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이 글은 ‘천년의 상상’에서 펴낸 『1970, 박정희 모더니즘’』(황병주·김원·천정환·김성환·권보드래)의 저자 중 한 명이 발췌·수정한 것입니다. 각 부분의 필자는 문단 아래 표기하였습니다.
세계사적 미스터리, 10.26.
10․26은 단군 이래 최대의 미스테리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굳이 유사한 사건을 꼽자면 한반도를 벗어나 세계사로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브루투스의 시저 암살 정도가 비교될 만하다.
이 사건이 놀라운 것은 최측근의 최고 권력 살해라는 엽기성뿐만이 아니다. 사실 측근에 의해 유명을 달리한 권력자가 한 둘이 아니다. 조선왕조의 골육상쟁만 보아도 권력을 둘러싼 암투는 근친살해도 불사하는 잔인함과 엽기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 다른 사건들은 대부분 인과관계가 비교적 분명한 반면 10․26은 통상적인 인과율로 설명되지 않는 측면이 너무 많다.
대부분의 반역이 다양한 층위의 적대를 기본으로 하여 발생하는 반면 10․26의 두 주인공인 김재규와 박정희 사이의 적대적 관계를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
김재규는 박정희의 고향 후배이자 육사 동기로 보안사령관, 유신정우회 국회의원, 건설부 장관, 중앙정보부장 등을 역임한 이력에서 드러나듯이 박정희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음이 분명했다. 박정희는 김재규를 고향집 막내둥이처럼 아꼈다고 하고 김재규는 법정 최후 진술에서 박정희와는 친형제와 다름없는 사이였다고 진술할 정도였다. (황병주, 9장 ‘충성과 반역 그리고 배반-박정희의 중정부장들’)
내부로부터 붕괴한 유신정권
이렇게 유신체제는 ‘내부로부터’ 붕괴했다. 정권을 위해 대규모 비밀경찰과 고문·검열 체제를 운영하던 중앙정보부장 스스로 자신의 보스에게 총을 쏴버림으로써 유신이 끝났다는 사실이 어쩌면 유신체제에 대한 총괄적이고 강렬한 평가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혹자들이 말하듯 김재규는 ‘의사’도 ‘혁명가’도 아니었다. 김재규는 문학적으로나 정치학적으로 놀라운 일을 실행했으나 그가 불완전한 자신의 ‘의(義)’와 ‘혁명’을 사유한 것은 총을 쏘기 전이 아니라 보안사 감옥에 가고 난 뒤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는 ‘혁명’에 대해서 고교생보다도 못한 유치한 사유를 갖고 있었다. ‘혁명’을 박정희한테서 배웠기 때문이다. (천정환, 1장 ‘박정희 시대를 사유할 다른 시선이 필요하다-‘유신의 모더니즘’, 그 주체는 정권이 아니라 민중’)
박정희 정권을 무너뜨린 건 김재규가 아니라 부마항쟁이었다
전면적인 항쟁이 서울이 아닌 정치적 텃밭 지역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은 내면에서부터의 저항이 이미 대세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로써 부마항쟁은 80년 광주와도 직접 연결될 수 있었으며, 민주화 운동으로서 보편적인 가치를 얻게 되었다.
그런데 반유신의 저항은 하필 이곳에서 일어났을까. 아니, 지방의 저항이 어떻게 유신정권의 종말을 부른 결정적 사건이 될 수 있었을까. 이같은 사태가 서울에서 벌어졌다면 상황전개는 달랐을지 모른다. 여당의 텃밭, 혹은 집토끼쯤으로 여겼을지라도 부산경남은 항상 한국의 변두리였다. 그러나 변두리에서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에 오히려 더 큰 사건이 되지는 않았을까.
정권의 감시와 통제도 주변부 내면의 저항은 소멸시키지 못한다. 지역의 소외된 이들의 심성은 짙어질수록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에 집중된다. 그리고 그 심성은 결정적인 국면에서 보이지 않는 연대를 확인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항의 불길을 일으킨 것이다. 부산에서 마산으로, 대학생에서 노동자로 이어지는 반유신의 심성들은 주변부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그 점에서 부마항쟁은 서울보다 더 큰 저항의 의미를 갖는다. 주변에서 중심을 향하는 힘의 전복적 가능성은 중심에서 주변을 향하는 지배의 힘보다 훨씬 거대했다.
부마항쟁이 가진 의의는 여기에 있다. 4.19, 5.18, 그리고 87년 6월항쟁을 잇는 민주화 운동사에서 부마항쟁은 지역적 특이성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가진 가치의 일반성을 증명한 것이다. 자발적인 저항이 집결하는 장면은 부끄러움과 분노라는 심성이 연대했기에 가능했으며 이 연대는 계층의 차이와 지역의 경계를 넘을 수 있음을 보인 것도 부마항쟁이었다.
유신은 이때 이미 끝나 있었다고 보는 게 옳다. 나약한 이들이 부끄러움과 분노를 고백하며 서로의 ‘안녕’을 물을 때 말이다. (김성환, 27장 ‘자괴감의 이심전심, 유신의 심장을 쏴라!-부마항쟁, 심성의 연대로서의 저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