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엔가 늦장가 가는 친구 녀석이 네팔에서 신부를 데리고 와서 함께 자리했다. 내 친구니 신랑 나이는 견적이 나올 것이고 그 신부의 나이는 물경 20대 초반이었다. 네팔에 가서 일하는 중에 만난 양갓집 규수였고 네팔에서 정식 결혼식도 치르고 온 처지. 이건 도둑놈 정도가 아니라 ‘특수강도’이 죄목이 마땅한 상황이지. 이 XXX같은 놈! 소리까지 튀어나오려 했는데 의절할까봐 그만 뒀어. 네팔 처갓집에서는 별 일 없었느냐 묻더니 갑자기 녀석의 표정이 스산해지더군.
“처숙부가 그러더라고. 너 내 조카 눈에서 눈물 나게 하면 목을 따 버릴 거라고, 구르카 용병 알지? 거기 출신이시거든.”
그 순간 나도 춥다 싶을 정도의 한기를 느꼈지. 구르카 용병의 이름을 들어는 봤겠지? 그들은 세계 최강대국 두 나라와 상대하면서 명성을 드날리기 시작한 네팔 내 부족의 이름이야. 18세기 말 구르카는 네팔 지역을 장악한 뒤 히말라야 산맥 저편의 티베트로 쳐들어갔고 티베트를 장악하고 있던 청나라와 부딪친다.
북경에서 대략 한 5천킬로미터 떨어진 변경이었지만 건륭제는 단호하게 대응했고 청나라 군대를 출동시켜 이들을 네팔 땅으로 돌려보내긴 했지만, 그 와중에 청나라 사람들은 무지막지한 구르카인들의 용맹을 끔찍하게 경험하게 되지. 인도를 정복한 영국도 마찬가지였어. 네팔을 정복하고자 원정대를 보냈을 때 그들은 별안간 나타난 귀신같은 군대의 현란한 칼질에 넋을 잃고 말았어.
하지만 보아하니 이 구르카 용병들이 영국군 포로를 대하는 관습이나 전쟁 체계 등을 보아하니 몹쓸 야만족 같지는 않다 싶던 영국군 사령관 에드워드 샌더슨이 이런 건의를 하게 돼. “어차피 생길 것도 없는 산지를 정복하느니 이들의 독립을 인정해 주고 이들을 대영제국의 용병으로 삼읍시다. 싸움은 겁나게 잘해요.”
예나 지금이나 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일 네팔 농사꾼에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병사가 되는 것은 대단한 혜택과 수입의 원천이었지. 구르카 용병은 그 후 대영제국의 깃발이 펄럭이는 곳, 그 중에서도 가장 위험하고 귀찮은 곳에서 그 깃발을 펄럭이게 됐어.
이 사람들의 용맹의 전설은 부지기수 무량대수다. 특히 칼날 중간이 아래로 구부러져 내리칠거나 벨 때 파괴력을 극대화한 쿠크리의 위력은 상대편의 공포의 대상이었어. 북아프리카 전선에 배치됐을 때 장교가 “이 야만인들이 뭘 하나 참호나 파라고 해,”하라고 명령하자 다음날 참호에 독일군 목들을 수십 개 갖다 놨다던가, 정글전의 대마왕으로 자처하던 일본군을 상대로 태연하게 적진에 뛰어들어 스물 네 명의 일본군을 해치워버린 기록도 있지. 이때 와들와들 떨면서 남긴 목격자의 한 마디. “어떤 일본군은 철모부터 어깨까지 갈라져 있지 뭐야.”
아르헨티나가 늙은 영국을 깔보고 전쟁을 벌인 게 포클랜드 전쟁이지? 이 포클랜드전의 피날레는 영국군의 상륙과 아르헨티나의 항복이었는데 결의를 다지며 수비에 나선 아르헨티나 수비군은 단 마디에 녹아 내렸다고 해. “구르카 애들이 온다.” 아르헨티나 군들은 즉시 투항했고 자신들을 구르카에게만 넘기지 말라고 애걸복걸했다지. 구르카는 우리는 적에게만 잔인하지 포로한테는 그렇지 않다고 기분 나빠 했다는 후문.
그러나 명령에 복종하고 어떤 임무든 개의치 않는 구르카 용병들은 뜻밖의 악업을 쌓기도 해. 영화 <간디>에는 한 마을의 축제일 같은 날, 영국군들이 퇴로를 막고 기관총까지 동원해 마을 사람들을 몰살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이게 유명한 암리차르 학살인데 이때 비무장의 인도인들에게 사격 명령을 내린 건 백인 영국 장군 다이어였지만 그 명령을 이행한 것은 구르카와 발루치족 (다른 민족) 용병들이었어. 최고의 용병들답게 정확한 사격. 1560발을 쏘아 1516명이 죽어 나갔으니 조준 사격도 아주 철저하게 했던 셈이지.
