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대중들에게 기억되는 건 대개 정치인의 ‘말’이다. 멀리는 2004년 민주노동당 돌풍을 일으켰던 노회찬의 어록에서부터 가까이는 국민들로 하여금 자신의 ‘혼’이 혹시 비정상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든 박근혜에 이르기까지, 정치인의 ‘말’은 대중들 속으로 매우 깊고 빠르게 스며든다.
하지만 정치인의 ‘글’은 어떠한가? 우리들은 훌륭한 정치인의 이름을 여럿 떠올릴 수 있지만 그들이 쓴 ‘훌륭한 글’에 대해 누군가가 묻는다면 별로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치인의 ‘글’ 따위에 별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현직 ‘수필가’로써 주옥같은 명수필을 여러 편 남기신 바 있는 박근혜 대통령께서는 이 점을 매우 애석하게 생각할 것이다.)
조성주의 정의당 대표 출마선언문이 세간의 화제를 모은 것은 그래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여당이나 야당의 유력 정치인도 아닌 고작 5석의 의석을 가진 군소정당의 한 젊은 정치인의 출사표가 한국 정치에 신선한 파문을 몰고 왔던 것이다. 출마선언문이 발표된 이후 많은 학자들이 그 선언문을 인용했으며 또 많은 시민들이 자신의 SNS 등을 통해 저마다의 ‘감상문’을 남겼다. 어떤 사람들은 출마선언문을 읽고 마음이 동해 직접 정의당의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이 글은 전 조성주의 정의당 당대표 운동 선거본부에서 화제의 출마선언문이 완성되기까지 고민과 토론, 수렴의 과정을 담은 것이다. 처음 본인이 작성한 초안에서 시작하여 총 9가지 버전의 선언문이 탄생했었다. 정치에 있어서 ‘글’이 줄 수 있는 울림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그 9번의 수정 과정을 총 3회에 걸쳐 나눠 싣는다.
들어가며: ‘정치적 언어’를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우리에겐 ‘정치’였다
조성주는 지난 6월 15일, 정의당 당대표에 출마하며 정의당 홈페이지에 출마선언문을 발표하였다. 출마선언문은 발표 이후 조회수가 50,000회(15일, 17일 두 차례 글 등록)를 넘어섰다. 정의당 홈페이지 개설 이후 최고 조회수였다. 당원은 물론, 정의당에 관심이 없던 시민들까지 조성주의 출마선언문에 담긴 그의 정치적 비전과 정책에 대해 기대 이상의 긍정적 관심을 보였다.
이 글은 출마선언문 초안부터 최종본까지 변화의 과정을 살피고자 한다. 출마선언문은 6월 2일 초안이 작성된 이후 6월 15일 새벽까지 총 9번 수정되었다. 때론 문장을 다듬는 정도의 수정이었다. 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선거본부 구성원 간 의견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으며, 논쟁을 거쳐 끝끝내 타협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자주 지난했다.
우리는 출마선언문의 작성 과정을 공개함으로써 이 과정을, 지극히 어려웠으나 그랬기에 더욱 치열했던 당시의 고민과 토론의 과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자 한다. 이 출마선언문을 작성하는 과정 자체가 우리에게는 소중한 ‘정치’였으며 그 정치의 과정을 드러내고 함께 나누는 것 역시 ‘정치’의 일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범적인 정치적 글쓰기의 한 예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보여주고자 하며, 더 정확히는 그 극복 과정을 보여주고자 한다. 정치글은 소위 글 잘쓰는 사람이 ‘일필휘지’한 산물이나, 전문업체가 만져주어 탄생하는 작품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작성하는 그 과정부터 정치임을 우리 또한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후보와 선본 구성원들의 부족함이 그대로 드러날 수 있는 초안과 그 이후의 각 수정본들을 공개하는 것은 소위 정치적 효과라는 측면에서 부정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치적 글쓰기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보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정치적으로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기에, 여타의 위험이나 창피함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게 됐다.
결국 정치는 말과 글로 싸우는 것이며, 서로의 정치적 생각을 공유한다는 것은 언어를 공유한다는 의미인 까닭이다.
