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카메라 앱 하나로 평균 연봉 5천이 넘는 회사로
리: 안녕하세요. 자기 소개를 해 보세요.
김: 김세중입니다. 10대, 20대 여자들의 놀이터 서비스를 하고 있어요.
리: 놀이터? 사설 도박 하세요?
김: 여자들이 스마트폰에서 가장 많이 쓰는 게 메신저와 카메라에요. 자기 감성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거죠. 사진은 자신의 감정이나 상태, 생각을 전달하는 비주얼 메시지잖아요. ‘나 뭐해’, ‘어디에 있어’, 이런 놀이 문화까지 표현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해요.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셀카를 편집해 올리는 것도, 자신을 꾸미는 즐거움을 표현하는 놀이에요.
리: 경쟁자가 너무 많은 분야인데 먹고 살만 하세요?
김: 우리가 처음 시작할 때는 글로벌 시장에도 몇 개 회사가 없었어요. 처음 창업했을 때는 한국에 아이폰도 들어오지 않았어요. 지금 앱스토어에 앱이 1억개가 넘는데, 처음 올렸을 때는 앱스토어 등록된 앱이 5만개 정도였고요. 그래서 딱히 경쟁자라 할 회사가 많지 않았어요.
리: 하지만 반도의 작은 회사에서 맞서기에는 기술적 장벽이 높지 않았나요?
김: 지금이야 사진 대충 찍어도 잘 나올 정도로 스마트폰이 하드웨어적, 소프트웨어적 양쪽에서 모두 발전했어요. 그런데 그때는 그런 기술 자체가 드물었죠.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누가 잘 된다, 인기 많다는 건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저와 젤리버스의 목표, 비전이 중요한 거죠. .제게 중요한 건 그때나 지금이나 고객이지, 경쟁자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리: 경쟁자가 잔뜩 늘어난 지금도 마찬가지라 생각하는 것이군요.
김: 네. 나가 보면 피자가게가 되게 많은데 맛있는 피자가게는 언제나 잘 되잖아요. 중요한 건 경쟁자가 무엇을 하는지가 아니라, 고객이 잘 쓰고 있는지, 쓸모 있다고 생각하는지 아닐까 싶어요. 지금도 거기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어요. 저는 오히려 한국에 있는 개인 개발자들과 회사가 만든 사진, 영상 앱이 다 잘 됐으면 좋겠어요. 글로벌 시장은 너무 크니까요. 훗날 더 큰 기회 생겼을 때 같이 협력하면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잖아요.
리: 말하는 거 보니까 정말 잘 되는 것 같네요.
김: 직원이 총 12명인데, 평균 연봉이 5천만원이 넘어요. 투자 없이 여기까지 키워왔고, 현금도 충분히 보유하고 있고요.
리: 평균에는 수많은 거짓말이 있습니다. 일부 직원만 연봉이 높은 것 아닙니까.
김: 신입도 잘 챙겨주려 하고 있어요. 예로 얼마 전 들어온 경력 직원은 지난 회사보다 연봉을 50% 정도 높여줬어요.
리: 저 경력 8년인데 자리 좀 없습니까.
김: ……
2. 20대 초반에 성공한 사업가가 되다
리: 아무튼 회사의 시작에 대해 이야기해 보죠.
김: 2009년 12월 24일 사업을 시작했어요.
리: 크리스마스 이브에? 싱글인가 보군요.
김 : 지금은 아니고… 창립기념일이 이브날인 이유가 있어요. 제가 넥슨에 다녔었는데 넥슨 창립기념일이 26일이라서 크리스마스 이브날 창립기념일 챙겨준다고 퇴근을 일찍 시켜줬어요. 퇴근시간 때 지하철역을 가면 지옥철이 되잖아요? 그런데 일찍 회사를 나오니 너무 좋은 거에요. 남들도 부러워하고. 그래서 그때 창업하게 되면 크리스마스 이브 날을 기념일로 해서 휴가를 주면 사람들에게 기억도 될 수 있고 자랑스러운 느낌이 들 것 같았어요.
리: 전공은 뭐였나요?
김: 연세대 재료공학부 나왔어요.
리: 비전 좋은 과를 잘 선택했네요.
김: 아뇨. 저때는 벤처 버블이라 당시 공대에서 점수가 제일 낮았어요. 오히려 컴공이 엄청 높았죠.
리: 그런데 어쩌다 이쪽으로 진출하게 된 건가요.
김: 제가 어릴 때부터 사업을 좀 했는데 쫄딱 망해서 빚 갚으러 병특하려다 보니(…)
리: 신용불량자였나요.
김: 네(…)
리: 어떤 사업을 한 건가요?
김: 제가 20대에만 사업을 세 차례 했어요. 두 번은 작게나마 성공을 했는데, 마무리가 너무 안좋아서… 처음에는 21살 때 CRM과 결합된 포스 솔루션 사업을 했어요.
