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현 한국사회의 낡은 보편적 요소를 지목하자는 블로거 릴레이가 있었는데, 많고 많은 후보들을 – 꼰대질, 오지랖, 따고베짱, 하면된다 등 – 제치고 내가 꼽았던 것은 바로 이것이다: 득템주의™. 딴에는 훌륭해서 너도나도 널리 쓰게 될까봐 오리지널리티를 주장하려고 ™도 붙였다. 지금 와서 아무리 구글링해봤자 나 밖에 쓰지 않은 것 같지만.
내용은 사실 아주 간단하다. 득템은 너도나도 알고 있듯, RPG류에서 아이템을 획득하는 행위다. 그런 류의 게임에서는 보통 마법검이든 용사의 갑옷이든 물약이든 뭐든지 아이템의 형태로 얻는다. 몬스터를 물리치고 퀘스트를 끝내면, 획득해서 인벤토리에 축적한다. 그런 아이템의 특성이란, 그게 있거나 없거나다. 인벤토리에 담은 마법의 물약이 보존기한 끝나서 곰팡이 핀다거나 마법검이 잘 안놀아줬더니 도망가거나 하지 않는다(그런 미친 설정을 만들어 적용한 인디 게임이 있다면 뭐 어쩔수 없고). 득템의 과정이 험난했다한들, 득템 후에는 그냥 그 형질 그대로 계속 가지고 있다.
득템하면 모든 게 끝? 대학 가면? 결혼하면 끝?
득템주의™란, 매사를 물건의 형태 즉 ‘아이템’으로 인식해버리고는, 한번 획득하면 장땡이라는 사고방식을 말한다(더 고상한 분들은 물화 과잉 같은 용어를 쓰겠으나).즉 제도나 관계 맺음, 사회적 위치 같은 것에 해당하는 [ ]의 성취를 향후 삶을 위한 새 룰이 주어진 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획득 후에는 그냥 놔둬도 상관없는 ‘아이템’ 취급하는 것이다. 괄호 안에는 결혼, 대학교육, IT강국, 민주주의 외 온갖 것들을 대입시켜볼 수 있다.
결혼? 결혼 직전까지 극진 로맨스 인간이다가 결혼 직후 무관심 가장이 되어버린 누군가들의 일화를 흔히들 들어봤겠지. 그게 ‘한국남자’들의 스테레오타입으로 각종 대중문화에서 유머 소재로 쓰일 정도로.
대학교육은 어떤가. 너무나 자주, 대학에 입학하여 대학이라는 특수한 고등교육 학제에서 훈련을 받아 지식노동자가 되는 본질적 과정보다는, 입학이라는 트로피를 획득하는 것 자체가 그냥 최종목표 취급을 당한다. HP와 MP가 간당간당했지만, 대입 퀘스트 완료. 아이템 ‘대학입학증’, get! 대학이름은 나중에 이력서를 연성할 때 인벤토리에서 꺼내서 사용하는 아이템이다. 대학생으로서 어떤 사회적 역할을 수행해야할지, 자신이 배우는 전공의 의미가 무엇인지 같은 건 아이템을 득템할 수 없는 쓸데없는 미니게임이고. 아주 예외적으로, 진짜 학문을 업으로서 추구할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라고는 해도, 업종으로서의 학계는 다시금 논문 출판이라는 득템의 세계로 빠지곤 하지만).
