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이 글은 글쓴이 Mad Scientist 님의 분야인 생물학을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다른 분야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대학원 혹은 포닥 과정에서 지도교수를 선택하는 것은 앞으로의 일생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일임. 그렇다면 ‘좋은 지도교수’란 어떤 지도교수인가? 인건비 많이 주시는 분? 논문 잘 내시는 분? 아니면 학생에게 관심이 많으신 분? 아니면 자유방임으로 냅두시는 분?
물론 이런 질문에 대해서는 ‘그때그때 다 달라요‘ 진리의 케바케라는 이야기밖에 할 수 없으니, 어느 정도 컨센서스는 있는 편이다. 일단 이 학생이 앞으로 연구에 뿌리를 박을 것을 결심한 의욕에 넘치는 학생이라고 간주하고(그렇지 않은 경우, 가령 저는 취업하기 위해서 석사가 필요해요 등등의 상황은 좀 다르게 생각해 볼 여지가 있음) 이런 학생이 앞으로 독립적인 연구자로서 성장해 나가기 위해서는 어떤 지도교수를 선택해 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어떤 냥반이 Neuron에 글 쓴 게 있다.
위 링크 잘 읽어보시고 알아서 좋은 지도교수 선택해서 즐 연구 하세염. 오늘은 안뇽~ 했으면 좋겠지만 위 링크를 클릭하기도 귀찮은 당신을 위해서 제가 요약을 해 드리겠습니다. 링크 클릭도 귀찮은 분이 과연 좋은 연구를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드는 분도 있겠지만 이게 다 앞으로 후학들을 게으르게 만들어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는 사악한 과학자의 음모 ㅋ
그런데 위의 링크는 미국의 대학원 시스템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한국의 현실과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고.
분야/랩 선택
일단 꼬꼬마 대학원생으로 들어와서 대학원 생활을 하다 보면 아주 잘 풀리는 사람도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분도 많다. 뭐 연구에 재능이 있는 분도 있으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어서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만 과학자로서 성공의 상당수는 어떤 지도교수/멘토를 만나느냐에서도 많이 결정된다.
흔히 쪼랩 대학원생들이 하는 실수가 있는데, 대학원 들어오기 전부터 나 뭐에 관심 있음 하고 미리 결정짓고 해당 분야 하는 교수님이 있으면 그리로 쪼르르~ 가는 것이다. 근데 사실 이러지 마라. 학부생 쪼랩 시절에 ‘관심이 있다’고 해봐야 그거 사실 별거 아니다. 나중에 살다 보면 더 관심이 가는 분야가 생길 수 있고. 따라서 랩을 결정하기 이전에 도는 랩 로테이션에서 관심 분야 이외에도 여러 랩에서 일해보고 결정하는 게 좋다. 그런데 대개 랩 로테이션 제도가 없는 한국에서는 ㅋ 망 ㅋ
그리고 특히 한국에서는 “이거 하면 전망 좋아여?” 혹은 “우와 줄기세포 하면 취직 잘 된데” 아니면 “암 연구가 역시”, 그것도 아니라면 “나노가 짱이래염” 식으로 유행에 따라서 랩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러지 마라. 님이 석박사 다하고, 포닥하고 등등 취직 전선에 나올 때는 앞으로 한 10년 뒤일 수가 있음. 그런데 지금 학부생 수준에서 ‘전망 좋다’라고 생각하는 것을 지금 선택하면 아마 님이 10년 후에 나오실 때는 이미 디글디글 많은 사람들이 해당 분야에 종사하고 있을 테고, 그 유행이 꺼져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뭐 결국 이런 분들의 상당수는 그때가서 후회한다. 그럼 어쩌라고? 그냥 님 가슴에 손을 얹고 그냥 제일 흥미 있을 거 하셈. 그리고 밤마다 기도하세염. 내가 하는 분야가 나중에 대박이 나라고.
