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 데인 적이 있어서 어지간하면 너무 뜨거운 감자에는 손을 대지 않으려 하지만 모 연예인 임대인과 임차업자의 분쟁 얘기가 어느 쪽의 갑질, 선악구도에 지나치게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것 같아서 생각을 써보고자 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사견에 불과하다는 점을 먼저 밝혀둔다.
1. 임대인쪽은 법적인 책임은 다했다
나온 기사를 보자면 임대인쪽인 모 연예인 측은 최소한 법적인 책임은 다 했다. 임차인이 전 임대인과 맺은 최장 5년 갱신의 구두약속을 했다지만 증빙이 없는 구두약속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이러한 약속을 새로운 임대인이 계승해야 할 책임 또한 없다. 이러한 분쟁상황에서 결국 임대인은 그러한 구두약속을 이행할 책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이전하게 해서 결국 5년의 영업기간을 채워주긴 했다. 이 과정에서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지급한 1억 8천만원의 권리금은 새로 가게를 꾸며야 하는 시설비에 1층과 지하 1층이 가지는 가치 차이에 따른 차액보상 정도로 보인다. 이걸로 알 수 있듯이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법적인 책임을 다했을 뿐만 아니라 그 이상까지도 했다.
2. 임차인이 무리한 요구를 하긴 했다
위에서 이야기 했다시피 전 임대인과 아무런 증인도 없이 ‘구두’로만 한 5년의 영업기간 보장은 새로운 임대인이 이행할 의무가 없다. 임차인은 그런 약속을 받았다는데 증빙할 증인도 없고 서류도 없으면 그것을 어떻게 믿으라는 것인가? 만약 그걸 증빙할 서류나 증인이 있었다면 상황이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중간에 분쟁과정이 있긴 했지만 임대인이 새롭게 제안한 자리에서 일정한 보상금을 받고 결국 2년간의 영업기간을 보장받아 처음 계약을 한 2010년부터 동일 건물에서 5년 이상 영업을 한 것이니 이것은 법적인 책임이 없는 임대인으로부터 얻은 대단한 양보긴 하다.
문제는 그렇게 새롭게 옮기면서 주차장을 영업 장소로 활용할 권리를 삽입한 것인데 여기서 무리수가 터져버렸다. 임차인측은 이 주차장 부지에 철골구조로 된 가건물을 지어 아예 점유를 해버렸다.
길 가다보면 카페들이 건물을 벗어난 구역에 테라스를 확장하여 영업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잘 안지켜지는 것이긴 하지만 건축법과 식품위생법 기준으로는 사유지라 하더라도 그러한 영업은 불법이다. 근데 이게 또 식품안전처 규칙에 따르면 사유지에서의 영업은 허용하게 되어 있어서 서로 상충되는지라 자치단체에서 따로 규정을 만들어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 지역 내에서 이러한 옥외 구조물을 갖추고 영업이 가능한 구는 서초구, 서대문구, 중구, 송파구 정도며 전 지역 허용이 아닌 특정 지역으로 제한되어 있는데 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 건물은 강남구이므로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렇게 서로 법과 규정이 충돌하니 막 단속하기도 뭣해서 보통은 주변에서 민원이 들어오는 경우에만 단속을 하는게 현 상황이다.
또한 잘 안지키는 건물들이 좀 있긴 하나 모든 건물은 면적에 따라 일정 수 이상의 주차장을 의무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기에 주차장 공간에다가 영업을 위한 가건물을 세우는 것은 용도가 따로 없는 공간에다 가건물을 세워 운영하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다. 위에서 얘기했다시피 용도가 따로 없는 전면 공지를 개조해서 영업에 활용하는 것은 제한적으로 허용이 되나 주차장 개조는 허용조차 되지 않는다. 관습적으로 많이들 하는 개조이긴 하나 이는 엄연히 불법에 해당한다. 더군다나 주차장을 용도변경 하도록 하는 조항을 넣었다는데 용도변경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기사를 보면 주변 민원이 속출했다고 나온다. 그러면 절대 유지가 불가능하다. 임대인이 이 조항이 가진 헛점을 알았을지 몰랐을지는 알 수 없으나 임대인이 주차장 영업에 동의를 하고 보장을 하더라도 주변 민원이 들어오면 지켜줄 수 없는 애초부터 무리한 요구다.
