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견과 사실을 구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쉬워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의견은 사실과 섞이면서 그 경계가 흐릿해지곤 한다.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는 걸 늘 조심하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의견을 사실처럼 말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의견과 사실을 구분하려는 태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언제나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의견과 사실에 대해서 HoustonPress에 올라온 Jef Rounder의 글 「No, It’s Not Your Opinion. You’re Just Wrong」을 전문 번역했다.
나는 지난 몇 년간 학생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이메일을 교환했다. 그 와중에 나는 학생들에게 “이건 제 의견인데요”라는 말이 뒤이은 말을 완전히 틀리지 않게 해주는 건 아니라고 화를 냈었다. 그 네 단어의 말(This is my opinion)은 어째서인지 그들에게 정신 나간 말을 토해내는데 일종의 자유 재량권(carte blanche)을 주는 느낌이 들기에 그게 날 더 당황스럽게 만든다. 그리고 정말 날 두렵게 만드는 건, 그 학생들 중 일부가 자신들의 생각과 배치되는 교육을 자신들의 믿음에 대한 공격과 동일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 믹 컬렌(Mick Cullen)
인터넷에서 정상이라고 보기는 힘들 정도로 많은 시간을 논쟁에 쏟았다. 그 논쟁들에서 내가 들은 그 어떤 말보다도 진절머리가 나는 단어는 “의견(opinion)”이다. 의견은, 그보다 좀 더 나쁜 “소신(belief)”은 소셜 미디어에서 그럴싸하게 모든 빈약한 개념들을 방어하는 데 쓰이고 있다.
의견은 틀리지 않는다는 일반적인 개념이 있다. 우리 아버지가 그렇게 얘기했었다. 아마 모든 아버지가 그 얘길 했을 것이고 엄밀한 의미에선 그 말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의견이라는 방패(Shield of Opinion)’ 뒤에 웅크리기 전에 스스로 두 가지 질문을 먼저 해 볼 필요가 있다.
- 그게 정말 의견인가?
- 만약 의견이라면 얼마나 정보를 담고 있는가? 그리고 내가 왜 그 의견을 고수하는가?
“제 의견은 15와 5 중에 5가 더 크다는 것입니다”
먼저 첫 번째 질문부터 도움을 주겠다. 의견은 무언가에 대한 선호나 판단을 뜻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은 검은색이다. 나는 박하의 맛이 최악이라고 생각한다. 〈닥터 후〉는 최고의 텔레비전 드라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의견이다. 이것들은 나한테만 해당하는 것이다. 많은 이가 일반적으로 공유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들은 내가 그렇게 믿는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진실임을 증명할 수 없다. 이런 것들에 대한 의견에선 잘못된 것이 없다. 문제는 잘못된 생각을 의견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발생한다.
만약 당신이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고 하면, 당신은 의견이 아니라 틀린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여전히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고 믿고 있다는 사실이 당신의 오해(misconception)를 정당한 의견의 범위에 포함시켜 주진 않는다. 또한 다른 많은 사람이 그 의견을 공유해준다는 사실이 거기에 정당성을 더해주는 것도 아니다.
미국인 4명 중 1명이 기후 변화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는 갤럽 투표에 대해 라스트 위크 투나잇(Last Week Tonight)에서 존 올리버(John Oliver)가 한 얘기를 보자.
누가 이런 쓰레기 같은 질문을 한 겁니까? 사실에 대한 의견을 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에 대한 의견을 구해야 한다면) 아마 이렇게 질문을 할 수도 있겠죠. “15와 5 중에 어떤 숫자가 더 큽니까?” “부엉이는 실제로 있습니까?” “모자가 있나요?”
남부동맹기에 대한 얘기가 퍼질 때 비슷한 것을 보았을 것이다. 노예 제도가 미국 남북 전쟁을 유발한 주된 이유가 아니었다고 하는 건 당신의 의견일 수 있겠지만 연방 탈퇴에 대한 텍사스의 선언문은 노예 제도를 21번 언급했다(권리는 겨우 6번 언급됐고, 노예 제도와 백인이 얼마나 흑인보다 훌륭한지를 모두 언급하지 않은 문장에서는 겨우 한 번 언급됐다).
