니,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심장이 두근반 세근반 매직스틱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기대와 흥분을 느끼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기분은 좀체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느끼기도 전에 흥이 깨져버렸다. 올해도 어김없이 되풀이된 팬투표 ‘몰표’ 논란 때문이다.
11년만의 가을야구의 희망에 부푼 LG 팬, 올스타를 장악하다
올해 올스타전에선 웨스턴리그 선발 라인업 11명 전원이 LG 선수가 뽑혔다. 지난해 리그 MVP 박병호를 비롯해 타점 1위 이호준, 세이브 1위 손승락 등은 팬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대신 손주인, 현재윤, 정의윤 등 지난해까지만 해도 올스타와는 거리가 멀었던 LG 소속 선수들이 대거 그 자리를 꿰찼다. 이스턴리그에서도 지명타자 자리에 시즌 중 2군으로 떨어진 롯데 김대우가 뽑혔다.
이렇게 되자 올스타에 뽑힌 선수들을 놓고 한바탕 자격 논란이 벌어졌다. 일각에서는 특정팀 팬들이 응원팀 선수에게만 ‘묻지마 투표’를 했다며 ‘일그러진 팬심’이라는 비난까지 쏟아냈다. 기껏 올스타에 뽑힌 선수들이 올스타 출전을 민망해하고, 부담스러워하는 기현상도 나타났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는 내년부터 올스타 투표 방식을 전면 재검토할 계획을 밝힌 상태다.
물론 현재와 같은 방식의 올스타 투표가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는 건 사실이다. 올해는 포털 네이버를 통한 인터넷 투표와 KBO 공식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딱 두 가지 경로를 통해서만 올스타 투표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용에 친숙하지 않은 계층을 배제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부분이다.
1인당 최대 56회까지 투표할 수 있는 시스템도 문제가 많다. 이런 방식으로는 한두번 투표하고 마는 덜 열성적인 팬보다는 56회를 꽉 채워 투표하는 일부 열성 팬의 표심이 과도하게 반영되는 결과를 피하기 어렵다. 보다 다양한 계층의 야구팬이 폭넓게 참여해 팬심이 고르게 반영될 수 있는 방안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그렇다고 일부 야구인의 말처럼 올스타 선발출전선수 선정에 감독이나 코치 등 야구인 의견을 반영하자는 주장은 더 큰 문제의 소지가 있다. 그렇게 뽑는 게 무슨 올스타전인가. 국가대표 선발이지. 교체선수 선정이야 얼마든지 감독과 구단의 입장을 반영할 수 있지만, 베스트 10 선정은 팬들의 투표로 정하는 게 옳다. 그 결과가 마음에 들든, 그렇지 않든.
엇나간 LG 팬심이 문제인가? 그렇다면 왜 롯데는 싹쓸이하지 못했나?
하지만 일부 팬들의 엇나간 팬심이 문제라는 주장은 좀처럼 동의하기가 어렵다. 이건 어디까지나 투표다. 팬들에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올스타에 보내고 싶은 선수를 뽑으라고 그린라이트를 준 것이다. 성적이 더 좋은 선수는 정답이고 성적 나쁜 선수는 오답으로 정해진 것도 아니다.
그렇게 나온 결과를 갖고 이러쿵저러쿵 비난하는 건, 마치 자신들이 원하는 후보가 당선되지 않았다고 당선자를 찍은 유권자들의 수준을 비난하는 일부 정치세력의 행태를 떠올리게 한다. 올스타 투표에 남들보다 ‘열심히’ 참여해서 자기가 원하는 선수에 투표한 게 비난받을 일인가? 투표권은 모든 팬에게 똑같이 56표씩 주어졌다. LG팬이라고 투표권을 2장을 주고 다른 팀 팬에게는 1장씩만 준 게 아니다. 그래서 결과가 나왔다면 일단 투표 결과는 결과대로 존중해야 한다.
사실 이번 올스타 투표에서 이번 같은 결과가 나온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한번 이스턴리그와 웨스턴리그의 선발 라인업을 살펴보자. 매년 이스턴리그 올스타를 싹쓸이하던 롯데가 올해는 겨우 6명을 배출하는데 그쳤다. 그 외에는 오승환과 이승엽(삼성), 정근우와 최정(SK), 김현수(두산) 등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스타들이 선정됐다.