리: 포스 사업요? 기술과 자금이 없는 대학생이 할만한 사이즈가 아닌 것 같은데.
김: 그때가 벤처 붐이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좀 특이했어요. 심리학 수업에서 조 발표를 하는데, 제가 발표를 좀 기똥차게 했어요. 그날 끝나고 맨 뒤에서 수업 듣던 선배 두 분이 너 같은 애가 필요하다며, 같이 사업을 하자고 하더라고요.
리: 바로 수락했나요?
김: 사실 학교 수업보다는 뭔가를 하고 싶었던 차였어요. 그래서 어린 마음에 대표 시켜달라고 했어요. 안 그러면 안 한다고. 그런데 정말 시켜주더라고요. -_-;
리: ……
김: 형들이 기술 쪽이니 그냥 제게 넘긴 것 같아요. 아무튼 당시 안철수, 이재웅, 이런 분들이 진대제 정통부 장관 하에서 멘토로 참여하는 벤처기업대전 같은 대회가 있었어요. 지금 따지면 스타트업 선발 대회 같은 거죠. 그런데 저희가 대학생 부문에서 상을 받았죠. 당시 PC방이 고객 마일리지 시스템을 도입하기 시작했는데, 판게아 PC방이 특히 관리를 잘 했어요. 제가 여기 헤비유저라서 아이템을 제안했어요. 커피숍이나 보드게임 방에 유사한 고객관리 프로그램을 도입하면 잘 될 거라고.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잘 됐어요. 당시 3억 투자 받을 정도였으니…
리: 그 잘 되던 사업은 왜 접은 겁니까?
김: 그게… 여러 이유가 있는데, 당시에 관련 프로그램의 투자에 대한 결과물들의 일부를 회수 하면서 우리가 가진 특허와 비즈니스 모델을 좋은 가격에 사가려 했어요. 그래서 이 사업을 정리하고 팔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같이 하던 선배 한 명이 군대 가기 싫다고 이민 간다 해서(…)
리: …….
김: 제가 뭘 알았겠어요. 그냥 알았다고 했고 선배는 캐나다로 이민 가버렸죠.
3. 20대 초반에 클럽사업을 성공시키며 3억을 쥐다
리: 그 다음은 어떤 일을 했나요?
김: 홍대 클럽을 운영했어요.
리: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업종 전환이군요.
김: 그냥 흥미로웠어요. 원래 뭐든지 확인하고 디테일한 걸 좋아해서, 클럽에서 3개월 동안 빡세게 알바를 했어요.
리: 가능성이 좀 있어 보이던가요?
김: 아니오. 외환위기 이후 다 회복됐는데 상권은 시궁창이라… 그때만 해도 홍대 완전히 죽어 있었어요.
리: 그런데 왜 굳이 손을 댄 것인지요?
김: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백댄서 활동을 했어요. 당시에는 연예인 친구들도 있었고… 요즘은 흔하지만 기존 클럽과 달리 셀렙 데려오는 형식으로 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주변에 관심 많은 형들을 꼬셔서 같이 투자할 사람을 찾았어요. 제가 총대 메고 하겠다 하니 같이 하자고 하더군요.
리: 그렇게 두 번째 성공으로 이어진 거군요.
김: 아뇨. 망하기 직전으로 이어졌어요.
리: 왜죠?
김: 아무리 잘 운영해도 시장 상황이 안 좋으니… 1년 넘게 까먹기만 했어요. 그런데 하늘이 도와서…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이 대통령의 야망 가지고 월드컵 기간 전후로 축제를 엄청 밀었거든요. 그래서 제 파트너들이랑 주변 클럽 사장님들이 그런 축제 후원을 하기 시작했죠. 월드컵 기점으로 페스티벌 같은 게 많이 있었는데 DJ도 보내주고 무료 음료 티켓 홍보도 많이 했어요. 그게 자연스럽게 이슈가 되었고 무료 티켓 가지고 클럽에 오는 일들이 생겼어요. 그러면서 TV에도 나가고 잡지에도 나가고 클럽이 잘되기 시작했어요. 그런 문화가 서서히 자리잡아서 지금의 클럽데이라고 불리는 이벤트로 이어졌죠.
리: 내가 클럽데이의 아버지다!
김: 제가 한 건 아니고 같이 했죠. -_-;;; 홍대에서 클럽 운영하시던 사장님들, 저와 파트너들… 아무튼 그렇게 자금 압박에서 벗어났고, 경기도 다시 살아났어요. 제일 피크가 월드컵 때였는데, 그때 외국인들이 엄청 들어왔어요. 그해 4월부터 이미 홍대는 난리도 아니었어요… 그래서 지금이 팔기 좋은 시기라고 생각했어요. 파트너들이랑 상의하고 인수자를 찾아서 좋은 가격에 엑시트했어요.