0. 출마의 변(6월 2일, 초안)
출마선언문의 초안은 후보가 직접 작성했다.
정의당은 미래와 싸워야 합니다. 정의당은 다음세대의 정당이 되어야 합니다.
동료 청년들의 주거문제를 고민하는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평범한 노동자의 자녀로 태어나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로 왔지만 세네명이 모여 살 수밖에 없는 단칸방과 고시원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동료들의 주거문제 해결을 위해 조직을 만들고 대학생, 청년들을 위한 기숙사와 공공주택을 확대하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나 그 청년은 우리 집값을 올려줄 것 아니면 대학생, 청년들의 집 따위는 지어서는 안 된다며 지역주민들이 던지는 물병과 욕설을 맞아야 했습니다.
이번에 정의당 청년학생위원회와 함께 워킹홀리데이 관련 노동실태조사를 했습니다. 대책없는 박근혜 정부의 해외취업 정책에 수많은 우리 청년들이 해외에서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청년의 말이 가슴을 때렸습니다. 한국에서도 어차피 최저임금도 못 받고 비정규직을 전전하는데 차라리 해외에 나가서 노동착취를 당하더라도 마음이 더 편하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는 그렇게 밑바닥 노동을 하며 살아도 한국처럼 미래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저는 미래세대들의 절망과 한탄을 들을 때 자문합니다. 정의당이라는 진보정당은 어떤 세상을 만들어가려고 하는 걸까요? 제게 너무나 자랑스러운 정의당의 입장을 동료들에게 후배들에게 권할 때 속으로 묻습니다. 경륜도 실력도 아직은 부족한 제가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의당의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이유는 이 물음들에 답하기 위해서입니다. 저와 제 동료들. 그리고 다음세대들이 정의당에 던지는 질문들을 당원들과 함께 나누고 함께 답을 내리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다음세대를 위한 정당이 되어야만 합니다.
다음세대를 위한 정당. 진보정당은 이제 1세대 진보정치가 대변했던 현실의 노동자, 농민, 영세자영업자들을 대표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합니다. 진보정당 15년, 원내진입 10년이 넘었습니다. 많은 우여곡절을 있었지만 분명히 우리는 한국정치에 유일 진보정당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질 만한 성과들을 만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막을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느새 조카들을 우리의 딸들을 위한 정당이 되어야 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세월호가 우리에게 준 교훈입니다.
87년 민주화가 되었다지만 민주주의는 시민들에게 공평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그 이후 태어난 다음 세대들에게 그러했습니다. 우리는 한국의 기성정치가 대변하지 못했던 민주주의 밖의 시민들을 우리는 대변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시민들 대다수가 처한 현실은 다음세대 거의 전부가 맞이할 미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활해야 합니다. 그것은 눈부신 아침 바다에서 옆에 있는 친구와 재잘대며 컴컴한 물속으로 가라앉던 우리 조카들의 부활입니다. 우리는 다음세대를 위해 책임있는 정치적 결정을 내리고 대안을 내놓고 싸워나가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당면의 조직들을 대표하는 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미래세대를 위해 오늘 우리의 희생을 감내하더라도 미래로 나아가야 합니다. 두려운 없는 과감한 증세, 세대간 평등을 고민하는 고용보험 개혁, 연금개혁, 과감한 노동시장 개혁에서 시작합시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혁신해야 합니다. 그것을 다시 똑같은 사람들이 똑같은 실수와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것은 아니냐고 의심하고 냉소하는 패배주의를 넘어서는 혁신이어야 합니다. 혁신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기본으로 돌아간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입니다. 다만 우리는 남들이 주목하지 못한 새로운 가치를 통해 우리의 힘을 키워야 합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그 새로운 가치는 바로 당원입니다. 당의 힘은 당원에 있습니다. 국회의원 숫자는 정당의 힘의 결과이지 그것이 정당의 힘의 원인을 아닙니다. 120석을 가지고도 무능력을 반복하는 저 제1야당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정당의 힘이 강해졌다는 것은 오로지 당원들이 많아지고 시도당을 비롯한 지역위원회, 당조직이 강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모두 부차적인 것이라는 단순한 진리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정당, 가장 힘있는 정당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다음세대의 대표를 우리 손으로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것은 한국정치의 미래를 바로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래의 리더십을 우리 손에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어떤 정당과 싸워도 이길 수 있습니다. 