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갈리아는 가끔 들어갈 뿐이지만, 국외자의 입장에서나마 최근의 ‘워마드의 게이 아웃팅 프로젝트 사태’를 간략히 정리해보았다. (※ 편집자 주: 이 글이 쓰여진 시점은 12월 17일로, 5일의 시차가 존재합니다.)
1. 사태의 큰 개요
- 게이 커뮤니티 내의 여성혐오적 표현이 메갈리아에서 공론화됨.
- 메갈리아 내에서 ‘똥꼬충’ 등 호모포비아 남성들이 만들어낸 용어를 사용하는 게 맞는지 논쟁이 벌어짐. 정체성을 숨기고 결혼한 게이 등 한국의 복잡한 조건 속에서 형성된 게이문화에 대한 비판도 등장. (이 비판에 ‘유부게이’가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맥락이 고려되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음.)
- 메갈리아의 운영자가 성정치적 입장에 따라 해당 용어 사용 불가 및 타협 불가능을 선언.
- 1)운영자의 강압적인 태도에 대한 불만, 2)일부 메갈리안들의 호모포빅한 성향, 3)게이 커뮤니티에 대한 복수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반발이 등장함. (지금까지 메갈리아 운영진이 커뮤니티를 끌고온 방식은 여러 가지로 인상적이었는데, 이번에는 크리티컬한 지점에서 미숙했다고 할 수 있을 것.)
- 갈등고조, 운영진은 타협불가능 고수. 결국 메갈리아에서 반 게이 커뮤니티 그룹이 분리되어 나가 새로운 커뮤니티 워마드(Womad=Woman-man+nomad)를 형성.
- 워마드에서 전체 게이를 대상으로 아웃팅 프로젝트를 제안한 짤방이 퍼짐. 이것이 드립인지 실제 상황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나, 그 자체만으로도 아웃팅의 결과가 어떨지를 상상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충격과 공포를 줌. 실제 피해자도 발생했다고 함.
- 곳곳에서 논쟁 폭발. 가장 흔한 구도는 “메갈리아가 드디어 갈 데까지 갔다, 성소수자 혐오 페미니즘 미쳤다” VS. “게이들이 잘못해서 촉발됐고 문제는 여전한데 왜 우리만 욕함? 똑같은 한남충들 ㅉㅉㅉ”였음. 그러나 전자의 경우 메갈리아는 초기부터 워마드의 노선과 분리를 선언했으므로 적절한 코멘트가 아니며, 후자의 경우 여성혐오가 여러 게이커뮤니티에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문제인지 정확한 파악이 필요해 보임.
- 기존 메갈리아 및 관련 운영주체(메르스 갤러리 저장소 페이스북 페이지 등)에서 워마드의 해당 게시물에 대한 비판 입장 공표.
2. 프로젝트의 향후에 대한 전망
이 ‘프젝’이 실현될 경우 아웃팅 당하는 게이들에겐 말할 나위없이 재앙적인 결과이지만, 그 뿐만 아니라 현재의 온라인 여성주의 자체에도 엄청난 역풍을 초래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이 짤방이 농담인지, 제안에 대한 반응은 어떤지, 실제로 실천할 예정인지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워마드 그룹뿐 아니라 메갈리아, 이성애-여성-여성주의를 싸잡아 비판하는 담론이 증폭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로 인해 대규모 아웃팅이 실현된다면, 경우에 따라서 국가의 사법권력이 개입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한국의 대중적 여성주의 운동이 사법권력을 의식하고 움직여야 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워마드가 주장하는 요지는 아웃팅을 무기삼아 게이 커뮤니티의 자정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게이 커뮤니티가 그렇게 단일한 집단인지 모호할 뿐더러, 게이 집단의 소수자 정체성이 더 강하기 때문에 자정보다는 훨씬 더 강력한 증오와 여성혐오가 돌아올 것으로 예상된다. 아웃팅 프로젝트를 제안하는 짤방을 보는 것만으로 그런 감정을 품기 시작한 게이들이 있을 거라고 짐작 가능하다.
한국남성집단에 대한 메갈리아의 공격적 언어사용이 효과와 정당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좋든 싫든 한국의 이성애자 남성들이 사회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점한 주류라는 합의가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약자가 강자를 공격한다는 프레임이 형성될 수 있었기에 혐오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그룹 바깥에도 지지층이 생겼던 것이다.