4. 20대 초반에 신용불량자가 되다(…)
리: 그 돈으로 이제 즐거운 20대를 보낼 수 있었겠군요.
김: 그런데 사람이 일을 벌이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이후 지인들과 투자 비즈니스에 뛰어 들었어요. 당시에 동남아 지역에 원자재, 채광 붐이 일었거든요. 관세 조항도 좋아졌고… 결과론적 이야기지만 그때 잘 된 회사들은 다 코스닥 갔어요. 반대로 저처럼 안 된 사람들은 쫄딱 망했고.
리: 무엇 때문에 망한 거지요?
김: 잘못된 선택을 한 거죠. 그때 돈 번 사람은 정권 안정기 국가에 투자했어요. 안 된 사람은 쿠데타, 정부 마비 등 정치가 안정화되지 않은 국가에 투자했고… 제일 큰 실수였죠. 투자가 자기 돈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빚도 내면서 들어갔거든요. 그러다 보니 1년만에 채권단 들어와서 망했죠. 그 빚을 갚아야 하는데… 22살이란 나이가 너무 어렸어요. 그냥 앞이 깜깜했죠. 순식간에 통장에 몇 억이 사라지고, 빚만 2억 가까이 됐어요.
리: 이제 젊은 체력을 무기 삼아 도망갈 때가 왔군요.
김: 도망은 안 갔어요. 전화를 안 받는 정도였지…
리: 전화를 안 받으니 어떻게 되던가요?
김: 집에 들어오니 철문이 다 찌그러져 있더라고요. 발로 찼는지 뭘로 두들겼는지…
리: …….
김: 집이 그렇게 잘 사는 편이 아니라 손을 벌릴 수도 없고… 아무튼 그때 여러 환경적, 상황적으로 좀 최악이었어요.
리: 그래서 어떻게 탈출구를 마련했나요?
김: 그때 도와주신 분들이 많았어요… 자존심 버리고 연락 했더니 반갑게 맞으며 당장 보증금이라도 하라며 현찰을 주시더라고요. 정말 감사한 은인이에요.
리: 그게 얼마였나요?
김: 5백만원이요. 그때는 정말 고맙고 큰 돈이었죠. 나중에 2배로 갚아 드렸어요. 지금은 연락이 끊긴 지 좀 됐지만… 그 선배가 너 경험도 있고 능력이 될 것 같다고 요즘 IT가 떠오르니 병역특례에 도전해 보라고 했어요. 그 외에도 도움 주신 분들이 많은데 그 분들 덕택에 용기도 얻고 병특을 시작하게 되어 IT와 연을 맺게 됐어요.
5. 좌충우돌 아무 거나 만들어댄 창업 초기
리: IT 생활은 어디에서 시작했나요?
김: NHN이요. 그러다가 나비야 인터테인먼트라는 회사에서 병특을 시작했어요. 바닐라캣이라는 나름 세계 최초의 플래시 네트워크 온라인 게임을 시작한 곳인데, 주 대상고객이 여자였어요. 사장님도 여자고, 직원 80%가 여자고… 그 이후로 여자 커뮤니티, 여자 게임, 여자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만 쭉 하게 되는 운명이었어요… 덕택에 자연스럽게 여성 커뮤니티 문화에 눈을 떴어요. 회사가 넷마블에 인수된 후에는 넥슨으로 스카우트돼서 병특을 계속하게 됐어요.
리: 훌륭한 회사원의 삶을 이어왔군요. 창업을 결심한 계기는?
김: 우연히 친구 한 명이랑 스티브 잡스의 애플 발표회를 실시간으로 봤어요. 그 발표에 나온 아이튠즈 스토어 보고 몇 년 지나면 엄청난 게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소름 돋았거든요. 당시 넥슨 상사 분에게 이런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특히 트위터와 아이폰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새로운 비즈니스에 대해 건의를 많이 했어요.
리: 받아들여지지 않았군요.
김: 온라인 게임 회사이고, 지금 잘 되는데 굳이 엉뚱한 걸 할 필요는 없다는 반응이었지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분들 결정이 틀린 건 아니에요. 7-8년 지나서야 잘 됐으니까요. 하지만 저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회로 보였고, 사표 반려될 때마다 나가서 사업하겠다고 이야기를 드려서 5개월만에 나갈 수 있었어요.
리: 빚은 다 갚았나요?
김: 네. 여기서도 운이 따른 게, 개인회생 워크아웃제라는 게 생겼거든요. 열심히 갚는 청년들 빚 일부를 감면해주는 제도죠. 그 덕에 열심히 모은 돈이랑 해서 빚을 4년만에 1억 4천만원 갚았어요. 당시에 맨날 카고바지 입고 다니니까 사람들이 왜 그리 카고 좋아하느냐 물었는데, 그냥 옷이 몇 개 없어서 그거만 입었던 거에요. 잠도 회사 수면실에서 자고 일만 하면서 살 정도로…
리: 맨날 회사에서 먹고 자니, 회사에서는 정말 열심히 하는 줄 알았겠군요?