롯데팬이라고 무조건 롯데 선수에게만 투표하지는 않는다. 다른 구단 팬들도 마찬가지다. 야구팬들은 기본적으로는 응원팀 선수 위주의 투표를 하지만, 후보 중에 확실한 슈퍼스타가 있을 경우에는 기꺼이 스타 선수 쪽에 표를 주기도 한다.
김대우가 뽑혀 논란이 된 지명타자 자리도 올해 같은 경우 ‘반드시 올스타에 보내야 한다’ 싶은 후보는 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다. 매년 지명타자 부문 1위를 차지하던 홍성흔은 올해는 롯데팬과 두산팬 양쪽에서 크게 지지받지 못하는 처지다. 그다지 나쁜 성적이라고 할 순 없지만, 딱히 압도적인 수준이라고 할 정도도 아니다. 그렇다고 채태인이나 김상현이 올스타에 갈만한 성적을 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자연히 팬 수가 많은 롯데팬들의 표심이 큰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웨스턴리그, 구성부터 잘못됐다
어쩌다 보니 LG 단일팀이 된 웨스턴리그는 일단 5개 구단으로 이루어진 구성부터 문제였다. 상대적으로 비인기구단인 넥센, 한화와 신생팀인 NC가 LG와 한 조를 이루다 보니 팬 수가 많은 LG쪽에 표가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게다가 올스타에 뽑힐 만큼 압도적인 성적이나 명성을 자랑하는 후보도 박병호, 강정호, 이호준 정도에 불과했다.
과연 웨스턴리그 포수 부문에서 차일목, 허도환, 박노민, 김태군 중 LG 현재윤보다 낫다고 자신 있게 꼽을 만한 선수가 있을까? 안치홍-서건창-한상훈의 올해 성적이 삼성에서 만년 백업이던 손주인보다 월등히 뛰어나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어쩌면 LG 선수들에 쏟아진 몰표는, 팬들이 반드시 올스타에 보내고 싶을 만큼 압도적인 실력과 인기를 자랑하는 ‘스타’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현재 프로야구에는 리그를-지배하는-압도적인-스타가-없다. 과거 이승엽처럼 연일 홈런신기록을 세우며 인기몰이를 하는 거포도, 박재홍과 이종범처럼 30홈런과 30도루를 동시에 해내는 호타준족도, 류현진처럼 가공할 탈삼진 능력을 과시하는 에이스도 찾아보기 어렵다. 27세 이하 젊은 타자 중에 두자리수 홈런타자가 희귀하고, 젊은 투수 중에 1년 내내 꼬박꼬박 선발등판하며 5이닝 이상 버티는 투수가 드물다.
한두 경기, 일주일, 한달 동안 ‘반짝’ 활약하는 선수는 있어도 리그 정상급 성적을 일년 내내, 더 나아가 3~4년 이상 꾸준하게 유지하는 선수는 나오지 않는 실정이다. 그나마 슈퍼스타에 해당되는 선수들은 앞다투어 일본과 미국 프로야구로 진출한다. 이러니 막상 올스타전을 해도 몇몇 포지션을 빼면 찍을 선수가 없다. 자연히 팬투표가 인기투표 경향으로 흐르고, 팬이 많고 열성적인 팀이 더 많은 올스타를 배출하게 된다. 한국 프로야구가 처한 씁쓸한 현실이다.
한국 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 올스타가 다른 이유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은 어떨까. 오는 16일, 뉴욕의 시티필드에서 열리는 올스타전은 일찌감치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선발 명단에는 올해 MVP 경쟁을 벌이는 미겔 카브레라와 크리스 데이비스를 비롯해 마이크 트라웃, 조이 보토, 트로이 툴로위츠키, 데이비드 라이트, 브라이스 하퍼 등 쟁쟁한 이름들이 가득하다. 하나같이 올스타 자격이 충분한, 최고의 실력과 명성을 겸비한 선수들이다. 푸이그의 출전 가능성이 관심을 모은 최후의 1인을 뽑는 팬투표에도 역대 최다 인원이 참가해 뜨거운 열기를 입증했다.