좀 더 스케일 키워서, ‘IT강국’. 세기말에 열심히 몰아쳐 선을 깔아서 얻어낸 IT(망)강국이라는 타이틀에 취해, 정작 그 망 위에서 어떤 사회를 만들어나갈지는 대충 유보하고 그저 데이터 낭비를 일삼아왔다. 리더십 위치에 있다는 양반들이 열린 쌍방향 소통과 각종 공공 데이터베이스의 구축 및 보편적 활용, 새로운 개념의 서비스들에 대해서는 각종 정치적 이유로 빗장을 치고는, 인터넷 회선으로 TV를 보느니 어쩌니 하는 자기들 구닥다리 사고에 딱 적합한 일부 분야에만 잔뜩 관심을 할애하는 꼴들이 흔하다. 가만히 놔두기만 해도 알아서 발전할 잠재력이 충분한 영역마저도, 낮은 사회적 관용수준 때문이든 국내기업들의 이권 과보호든 근시안적 효율성 착시의 문제때문이든 각종 규제만 늘려놨다가 허덕이고 말이다.
민주화는 선거를 통한 ‘득템’이 아니다
그리고 약간 진지하게, 민주주의. 예를 들어 “이 정도면 민주주의는 이제 충분히 이루었으니 먹고 살 욕망에 충실하겠다”는 식의 사고방식 말이다. 이런 사고는 아무리 늦게 잡아봐도 07년 MB당선에서 이미 확실하게 티가 났고, 18대 ‘뉴타운 총선’으로 쐐기를 박았다.
이미 그게 대세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분들은 작년 19대 총선에서도 실망, 대선 결과에 멘붕을 겪으셨을 법하다. 민주화 의식의 정의감을 지녀야지 어떻게 독재자의 딸을 당선시키는가 분개해봤자다. 그런 마인드가 유의미한 대세로 작용한 것은 노통 당선까지가 한도였고, 이듬해의 대통령 탄핵 반대로 에필로그까지 찍었다. 민주화에 대한 마음의 빚 같은게 있었다면 이미 정산은 끝났고, 더 이상 판단 변인이 아니다.
물론 먹고 살 욕망을 접어두고 정의감만으로 선거에 임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 아니 그건 매우 멍청한 짓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선택을 했든, 민주주의는 이미 충분히 획득한 기본 조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득템해서 인벤토리에 집어넣으면 대충 끝나는 ‘아이템’이 아니라, 이후 사회적 삶의 조건이자 규칙이다.
선거라는 형식을 얻었으니 민주주의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형식적 민주제 너머 이상적으로 작동하는 민주사회라는 규범적 지향을 포함시키고자 한다면 득템하고 끝나는게 아니라 그냥 새로운 시작이다. 민주제의 형식 및 기타 제도들을 이용하여 해당 사회의 보편적 인권 수준과 복지 보장, 열린 토론과 합리적 정책결정, 권력오남용에 대한 책임부여 등으로 사회적 삶을 최적화시켜 나아가는 상태가 바로 민주주의인 것이다. 아이템이 아니라, 룰이다.
민주주의를 충분히 이루는 것 따위는 없다. 민주주의는 “가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다. 심지어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으면 야금야금 형식적 민주제마저 줄어들기도 한다. 선거 결과라는 것조차, 사실은 득템 같은 것이 아니다. 대표선수팀의 에이스 스트라이커를 뽑은 것 뿐이고, 여전히 모든 시민들은 경기장 안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인 상태다. 그냥 내 사회적 삶이란게 정치의 일부이고, 나 나름대로도 주어진 모든 기회에 여력 닿는 만큼 계속 개입하지 않으면 내가 지지한 후보가 당선되었다한들 내게 불리한 쪽으로 막 말려든다. “우리는 이미 민주화되었잖아”가 아니라, 모두가 계속 살아가는 룰로서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며 일상의 정치를 하도록 서로가 서로에게 압박을 해야한다는 말이다.
!@#…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근간 사고방식처럼 박혀있는 득템주의™를 버리자. 제도나 관계 맺음, 사회적 위치, 뭐 기타 등등 많은 것들은 ‘아이템’이 아니다. 이 점을 뼛속까지 뚜렷하게 인식하고 있을 때 비로소 그런 것들을 계속 가꾸어나가며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 주: 블로거 릴레이 ‘굿바이 올드 코리아!’ 글의 필자 본인 갱신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