누구도 미래세대를 장악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미래리더십 구축을 목표로 당조직, 정책, 집행의 모든 부분에서 전면적인 혁신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정의당은 박근혜 대통령과 싸우는 정당이 아닙니다. 정의당은 새누리당이나 새정치민주연합과 싸우는 정당이 아닙니다. 그것을 결코 우리 정당의 본질적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정의당은 미래와 싸워야 합니다. 우리가 결코 인정할 수 없는 오늘의 이 불평등하고 폭력적인 체제가 요구하는 너무나 뻔한 그 미래, 우리 조카들과 딸들에게 결국은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과 결코 다르지 않은 삶을 살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결정되어 잇는 그 미래를 바꾸기 위해 싸우는 정당이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새로운 리더십을 절박하게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이 초안에서 강한 인상을 주지 못했던 상당 부분이 선본의 토론을 거치며 삭제되었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언어들이 있다. 버린 부분과 살아남은 부분에는 각자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이제부터 이야기해볼 것이다.
1. ‘교체’라는 단어를 지웠다
초안을 검토하면서 가장 집중했던 부분은 ‘조성주가 당대표에 출마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왜 당대표가 되어야 하는지’였다. 하지만 선본의 전반적 분위기는 이것이 설득력있게 표현되지 못했다는 평가였다.
초안에서는 청년들의 고된 현실을 고발하며 ‘1세대 진보정치’를 뛰어넘는 ‘미래정당으로서의 정의당 리더’가 되겠다고 출마이유를 밝혔다.
본질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정의당 구성원의 분포(당원 평균 연령 42.5세)로 봤을 때 청년만을 대변하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은 후보의 활동범위를 한정하는 위험이 있었다. 또한 정의당의 혁신을 이야기하는 것 역시 당내외에서 많이 거론된 의제이기에 출마 이유로 내세우기에는 부족했다.
핵심은 정의당에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고, 조성주가 준비된 리더임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세대교체’를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교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부정성과 공격성에 걱정이 앞섰다. 논리적 명분을 내세워 이 단어를 사용하더라도 염려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상대방이 논리 이전에 거부감과 반발심으로 불쾌감을 느낀다면 우리의 본심이 전달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렇다면 ‘교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어떻게 ‘세대교체’를 이야기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우리가 출마선언문에 담고 싶었던 중요한 가치 중 하나였다. 계속되는 토론에도 명쾌한 문장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가 진보정당의 세대교체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회의감에 빠지기도 했다.
고민 끝에 정치발전소 박상훈 선생님께 의견을 구했다. “아무리 고민해도 ‘교체’라는 표현 없이 세대교체의 필요성을 주장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교체’라는 말을 쓰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떡하면 좋을까요?” 선생님은 고민 없이 말씀하셨다. “그런 표현을 쓴다면 좀 실망이에요. 선본이 고민하지 않고 쉬운 길만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네요. ‘세대교체’는 자신이 주장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유권자들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되는거죠.”
선생님의 말씀은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교체’라는 단어를 출마선언문에서 전부 지워버렸다. 선본으로서는 과감한 선택이었다. 첫 문장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2. 아버지의 이야기로 시작했던 이유
초안의 시작은 청년이야기였다. 하지만 후보의 나이가 자연스럽게 ‘청년’을 연상시키기에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 부분을 과감히 버리기로 했다.
선거에 출마한다는 것은 다른 후보들의 부족함을 드러내며 자신이 당선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체’라는 말 없이 ‘교체’되어야 할 상대를 이미지로 드러내야 했다. 1세대 진보정치와 조성주를 극적으로 대비시키는 것이 과제였다.