김: 실제로도 열심히 해요. 지금도 미친듯이 열심히 하고 있고요.
리: 사장이 너무 열심히 하면 직원들이 괴로워 한다는데…
김: 뭐, 다들 같이 과로하고 있어요. 다들 즐겁게…
리: 그렇다고 치죠(…)
김: 네…
리: 헬조선에 어울리는 노오오오오오오력파군요.
김: 그때 고생한 기억 때문인지 제가 회사에서 생활하며 먹는 것과 어디가서 자는 거에는 절대 돈을 안 아껴요. 지금도 회사 월 식비로만 천만원이 나가고, 워크샵도 해외로 일년에 2번 정도 나가서 경험 쌓고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데 정말 좋은 곳에서 숙박해요. 그때 생각하면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을 시절이라… 회사 있는 동안에는 먹고 자는 것만큼은 확실히 챙겨주려 하고 있어요.
리: 젤리버스의 사업 아이템은 어떻게 나왔나요?
김: 오래 전부터 싸이월드, 네이버 블로그, 트위터, 그밖에 제가 쓰던 웹 2.0이라 불리던 서비스들을 보면서, 마음 속 한 곳에서 사람이 들어간 비즈니스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사람을 다루고 사람의 스토리가 있는 비즈니스… 그래서 결정할 때도 메신저, SNS 등 온갖 아이템을 놓다가 사진을 결정한 거고요.
리: 메신저나 SNS가 더 사람에 가까워 보이는데요.
김: 사람은 죽을 때까지 사진을 찍잖아요. 또 사진은 모든 사람을 연결해주는 메시지이자 모든 커뮤니티 서비스의 원 소스에요. 플리커, 페이스북, 싸이… 다 원천 기반이 사진이잖아요. 이건 엔터테인먼트이자 메시징이에요. 미디어 관점에서도 사진은 점점 중요해질 거구요.
리: 그래서 창업 멤버는 어떻게 구성했습니까?
김: 지금 우리 부사장을 먼저 데려왔어요. 제가 사업 준비할 때 그 친구가 카네기멜론 합격해서 석사 유학을 가게 됐어요. 마치고 뭐할 거냐 물으니 사업할 거라 하더군요. 그래서 바로 꼬셨는데, 귀가 가벼웠는지(…) 바로 넘어왔어요. 그리고 멤버 한 명 한 명 소개 받거나 찾아 다니면서 모았어요.
리: 그렇게 사진앱을 만들기 시작한 건가요?
김: 아뇨. 쓰레기를 만들기 시작했죠.
리: ……
김: 미니게임 앱도 만들고 지도 앱도 만들고 명함 앱도 만들고 재밌어 보이는 건 이것저것 많이 만들었어요. 그리고 깨달았죠.
리: 어떤 깨달음입니까?
김: 사람들이 확실히 아는구나. 이것저것 만드니까 전문성도 없고 구리다는 것을…
리: ……
김: 그리고 구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지? 사람들이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질문들을 던졌죠. 그때 답이 좀 섰어요. 그냥 무조건 서비스 런칭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깊이가 있고 철학이 있어야겠다… 이런. 마침 저 포함해서 구성원들이 사진 찍는 걸 좋아했고 부사장님이 사진을 공부했다고 해서 이쪽으로 뜻을 모았죠. 사람과 미디어를 담고 그들을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만들기로.
리: 막상 해보니까 어떻던가요?
김: 당시 이미지 처리 기술 분야에 모바일에 최적화된 기술이 없었어요. 그때만 해도 아이폰, 안드로이드 폰의 OS 메모리가 작았거든요. 기술 한계 이전에 OS 한계인데, 그걸 극복하려고 노오오오오오력을 많이 했어요. 한 1년 고생하고서야 저희 회사의 핵심이었던 이미지 처리 엔진을 만들게 되었고 그걸 바탕으로 ‘픽스플레이’가 만들어졌고 눈물겹게 처음으로 매출다운 매출을 기록했어요.
리: 얼마를 찍었죠?
김: 월 1800만원이요. 직원 6명 치고는 나쁘지 않았죠.
리: 그렇게 성공의 길이 펼쳐진 거군요.
김: 근데 딱 한달이었어요. 그리고 반토막났어요. 그 이전에는 미니 DSLR 개념의 앱을 냈는데, 얘는 더 안 됐어요. 결국, 의미 있는 매출을 꾸준하게 만들어내지는 못한 거죠.
6. 글로벌화: 해외 서밋이 모든 전략을 바꾸다
리: 어떻게 대처했습니까?
