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불공평하다. 특히 연애에 있어서는 더욱 불공평하다. 어떤 친구들은 항상 사귀는 사람이 있고, 헤어졌다가도 금세 또 새롭게 누군가를 만난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어떤 사람은 죽으라고 노력해도 안 생긴다. 왜 이런 불평등한 상황이 벌어질까? 연애를 잘하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들의 차이는 도대체 뭘까?
연애를 못 하는 사람의 특징
’연애를 잘한다’는 말은 ‘연애를 자주 한다’와 ‘연애 관계를 행복하게 잘 유지한다’의 두 가지 의미로 쓸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의미로 연애를 잘하는 사람이 진짜 연애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단 연애를 시작해야 유지도 할 것이 아닌가. 연애를 잘 시작하는 법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연애를 못 하는 사람 중에 이런 성격을 가진 분들이 있다.
- 감정의 강도에 집착한다.
-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 확신 없이 행동하지 않는다.
이런 분들은 상대에게 느끼는 자신의 감정이 진짜 사랑의 감정인지 의심한다. 상대에게 느끼는 감정이 아주 강렬해야 운명의 짝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감정에 확신을 갖지 못하면 연애 관계로 진입하려 들지 않는다. 상대를 좋아한다는 확신이 들더라도 쉽사리 대쉬하지 않는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확신이 들기까지는 먼저 고백도 하지 않고, 스킨십도 먼저 시도하지 않고, 상대 역시 자신을 좋아한다는 확신을 얻으려 한다. 다시 말해 거절의 두려움이 없는 안전한 상황이 되는 순간을 기다린다. 그전까지는 관계에 있어 소극적인 자세를 고수한다. 이렇다 보니 만남을 지속해도 연애로 발전하지 못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없어서 상대는 이 사람이 자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짐작조차 못 하는 경우도 생긴다. 자신의 감정에만 지나치게 집중하기 때문에 상대의 감정에는 오히려 둔감하다. 연애를 못 하는 사람은 감정의 강도에 집착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거나 상대의 감정을 파악하는 것에는 서툴다.
실험실에서 사랑을 만들다
우리는 흔히 연애에 있어 사랑의 감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랑의 감정이 먼저 생기고 그다음에 포옹이나 키스 같은 스킨십, 연인 간의 행동이 뒤따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심리학자들은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특정한 환경과 행동을 통해 사랑의 감정을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스워스모어 대학의 케네스 거겐(Kenneth Gergen)은 재미난 실험 하나를 기획했다. 연인들이 주로 으슥한 곳에서 사랑을 속삭인다는 점에 착안해 완전히 모르는 남녀를 깜깜한 방에 집어넣었을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관찰한 어둠 속 일탈(Deviance in the dark) 실험을 진행했다.
그는 바닥과 벽을 모두 패딩 재질로 덮은 가로세로 각각 3미터의 방에서 4쌍의 남녀가 한 시간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도록 했다. 다음으로는 실내조명을 모두 끈 상태에서 또 다른 4쌍의 남녀가 1시간 동안 있도록 했다. 실험의 결과는 어땠을까?
불이 켜진 상태에서는 피실험자 중 누구도 서로를 만지거나 껴안지 않았고실험 뒤 인터뷰에서 30% 정도가 성적인 자극을 느꼈다고 대답했다. 반면 깜깜한 상태에서는 완전히 다른 일이 벌어졌다. 90% 정도가 서로의 몸을 만졌으며, 50%는 껴안기까지 했다. 또한 80%가 성적인 자극을 받았다고 대답했다. 심지어 몇몇은 이성의 얼굴을 쓰다듬거나 키스를 나누기도 했다.
국내에서 크게 흥행한 영화 〈어바웃 타임(About Time)〉에도 비슷한 상황이 나온다. 주인공 팀과 메리가 처음 만나는 장면을 기억하는가? 그들은 조명을 어둡게 해서 서로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만든 술집에서 처음 만나 대화를 나눴고, 팀은 메리에게 반한다.
잘해보고 싶은 상대가 있다면 어둡거나 높은 곳으로
이성에게 사랑을 고백할 때는 높은 곳에서 하라는 이야기를 책이나 인터넷 기사에서 읽어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높은 곳에서는 심장 박동이 빨라지기 쉽고, 뇌는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을 사랑에 빠진 것이라고 착각해서 고백 성공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특정 환경이 사랑의 감정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에 여러분은 동의하는가? 아직 그럴 기분이 아니라면 실험 하나를 더 살펴보자.
하버드 심리학자 대니얼 웨그너(Daniel Wegner)는 완전히 모르는 두 사람을 마치 연인인 것처럼 서로 장난을 치게 함으로써 서로에 대한 매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실험자들이 대답을 조작하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웨그너는 포커 게임에 관한 심리학 실험을 한다고 거짓 설명을 하고 실험을 진행했다).
웨그너는 사람들을 네 그룹으로 나누었다. 각 그룹은 서로를 전혀 알지 못하는 두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자로 이루어졌다. 다음으로 남녀 한 명씩 팀을 이루어 함께 포커를 치도록 했다. 그리고 각 팀을 서로 다른 방으로 불러 게임 규칙을 설명해 주었는데, 두 팀 중 한 팀에게는 암호를 몰래 주고받는 속임수를 알려주었다. 이를테면 발을 서로 맞닿게 하고 있다가 중요한 순간에 신호를 보내 정보를 주고받도록 했다.
위 실험에서 비밀 암호를 주고받게 한 목적은 두 사람이 연인처럼 장난을 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웨그너는 포커 게임을 마치고 나서 피실험자들과 인터뷰를 했고, 그 결과는 예상한 그대로였다. 무의식적으로 장난을 친 남녀들이 서로의 매력을 더 높게 평가한 것이다.
