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기에서 시장지배력을 추구하는 한 기업과 어느 정치인의 ‘협업’이 공공 시스템 전체를 망가트리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사례를 하나 소개하려고 한다. 2010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이라면, 이명박 정부의 핵심정책이었던 4대강 사업이나 “세계적인 물 산업 육성”을 목표로 하는 수도민영화사업처럼 몇몇 기업의 이윤보장을 위해 모든 국민에게 추가적인 비용부담을 감수하게 하는 정부정책에 이미 익숙해져 있을 것이다. 비슷한 일이 일어나는 건 학술/연구/지식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는 학술 데이터베이스 기업 하나가 있다. 이 기업에게 가장 눈에 거슬리는 것이 있으니, 학술자료를 모두에게 무료로 배포하는 공공프로젝트다. 어느 날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 한 명이 정확히 이 기업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논리로 해당 공공프로젝트의 폐기를 주장한다. 마찬가지 논리를 내세운 (조잡한) 언론기사가 나와 뒤를 잇는다. 최종적으로 이득을 보는 것은 기업 하나 뿐이고, 비용은 모두의 몫이다. 지금부터 충분히 주목받지 않고 있지만 그 결과가 결코 덜 치명적이진 않을 바로 그 사례를 이야기해보겠다.
1. Dbpia에서 논문 보시던 분?
2016년 1월, 대학원생을 포함해 대학에 소속된 연구자들 중 상당수가 패닉에 빠졌다. 주요 한국어 학술자료 중 상당수의 이용이 갑자기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2000여 종의 학술지 및 196만편 가량의 논문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 내 최대규모 학술데이터베이스 Dbpia란 곳이 있다(참고로 한국의 등재지 총 수가 약 2000종이다).
Dbpia를 운영하는 누리미디어는 매년 각 대학도서관 및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구독료를 받고 자료열람권을 제공한다. 2016년 구독료 협상과정에서, 서울대 도서관 측에 따르면 누리미디어는 전년 대비 30-40%인상을 요구했다(경북대 도서관 측에는 27% 인상을 제시; 데이터베이스 구독료는 평균적으로 연 6-7%정도 상승한다). 대학 도서관들에게 누리미디어의 갑작스런 인상액을 감당할 재정은 없었고, 결과적으로 서울대를 포함해 적지 않은 대학이 Dbpia 구독을 포기하거나 일부 학술지만 선택적으로 구독하겠다는 공지를 올렸다.
이 상황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이들은 누구인가? 일차적으로는 대학원생 집단, 그중에서도 Dbpia에서 독점적으로 제공하는 자료를 주로 참고해야 하는 전공자들로, 대표적으로 한국사와 한국문학, 사회과학 전공자를 꼽을 수 있다. 특히 Dbpia 구독권을 갖지 못한 대학의 대학원생은 논문 한 편을 볼 때 6천원에서 9천원까지의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실질적인 부담액은 얼마나 될까? 분야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최근 학술지에 투고한 글에 참고문헌으로 17개 항목을 넣었고(해당 학술지 평균보다 적은 편이다), 실제로 인용한 항목보다 약 2배 정도의 문헌을 읽었다. 이 경우 만약 모든 문헌의 구독가격이 6천원이라고 간주한다면 논문 한 편을 쓸 때 참고문헌을 조사하는 것만으로도 20만원 이상 개인적 지출을 해야 하는 셈이다(Dbpia에서 제공하는 퀵뷰는 사실상 첫 페이지밖에 읽을 수 없어서 구매 전 해당 논문의 가치를 모른 채 일단 구매하고 봐야 한다). 참고로 내 생활비는 월 60-70만원 정도다.
요약하자면, 이번 누리미디어 사태가 지속/심화될 때 대학원생이 정상적인 교육/연구를 수행하는 것은 금수저가 아니라면 불가능하다. 특히 대학원생에게 학술논문 접근권은 중요한데, 마치 두뇌가 혈액을 통해 산소를 공급받듯 연구자들은 논문을 통해 현재 학계의 주요한 흐름을 참고하고 자신의 지적 능력을 성장시킨다. 저널구독에 인색한 학교에 소속된 연구자들과 “좋은 학교”에 소속된 연구자 사이에는 그 출발점부터 불평등이 존재할 정도다.