김: 1년 반 정도 했을 때였어요. 그때 사진을 접고 다른 아이템 할까 고민 하던 시기였는데 스타트업 경진대회에 나가게 됐어요. 애슐론이라고 싱가폴서 하는 대회였는데… 거기 간 게 첫 해외 출장이자, 첫 해외 나들이였죠. 그때 알았어요. 지구가 진짜 넓음을… 세계에서는 말도 안 되는 비즈니스 모델도 성립되더라고요. 덕택에 반강제적으로 해외 진출하게 됐죠. 그냥 영어로만 제품을 올리면 되는 게 아니구나… 해외에 우리보다 뛰어난 인간들이, 회사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고 나서는, 좀 배우고 알고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리: 어떤 차이가 있었던 거죠?
김: 다 뜯어고쳤어요. 기술적 문제, 프로젝트 설계방식, UX, 제품 디자인… 다 버리고 미국의 스탠다드에 맞췄어요. 당시 고객 중 이메일을 보내서, 우리 앱 보고 더럽다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황당했죠. 왜 더럽지? 나는 한국 잘 나가는 IT맨이고 잘 만들었다 생각했는데, 더럽다 할까. 기분만 확 상했죠. 그래도 참고 대화를 하는데… 자기 나라에서 잘 되는 서비스를 보여주는 거에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거 싸이 같은 거야… 라고 말하듯. 이게 그들의 글로벌 코드였던 거죠. 어느 나라나 그 나라 사람들이 많이 쓰는 서비스의 UI와 UX 영향을 엄청 많이 받아요. 어느 나라는 로그인 박스가 왼쪽에 있으면 다른 나라는 오른쪽에 있다거나… 아무튼 철저히 미국화를 진행했어요. 저는 그 이후로 제 폰도 5년째 미국 앱스토어만 들어가보고 있어요.
리: 성과는 좀 있던가요?
김: 고객 반응이 생기고 조금씩 성장이 시작되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애플에서 연락이 왔어요. 우리 앱 홍보 좀 해주고 싶다고. 그때부터 뭔가 될 거라는 확신을 받았죠. 회사 설립한지 3년이 다 된 2012년 가을의 일이었어요. 그때쯤 픽스플레이 프로라는 유료앱으로 돈을 좀 벌기 시작했죠. 그제서야 이사도 갔고요. 그 전에는 유리창도 없어서 몇 시인지, 날씨가 어떤지도 알 수 없는… 시간과 정신의 방에서 2년 넘게 있었어요.
리: 정신병원도 창문은 있는데…
김: 지금 보면 정말 거기 어떻게 있었나 싶죠…
7. 무료화의 위협, 데이터 기반 인앱결제로 넘어서다
리: 그렇게 회사가 뜨기 시작한 건가요?
김: 좀 되고 나서 정신을 차려 보니, 두 번째 위기가 보이지 않게 오고 있더라고요. 유료앱 중심으로 돈이 벌리니까 유료앱만 만들었어요. 이게 우리의 공식이라 생각했죠. 그런데, 제 주변 사람들조차 젤리버스가 만든 앱을 안 쓰는 걸 발견했어요. 오히려 중국 앱을 우리에게 공짜라며 소개하더라고요.
리: 저도 포토원더 쓰고 있습니다.
김: ……
리: 그렇게 무료화 파워에 무릎을 꿇었군요.
김: 네. 사람들은 제품의 성능보다 유료냐 무료냐를 중요하게 여기더라고요. 충격이었어요. 이걸로 돈 못 벌면 또 망하는데… 그런데 당시에 쏟아지던 무료 사진 앱 제품은 텐센트, 바이두 같은 중국의 글로벌 회사에서 나온 제품이었어요. 유료 포기하고 무료로 가야 하나… 무료로 가려니 미래가 너무 불투명하고 매출이 일어날 곳도 없으니 그대로 있었죠. 그런데 그 사이에도 무료앱이 계속 나오며 다운로드가 줄기 시작했어요.
리: 인앱 결제가 있지 않습니까.
김: 그렇죠. 그런데 당시에 다른 사진 서비스도 인앱 서비스는 실패했거든요. 어쨌든 무료화를 피하기는 힘들었고, 우리가 또 총대를 매게 된 셈이죠.
리: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김: 그래도 이 문제를 잘 극복할 수 있게 해준 건 데이터 분석이에요. 일단 무료 기반 인앱 결제 모델을 출시한 후 유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데이터를 들여다 봤어요.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다운로드도 증가시키고 고객들의 신뢰를 잃지 않는 선에서 매출과 제품의 성능 향상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았고 J커브를 그리며 성장을 크게 하기 시작했죠. 다행히도 성과가 좋아서, 무료 기반 인앱이 그게 우리 공식이자 노하우가 됐죠.
리: 예를 들자면 어떤?