여기서 메이저리그와 한국야구의 근본적인 차이가 드러난다. 메이저리그는 양대리그에서 30개 구단에 속한 800명 가까운 선수가 활약하는 무대다. 같은 리그에 속한 팀이 아니면 좀처럼 맞대결할 기회가 없다. 다른 구단 소속 스타를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매우 드물다. 가령 뉴욕에 사는 팬이 LA 에인절스의 마이크 트라웃을 보려면 2~3년에 한번 찾아오는 뉴욕 경기 기회를 기다리거나, 비행기를 타고 미국내 정반대편에 있는 LA 홈구장까지 찾아가야 한다. 스타 한번 구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그런 스타들이 한날 한시에 한 자리에 모여 경기를 치르니, 올스타전이 꿈의 제전으로 여겨지는 것도 당연하다. 게다가 각 포지션마다 15명의 후보 중에는 반드시 한두명씩 리그 정상급 성적을 내는 괴물들이 자리잡고 있다. 자연히 팬들은 응원팀을 떠나 최고의 선수에게 투표하게 되고, 누구나 수긍할 만한 선수들이 올스타로 선정된다.
반면 단일리그에 9개 구단으로 이뤄진 프로야구는 모든 팀이 연간 최소 9경기는 다른 구단의 홈 구장에서 치른다. 게다가 매일 TV에서 4경기 전 경기가 중계방송된다. 부산 팬도 두산 김현수나 SK 정근우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볼 수 있다. 서울 사는 팬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이승엽을 눈 앞에서 보고 사인을 받을 수 있다. 애초에 다른 구단의 스타플레이어를 본다는 게 그리 희귀한 경험이 아니다.
메이저리그의 치열한 올스타전, 한국의 설렁설렁 올스타전
여기에 올스타전에 임하는 선수들의 자세도 차이가 난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15:1의 경쟁률을 뚫고 팬들의 선택을 받아 올스타에 선정된 것을 야구 인생에서 매우 큰 영광으로 여긴다. 올스타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심이 있는 만큼 경기에서도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최상의 플레이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경기 내용도 치열하다. 메이저리그는 비교적 최근 들어 올스타전 승리팀이 속한 리그에 월드시리즈 홈 어드밴티지를 주고 있다. 최근 3년 동안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팀이 속한 리그는 올스타전 승리팀의 리그와 일치했다(내셔널리그). 이것만으로도 선수들에게는 확실한 동기부여가 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치열한 승부는 사라진지 오래다. 뿌리 깊은 성적 지상주의 때문이다. 팬서비스는 뒷전이고 정규시즌 성적만 생각하는 문화 때문에 선수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몸을 사린다. 시즌 중이라면 질타를 받았을 무성의한 플레이가 ‘볼거리’라는 명목으로 당연시된다.
몇 해 전 올스타전에서는 리그 최고 젊은 에이스간의 선발 맞대결이 큰 관심을 모았지만, 두 투수 다 실망스런 투구로 체면을 구겼다. 어떤 선수들은 아예 올스타에 뽑히고도 이런저런 부상을 핑계로 출전을 기피한다. 올스타전의 위상을 올스타들 스스로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있는 셈이다.
프로야구 올스타전, 필요한 것은 스타와 치열한 승부
프로야구에서 올스타전이 그 이름에 어울리는 위상을 되찾는 날은 과연 언제쯤 찾아올까. 팬들의 손으로 뽑은 진정한 최고의 스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최고 수준의 플레이를 펼치고, 올스타전을 기다리는 팬들의 가슴이 커피집 진동벨처럼 요란하게 떨리는 날이 오기는 올까. 그러자면 지금부터 프로야구가 새로운 스타를 발굴하고, 잘 키워내서 가꿔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NC 나성범이 신인에다 신생팀 소속이라는 불리한 조건에도 무려 60만표를 넘게 득표하며 선전한 사실은, 역설적으로 야구팬들이 얼마나 새로운 슈퍼스타에 목말라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여기에 올스타전이 단순히 눈요기 거리 차원을 넘어 팬들에게 최고의 야구를 보여주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구단들과 지도자, 선수들의 인식 전환도 절실하다.
올스타전다운 올스타전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