따라서 논문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1년이 특히 박사과정 이상 연구자들의 지적 성장에 얼마나 치명적으로 작용하는지는 말할 필요가 없다. 연구자들의 평균적인 지적 능력이 하락할 때 한국사회가 활용할 지식 전체의 양과 질 또한 타격을 입는다는 점에서 이것은 단지 대학원생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2. 한 ‘시민기자’의 변론
2015년 9월 17일,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이개호 의원은 국정감사자료집을 통해 “한국의 학술주권 침해 방지”를 위해 공공기관의 학술자료 무료제공 서비스가 중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해당 기사1 , 해당 기사2). 이개호 의원의 국정감사정책자료집 전문은 이개호 의원의 홈페이지 – 열린광장 – 자료실 에서 다운로드 가능한데, 여백을 끼워넣어 억지로 양을 늘린 보고서로 요점은 기사를 읽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 주장은 10월 8일 미래창조과학부 국정감사에서 ‘지적사항’으로 들어갔고, 앞으로 공공 데이터베이스 운영이 중단되는 근거로 활용될 수도 있다.
이 거창한 주장을 지탱하는 근거들은 다음과 같다.
- 공공기관에서 무상으로 제공하는 자료가 민간업체(Dbpia 가 직접적으로 거론된다)와 상당수가 중복된다.
- 논문 저자들의 저작권 및 지적 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다.
- 해외 방문자 수가 충분히 높지 않으며 Dbpia보다 떨어진다.
- 저작권료를 받기 위해 해외 데이터베이스 업체와 직접 독점계약을 맺은 학술지들이 늘어난다.
- 지금은 국내 논문을 다운받는 비용이 너무 싸다(!).
우리는 공공 데이터베이스 구축은 예산낭비 정책이니 폐기하고, 시장을 선점한 누리미디어에 맡기면 모든 게 다 잘 될 것이라는 걸로 이개호 의원의 주장을 요약할 수 있다.국정감사 후 약 한 달 반쯤의 시간이 지난 뒤 오마이뉴스에 한 “시민기자“가 출현했다. 본인이 (한국의 유일한 고등교육 전문지) <교수신문>의 기자출신이라고 밝힌 그는 11월 말과 12월 중순에 걸쳐 두 건의 기사를 작성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미 짐작할 수 있듯, 그가 이개호 의원이 국정감사자료집을 통해 주장한 바와 거의 똑같은 내용을 ‘기사’로 작성했다는 사실이다. 이를 간단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기사는 한국의 연구성과가 해외 데이터베이스에 독점공급되고 있으며(따라서 국내 기관이 추가비용을 지불해야 하며), 학술논문 다운로드 비용이 지나치게 싸고, 한국의 학술자료를 해외 학술시장으로 수출하지 못하는 걸 문제삼는다. 두 번째 기사는 좀 더 노골적인데, 공공기관을 통한 무료논문 공개가 논문 작성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고 학술지 평가권을 통해 논문공개를 강요한다는 것으로, 이 기사 자체가 전적으로 이개호 의원실의 자료집에 기대고 있다.
덧붙이자면 이‘기사’는 임상혁 교수의 주장을 왜곡해서 인용하고 있는데, 임상혁 교수는 논문에 가격을 매겨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오히려 그는 그게 비효율적임을 지적한다!) 논문공유가 연구자들 간의 자발적인 네트워크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가기관에 의해 강요되는 상황을 타당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 “시민기자”가 “누리미디어 저작권기획팀 팀장”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개호 의원의 주장과 그 기사의 유사성을 좀 더 곱씹어 볼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이개호 의원실은 국정감사를 통해 누리미디어의 이해관계를 대변했고, 누리미디어의 한 직원은 “시민기자”란 타이틀로 그 내용을 붙여넣어 기사화했다(이 케이스는 상업적 이해관계에 복무하는 기자를 필터링하지 못하는 오마이뉴스의 약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나는 누리미디어와 이개호 의원이 실제로 어떤 이해관계로 얽혀있는지 여부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이것이 사적인 이익이 직업적 정치가와 ‘여론’을 끼고 자신의 이권을 위해 모두의 이익을 폐기하는 한국의 전형적인 패턴을 보여준다는 점은 분명하다. 먼저 이들이 주장하는 논거가 얼마나 타당한지, 그게 사태의 실상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한번 살펴보자.