김: 일단 필터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제공하고 데이터를 보죠. 그리고 특정 유저 층이 주로 많이 쓰는 필터들을 더 연구해서 이를 프리미엄 제품으로 내 봐요. 반대로 사용하지 않는 필터가 있다면 과감히 리뉴얼을 시켰어요. 그리고 다른 필터를 개발해서 붙여요. 그렇게 테스트를 진짜 많이 했어요. 필터뿐 아니라 스티커도 마찬가지고. 그렇게 해서 팔리는 게 뭔지 알아봤고 어떻게 팔아야 하는가도 연구하였죠. 그 결과로 조금씩 성장할 수 있었죠. 또 할인이라거나 유저가 구매하기까지 시간, 클릭 횟수, 체류시간도 정밀하게 체크했어요. 그렇게 구매까지 오는 시간을 계속 앞당긴 거죠. 이제 저희 유저는 1분 안에 구매를 대부분 해요. 어떻게 팔아야 심리적으로 구매를 늘릴 수 있을지, 사용자의 패턴과 행동, 그리고 만족감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테스트했죠.
리: 마치 게임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 같군요?
김: 맞아요. 게임회사 출신인 게 도움이 많이 됐죠. 인앱에 이어, 패키징 비즈니스를 추가했어요. 어느 날 데이터를 봤는데 1인당 1.5개를 구매하더라고요. 그래서 구매가 불균형하게 특정 아이템에만 몰릴까, 왜 특정 아이템은 안 살까 생각도 들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혹시 통합된 제품을 더 저렴하게 제공하면 구매율이 어떻게 될까 고민을 하게 되었죠. 결국 필터와 스티커 등을 한 번에 사는 패키지를 할인 적용해서 4.99달러에 파니까 날개 돋힌 듯 팔리더라고요. 사실 사진 앱으로 치면 당시에는 비싼 금액이었는데 많은 분들이 구매했어요. .
리: 호갱이 된 고객들의 반응은 어떻던가요?
김: 사람들이 소비에 있어서 비합리적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구매 만족도나 제품의 만족도가 낮지는 않았어요. 저희 제품들 리뷰보시면 아시겠지만 지금도 고객 평점이 거의 별 5개에요. 다들 자기 필요한 걸 사고 있었던 거죠. 거기다 애초에 신뢰성 높은 무료 앱이었으니, 인앱 결제는 심리적 저항감도 크지 않았죠. 무엇보다 저희 철학은 무료를 사용해도 불편함이 없게 하자에요. 여기에 빠져들게 만들고, 어느새 더 사용하고 싶고 바라는 것이 있는 사용자들이 유료 아이템을 사고 싶게 만드는 거죠. 그리고 2000만 다운로드 근처쯤 왔을 때, 3년 반이 넘어서야 BEP를 완전히 넘어섰어요. 한국에서는 힘들었지만, 글로벌 시장 사이즈로 가니 달랐던 거죠.
리: 그렇게 해피엔딩 J커브를 그린 거군요.
김: 네. 지금은 남들 회사 시리즈 A 투자 금액이 회사 통장에 있어요. 내년에는 정말 좋은 사무실로 옮겨가려 하고 있고요. 모두 함께 노오오오오오력한 결과라 생각해요.
8. 지속적인 성장의 원동력: 글로벌 글로벌 글로벌
리: 인스타그램이 너무 커졌는데 위기감이 들지 않나요?
김: 오히려 그쪽에 감사하죠. 사람이 하나만 쓰다 보면 다른 것도 써보고 싶어지잖아요. 오히려 인스타그램이 시장을 더 키워줬죠. 그렇다고 우리가 인스타그램처럼 되고 싶은 건 아니에요.
리: 솔직히 되고 싶잖아요.
김: 그렇죠. 되고 싶죠.
리: ……
김: 그런데 길이 달라요. 인스타그램은 놀이터의 끝부분이에요. 우리는 놀이터의 가장 앞 부분이고. 놀이공원이라 생각하면, 끝은 언제나 바뀌어요. 페이스북에서 인스타그램으로, 인스타그램에서 또 다른 미디어가 생길 수 있겠죠. 하지만 프론트 단은 입구잖아요. 이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또 그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차별점이 있고요. 제가 좋아하는 회사가 레고와 픽사에요. 레고가 장난감에서 교육으로 확장하고, 픽사도 3D 애니메이션의 장을 넓히듯, 우리가 파고 있는 프론트 시장도 더 커질 것이고, 확장할 여지도 많다고 생각해요. 물론 저희가 놀이터의 끝 부분까지 만들 수도 있어요. 점차 고객들을 보면서 계속 고민하고 진화시켜 나갈 생각이에요.
리: 그렇다면 어떤 신제품을 준비하고 있나요?
