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뉴욕타임즈>의 「The 2016 Pirelli Calendar May Signal a Cultural Shift」를 번역한 글입니다.
77세의 자선사업가이자 현대 미술관(MoMA:the Museum of Modern Art)의 관장인 아그네스 군드는 전화를 받고 생각했습니다. “이상한 일이네. 나 같은 사람하고 무슨 상관이 있지?” 65세 작가인 프란 레보비츠도 전화를 받고 처음에는 농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0조 원 규모의 투자회사를 경영하는 46세의 멜로디 홉슨이 전화를 받고 남편 조지 루카스에게 이야기하자 그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당신 그 달력이 뭔지는 알아?”
2016년 피렐리 달력 제작을 의뢰받은 사진가 애니 레보비츠가 섭외 전화를 걸었을 때의 일이죠.
우리 피렐리가 달라졌어요
이탈리아의 타이어 회사인 피렐리는 매년 전 세계에서 저명한 사진가, 모델을 섭외하여 예술적인 누드 사진으로 “핀업걸” 달력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별도 판매 없이 2만 명의 VIP, 음악인, 정치인, 왕가 등에 배포하죠. 50년 전통의 피렐리 달력은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훌륭한 퀄리티로 VIP 사이에서 일 년 내내 자랑스럽게 진열될 상품을 제작해왔습니다.
케이트 모스, 라라 스톤, 조안 스몰스 등 탑 슈퍼모델의 전신 누드 (2012년), 지젤 번천, 카렌 엘슨, 카르멘 카스가 가슴과 엉덩이를 내놓고 숨바꼭질을 하는 장면(2001년), 크리스티 털링턴, 나오미 캠벨, 나자 아우르만이 전신 혹은 가슴을 내놓은 장면(1995년) 등을 선보였었죠.
지난 월요일 피렐리 캘린더는 옷을 차려입은 완전히 다른 여성들의 사진을 발표했습니다. 이전에도 가끔 옷을 입고 있는 여성들을 찍은 적이 있지만, 충격적인 포즈나 섹시함을 강조하지 않은 것은 처음입니다. 여성의 매력을 신체 사이즈가 아니라 이력으로 평가한 것도 처음입니다.
지난 10월 플레이보이가 더는 나체 사진으로 승부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후, 피렐리 달력도 대중이 여성의 섹시함을 판단하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듯합니다. 특히나 이 달력의 발표회는 단순 패션 업계 이벤트가 아니라 브라질의 룰라 전 대통령이 참석할 정도로 상징적이기에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피렐리 달력은 역사의 기록 같은 콜렉터의 귀한 소장품입니다.
이 달력이 바뀐 것은 “거시적 트렌드”를 따른 것이라고 광고대행사의 제니퍼 짐머만은 분석합니다. “우리는 이를 여성 영웅(Shero: She Hero)의 등장이라 부릅니다.”
앞에 언급한 군드, 홉슨, 레보비츠 외에도 요노 오코, “셀마” 감독 아바 두베르네이, 이란 출신 미술가 시린 네샷, “링컨” 프로듀셔 케슬린 케네디, 패티 스미스, 여배우 태비 게빈슨 등이 등장합니다. 상체를 탈의한 채로 아름다운 뒷모습과 근육을 보여주는 세레나 윌리암스, 자연스럽게 뱃살이 접힌 모습을 드러낸 에이미 슈머, 모델이자 자선 사업가인 나탈리아 보디아노바가 막내 아이를 안고 다리 맵시를 보여주는 정도입니다.
피렐리 캘린더, 변해가는 문화를 반영하다
“우리는 정치와 할리우드를 거쳐 문화 아이콘이 바뀌는 폭풍 속에 있습니다.”
“당선 가능성이 큰 여성 대통령 후보가 나오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여성 스타의 역할도 바뀌면서, 여성의 위치가 신장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기 어렵죠. 게다가, 요즘 누가 달력을 씁니까? 상징이 필요하죠.”
2016년 달력 제작을 맡은 사진작가 레이보비츠가 2000년에는 전통적인 누드 사진 달력을 제작했다는 걸 고려하면 이 달력에서 정치적 의미를 찾지 않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피렐리 캘린더는 사회적 추세에 맞추어 변한 것일까요, 수익을 내기 위한 기업의 이해 관계일까요, 아니면 영구적인 변화의 조짐일까요?
“성취한 여성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도와준다고 느껴요.”
“지금 이 순간 대담한 이 여성들은 아름답죠. 앞으로 갈 길이 멀지만, 그 길에 서 있습니다.”
이타심이나 정치적 행동 외에도 피렐리가 달력 기획에 변화를 줄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여성 운전자가 늘고 자동차 구매에 여성 입김이 커지면서, 여성들의 주머니를 열 수 있을 달력이 나타난 것이 단순한 우연은 아니겠죠.
미국의 럭셔리 자동차 시장에서 구매자의 50%가 여성이고, 구매자의 75%가 여성의 영향을 받습니다. 여성은 차가 맘에 들 때 평균 20명에게 홍보하는 반면 남성은 자신의 경험이나 의견을 평균 두 명하고만 공유합니다. 그만큼 여성이 브랜드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훨씬 큰 목소리를 내고 있는 셈이죠. 이런 시장 상황에서 여성이 럭셔리차를 사러 갔다가 피렐리 타이어의 전신 누드 달력이 벽에 붙어있는 걸 보고 그 자리를 떠서는 안 되겠죠.
피렐리의 결정에는 모든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겁니다. 피렐리 달력이 유명한 이유는 가장 잘 나가는 유명인을 불러와 예술의 경지까지 끌어올린 것이고, 굉장한 모델을 섭외할 수 있었던 건 사진가가 누구를 찍고, 어떻게 찍을지 완전한 자유를 줬기 때문입니다. 이번 달력도 사진가 애니 레보비츠가 개개의 모델을 설득했기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죠.
홉슨과 군드도 그들이 사진을 찍은 건 사진가 레보비츠 때문이지 피렐리 때문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 사진을 찍음으로서 제가 팔리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아름다움과 스타일을 새롭게 정의하는 애니 레보비츠의 아이디어에 힘을 실어준다고 생각했어요.”
앞으로도? 어쨌거나 다시 돌아갈 순 없을 것
그러나 피렐리 회사 자체는 기존의 방식을 거부한 레보비츠의 아이디어에 구체적 언급을 피하고 있습니다. 완전히 달라진 게 아니고 앞으로 또 다르게 현대사회를 반영할 가능성을 열어논 셈이죠. 다시 말하면 내년 다른 사진가와 작업하며 방식이 다시 바뀔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짐머만은 이전과 같은 누드 사진 모델로는 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1960년대 성혁명이 일어나면서 여성이 힘과 목소리를 얻었던 것처럼 현대 사회에서 비슷한 사건이 일어나는 겁니다. 내년에 다시 예전 모델로 돌아간다면 메시지만 모호해지겠죠.”
원문: 뉴스페퍼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