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고객사 담당자와 미팅 중에 LG 마케팅이 심각하다는 얘기가 자꾸 나와서 무슨 일 있나 싶었는데,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보니 LG의 20만원대 모니터에 들어간 하드웨어 캘리브레이션 기능 얘기였다. 이게 원래 수백만원대 모니터에나 들어가는 거라고…
정작 LG의 고객지원 부서에서는 캘리브레이션이 들어간 줄도 모르고, 캘리브레이션이 뭔지도 모르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기능에 대해 문의를 하면 “그게 뭔가요?” 하는 대답이 돌아오고 박스 안에는 설치 CD도 있건만 홈페이지에는 드라이버도 올려져 있지 않은 현업의 엇박자가 심각한 것이다.
LG마케팅팀의 병신력 자랑
근데 알고 보면 그뿐만이 아니다. LG의 마케팅 삽질은 맥에어를 잡겠다며 야심차게 출시한 노트북 그램도 비껴가지 못했다. 원래 13인치가 주력이었는데 14인치 모델 발표하면서 “1인치가 더 커져도 무게는 그대로 980그램”이라고 광고했는데… 실제로 재보니 963그램이었다.
실제보다 더 후진 스펙으로 돈주고 광고하는 저 대범함. 제품명에서 보듯 무게가 가장 중요한 USP(Unique Selling Proposition)였는데도 그랬다. 마케팅 고자의 화룡점정, 자아비판과 셀프디스를 돈주고 하는 LG의 독보적 클라스라 할 수 있겠다. (…)
그 외에도 급속충전 대응 스펙으로 휴대폰을 내놓고는 급속충전기를 빼놓고 패키징을 하질 않나, 사용 설명서에 스펙을 잘못 표기한건 양반이고(고의는 아닐 것이라 확신한다. 낮은 스펙으로 잘못 표기한 건수가 더 많았으므로… 한우를 팔면서 메뉴판에는 “수입산”이라고 써놓은 경우랄까…), 전설의 V10에는 20k 금박을 둘러놓고도 입 다물고, 번들 이어폰은 AKG와 콜라보 튜닝해놓고도 홍보 한 줄 안했으니, 답답해서 이를 보다 못한 블로거들이 <LG 마케팅팀도 모르는 V10의 5가지 매력>이라는 포스팅으로 재능기부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쯤되면 마케팅을 못하는 게 마케팅이 될 지경이다. 이참에 삼성을 경제/금융 학부생, LG는 제품 개발에만 미친 공대생. 이런 이미지로 포지셔닝 해보는 것도 좋겠다.
LG마케팅은 왜 이 지경이 되었나
그런데 난 LG 마케팅이 왜 이런 지경인지 대략 알 것 같다. 이전 대행사에서 경험했던 LG전자 쪽만 그런 줄 알았는데, 얼마전 다녀온 다른 계열사에선 영어 프레젠테이션과 리포팅, 그리고 네이티브 수준의 커뮤니케이션 담당자 2명 이상, 방대한 업무 범위를 요구 조건으로 제시했는데, 예산을 듣고는 놀라 다시 여쭤봤다. 이 조건을 충족시키려면 뒷자리에 0은 아니더라도 앞자리에 1 하나 정도는 ‘당연히’ 더 붙어야 하는 거라… 대화 중 분위기를 보니 우리가 컨택되기 전에도 여러 대행사 떨어져나간 것 같더라.
이건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그룹 문화가 마케팅의 역할을 너무 낮게 보는 거다. 나는 BTL이라 ATL쪽은 어떤지 모르겠다만 내 기억 속에 고객사로서의 LG는 ‘예산은 턱없이 적고 요구사항은 많은 회사’로 각인되어 있다. (요구사항=수정요청이라든가, 수정요청이라든지, 수정요청 같은 것…)
그러니 담당 AE는 연속된 야근과 낮은 성과급이 중첩되어 버티질 못해 자주 교체되고, 그게 아니면 LG전담이라던 AE가 실제론 다른 고객사와 양다리 걸치느라 LG에 집중 못하거나 하다 보니 자꾸 미스가 생기는 거다. 사실 LG의 전체 마케팅 예산은 볼륨으로 치면 꽤나 많은 편이나 질적 향상 보다는 양적 팽창, 정성적 성과보다는 보고하기 쉬운 정량적 성과에 집착하여 생긴 문제라고 생각한다.
반면 경쟁 S사의 경우는 요구조건은 디테일하고 까다롭지만 대대행, 또는 대대대행이었음에도 프로세스가 일관된 절차가 있어 협력사들이 같은 이해를 공유할 수 있었고 예산배정, 수정요청, KPI 설정과 측정 등에서도 깔끔했다. 전 과정이 매뉴얼화 되어 처음엔 어렵지만 누적될수록 쉬워지고 인연이 길어질수록 마컴이 하나를 말하면 AE는 열 개를 알아듣는 상황이 생긴다. 성과보다는 리스크 발생률 억제에 중점을 둔 느낌.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배정했다. 그러니까 삼성은 마케팅 사고가 안 나는 거다. 대행사에 삼성덕후 AE가 있고 삼성 전담팀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는데 사고가 날리가 있나. (물론 같은 회사라도 마컴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 있으니 무조건 받아들이지는 말기 바람.)
그럼에도, LG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너무 삼성 친화적인 글이 되어버리는 것 같은데, 사실 “가전은 LG”란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나는 실제로는 대부분의 가전제품 구입 시 LG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편이다. 삼성보다 가격대비 품질과 기능이 좋고 AS제도도 이만하면 충분하며, (삼성 AS는 좀… 오버다. 고맙긴 하다만.) 무엇보다 LG제품을 살 땐 가슴이 설레기 때문이다.
그 설렘의 정체는 왠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나은 놈일지 모른다는 두근거림이다. 그리고 오늘은 마케팅팀이 무슨 실수를 했을까, 실수가 없다면 일을 안 한 건데… 라며 딥하게 파헤쳐보고 디테일하게 까고 싶은 비평가 놀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민주당 같은 회사 LG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