김: 몇 가지 준비 중이에요. 일단 몰디브를 대규모 업데이트했어요 젤리버스의 가장 주력이자 대표작인데, 사진 여럿 합쳐서 멋지게 꾸미는 콜라쥬와 매거진 용도의 앱이였어요. 이를 강화해서 종합 포토 에디터로 업그레이드해요. 아예 사진에 대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하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죠. 또 여성의 피부와 감성을 도와줄 수 있는 기술을 장착한 여성 전용 기능들도 계속 추가중이에요.
리: 가입 좀…
김: (……) 그리고 최근 준비중인 것이 동영상 앱이에요. 몰디브 같은 동영상 앱이라는 이야기만 할게요. 누구나 쉽게 막 써도 멋지게 나오는. 마법의 동영상 앱을 만들어 드릴 예정이에요.
리: 어차피 출시 안 됐으니 대충 떠드는 필입니다.
김: 몰디브도 막 쓰는데 잘 나오잖아요. 물론 영상은 사진보다 어려우니,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겠죠. 아무튼 더 간단하고 쉽게 될 테니, 나오면 홍보 좀(…)
리: 사실 사진앱의 가장 큰 적은 스마트폰 성능 강화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떠신지요?
김: 제 생각은 달라요. PC에 소프트웨어 왜 깔겠어요. 플랫폼 업체가 할 수 있는 게 있고. 그들을 기반으로 한 저희 같은 회사가 결국 필요해요. 소비자 욕심은 진화하고, 트렌드는 변해요. 그래서 그 분야 전문 회사가 존재하는 거고요. 결국, 그 전문 분야에서 발전된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회사는 언제나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리: 하지만 경쟁에서의 해자가 점점 얕아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김: 또 하나 믿고 있는 게 글로벌 로열티에요. 사실 저희가 한 번도 대박 난 적은 없어요. 그렇지만 꾸준히 J커브로 성장하고 있어요. 이미 7천만 다운로드를 찍었고, 곧 1억 이상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이제는 1년에 2500만 다운로드 이상이 나오고 있고 지금도 성장 중이에요. 기술은 카피할 수 있어도 이런 사용자들의 입소문과 로열티는 쉽게 카피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젤리버스에 대한 고객의 평가, 평판이 아주 좋다는 점이 저는 젤리버스의 미래라고 생각해요. 고객들과 소통하고 피드백을 반영하고,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데 집중하고 있어요.
리: 1등과 2등의 차이는 단순히 기술력이 아니라는 말이군요.
김: 저희가 글로벌을 밀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게임으로 치면 한국에서 실패했지만 크로스파이어 하나로 스마일게이트는 중국에서 넥슨 급이 됐잖아요. 사실 모든 서비스는 운이 많이 좌우하고, 각 나라마다 예측할 수 없는 게 많아요.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안 됐다고 해도, 글로벌 가면 많이 달라요. 우리가 잘 하는 국가 위주로 서비스를 다듬고, 또 나라들을 늘려 나가면 마치 분산투자처럼 안정성을 높여줄 거라 생각해요. 젤리버스 유투브 계정에 몰디브 업데이트 판 영상을 시험 삼아 계속 올렸는데, 벌써 퍼지는 걸 보고 우리는 잘 되겠다 싶더라고요.
몰디브 영상
김: 언어 지원만 해도 그 나라 특성이 많이 달라요. 할인이라고 해도 어디는 할인율이 앞에 붙고, 어디는 뒤에 붙어요. 어디서는 70%할인을, 어디서는 할인70%를 써야 하는 거죠. 우리는 이에 대한 매뉴얼이 있어요. 국가별 튜닝 프로세스도 마련돼 있고요. 글로벌에서 사용한다고 했지만, 저희가 처음부터 전 세계에 다 뿌린 건 아니에요. 한 국가씩 계속 늘려가며 데이터를 분석한 거죠.
리: 현재 그렇게 작업을 마친 국가는 얼마나 되나요?
김: 현재까지는 18개 언어를 완벽지원하고 있고 전세계에 서비스 중이에요. 심지어 고객 이메일이 현지어로 와도, 어떻게든 답변을 해주고 있을 정도로 글로벌 로컬라이제이션이 잘 돼 있어요. 데이터가 쌓이니 점점 아는 것도 많아지고 맞추기 편해져요. 몰디브, 루키 캠, 픽스플레이… 나라마다, 세대마다 잘 되는 곳과 안 되는 곳이 있고 사용 방식도 많이 달라요. 중국에서는 루키캠이 아주 잘되고 있어요. 반대로 일본에서는 몰디브가 아주 잘되고 있구요. 이런 경향을 잘 관리해왔기 때문에 앞으로 쉽게 무너질 거라 생각하지는 않아요.