3.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타당한지, 따져보자
이개호 의원과 누리미디어의 주장을 지탱하는 근거들은 아주 간단하게 반박될 수 있다.
1) 무료제공 자료가 Dbpia와 중복된다거나 논문 값이 너무 싸다는 지적은 제도의 취지를 고려하지 않는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 애초에 돈을 가진 사람만 볼 수 있는 자료를 모든 연구자가 읽고 더 나은 결과물을 산출하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게 이 사업의 목적이니까.
2) 해외 방문자수가 적다는 지적이 특별히 이 제도의 문제는 아닌 게, 애초에 한국어가 아직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학술어가 아닐 뿐더러(당장 영미권과 한국어권의 학술생태계의 역사와 크기가 얼마나 차이나는가?), 무료공개 서비스가 시작한 건 2012년으로 국정감사보고서 작성시점에서 겨우 3년이 되었을 뿐이다. 제도의 효과가 지식생태계에 자리 잡을 때까지는 그보다 더 오랜 기간의 안정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게 보통인데, 나는 이개호 의원의 조급함을 보면 그가 오랜 경험을 가진 행정관료출신이라는 사실이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렇다면 연구자의 저작권 혹은 지적재산권이 침해된다는 그들의 주장은 얼마나 타당한 것일까? 학계와 필드 따라 다른 개념 및 관습이 지배하고 있지만, 그들이 전제하는 바와 달리 대체로 논문은 도서와는 달리 저자에게 직접적인 수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한국에서 논문의 저작권은 저자와 학회지/학술지가 공동으로 보유하는 걸로 인식되는데(영미권의 경우 보통 출판사가 ‘독점적 보유’를 하되, 연구자들끼리의 공유 등을 포함해 금전적 이익과 무관한 학적 용도의 공유는 가능하다), 애초에 공적인 학회는 학회지나 논문을 판매하여 영리를 추구하는 단체가 아니다.
연구자 및 학술단체의 일차적인 기능은 서로 간의 대화를 바탕으로 유의미한 지식을 생산하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그들은 연구자 재생산이 가능한 지식생태계를 구성한다. 물론 이 과정을 촉진하기 위해, 혹은 지식을 생산하는 과정 자체를 노동으로 간주하여 반대급부를 받는 경우는 있다. 그러나 논문은 그 자체로 연구자들 간의 지적 대화의 매개체로서, (적어도 연구자 집단 내에서는) 이익을 취하는 수단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만약 어떤 연구자가 자신의 논문에 대한 저작권에 대한 구독료를 주장한다면, 그는 지금까지 자기 자신이 지적 전문성을 획득하기 위해 읽어온 수많은 “무료 논문”에 대한 대가부터 지불해야 할 것이다. 분명히 말하자면 연구자는 절대적 재산권을 가진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연구자 생태계의 일부로서만 존재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개호 의원과 누리미디어의 주장은 애초에 고등교육 및 연구자 생태계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기초하는 셈이다.
