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복. 말 그대로 메이드들이 입는 제복이다. 어두운 색조의 원피스에 풍성한 프릴이 달린 에이프런을 두르고, 머리에는 흰색의 카츄샤를 착용한다. 여기에 레이스나 다른 액세서리를 추가하기도 한다. 의외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기껏해야 100~150년 정도? 마찬가지로 메이드라는 직업의 역사 또한 그리 긴 편은 아니다.
메이드(maid)라는 단어가 생겨나기까지
Maid라는 단어가 인류사회에서 처음 등장하는 것은 서기 1150년에서 1200년경. Maiden의 파생형 단어인 Maid는 원래 오늘날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가정부”의 의미가 아닌, 젊은 여성, 혹은 순결을 지닌 처녀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단어였으며, 혼인하지 않은 여성을 의미하는 단어이기도 했다. 가령, My maiden aunt 라고 하면 “아직 결혼하지 않은 내 고모(혹은 이모)”라는 뜻이 된다. 요즘은 이런 표현은 거의 쓰지 않지만.
오늘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메이드복”을 입고 “가정부” 역할을 하는 “메이드”가 대두된 시기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1837년~1901년)이 대영제국의 수장으로 군림하고 있던 시절이다. 대영제죽의 절정기였던 이 빅토리아 시대는 산업혁명과 자유경제에 의한 번영이 이루어진 영국의 황금시대였으며 동시에, 뿌리 깊은 전통적 가치관과 계급구조에 변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시기이기도 했다.
산업구조가 뒤바뀌고 기존의 봉건적 계급체계가 무너지는 이른 바 혁명의 시대를 접한 모든 나라가 그렇듯, 19세기의 영국 또한 신흥 세력들에 의한 계급의 상승의지가 상당한 수준으로 표출되던 시기였다. 즉, 이들 신흥 세력들은 실질적인 권력이나 재물을 탐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꿈꾸어왔던 “상류층”의 이미지를 탐했다. 즉, Snobism의 시대였던 것이다.
신흥세력 젠틀맨, 메이드를 탄생시키다
이들 신흥세력들이 추구했던 것은 바로 젠틀맨, 즉 신사의 격식을 갖추는 것. 고대 라틴어에서 집안, 혹은 종족을 의미하는 “Gentilis”에서 파생된 이 단어가 영국에서 흔히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5세기 중엽의 일이지만, 오늘날 통용되는 의미와 근접한 뜻을 갖게 된 것은 16세기 이후이다.
젠틀맨은 귀족의 자제이거나, 혹은 많은 재산을 소유한 부유층이거나, 학식이 높거나, 혹은 국가에 지대한 공헌을 한 공적이 있는 자를 주로 칭하는 단어가 되었다. 이 계급 아닌 계급에 속하는 자들에게는 여러 가지 요구되는 사항들이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일정 이상의 고용인을 부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성 피고용인의 급여는 일반적으로 상당히 높았기 때문에 ‘젠틀맨’들은 상대적으로 급여가 싼 여성인력들을 대안으로 고용했고, 그래서 메이드 붐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노동법도 인권법도 없던 시대, 메이드의 아픔
메이드 역시 그 역할이나 경력에 따라 격차가 존재했다. 안방마님을 섬기는 레이디스 메이드(Lady’s Maid)는 상당한 경력을 지닌 메이드들이 수행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은 어느 정도 자유를 보장받았고 그 권한도 상당히 높았다고 한다.
레이디스 메이드의 주 업무는 바로 안방마님의 “패션”을 관리하는 것. 이들에게는 패션 트렌드뿐만 아니라 보석, 향수, 장신구 등에 대한 전문지식이 요구되었고 또 사교계에 통용될 정도의 교양이 필요했기 때문에 주로 젊고 똑똑한 여성들이 채용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다만 이들은 안방 마님의 눈 밖에 벗어나거나, 나이가 들거나, 아니면 다른 메이드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해서 쫓겨나거나 혹은 살해를 당하는 경우도 꽤 있었다고 한다.
또한 집안을 관리하는 하우스키퍼(House Keeper)라고 불리우는, 이른바 ‘메이드장’이 존재했고, 하우스키퍼는 주로 집안의 관리나 청소 등을 담당한 하우스메이드(House Maid)들을 주로 관리, 감독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또 주방일을 보조하는 키친메이드(Kitchen Maid), 집안의 아이들을 돌보거나 건강을 챙기는 너스 메이드(Nurse Maid), 세탁을 하는 런드리메이드(Laundry Maid), 그리고 이들을 보조하는 비트윈 메이드(Between Maid. Tweeny라고도 한다) 등이 있었다.
위에 언급된 경우는 그래도 어느 정도 “경력”을 인정받는 케이스이고, 그렇지 못한 허드렛일을 하거나 혹은 “검열삭제”같은 행위를 요구받는 메이드들도 다수 존재했다. 체임버 메이드(Chamber Maid), 혹은 메이드 오브 올 워크스(Maid of All Works)라고 불리운 이들은 모든 메이드들 중에서도 가장 서열이 낮았고, 주로 고아원이나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는 어린 소녀들이 고용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당시 노예제도가 타파된지 얼마 되지 않았기도 했고, 현재와 같은 체계적인 노동법이나 인권이 성립되어있지 않았던 시기이기도 했으며, 남녀차별이 당연했던 시대이기도 했기 때문에, 메이드들에 대한 일반적인 처우는 그리 좋지 않았다.
성적 노리개가 된 일부 메이드, 페티시 코드를 낳다
가사일을 돕는 여성 노예들에 대한 대우가 그러했듯, 이들 “젠틀맨”들에게 고용된 메이드들도 강간을 당하거나, 성적 노리개로 전락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또한 남성 피고용인들과 달리 메이드의 경우, 이직을 원할 시에는 전 직장의 고용주의 소개장이 없으면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에, 적은 급여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학대를 감수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이러한 메이드들의 삶은 시대가 흐르면서 변질되어 오늘날 성욕의 욕구 분출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수준에 이르렀고, 메이드복은 패티쉬의 한 장르로 남게 되었다.
참조 글: 일본 메이드복의 역사
참조 글: 메이드복과 롤리타 패션의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