9. 투자를 받지 않은 이유: 직원이 먼저다
리: 사진, 영상 외에도 진출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김: 게임 비즈니스에 여전히 관심이 많아서 게임 적용에도 테스트를 하고 있어요. 다만 전문성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무리한 도전보다는 저희가 잘할 수 있는 분야, 저희의 고객들이 젤리버스 안에서 즐길 수 있는 분야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우리의 노하우를 다양한 분야로 분야로 이식하고, 또 우리도 이식 받으며 함께 할 수 있는 기반을 닦으려 해요.
리: 이렇게 잘 나가는데, 투자는 안 받으시나요?
김: 제안은 많이 들어와요. 투자나 M&A나 제안 받고 진지하게 이야기한 곳만 5군데니까요.
리: 해외 투자자는 어떻게 연결되던가요?
김: 재미있었던 게 자기 딸이 우리 앱을 쓴다고(…) 아무튼 그쪽 방면으로는 이야기가 간혹 들어오고 있고 국내 혹은 해외에 나가서 만남도 가지고 있어요. 지금까지 포트폴리오 관리나 6년 간 쌓은 노하우와 데이터를 보여주면 해외 투자자들도 놀라더라고요.
리: 그런데 왜 투자를 안 받죠?
김: 음… 솔직히 냉정하게 볼 때 우리가 그 돈을 받고 사업을 키울 역량이 냉정히 있나… 이런 생각을 해요. 밸류에이션이 높고 낮음을 떠나서, 아직 역량이 그 가치가 안 된다고 생각해요.
리: 그래도 물 들어올 때 돈을 땡겨야죠.
김: 제가 정직해서 투자를 피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잘하는 게 분명 많이 있어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기술이 있다고도 자부해요. 하지만 우리 구성원, 그리고 제가 정말 글로벌 서비스를 쾌속으로 진두지휘할 수 있는 상황인가를 잘 모르겠어요. 지금은 투자 기반 스케일보다 더 꾸준히 제품의 퀄리티와 사용자 기반이 더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리: 그리고?
김: 저야 투자 받고 혹은 엑시트 하고 어쩌고 하면 돈을 많이 벌겠죠. 하지만 직원들은 아니잖아요. 지금 연봉을 많이 주려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에요. 저는 위대한 기업을 만들고 싶어요. 보통 기업이 그러기까지 적게 잡아도 10년 이상 걸리거든요. 그게 짧아지든 길어지든 잘 되면 사장인 저는 많이 벌죠. 하지만 직원들이 그만큼 만족할 돈을 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어요. 젤리버스가 있는 한, 또 젤리버스를 다니는 동안이라도 잘 챙겨주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리: 투자 받아서 돈 많이 주면 되지 않습니까?
김: 그게 쉽지가 않아요. 아무래도 투자자는 빠른 속도로 기업을 키우기를 원하니까. 그러면 지금까지 숙련되지 않은 직원들은 능력 부족으로 회사를 떠나야 할지도 모르고요. 좀 늦더라도 그래서 내실을 다지면서, 구성원들의 성장을 이끌면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저도 구성원 모두 또 노력해야 하고요. 전 진짜 노력파고, 개인적으로는 잘 하지 못할 걸 왜 도전하느냐는 의지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요.
리: 아까부터 노력 엄청 강조하는데 ‘노력 좀 해라, 잘 하지 못할 거면 하지도 마라’로 카피 뽑으면 100만 PV 나올 것 같습니다.
김: 자극적인 건 피해 주세요(…)
리: 아무튼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김: 지금껏 젤리버스 하면서 두 번 망할 뻔 했는데 우리 식구들이 다 견뎌내고 극복해줘서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항상 해외 경기 어려워진다, 모바일은 포화다… 이런 이야기하는데, 전 좀 다르게 봐요. 사람들은 세상을 보지만 저는 고객만 보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뭔가를 발견하게 되고, 또 그것을 바탕으로 서비스를 키워나갈 수 있다고 믿는 거죠. 우리가 잘하는 것도, 모자란 것도 있지만 실력 키우면 언제든 더 좋은 그림을,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리: 그래서 더 클 때까지 투자를 미루고 있는 거군요.
김: 그렇지는 않아요. 우리가 잘하는 게 있고 부족함이 있는 게 있듯이 그 부분이 보완될 수 있는파트너가 생긴다면 좋은 소식을 드리게 될 것 같아요. 그리고 다음 도전 때에는 투자를 받든 인수되든 더 큰 그림을 그리려고 해요. 지금까지 받은 제안도 그냥 거절한 게 아니라 시간 갖고 지켜봐 달라고 했어요. 전 여전히 더 잘 되고 싶고 더 성장하고 싶지만 시간이 더 필요한 거죠. 그 분들과 그 회사들이 다들 훌륭하신 분들이고 대단한 회사들이에요, 당연히 존경하고 존중해요. 그래서 제가 더 잘 되어서 찾아오겠다 이야기했고요. 회사도, 저도, 직원도 다 잘 돼서 그럴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