고민 끝에 찾은 답은 ‘아버지’였다. ‘아버지’와 ‘1세대 진보정치’와 나란히 놓고 보니 그 사이에 아주 작은 오솔길이 보였다. 우린 그 길을 걸어가 보기로 했다.
조성주의 아버지는 인천에서 자동차 유리를 생산하는 노동자였다. 1987년 이후 공장에 노동조합이 결성되자 조합원이 되어 파업에 참가하기도 했다. 노동조합 활동과 임금 인상은 가족의 의식주를 해결해 주었고, 세상에 대한 다른 시각을 배울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우리의 이야기가 아버지 세대의 삶을 그대로 인정하고 감사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비로소 이해했다. 표현의 정중함과 예의바름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2세대 진보정치’ 역시 ‘1세대 진보정치’에서 시작되어야 함을 확인했다. ‘교체’를 이야기하기 전에 ‘아버지세대’와 ‘1세대 전보정치’에 대한 감사함이 먼저였다.
출마선언문이 발표된 이후 글의 서두를 두고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연설을 흉내낸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선본이 오바마의 연설문을 참고했지만 아버지에 대한 감수성은 상당히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오바마가 주장하는 ‘아메리칸 드림’이 아버지세대로부터의 실현 가능한 유산이라면 조성주가 이야기하는 아버지세대로부터의 유산은 현실에서 더이상 작동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버지세대의 유산이 거세된 상황에서 시작되는 ‘2세대 진보정치’를 이야기해야 했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로 출마의 변을 시작하고 합니다.
이버지는 인천에서 자동차 유리를 만드는 노동자였습니다. 아침 7시부터 밤11시까지, 매일 반복되는 야근에도 월급은 단 돈 20만원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삶은 우리 사회의 노동현실 그 자체였습니다. 1987년 이후 아버지의 공장에도 노동조합이 만들어졌고 아버지는 조합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족의 삶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노동조합이 교섭을 하고 매해 임금이 인상되면 그 혜택은 가족에게 고스란히 돌아왔습니다. 저희 가족은 그때서야 작은 승용차도 장만하게 되었고, 단칸방에서 주택공사가 만든 13평 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덕분에 대학에 진할 수 있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바로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세대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희생 없이 설명될 수 있는 삶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부모세대와 선배세대를 존경하며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6월 15일, 최종본)
1970년대 중반에 태어난 사람들은 대부분 위에서 묘사된 가족과 비슷한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주택공사가 만든 13평 아파트’라는 표현은 그 때의 모습을 좀 더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 사용했다.
출마선언문의 도입부에서 기억나는 에피소드 몇 개를 말하자면, 우선 아버지의 삶을 묘사하는 2개의 문장이 바뀌는 과정이 흥미롭다.
저희 아버지는 인천에서 평범한 공장노동자로 가난한 가장으로서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맞이해야 했던 공장노동은 고강도 노동에 저임금으로 알려진 80년대 한국사회의 노동현실 그 자체였습니다. (6월 10일)
아버지는 인천에서 유리를 만드는 노동자였습니다. 장시간 고강도 노동, 그리고 저임금. 아버지의 삶은 한국사회의 노동현실 그 자체였습니다. (6월 11일, 2차)
아버지는 인천에서 자동차 유리를 만드는 노동자였습니다. 아침 7시에 출근해서 하루도 빠지지 않는 야근에 밤 11시에 퇴근하는 삶이 이어져도 결국 가족에게 주어진 월급은 단 돈 20만원. 아버지의 삶은 한국사회의 노동현실 그 자체였습니다. (6월 12일)
아버지는 인천에서 자동차 유리를 만드는 노동자였습니다. 아침 7시에 출근, 하루도 빠지지 않는 야근으로 밤 11시에 퇴근해도 월급은 단 돈 20만원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삶은 한국사회의 노동현실 그 자체였습니다. (6월 13일)
아버지는 인천에서 자동차 유리를 만드는 노동자였습니다.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매일 반복되는 야근에도 월급은 단 돈 20만원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삶은 우리사회의 노동현실 그 자체였습니다. (6월 14일 1차~6월 15일 최종본)
최종본에서는 3개의 문장이 되었다. 선본 구성원들은 사람들이 후보의 아버지가 마치 자신의 아버지인냥 감정이입이 될 수 있도록 절절한 느낌을 주기 위해 노력면서도 문장을 간결하게 만들고자 했다. 문장을 다듬고 또 다듬었다.