지금도 많은 구르카들이 영국이나 인도 등의 나라에 고용돼 용병으로 살고 있지. 파키스탄군도 인도군에 소속된 구르카한테 한 번 크게 덴 바 있고 아프가니스탄 탈레반들도 구르카에게 된통 당하고 있기도 해. 아프간 사람들은 구르카에 원한이 좀 많을 거야. 1차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영국군을 단 1명만 남기고 전멸시켰던 이 억센 산악민족을 털어먹은 게 구르카 아저씨들이었으니까. 그 가운데 오늘은 인도 출신 구르카 용병 한 명의 얘기를 해 보자. 비슈누 쉬레스타.
이 아저씨는 인도군 소속 구르카 용병이었어. 영국군 용병 시험이 가장 경쟁도 세고 보수도 높아서 그에 비하면 좀 격이 떨어지긴 해도 구르카는 구르카지. 2010년 9월 2일 퇴역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어. 그런데 갑자기 통로 저쪽이 시끌시끌하더니 웬 시커먼 군상들이 칼을 휘두르며 객실로 들어왔어, 40여 명의 떼강도였지.
그들은 승객들의 지갑과 물건을 털면서 움직이면 죽인다고 소리쳤고 비슈누도 지갑을 내밀었대. 이때 도둑들은 그의 허리춤의 쿠크리를 봤지만 빼앗을 생각을 안했대. 역시 비슈누와 같은 생각이었을 거야. “그래 봤자 어쩔 건가.”
비슈누도 괜히 좁은 객차 안에서 칼부림해 봐야 자신도 위험할 수 있고 돈 몇 푼 뜯기고 집에 가면 그게 낫다 싶었겠지. 그런데 객실안에 있던 예쁜 소녀에게 도둑들이 눈독을 들이면서 분위기가 바뀌었어. 소녀의 동생이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가운데 도둑들이 소녀를 그악스럽게 잡아채는 모습을 보자 이 비슈누 아저씨 부드득 이를 갈고 만다. 그리고는 소리없이 쿠크리를 들고 앞으로 내달아 소녀에게 정신 팔려 있던 두목을 잡아챈 후 칼을 들고 있던 도둑 하나의 목을 날려 버리고, 승객을 인질로 삼으려던 도둑 하나를 또 처치한 뒤 두목까지도 죽여 버린다.
전광석화. 좁은 객차 안에서의 싸움이니 40대 1이 가능했을 테지만 비슈누는 계속 쿠크리를 휘두르면서 도둑들을 쫓았고 혼비백산한 도둑들은 부상자를 남기고 다 도망하고 말아.
이 영화같은 사연의 주인공은 일약 구르카의 영웅이 된다. 인도군 구르카 부대는 그의 퇴역을 일시 중지하고 포상했고 인도 정부도 평생 무료 교통권을 선물하고 강도들에게 붙어 있던 현상금을 지급하며 격려한다. 하지만 그는 성폭행을 당할 뻔 했던 소녀의 부모가 전달하기를 원했던 6천5백 달러는 끝내 거절했다고 해. 이유는 그의 코멘트에서 추정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전투하며 적과 싸운 건 군인으로서의 의무였고 기차 안에서 강도와 싸운 건 인간으로서의 의무였습니다.”
눈 앞에서 벌어지는 비인간적인 참상을 보다 못해 나선 건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었으니 그 부모로부터 포상을 받는 것은 안될 일이지만 나를 고용했고 그를 위해 싸웠던 정부와 군대의 포상이라면 퇴역 군인으로서 거부할 이유가 없다는 뜻 아니었을지.
어차피 용병은 용병이고 군인은 사람을 죽이는 것을 배우고 훈련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야. 하지만 살인이 행해진다면 군인으로서의 명령 뿐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의무에 더욱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생각이 무모하고 가능성없는 소망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소녀의 호소에 목숨을 걸었던 비슈뉴 쉬레스타도 영국 지배하의 인도 엄리처에 있었다면 주저하지 않고 그 나이 또래의 소녀 심장에 총을 쏘았을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면 더욱 그렇고 말이야. 그래도 얻을 것 얻고 임무 마친 후 퇴역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 길에서 굳이 다시 한 번 목숨을 걸었던 한 용병의, 아니 한 인간의 용기에는 경의를 표해야겠지.
네팔 색시와 내 친구의 행복을 다시금 기원하며 결코 처숙부의 쿠크리가 뽑히는 날이 오지 않기를 그저 앙망할 따름. ^^
원문: 산하의 오역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