그러나 이성애자 여성(강자)이 게이(약자)를 공격하는 것은 약자-강자간 파워게임이 전제되는 담론 장에서는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 게다가 아웃팅은 단순히 보고 기분 나쁜 정도가 아니라 대상의 인생을 파멸시킬 수도 있는 수단이다. 설득력은커녕, 그룹 바깥의 사람들로부터도 혐오감과 반감을 초래하고 있다.
워마드에 속하지 않는 (이성애자) 여성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이 사태의 역풍가능성과 무관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한국의 대중적인 담론이 작동하는 방식을 감안할 때 함께 역풍을 맞게 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기존의 메갈리아/여성주의 비판자들은 이 사태를 기회 삼아 메갈리아 및 여성주의자 자체에 대한 광범위한 비판과 매도를 전개할 것이 분명하다.
3. 기타 개인적인 논평
다양한 방식으로 운동(movement)을 정의할 수 있겠지만, 다수 대중을 정치적으로 의식화하고 특정한 형태의 실천을 요구하며 이를 이끄는 이론적/물적 중심부를 갖는다는 측면에서 나는 메갈리아를 ‘운동’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때 메갈리아는 워마드와는 분리된 집단이다.)
메갈리아의 비판자들에 맞서 메갈리아 사용자들의 행동이 언제나 옳고 합리적이었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애초에 일베를 미러링하는 것을 주요한 행동양식으로 삼는 곳이 그렇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주목했던 것은 보다 표출/쾌락지향적인 유저들과 여성주의적 목적의식을 비교적 뚜렷이 지닌 유저들이 메갈리아 속에 공존하며 운동의 방향과 전략을 설정해가는 과정이었고, 서브컬처 및 대중사용자를 기반으로 한 온라인 커뮤니티로서 메갈리아가 보여준 놀라운 행동력과 잠재력이었다. 소라넷 폐지 운동과 조선대 데이트 폭력 사태에서 메갈리아가 보여준 행동력은 그 크기와 역동성이라는 측면에서 분명 전례 없던 것이었다. 문화연구자의 의무는 개인적인 호감 혹은 반감에 맹목적이 되는 위험을 피하면서, 이 역사적인 현상의 새로움과 가능성, 그 의미를 묻는 일일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메갈리아를 운동으로 간주하고 이번 사태를 분석해보자면, 대중적인 여성주의 운동이 성 소수자 그룹과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든 명확히 해야 할 필요성이 드러났다는 게 우선 눈에 띄는 지점이다. 1990년대, 심지어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여성주의 성정치는 성 소수자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아도 문제가 없었지만, 이제는 지형이 바뀐 것처럼 보인다. 이번 메갈리아 분열 사태는 한국의 퀴어 그룹에 대한 명확한 입장 없이 대중적인 성정치 전개가 어려울 만큼 퀴어 그룹의 존재가 가시화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유부게이에 대한 전통적인 시선 중 하나는 이들의 선택을 한국의 이성애중심문화/제도가 강제한 비극으로 여기는 것이었다. 이번의 반-게이 그룹은 이러한 제도적/역사적 맥락을 완전히 무시하고 유부게이들을 “부인에게 사기친 타락한 인간들”로 매도하고 있었다. 여성주의 그룹은 이런 이들을 대상으로 유부게이 포함, 한국의 퀴어 문제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어떻게 표준적인 커리큘럼으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게이와 결혼한 여성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답하기 어려운 물음 역시 숙제로 남겼다.
더불어 사태가 이렇게 전개되어 감에도, 논쟁의 전개 양상에서 성소수자 그룹의 목소리가 여전히 주변적인 것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메갈리아가 최초로 등장한 대중적인 여성주의 커뮤니티로라는 점에서 (끝이 어떻게 되든) 역사적인 의의를 갖는다면, 게이 집단을 포함한 퀴어 커뮤니티는 언제,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 것인지도 남는 질문이다. 이건 퀴어 커뮤니티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성정치에 참여하는 모두의 문제이기도 하다.
썸네일 합성사진 출처: 변천님의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