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2살짜리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해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결국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 아이를 수술하기를 거부한 병원들, 의사들을 욕했다.
하지만 나는 가까운 미래에 이런 일들이 뉴스거리도 되지 못할 만큼 아주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것 같다. 왜냐하면 외과 의사를 지원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좀 지리멸렬하지만 끝까지 읽어주길 바란다.
‘수련의’들의 비정상적인 노동시간
우리 학교 캠퍼스는 간호대, 의대, 치대만 병원 옆에 따로 모여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학생 때부터 의대생들과도 어울릴 일이 많았다. 의대를 들어온 사람들은 정말 지역 1~2등, 수능 만점, 과학고 출신 등이 많았다. 정말 똑똑이들만 잔뜩 모아설랑 그 똑똑이들을 본과 4년간 죽음의 커리큘럼으로 미친 듯이 공부를 시키고, 실습을 돌리고, 한 달 내내 시험을 치게 하기도 하고…그렇게 해서 의사를 만든다.
친구들은 의사가 되었고 나는 간호사가 되어 병원에서 만났다. 내가 만난 병원 1년 차, 인턴 의사들의 삶은 노예와 같았다.
내가 처음 발령받은 부서인 내과 중환자실에 걸려 있는 인턴의 전화번호는 달랑 2개였다. 2명이 돌아가며 중환자실 당직을 섰다. 그래서 인턴들은 한번 출근하면 36시간 근무를 했다. 소위 ‘퐁당퐁당’이라고 하는데 하루걸러 하루 당직이라는 의미이다.
인턴 두 명이 출근해서 같이 일하다가 한 명은 퇴근하고 나머지 한 명은 당직을 선다. 출근도 겁나게 일찍 한다. 아침 6~7시에 출근해서 6A정규 피검사 및 심전도, 각종 시술 등을 쉴 새 없이 하다가 의사를 동반해야 하는 환자 이동 때 여기저기 불려 다닌다.
저녁 6시쯤 1명이 퇴근하고 당직은 퇴근을 못 하고 2명의 몫을 혼자 다 하며 밤을 새운다. 서울대병원 같은 곳은 낮밤 가릴 것 없이 24시간 늘 응급상황이 빵빵 터지고 오밤중에도 각종 검사, 시술들이 추가된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퇴근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하루 근무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저녁 6시 즈음에 다른 불쌍한 친구가 당직이 되고 36시간 연속으로 일한 그 인턴은 집에 갈 수 있다. 물론 12시간 후에 출근해야 하지만.
지옥 같은 인턴 1년이 끝나고 내 친구들은 각자 전공을 선택하여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가정의학과, 흉부외과…등의 전공의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다.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친구 중에 1년간 5일 쉰 친구도 있었다. 주5일제 근무가 아니라 연 360일제 근무였다.
이런 비정상적인 노동시간에 대해 의사들이 조금씩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얼마 전 보건복지부는 <전공의들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관한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을 발표했다.
“전공의 주당 최대 수련시간은 88시간, 최대 연속 수련시간은 36시간,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예외적으로 40시간까지 허용한다. 주간 근무 이후 연속해 당직 근무를 한 경우 10시간 이상의 휴식 시간을 보장해줘야 한다.”
‘수련’시간이라고 적은 것은 말장난인 것 같다. ‘수련’시간이라고 해서 주당 40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48시간 동안 강의를 듣거나 지리산에서 폭포수 맞으며 도를 닦는 것이 아니다. 수련의라고 부르지만 그들은 수련생이 아니라 국가고시를 통과하여 의사 자격증이 있는 ‘진짜 의사’이기 때문에 병원에 의사로서 고용된 노동자이고 환자를 치료하고 처방을 내고 각종 시술을 직접 한다.
의사들의 수련과정은 일종의 도제식 교육이기 때문에 이론에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실제 병원에서 선배 의사들 옆에서 같이 일을 하면서 보고 배우며 익혀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수련’시간은 결국 그들의 노동시간이다. 주당 88시간 일하지 않게 하라는 법은 그 법 자체가 노동법과 충돌하고 있다.
노동법에서 정한 주당 최대노동시간은 주 40시간제+연장근로 12시간과 휴일근로 16시간까지 최대 68시간이다. 그런데 전공의 ‘수련’시간 관련법에서는 그것보다 무려 20시간이나 더 많은 88시간을 하한선으로 정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는 내 후배들이 불쌍하다.
주당 88시간 노동이라면 주 5일제로 계산했을 때 하루 17.6시간이고, 휴일 없이 주 7일 한다고 해도 하루 12.6시간 근무다. 이를 위반하는 수련병원장에게는 고작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고 하는데 주당 88시간이나마 잘 지켜질지는 의문이다.
“당신의 주치의는 어제 몇 시간 잤습니까?”
내가 본 가장 섬뜩했던 포스터는 “당신의 주치의는 어제 몇 시간 잤습니까?”라는 문구와 피곤에 쩔어 졸고 있는 의사의 사진이었다.