다른 하나는 출마선언문 발표 전에 추가한 한 대목이다. 감정적 호소 보다는 정확한 전달이 우선이라 생각했기에 최대한 건조하게 문장들을 수정했다. 하지만 논리적 질서 속에 생각의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다. 6번째 수정본에 문장 하나를 넣었다.
누군가의 희생 없이 설명될 수 있는 삶은 없습니다.
짧은 문장 하나가 전체의 분위기를 바꿔주었다. 이 문장으로 ‘아버지세대’와 ‘1세대 진보정치’에 대한 후보의 자세는 더 정중하고 감성적으로 표현되었다. 감수성은 정치글의 전부는 아니지만 생각의 공간을 열어주는 중요한 요소다.
3. 틀리다는 건 공격이지만, 다르다는 건 대화다
간혹 정치신인이 자신의 새로움을 부각하기 위해 앞선 정치인들을 구태 혹은 없어져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의 지지자들로부터는 환호를 받을 지 모르지만 전체 유권자와 시민들에게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줄 뿐이다. 당선과 낙선 이후에는 우리가 1세대 진보정치인이라고 규정했던 노회찬, 심상정 후보 역시 같은 하늘 아래에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1세대 진보정치를 아버지세대와 동일선상에 두고 2세대 진보정치는 그것과 출발선이 다르다고 선언했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따지려는 게 아니다. 1세대 진보정치가 처한 현실과 우리가 마주한 것의 다름을 이야기하려고 했다. 그래야 조성주라는 리더십의 필요성이 설득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가 대학을 가고 사회에 나와서 맞이한 우리 사회는 아버지세대와 너무나도 달라져 있었습니다. 저화 함께 하는 동료들과 후배들은 이제 노동조합 하나조차 가지기 힘든 삶을 살고 있습니다. 민주화가 되었다고 하지만 청년실업자로, 비정규직으로, 가난한 영세자영업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들의 현실은 아버지세대가 이루어 놓은 한국의 민주주의의 밖에서 일어나는 비극이었습니다. (6월 10일)
하지만 제가 성인이 되어 마주한 사회는 아버지세대가 살아냈고, 성취했던 그것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청년실업자로, 비정규직으로, 가난한 영세자영업자로 살아가는 제 동료와 후배들은 이제 노동조합은커녕, 자신들을 위한 조직 하나조차 갖기 힘듭니다. 이들은 선배세대가 이룬 민주주의의 바깥에서 철저히 고립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6월 15일 최종본)
두 수정본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처음에는 아버지세대에서 시작하여 아버지세대로 끝난다. 하지만 최종본에는 아버지세대에서 선배세대로 끝난다. 1세대 진보정치를 이끌어온 선배세대와의 다름을 비교하며 현실에서 만난 동료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청년실업자’, ‘비정규직’, ‘가난한 영세자영업자’. 출마선언문 뒷부분에 등장하는 ‘민주주의 밖의 시민들’이나 ‘노동운동 밖의 노동’은 바로 이들을 의미한다. 조성주의 정치신념은 이들로부터 시작되고 이들을 대변하기 위해 당대표에 출마한다는 논리적 연결 위해 전략적으로 배치한 것이다.
‘교체’라는 단어를 버림으로 해서 출마선언문을 시작할 수 있었다. 1세대 진보정치와 다름을 통해 우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조금 돌아왔지만, 조성주가 왜 정의당 당대표에 출마하려고 하는지에 본론으로 들어갈 준비가 되었다. 가장 어려운 언덕을 힘겹게 올라왔더니 비로소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했다.
※ 이 글은 「조성주의 출마선언문은 어떻게 완성되었나 ②」로 이어집니다.
※ 이 글은 정치발전소에서 진행하는 ‘정치적 말하기/글쓰기 강좌’의 강의안으로 작성된 문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