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지난 8월 21일 맥심코리아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맥심 9월호 표지가 공개 즉시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을 미화한다는 비판이 즉각 일었고, 이에 맥심 측은 여성에 한정되지 않는 “범죄의 한 장면을 극적으로 표현”했을 뿐이라며 다음과 같이 해명했습니다.
“화보 전체의 맥락을 보면 아시겠지만, 살인·사체유기의 흉악범죄를 누아르 영화적으로 연출한 것은 맞으나 성범죄적 요소는 화보 어디에도 없습니다. 일부에서 우려하시듯 성범죄를 성적 판타지로 미화한 바 없습니다. 영화 등에서 작품의 스토리 진행과 분위기 전달을 위해 연출한 장면들처럼, 이번 화보의 맥락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그려넣은 범죄의 한 장면을 극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해명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맥심의 표지는 정확하게 무엇이 문제인지 아래 글에서 다룹니다.
0.
맥심의 ‘나쁜 남자’ 컨셉은, 폭력의 미화라기보단 희화화에 가깝다. ‘나쁜(매력적인) 남자’라는 여성의 판타지를 조롱한 것이지, 폭력을 미화하거나 옹호한 것이 아니라는 반론은 그 조롱 자체의 폭력성과 비정상성은 간과하고 있다. 맥심의 표지는 동기와 수단의 폭력성이 병존하는 그림이다.
1.
맥심의 조크를 비유하자면, 독일 맥주를 좋아하는 유대인에게, ‘그 맛 쫓아다니다가 가스실 끌려갈 수 있다’는 농담을, 심지어 독일인이 한 셈이다. 물론 이런 농담에 민감하지 않은 유대인도 있을 테고, 심지어 독일 맥주를 즐기는 유대인 스스로가 이런 농담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독일의 한 잡지가 유대인들의 독일 맥주 소비가 늘고 있는 것을 풍자하며 이런 농담을 싣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위의 비유에서 보이듯 1) 약자가 심각한 폭력을 당하고 생명마저 잃는 일이, 2) 그러한 폭력을 자행해 온 강자들에 의해, 3) 그것도 약자를 조롱하기 위한 농담거리로 소비되는 것이 핵심이다.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억압-피억압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표현의 폭력이다.
2.
사실 여성들의 ‘나쁜 남자’ 판타지에 대한 남성들의 비난과 빈정거림은 전혀 새롭지 않은 풍경이다. 그런 판타지야말로 여성의 주체성의 결여, 나아가 굴종을 내포하는 반여성주의적인 감수성이라는 주장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여성이 말하는 ‘나쁜(매력적인) 남자’의 요소들ㅡ외모와 능력, 화술과 관계의 능숙함 등ㅡ은 평등한 연애 관계에서 자연스레 선호되는 성적 매력일 뿐이다. 거의 유사한 맥락의, “남자는 곰보다는 여우 같은 여자를 좋아한다”라는 말이 남성의 주체성 결여가 아니듯. 그럼에도 왜 남성들은 소위 ‘인간쓰레기’나 범죄자를 억지로 갖다 붙이면서까지 여성의 욕망의 대상을 왜곡하고 비하하는가?
역으로 이런 남성들이 대단한 미덕인 양 강조하는 남성의 ‘착함’이, 약자에 대한 발군의 공감능력이라거나 투철한 사회 정의 의식이라면 모를까, 범죄 혹은 부도덕한 ‘나쁨’의 여집합이라면 그것은 최소한의 ‘정상성’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정상적이고 평등한 연애 관계에서는, 남성들이 주장하는 ‘착함’이 그 자체로 매력이 될 수 없다. 그것이 매력처럼 보이는 방법은, 남성들이 여성들의 보편적인 욕망을 위험한 것으로 폄하함으로써, 안전한 연애마저 감사할 일임을 역설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나쁜 남자’ 판타지에 대한 남성들의 훈계는, 연애 상대가 여성을 두들겨 패고 죽이지 않는 ‘착한 남성(보통 사람)’인 것만으로 감사하지 않고, ‘감히’ 평등한 연애 관계에서의 아슬아슬한 유희를 요구하는 여성들의 욕망에 대한 호통이다. 보통 남성에 만족하지 않고 아찔한 섹시함, ‘착한 나쁨’을 갈망하는 여성들이 두려운 남성들은, 그녀들이 악질적인 바람둥이나 범죄자에 의해 불행을 겪을 것이라 경고, 아니 저주한다.
3.
여성과 ‘나쁜 남자’와의 연애가 평등한 관계가 아니라고 전제하는 것부터 성급한 편견이며, 설사 남성이 정서적ㆍ물질적 우위에 있는 연애 관계를 꿈꾸는 여성이 있다 한들 그런 환상을 타인(그것도 남성)이 무례하게 계몽시킬 정당성도 없거니와, 그 계몽의 방식이 여성의 생명에 대한 위협 암시라니ㅡ무식하고 무례하기 짝이 없다.
폭력의 ‘미화’라는 정두리의 표현이 아쉽지만, 그녀의 표현의 정교함이 이 문제에 대한 모든 비판 논리의 정교함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정두리 뿐 아니라 맥심을 비난하는 여성들이 느끼는 불편함과 공포는, 이념이나 사상과 무관한, 위협받는 약자가 직감하는 본능이다. 이에 공감하기 힘든 남성들이 문제를 직시하게 하려면, 그 억압을 논리ㆍ개념화하여 전달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친절한 설명은, 남성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존중받을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여성들의 힘겨운 배려임을 기억해야 한다.
원문: 한지은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