이렇게 대형병원에는 의사가 부족해서 88시간씩 일을 시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의사를 더 많이 뽑을 수 없는 이유는, 의대생 정원을 통제하고 있어 한해 졸업한 의대생 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정원을 늘리자니 레지던트 수련 기간 4년이 끝나고 대형병원 밖으로 나온 의사들이 갈 곳이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공급과잉이 될 수 있다. 서울대병원 같은 대형병원에서 정년이 보장되는 의사는 교수밖에 없고 나머지는 모두 1년, 3년, 4년짜리 계약직이다. (그런데 그런 의사들한테 퇴직금 안 주고 사학연금 적용시키는 사악한 심보는 안 비밀-_-)
매년 수천 명의 의사들이 지옥 같은 4년을 끝내고 전문의가 되어 대형병원을 나오지만 의사들을 위한 대기업 같은 건 당연히 없고, 그들에게 안정적인 고용이라고 보장된 것도 전혀 없다. 몇 자리 없는 의대 교수를 바라보며 다시 전임의라는 1년 계약직 의사로 교수님 눈치를 보며 대학병원에 남아 노예처럼 일하거나, 집에 돈이 아주 많으면 개인병원을 차리거나 남이 차린 개인병원에 취직하는 등 각자도생의 무한경쟁 속에 던져지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히 개인병원을 열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안과, 이비인후과, 성형외과, 피부과 같은 과로 의사들이 몰리는 것이다. 누가 동네 작은 병원에서 심장수술을 받고 암수술을 받겠는가? 애초에 그런 엄청난 수술은 보조해줄 여러 스텝과 수술 후 집중케어가 가능한 중환자실 및 중환자 전문간호사들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리고 그런 환경은 대형병원에만 갖춰져 있고 그런 병원에서 수술할 수 있는 교수 자리는 전문의 수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다.
아무리 외과 의사가 되고 싶어도 교수가 되지 못하고 병원 밖으로 튕겨 나왔을 때의 암울한 미래를 생각하면 선뜻 그런 진로를 선택하기 힘들 것이다. 의사들이 돈만 밝히는 게 아니라 의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가족들과 먹고 살길을 찾는 것이다. 점점 더 먹고 살기 힘들어지니 저렇게 힘들게 전문의를 따고 나서 취직이 어려운 과를 지원하는 사람은 점점 더 줄어들 것이다.
국가에서 의료계의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
나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정말 중요한 직업인 의사를 나라에서 책임지고 다 공부시켜주고 고용해줬으면 좋겠다. 행정고시처럼 지역별로 필요한 수만큼 의사가 될 사람들을 뽑아서 의대에서 가르치듯이 연수원에서 공부시켜주고 연수원을 나와 각 지역 병원에서 수련을 받고 의사로 일하게 한다던가?
검사들도 검사하다가 그만두고 나와서 변호사가 되듯이 의사들도 전문의 따고 2~3년 정도 의무적으로 국가에 고용되어 일하다가 언제든 본인이 원하면 개원의로 나오고, 아니면 공무원으로 정년까지 일할 수 있게 하면 되지 않을까?
물론 우수한 인재들을 지원하게 하려면 의사의 사회적 지위에 걸맞게 4급이나 5급 정도로 급수도 높았으면 좋겠고, 어려운 공부 해서 매우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갖췄으니 월급도 많이 주고, 주당 노동시간도 잘 지키고, 공무원처럼 육아휴직, 연금, 복지 등도 잘 보장되고 그랬으면 좋겠다. 의사도 성자가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니까.
흉부외과, 일반외과, 산부인과 의사는 부족해서 발을 동동 구르는데 한 빌딩에 이비인후과 수십 개가 몰려 있고, 한 골목 그득 채울 정도로 성형외과가 즐비한 것은 국가 전체로 봤을 때 인력 낭비, 자원낭비인 것 같다.
그럴 돈으로 의사들 월급이나 많이 주고, 필요한 곳에 필요한 수만큼의 의사를 배치하는 것이 먹고 살기 위해 적성에 맞지 않는 과를 선택해야 했던 의사들뿐만 아니라 국민들 전체에게 더 이득이 아닐까? 적어도 아이 엄마가 죽어가는 아이를 안고 7시간 동안 수술할 병원을 찾아 헤매다 결국 아이를 잃는 일은 사라지지 않을까?
의료계의 이런 열악한 현실을 일반 국민들이 좀 더 많이 알았으면 좋겠다. 내 친구 의사들만 불쌍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정말 일주일 내내, 아니 한 달 내내 평균 3시간 자는 의사에게 진료받고, 수술받아도 괜찮냐고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크게 다치거나 아파서 병원에 가도 나를 수술해줄 의사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았으면, 바꾸라고 요구해줬으면 좋겠다.
사실 난 의사도 아니고 보건정책연구원도 아니니 어떤 것이 의사, 환자, 국민들에게 제일 좋을지는 잘 모른다. 내 글을 보고 기분 나빠할 의사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대로 내버려 두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는 것은 알겠다. 정부에서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서 정책연구원들이 대대적인 작업에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정부는 병원 성과급제 타령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어제 2살배기가 죽었다.
원문 : 최원영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