3. 갑의 횡포에 당하는 약자의 포지션이 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임차인측이나 혹은 몇몇 언론들의 논조대로 연예인이 갑의 횡포를 부리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임차인측의 희망과는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서 임차인을 ‘약자’로 인식하지 않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두 번의 무리한 요구 때문이다. 첫 번째 요구는 임대인이 이행해야 할 책임이 없음에도 제한적으로나마 수용을 했으며 두 번째 요구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약속이었다. 그런데도 임차인은 그것을 이행하라고 요구하며 두 번째 법적 분쟁까지 벌였다.
만약 지금의 연예인 임대인이 들어온 상황에서 짤 없이 내쫒겼다면 갑의 횡포에 희생당하는 약자라는 프레임을 얻을 수 있었겠지만 한 번은 결과적으로 원하는 바를 얻어냈고 다른 한 번은 애초에 지킬 수 없는 조건을 내걸고 그것의 불이행을 문제 삼은 것이라 갑의 횡포에 당한 약자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임차인은 너무 안이했다. 첫 법적 분쟁 때부터 임대인은 임차인을 내보낼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 분쟁 끝에 결국 시간을 더 얻었으나 그 과정에서 또 한번의 분쟁이 있었다. 이 상황에서 계약 종료가 될 경우 임대인이 임차인을 내보낼 것이란 것은 누구나 예상 가능한 일이다. 장사도 하고 분쟁도 하느라 이것 저것 챙길 정신이 없었을 수도 있으나 계약 연장 분쟁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었다는 것은 지나친 방심이다.
이러한 앞선 이력들과 방심에 가까운 안이함으로 허무하게 끝나버린 마무리가 사람들이 이번 임차인을 약자로 보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게 만든 것이다.
4. 그럼 법대로 했으니 더 이상 문제가 없는가?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임대인인 연예인이 법대로 다 했는데 뭘 더 해야 하냐라는 반응이다. 그렇다면 법대로 했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이 분쟁 자체가 상임법 개정 전에 이루어진 터라 문제가 훨씬 더 많고 환산보증금이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기에 보호 장치가 없이 싸운 것이나 다름 없다.
임차인의 상황도 이해는 간다. 처음 계약한 2년이란 영업기간은 투자비도 제대로 뽑기 힘든 기간이다. 이 기간 동안만 영업하고 나가라는 것은 나가서 죽으란 이야기나 다름 없다. 불행히도 과거엔 이게 일상이었다. 법적으론 아무런 문제도 없었고 여기에 임대인이 책임을 질 일도 없었지만 그런 식으로 임차인이 철저하게 희생당하는 구조였다.
작년부로 개정안이 시행되긴 했으나 허점은 여전히 존재하고 그나마도 상임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금액은 환산보증금 4억 미만이다. 작년에 발표된 서울시의 2015년 ‘상가임대정보 및 권리금 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지역 주요 상권의 중대형 매장 중 환산보증금 4억을 넘는 곳의 비중은 22.3%다. 환산보증금 4억 이상이 어떻게 약자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사람들이 들어가 있는 건물의 임대인은 다른 곳보다 더 강자라 그런 식의 비교는 옳지 못하다 생각한다.
지난 몇번의 글에서 썼듯이 상임법에서 보장하는 5년의 기간도 사실 긴 기간이 아니다. 5년이면 개별 케이스마다 차이는 있어도 권리금과 시설투자비에 들인 비용 빠지고 이제 막 수익을 내기 시작하는 시점에 가깝다. 타국의 케이스를 살펴보면 알 수 있지만 보장기간을 딱히 정해두지 않은 경우가 많으며 임차인에게 임대인에게 대항할 수 있는 조항들도 많이 달려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엔 이 부분이 워낙 취약하기 때문에 법대로 하더라도 대등하지가 않고 임대인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 밖에 없다.
이번에 문제가 된 연예인 임대인이 2년 계약이 끝나자 마자 임차인을 내보내려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재산권을 행사하기 위함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 재산에 대한 권리를 내가 행사하겠다는데 그것이 무엇이 문제냐며 임대인의 편을 드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 사람의 재산권 행사가 타인의 생존권과 연결이 되어 있다면 그 권리는 어느 정도 제한되어야 함이 옳다. 실제로 영국, 프랑스, 일본의 사례를 보더라도 임대인의 재산권 행사를 어느 정도 제약시켜 임대인과 임차인이 대등하게 거래와 계약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fair’란 바로 이런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자영업자 비율이 OECD의 2배에 달하는 국가가 아니던가? 이렇게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보호규정 자체가 미흡하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점으로 꼽을 수 있는 부분이다. 단순히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해서 문제가 되지 않는게 아니다.
