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이 얼마 남지 않았던 쌍팔년의 8월 6일 오전, 중앙경제신문 오홍근 부장은 심상치않은 기운에 몸을 움츠리며 걷고 있었다. 월간중앙에 ‘오홍근이 본 사회’라는 칼럼을 연속 게재하면서 군부독재의 그림자들을 비판한 후 협박에 시달려 왔는데 얼마 전 “청산해야 할 군사문화”라는 글을 쓴 뒤에는 대놓고 그 신상을 파악하는 움직임이 감지됐고, 지금 이 순간은 몇몇의 발걸음이 저벅거리며 등 뒤를 따라붙고 있었다.
“대공에서 나왔으니 좀 갑시다.”
마침내 발걸음의 임자가 오홍근을 불러세웠고 오홍근이 신분증을 보자고 뻗댄 순간 무쇠같은 주먹이 날아들었다. 깨어나 보니 병원이었다. 그리고 그의 허벅지에는 길이 30센티미터의 칼자국이 나 있었다. 때려눕힌 뒤 칼질을 한 것이다.
이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달팽이의 유력한 경쟁 상대로 변신하는 대한민국 경찰은 전혀 단서를 잡지 못하고 뭉갰다. 천만다행한 것은 오홍근 부장이 살던 아파트에는 사명감 넘치는 경비 아저씨가 계셨다. 부지런히 아파트 곳곳을 순시하시던 경비 아저씨 눈에 며칠 전부터 요상하게 들락거리고 수상쩍은 행동을 보이는 포니투 승용차가 포착됐고 우리의 정의파 경비원 아저씨는 옹골차게도 차량 번호를 적어 두셨던 것이다.
차량 소유주는 놀랍게도 국군 정보사령부였다. 감히 대북 특수 업무를 다루는 무시무시한 정보사령부를 압수수색할 엄두를 못낸 경찰은 공손히 차적 조회를 요청했고, 정보사령부에서는 다음과 같은 답변이 왔다. “그 번호가 우리 차는 맞다. 근데 그날 운전한 적도 없고 색깔도 다르다.”
하지만 우리의 경비원 아저씨는 확고했다. “50센티 앞에서 쭈그려 앉아 ‘서울 1라3406호 포니2 쑥색’이라고 적었다.” 그런데 정보사에 있는 차량은 진짜로 다른 색깔이었다. 특수부대 ‘프로’님들이 운행일지를 조작한 것은 물론 쑥색 차량을 은색으로 바꿔 버린 것이었다
정보사령부가 아니라는데 거기에 딴지를 걸 경찰도 검찰도 없었다. 그때 중앙일보에 누군가의 익명 제보가 날아들었다. 정보사령부 소속 4명의 행적이 수상하다는 것과 그들의 인적사항이었다. 그래도 6월 항쟁의 뒤끝이었다. 인적사항까지 제시하여 언론사에 날아든 제보를 무시하기엔 사건이 너무 끔찍했고 시대가 조금은 바뀌어 있었다.
내막은 밝혀졌다. 처음에는 오홍근 기자 의 칼럼을 보고 분개한 부대원들끼리 작당한 일이라고 했지만 결국에는 장성급 두 명이 연루되고 정보사령관까지 묵인한 군대의 조직적 범죄로 드러난 것이다.
이때 정보사령관이 이진백. 얼마 전 국방장관더러 “내가 북한에 가서 무슨 일을 하고 왔는지 알아요?” 하며 정전협정 위반하고 북한에 가서 인민군 쓸어버리고 온 일을 자랑하던 이진삼 의원의 동생이다.
이진삼 역시 정보사령관을 지냈었다. 원래 대북 특수업무를 전문으로 하는 부대였지만 정보사 내에는 대남공작(?)을 하는 팀이 따로 꾸려져 있었다. 그들은 뻔질나게 일어나던 운동단체나 재야인사의 집 도난 사건의 주인공이었으며 심야에 단체 사무실을 습격, 죽지 않을 만큼 두들겨 패거나 성폭행을 벌였던 추잡한 짓을 벌인 혐의도 받았던 바, 오홍근 기자 테러도 결국은 그 일환이었던 셈이다.
이렇게 대한민국 국군은 “청산해야 할 군사문화”를 홀딱 발가벗고 그 방울을 우렁차게 흔들어 보임으로써 오홍근 기자의 기사의 진실성을 입증했다.
몇 명의 영관급과 하사관들이 구속됐지만 이 사건의 보고를 받고도 묵인했던 정보사령관 이진백은 전역 후 한국중석 사장으로 갔고 나머지 군인들도 집행유예, 선고유예로 단기간에 죄다 풀려나 원대복귀하거나 민간인 신분으로 정보사령부에 재취업했다.
가끔 대한민국 국방부는 “왜 이렇게까지 우리 말을 안 믿어 주느냐?”고 가슴을 치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 턱을 치면서 “왜 그렇게까지 니들이 했던 짓을 모르니?”라고 일갈하고픈 마음 간절하다. 기자의 기사가 맘에 안든다고 특수훈련을 받은 군인을 시켜 “죽이지는 말고 혼만 내라”고 명령하던 양아치 군대가 1988년 8월 6일 그 마각을 드러냈다.
원문: 산하의 오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