내가 유대인 대학살(Holocaust)이 조작된 것이라는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까지 지적해야 할까? 그 의견이 현실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데도?
맞다. 때때로 과학적·역사적인 데이터는 틀리거나 불확실할 수 있고,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할 때도 있다. 물이 얼면 부피가 커진다는 걸 모든 사람이 안다. 다른 것들은 그렇지 않은데 왜 물만 그러는지 알고 있는가? 모른다. 과학도 모른다. 역사학자들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남긴 인종적인 특징(racial heritage)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의견 일치를 이루지 못했고 정확하게 판단하기엔 고대 이집트인들의 그림이 너무 양식화되어 있다.
이와 같은 주제들은 의견을 나누기에 충분히 잘 논의된(ripe) 것들이다. 물은 분자의 모양 때문에 얼었을 때 부피가 커진다. 이집트인들은 나일 강에 정착해 있던 아프리카 흑인들을 추방했다. 의견은 지금까지보다 더 나은 이해가 있을 수 있다는 가정 아래에서 훌륭한 이해로서 위치를 점유하고 있을 수 있다. 여기에 검증은 없다.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바라건대 교양 있는 방법으로 말이다.
세상엔 가치 없는 의견도 있다
이제 두 번째 질문이 등장한다. 당신의 의견은 정보를 담고 있는가? 그리고 왜 당신이 그걸 믿는가? 엄밀히 말해서 의견은 틀릴 수 없는 것이지만, 체계가 없어서 단순히 가치가 없는 의견이 될 수는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닥터 후〉의 팬을 만났다고 생각해보자. 이 팬이 가장 좋아하는 닥터는 데이비드 테넌트(David Tennant)다. 아직까지 잘못된 건 없다. 하지만 좀 더 얘기를 나누자 이 팬은 나에게 자신이 2005년 이전의 에피소드를 본 적이 없고, 라디오 플레이를 들어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그가 계속해서 테넌트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닥터로 꼽을 수는 있겠지만 이제 톰 베이커(Tom Baker)나 폴 맥간(Paul McGann) 혹은 다른 누군가를 꼽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완벽한 세상에서 이런 일을 경험한 사람은 단순히 “글쎄, 내가 본 중엔 테넌트가 제일 좋았어.”라고 말할 것이다. 그 이전의 〈닥터 후〉를 보지 못한 데는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넷플릭스에는 〈닥터 후〉의 에피소드가 많지만 모두 다 있는 건 아니다. 라디오 플레이는 가격이 다소 비싸다 등의 이유도 있다. 협소한 정보로부터 나온 편협한 의견은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이 모든 것을 망쳐놓는 것은 협소한 정보를 실제보다 더 폭넓은 정보로 가정할 때다. 믿음과 그냥 모르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당신이 백인들이 유색 인종들보다 더 많은 차별에 직면한다고 믿기는 쉽지만 그건 흑인과 백인의 실업률에 완전히 무지할 때나 가능하다. 혹은 포춘 500의 CEO 중 겨우 5명만이 흑인이라는 사실에 무지하거나 대통령을 한 43명의 남자 중에 42.5명이 백인(역주: 오바마의 어머니가 백인)이라는 사실에 무지해야 한다.
달리 말해 망상 속에서 의견을 가질 수는 있다. 모두가 그러는 것처럼 우리 삶의 처음 20여 년 동안 의견을 만들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실제로는 당신이 생각한 것이 적은 데이터와 당신의 감정을 기반으로 한 협소한 생각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의 대단히 많은 의견이 정보를 담고 있지 않거나, 그저 완전히 틀린 것으로 밝혀질 것이다.
당신이 믿고 있다는 사실이 더 많은 정당성과 가치를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어떤 면으로 본다 하더라도 누군가 당신의 관점에 빚을 지고 있는 게 아니다. 그건 당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틀릴 수도 있고 무지할 수도 있다. 그런 일은 언젠간 일어난다. 현실은 당신의 감정을 신경 쓰지 않는다. 교육은 당신을 괴롭히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억압받는 소수 민족인 것도 아니다. 미국 가족계획 연맹(Planned Parenthood)이 죽은 아기를 잘라내서 그걸 비싼 값에 팔고 있는 걸까? 그렇지 않다. 그건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다. 그건 당신의 의견이 아니다. 그냥 당신이 틀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