한 가지 덧붙일 사실은, 이들의 주장에서 암시된 바와 달리 누리미디어가 지금까지 연구자 및 학술지의 지적재산권 증진을 위해 딱히 유의미한 실천을 해왔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나처럼 연구자로서의 이력을 막 시작한 사람만이 아니라, 수십 편의 논문을 써온 교수/강사급 저자들도 지금까지 누리미디어로부터 직접적인 금전적 보상을 받은 적이 없다–간단히 말해 누리미디어가 논문 저자들에게 계좌번호를 요청한 사실 자체가 없다. 대신 누리미디어는 학회/학술단체에 일정 비용을 지급하는데, 학회마다 소득수준은 상이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학회에서 소득이라기보다는 예의상 기부금 정도로 간주하는 경우도 있다) 이걸 목적으로 학회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요컨대 지적재산권과 논문의 가치 등을 내세운 이개호 의원과 누리미디어의 주장은 실효적이라기보다는 급조된 편에 가깝다. 그들이 정말로 연구자들의 권리에 관심이 있었다면, 지금의 무리한 구독료 인상을 결정하기 전에 좀 더 신중하게 행동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개호 의원의 주장의 실질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이미 높은 시장점유율을 자랑하는 (Dbpia를 운영하는) 누리미디어라는 민간업체가 있으니, 공공기관은 누리미디어의 이윤을 위해 물러나 개별 대학/연구자/공기관이 돈을 내고 자료를 사도록 하라는 것이다. 이걸 좀 더 쉽게 풀어보자. 더 많은 사람들이 논문을 무료로 읽으면 누리미디어가 돈을 벌 수 없으니, 돈많은 대학과 돈많은 연구자만이 논문을 마음껏 사서 읽도록 하자. 재능과 열의가 있든 말든 돈이 없는 사람은 형편 따라 조금만 공부하고 질 떨어지는 논문을 쓰는 걸로 만족하거나 아니면 그냥 공부를 하지 마라. 간단하게 말해서, 이개호 의원에게는 지금 당장 누리미디어의 이익이 학술 생태계와 한국사회의 지식보급의 미래 전체보다 더 중요하다.
4. 한국의 지식 생태계를 깎아 이윤 내기다
앞서 1절에서 이야기했듯 현재와 같이 자료구독료를 개별 대학 혹은 연구자에게 전가하는 방식은 한국 학문의 발전에 지속적인 문제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번 Dbpia 구독료 인상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도 이미 소속된 학교의 예산책정에 따라 연구자가 참고할 수 있는 자료의 범위 자체가 달라지는 건 심각한 문제였다. 특히나 대학원생의 낮은 평균소득을 감안한다면 등록금 외에 추가적인 자료구매비를 부담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이는 학계의 경쟁과 상호협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게 만들 뿐더러, 잠재적으로 수많은 연구자의, 나아가 한국 사회의 지식생산 잠재력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다. 이런 상황에서 이개호 의원과 누리미디어가 의도하는 대로 사태가 전개된다면 문제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3절에서 이야기했듯 그들의 주장은 사실과도 다르며, 공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의 가장 상식적인 해법은, “논문 값이 너무 싸다”고 주장하며 대학과 대학원생에게 최대한 비싼 값을 물리는데 주저함이 없는 민간기업의 독점체제를 유지하는 대신 연구자들 간에 (가능하면 비연구자들에게도!) 서로의 주요한 연구성과를 참조하는데 특별한 제약을 받지 않는 공공 데이터베이스를 운영하는 것이다. 요컨대 올바른 정책 방향은 현재의 공공기관을 통한 자료제공정책을 더욱 보완하고 확대시키는 데 있지 그것을 없애는데 있지 않다. 논문 작성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충분한 반대급부를 제공하는 것은 전체 시스템에 대한 제 방향의 지원을 통해서도 가능하며, 이를 개별 구매자-유통업자-판매자의 모델로 정착시키는 것은 모든 동네의 길목마다 톨게이트를 설치하는 일만큼이나 비효율적이다.
독점적 지위를 구축해 더 많은 이익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픈 민간 데이터베이스 기업의 욕심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 욕심은 모두의 이익을 저해하는 방향으로 실현되어선 안 된다. 서구의 학계에서 오픈 액세스(Open Access) 운동이 일어난 이유는 지식의 자유로운 공유를 통해 지식 생태계 전체의 발전이 가능하다는 인식 때문인데,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연구자집단에서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의 비율은 아직 미미하다. 그러한 무관심 속에서 어떠한 전문성도 없는 국회의원과 민간 데이터베이스 업체 하나가 전체 지식 생태계의 운명을 좌지우지 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간단하게 결론을 내리자면, 막을 수 있을 때 막아야 한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