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망받던 5년 차 스타트업 쿼키(Quirky)가 최근 파산 신청을 했습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적인 대기업들과 투자업계가 ‘제조업의 미래’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던 회사인데 말이죠. 쿼키는 우리가 만나보기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안드레센 호로위치 같은 쟁쟁한 벤처캐피털들로부터 무려 1억 7,000만 달러의 투자를 받은 바 있습니다. 그런데도 파산이라니.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소셜 제품개발 플랫폼’으로 정의되는 쿼키는 일반 대중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제공받아 제품을 설계/제작/판매하는 사업모델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방면의 인재들을 끌어모아 아이디어 검증부터 설계, 디자인뿐 아니라 단기간에 제품을 출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모두 갖췄습니다.
회사가 파산 지경에 이르게 된 표면적인 이유는 그 세련되고 날카로운 검증 과정을 거쳐 시장에 출시한 제품들이 잘 팔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히트작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히트작만으로는 파산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결과를 두고 혹자는 비전문가인 대중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제공받는 방식이 현실성이 없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상품성을 판단하는 전문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카피캣을 막기 위해 단기간에 제품을 출시하는 전략이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잘 될 때는 무수한 찬양이 쏟아지다가도 잘 안 되기 시작할 때부터는 ‘내가 그럴 줄 알았다’로 분위기가 급반전되면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쏟아졌죠.
분명한 것은 쿼키가 파산하더라도 ‘집단지성 기반’ 혹은 ‘사용자 참여형’ 사업모델은 계속 등장할 것. 사회는 지식을 소수가 독점하고 결정하는 단계에서 모두가 지식을 제공하고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쿼키의 아이디어 채용 방식은 트렌드에 부합했습니다.
동일한 방식으로 성공한 사례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스타트업이 만든 사용자 참여형 내비게이션 앱 ‘웨이즈(Waze)’는 2013년 13억 달러에 구글에 매각되면서 사례를 제공했습니다. 잘 됐더라면 쿼키는 ‘미래형 3M’이 될 수도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도 쿼키의 파산이 아쉽습니다.
쿼키의 창업자인 벤 커프먼은 쿼키 이전에 이미 창업과 엑싯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쿼키는 좋은 팀원들과 훌륭한 투자자 그룹, 좋은 협력업체 네트워크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왜 파산에 이르게 되었을까요? 핵심은 ‘현금흐름 관리의 실패’에 있습니다.
쿼키는 1,990만 달러를 상환하는 만기가 도래하기 한 달 전에 파산을 신청했습니다. 그 외에도 담보 부채 930만 달러, 무담보 부채 3,680만 달러와 외상 매입금 2,800만 달러를 상환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절대 불가능했을 어마어마한 차입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쿼키의 사업모델과 경영방식은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쿼키가 성공에 이를 때까지 현금흐름을 유지하지 못했다는 건 분명합니다. 자본시장이란 돈이 필요한 기업이 아니라 ‘잘 나가는’ 기업에 돈을 몰아주는 이상한 속성이 있습니다. 쿼키의 과거 성장세가 나쁘지 않았고 시장에서 크게 주목을 받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아마도 쿼키에 투자를 하려고 줄을 섰을 겁니다. 회사는 그런 상황을 이용해 회사에 유리한 조건으로 자금을 충분히 조달할 수 있었을 거고요.
그러나 결과는 많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고 해서 회사가 성공하는 건 아니라는 걸 보여줄 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수천억 원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수백억 원의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 중에서도 몇 개는 앞으로 같은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막대한 투자금은 성공의 보증수표가 아니라 역으로 스타트업에게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을 특징짓는 단어는 ‘hungry’입니다. 많은 스타트업이 헝그리한 상태에서는 엄청난 전투력을 발휘합니다. 그런데 큰 투자를 받고 나면 동력이 떨어지는 스타트업을 많이 봅니다. 통장에 상당한 돈이 있다 보니 긴장이 풀리기 때문입니다. 사무실이 커지고 인테리어가 좋아지고 대표이사의 차도 바뀌고 직원 복지도 훌륭해집니다. 투자금이 사실은 다 빚인데 말이죠.
요즘같이 시장변화가 심하고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는 투자자에게 제시한 시기에 제시한 성과를 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결국, 투자금이 다 소진되고 실적을 못 내는 상황에서 추가 투자유치에 실패하게 되면 회사는 망하고 대표이사는 신용불량자가 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집니다.
스타트업의 목표는 생존이고 성공할 때까지 버티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게 성공한 선배들의 조언입니다. 그러나 스타트업이 버티지 못하게 하는 적들이 존재합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현금흐름입니다. 자금이 말려버리면 버티고 싶어도 버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스타트업이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투자유치가 아니라 성공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현금흐름 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스타트업의 현금흐름 계획은 최대한 헝그리한 생활을 유지하는 것, 할 수만 있다면 투자나 대출에 손 벌리지 않고 앵벌이를 해서라도 스스로 현금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스타트업계에 있는 분들은 인정하지 않으실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게 과거 어느 때보다 용이한 시기입니다. 그러나 대출이나 투자를 받았다고 해서 무조건 능사인 것이 아닙니다. 투자는 스스로 지표를 만들어낸 후 승부를 걸어야 할 때, 투자자에게 충분한 투자수익을 안겨줄 자신이 있을 때 받는 게 가장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독이 되어 조직을 매너리즘에 빠뜨릴 수도 있습니다.
투자를 받으러 다닐 시간에 생존을 위한 현금흐름 계획을 세우고 지하철역 입구에서 김밥을 팔아서라도 스스로 현금흐름을 만들면서 구현하고자 하는 본질에 초집중하다 보면 어느 순간 투자자는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보석을 제 발로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원문: 양경준님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