오랫동안 수많은 심리학자가 이와 비슷한 다양한 실험을 수행했다. 어떤 실험에서는 초능력을 테스트한다고 설명하면서 서로의 눈을 응시하도록 했고, 다른 실험에서는 전혀 모르는 사람끼리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도록 했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실험은 모두 특정 환경과 행동의 조성을 통해 의도적으로 얼마든지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1875년 미국 최초로 심리학 강의를 시작한 심리학자이다. 그는 1890년 『심리학의 원리(Principles of Psychology)』라는 유명한 책을 쓰기도 했다. 제임스는 ‘감정이란 자기 자신의 반응을 관찰함으로써 경험하게 되는 일종의 결과물’이라는 가정 원칙(As If Principle)을 주장했다.
“곰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도망가기 때문에 곰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달려오는 곰을 보고 도망치는 것과 같이 인간은 어떤 자극에 본능적으로 반응을 보이고, 그 순간 우리의 두뇌가 자신의 반응을 관찰함으로써 특정한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고 제임스는 설명했다. 그의 이론은 여러 심리학자의 실험을 통해 그 타당성이 입증되었다.
현대 심리학은 감정과 행동의 관계를 2차선 도로로 묘사한다. 우리는 행복해서 웃기도 하지만, 그냥 이유 없이 웃을 때 행복감을 느끼기도 한다. 감정이 행동을 유발하기도 하고, 반대로 행동이 감정을 유발하기도 한다. 만약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특정한 행동이 있다면, 의도적으로 그러한 행동을 함으로써 특정한 감정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어떤 성격을 원한다면 이미 그런 성격인 사람처럼 행동하라.
- 윌리엄 제임스
제임스의 이론을 바로 가정 원칙이라고 부른다. 기존의 심리학 이론은 사랑에 빠지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연인의 눈을 애타게 바라보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가정 원칙은 반대로 이야기한다. 즉 사랑에 빠진 것처럼 행동하면 사랑의 감정이 불타오르게 된다고 설명한다. 가정 원칙은 감정이 행동을 유발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감정이 행동을 유발하는 것은 맞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도 제조가 되나요?
유명 심리학 잡지인 《사이콜로지 투데이(Psychology Today)》의 초대 편집자였던 미국의 심리학자 로버트 앱스타인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사랑은 결코 신비로운 감정이 아니며 단 한 사람뿐인 운명의 상대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심리학적 원리에 따라 발전하며 연인처럼 행동함으로써 사랑의 감정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실제로 많은 배우가 함께 촬영을 하다가 사랑에 빠진다. 너무나 아네트 베닝은 영화 〈벅시〉를 찍고 워렌 비티와 결혼했다.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는 영화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에서 부부 역할로 같이 출연했다가 부부가 되기도 했다. 배두나는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 짐 스터게스와 베드신을 찍은 후 연인이 되었다. 이들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연인 역할을 연기하면서 진짜 연인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연애를 잘하는 사람들의 비결은?
연애를 잘하는 사람들은 어떤 상황과 행동이 사랑의 감정을 일으키는지 잘 안다. 그들은 몇 번의 성공 체험을 통해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을 했을 때 상대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킬지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솔로가 되어도 금방 그 상태를 벗어난다.
새로운 상대를 만나면 이전에 효과가 있었던 방법을 다시 사용하며 금방 다시 연애로 진입한다. 스킨십까지 가는 기간도 보통 짧은 편이다. 연인이 된 이후에나 할법한 행동을 만남의 초기 단계에서 시도한다. 그러나 그것이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워서 거절당하는 확률도 낮다.
어떻게 그렇게 잘 할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이전에 여러 번 해보았으니까. 그들은 어떤 행동이 연애로 이끄는지 잘 알고 있다. 연애를 잘하는 사람은 가정 원칙의 초식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고수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만남의 초기 단계에 이미 연인인 된 것처럼 행동함으로써 상대에게 연애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두려움 없는 행동이 사랑을 만든다
연애를 못 하는 사람들도 가정 원칙을 적용하면 커플이 될 수 있다. 가정 원칙을 이해하면 저 3가지 제약들은 사라진다. 행동이 감정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 감정에 과도한 중요성을 매기지 않게 된다. 행동으로 옮기는 데에 감정의 확신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감정 없이 인위적으로 행동하라는 말이 아니다. 행동 없이 상대에게 감정이 차오르기만 기다리지 말고, 행동으로 먼저 표현하라는 말이다. 감정과 행동 양쪽에 똑같이 중요성을 두자는 것이다. 표현되지 않는 감정은 1인칭이다. 1인칭의 사랑은 전달되지 못한다. 감정이 행동으로 표현되면 2인칭이다. 2인칭의 사랑이 관계를 만든다.
연애는 감정과 행동의 상호작용이다. 행동 없이 감정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자신의 행동이 상대에게 어떤 감정을 만드는지 유심히 관찰해보라. 한 발짝 떨어져서 자신의 행동을 관찰하고, 결과를 피드백해라. 피드백을 통해 자신의 행동을 수정해라. 3인칭의 사랑이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킨다.
연애를 잘하고 싶다면 결과를 예상하지 말고 움직여라. 확신 없이, 마음이 가는 대로, 과감하게 행동에 옮겨라. 거절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잊어라. 두려움 없는 행동이 사랑을 만든다. 이미 연인이 된 것처럼 행동할 때 연애가 시작된다.
원문: 마인드와칭
참고
- 리차드 와이즈먼 지음, 박세연 옮김, 『립잇업(Rip It Up)』, 웅진지식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