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알고 있듯 한국인은 술을 좋아하고 또 많이 마신다. 2014년 기준 한국의 1인당 술 소비량은 12.3L로 세계 15위, 아시아 1위. 세계에서도 상위권이다.
그에 비해 현재 한국에서 생산되는 술의 종류나 품질은 알코올의 순도가 좋다는 정도 외에는 그다지 다양하거나 높지 못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인데, 특히 막걸리 외의 전통주의 소비는 상당히 적은 편이다(소주를 전통주라 하기는 어려우니).
그러다 보니 전통주의 위상이 높지 못한 근원을 간악한 일제의 탓으로 돌리는 언설이 꽤나 많은데…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던 훌륭한 금송아지를 간악한 일본인들이 빼앗고 탄압했다는 레퍼토리가 항상 그러하듯 “우리에게는 아주 훌륭하고 다양한 술 문화가 있었는데 일본이 탄압하여 그 명맥이 끊겨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 그러니 우리 술을 사랑하자!”라는 식의 이야기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일본이 우리 훌륭한 전통주 문화를 질시하여 고의로 탄압하기라도 하였다는 말인가?
가양주 제조 금지는 세수 확보 정책의 문제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그럴 리야 있겠는가.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와 합병한 후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밀조자들에게 세금을 매기자 봉기가 일어났다. 미국 독립혁명 후 워싱턴 대통령 재임 시에 변경의 위스키 밀조자들에게 세금을 매기자 폭동이 일어나 진압군까지 출동했다.
이전보다 촘촘해진 근대국가의 행정 권력이 지방까지 그 힘을 뻗을 때 예전에는 허용되거나 혹은 방치되던 술의 밀조가 엄히 불허되고 양조 산업에 꼼꼼한 세금이 매겨지는 것은 비단 식민지 조선뿐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일어난 일이다. 스코틀랜드나 미국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위스키 탄압’ 혹은 ‘위스키 문화 탄압’이라 부르지는 않지 않는가?
술은 과세하기에 매우 용이한 물품이다. 술에 대한 과세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불평을 자아냈던 보편적인 현상이다. 이것은 근대국가의 주류에 대한 과세 정책 측면에서 봐야 할 것이지 간악한 일본이 무슨 조선의 훌륭한 전통주 문화의 명맥을 끊으려 했다는 식의 해석은 상당히 괴랄하다.
가정에서 자가소비용으로 가양주 제조를 하는 것은 일본의 식민통치가 끝난 지 50년 후인 1995년까지도 법으로 금지되었다. 가양주 제조는 주로 세수 확보 차원에서 근대 국가가 싫어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그것을 금지하였다고 하여 전통주를 탄압하였다고 하면 옳지 않다.
전통주 문화가 그렇게 대단한 이 민족의 자랑거리인데 해방 후에도 50년이나 ‘탄압’했다니, 한국 정부는 대단한 매국노들이었다는 것인가?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함께 존재하는 세수 확보 차원의 정책에 민족주의를 가져다 붙이니 이상한 해석이 나오는 것이다.
일단 전통주를 일제가 탄압했다는 것에 구체적으로 어떤 소리들을 하고 있는지 보자.
전통주 제조법은 일제에 의해 사라졌는가?
일제가 소주, 탁주, 청주 외의 다른 술의 생산은 금지하였다며 일제에 의해 전통주 제조법이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일제강점기 신문을 찾아보자. 좀 살펴보면 막걸리, 즉 탁주 외에도 약주(藥酒)란 이름으로 전통 조선술이 일제강점기에 대량생산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김천의 과하주, 개성의 송순주, 송로주 등의 전통 조선주들이 상업적으로 생산되어 팔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천 과하주의 경우 일본과 만주국에까지도 수출되고 있다. 조선의 전통주를 일본이 탄압하였다는 것은 결국 거짓말에 가깝다 할 수 있다.
실은 근대식 주세법이 들어오면서 대량생산하여 세금을 내고 대중에게 판매할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술들이 퇴출당했던 것이며, 1995년까지도 일본의 주세법의 골격은 그대로 유지·강화되었던 것이다. 술 좋아하는 한국인들로부터 무궁무진한 세수를 거두어들일 수 있는 방편을 왜 바꾸겠는가?
1940년 기사에 보면 조선 내의 술 생산량이 탁주, 약주 등의 조선주가 200만 석, 소주, 일본식청주, 그 외 기타 술의 생산량이 100만 석으로 총 300만 석 중 2/3가 조선식 술인데, 가양주의 밀주가 금지되면서 다양한 가양주가 소멸한 것은 사실이겠으나 조선식 술의 생산량 자체는 어마어마했음을 알 수 있다.
1940년 당시의 조선인 1인당 술 소비량은 1.5말(斗)이다. 한 말이 18ℓ니 1인당 연간 27ℓ 가량을 소비하였으며 기사에서 ‘조선인은 술 마시는 데 있어서는 어느 나라에도 지지 않는다‘고 논평했다.
일본이 닦아놓은 주세법 체계는 해방 이후에도 유지 강화되었다. 1949년 기사에 보면 밀주 되어 세금 포탈하는 술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며 아예 주류의 국가 전매를 고려한다는 기사까지 있다.
한편 1970년 기사에 보면 1인당 평균 술 소비량이 28.8ℓ로 1940년 술 소비량 27ℓ와 거의 흡사한 수준인 것을 알 수 있다. 과연 술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민족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조선술이 탄압받았다는 이야기는 술의 밀조를 금하는 근대국가의 세금정책과 연관된 문제를 민족주의에 결부시켜 왜곡시킨 것에 불과하다. 그러한 세금정책은 해방 후 50년 동안이나 그대로 유지되었다.
실제로는 경쟁력 있는 전통주 몇몇은 일제강점기에도 생산되어 일본이나 만주국으로까지 수출되었다. 조선 전통주는 퇴출당한 것이 아니라 막걸리와 약주의 형태로 1940년까지도 조선 내 소비 술의 2/3를 점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제강점기 막걸리나 약주의 제조에 사용되는 누룩이 전통 누룩이 아니라 일본에서 수입된 누룩일 수는 있겠으나, 그것은 양조 효율과 관련된 문제지 무슨 일본이 조선의 우수한 민족문화를 말살하려고 조선 누룩을 탄압한 것이 아님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다.
원문: 다만버의 자유로운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