5. 어느 쪽을 선악으로 구분 지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다시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사건으로 돌아와 보자. 이것을 갑의 횡포라 할 수 있을까? 위에서 얘기했듯이 갑은 최소한 법적으로 할 도리는 다 했으며 법적 책임의 이상도 감수했다. 이것을 일방적인 갑의 횡포라 보기는 다소 어렵다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이것을 을의 횡포라 부를 수 있을까? 가끔 제도적 허점을 악용하는 을이 있기도 하지만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에 해당하며 제도가 아예 없는 상황에서는 갑인 임대인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며 제도가 있다 해도 허점이 많아 여전히 갑이 유리하다. 시스템 자체가 갑에게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기에 을의 횡포라는 표현은 말이 되질 않는다. 을은 횡포를 부릴 수 있는 입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일에서 아쉬운 점은 임차인의 대응이다. 연예인 임대인이 건물을 인수한 후 벌어진 첫 번째 분쟁은 생존과 직결된 분쟁이었으니 임차인이 피할 수 없는 분쟁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결과 장소를 지하 1층으로 옮기긴 했어도 투자금의 일부를 돌려 받으며 영업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결과를 얻었다. 이것은 분명 스스로의 생존권을 쟁취한 것이기에 유의미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다. 새로운 계약조항에 사실상 현행법상 지키기 힘든 조항을 (알고 넣었건 모르고 넣었건 간에) 삽입했고 그것을 문제 삼은 두 번째 분쟁이 터지면서 생떼 쓰고 트집잡는 임차인의 이미지가 박혀버렸다. 거기에 첫 번째 분쟁에서 임대인이 본인의 법적 책임 이상의 보상까지 일부 한 덕분에 임대인은 관대한 이미지를 얻어서 더 대비가 되어버렸다.
연예인 임대인이 처음에 재계약을 거절한 것에서부터 이미 이 임차인의 앞날은 예고되어 있었다. 장사를 할 수 있는 기간은 정해져 있었고 계약 종료가 되면 더 이상의 재계약은 없을 것이며 명도소송으로 이어질 것은 뻔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에 대한 대비가 하나도 없었다. 정해진 계약 기간 이상 계속 점유를 하려면 재계약 혹은 계약 갱신에 대한 준비와 조사를 했어야 했는데 아예 몰랐다는 점은 면책이 되지 못한다. 더군다나 계약 문제로 두 번의 법정 분쟁까지 갔음에도 이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었다는 것은 그저 ‘몰랐다’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이 문제만 놓고 보자면 임대인이나 임차인이나 어느 한 쪽이 선하고 악해서가 아니라 임차인이 계약으로 두 번이나 분쟁을 겪은 것 치고 너무 허술하고 안이하게 대응했으며 너무 몰랐다는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몰라서는 아무리 보호규정이 잘 되어 있어도 이기기가 힘들다.
원래 대부분의 이러한 분쟁은 소리소문도 없이 조용히 묻혀버리고 언론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대부분 그렇게 자리를 내주고 만다. 만약 이 사건의 건물 소유주가 개인이었다면 이렇게 화제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 임차인은 다른 임차인보다 이슈를 일으킬 수 있단 점에서 유리했던 것은 사실이나 그 유리함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켜 버렸다.
이 문제를 임대인과 임차인의 선악구조로 놓는 것에 반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임차인과 몇몇 언론들이 지금 연예인 임대인에게 갑질과 횡포라는 이미지를 씌우려 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하기엔 비교적 유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임차인의 패착이 많아 초래한 결과라 도리어 역풍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재 불고 있는 ‘임대인은 법적 책임을 다했는데 뭐가 문제냐’라는 시각이 바로 그것이다. 현행법이 엄연히 임대인에게 많이 유리하게 잡혀 있기에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계약은 공정하기가 어렵다. 자칫 이러한 시각이 불공정한 계약이 나올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지금의 상임법을 법적인 문제가 없단 것만으로 정당화 하는 근거가 될까봐 다소 염려스럽다.
적어도 이 문제에서만큼은 임차인이 너무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이러한 실수를 뒤집기 위해 강자에게 희생당하는 약자의 구도를 취하는 것은 오히려 도움이 되기 어렵다.
원문: 김바비 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