그럼 무슨 분야를 하고 싶느냐에 따라서 결정을 안 하면 어떻게 하라고? 두 가지 기준이 있다. 과학적으로 능력이 있고, 멘토십이 뛰어난 겨수님을 찾아가라.
훌륭한 과학자인 지도교수를 얻으라
Pick an Advisor Who Is a Good Scientist
학생들이 흔히 하는 실수 중 하나가 “좋은 대학에 교수로 있는 사람은 다 훌륭한 과학자”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음. 가령 학생들은 젊은 교수들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 중 상당수는 아직 테뉴어(종신 재직권)를 받지 않은 조교수임. 이들 중 극히 일부만이 테뉴어를 받게 된다. 물론 이 이야기는 젊은 교수를 선택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대신에 테뉴어를 받지 않은 교수를 지도교수로 선택하면, 그만큼 리스크를 안게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테뉴어를 받은 교수를 선택하는 게 상대적으로 ‘훌륭한 과학자’를 선택할 확률이 높은 걸까? 뭐 꼭 그렇지도 않다. ㅋㅋㅋ 어쩌라고 테뉴어 프로세스 자체가 뭐 사람이 하는 일이므로, 별로 훌륭하지도 않은 과학자인데도 테뉴어를 받는 경우가 없는 게 아니다. 아님 테뉴어 받은 다음 그냥 푹 노신다든가. 어쨌든 요점은 소속대학, 지도교수의 직위(테뉴어 여부), 나이 등의 피상적인 정보만으로 어떤 사람이 훌륭한 과학자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럼 어쩌라고. 뭐 결국 어떤 논문을 내는지를 봐야지. 펍메드(편집자 주: 미국 국립 의학 도서관에서 제공하는 생명과학·생물의학 DB)에서 원하는 지도교수 신상을 털어보시라. 그래서 어떤 논문들을 어떤 저널에 내는지를 잘 살펴보자. 여기서 주의할 것은, 내는 논문이 리뷰인지 리서치 페이퍼인지를 보는 것. 뭐, 리뷰 논문을 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결국 어떤 연구자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좋은 저널에 내는 리서치 페이퍼다.
논문의 질도 중요하지만, 양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랩의 구성원 숫자가 많으면 당연히 논문이 많이 나오므로 논문 숫자/랩 구성원 수 를 고려해서 생각해 봐야한다.) 만약 관심있는 겨수님이 5년 동안 논문이 안 나오거나, 겨우 5년에 논문이 하나 나왔다면, 그런 곳은 조심해야 한다. 너님이 그 밑으로 대학원생으로 가셔서 졸업하려면 논문을 내야 할 텐데, 과연 5년 만에 한 번 나오는 그 논문의 주인공이 너님이 될 거라고 누가 보장하겠냐고…
그 외에 또 중요한게 지도교수의 CV를 보는 것. 뭐 그 사람이 노벨상 수상자, National Academy of Science(NAS) 멤버, HHMI 멤버, 아니면 NIH Pioneer award 등등 특출난 경력이 있다고 하면 일단 그 양반은 어느 정도 능력이 검증된 과학자라고 볼 수 있다. 근데 사실 이런 경력이 없다고 우수한 과학자가 아니냐… 또 그건 아니거든여.
가령 갓 교수가 된 젊은 과학자라면 이런 상 받을 만큼 경력이 안 쌓였을 수도 있음. 뭐 그런데 이런 양반 밑에서 첫 제자로 최신기법 이용해서 논문 팍팍 내고, 그러면 거의 꿀빠는 대학원생 생활이 될 수도 있는 거니, 꼭 이런 타이틀만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마시라…
또 중요한 것은 연구비를 어느정도 지원받느냐를 확인하는 것. 미쿡의 경우에는 이런 링크에서 NIH 연구비를 얼마나 지원받는지 액수까지 모두 신상털 수 있다고. ㅋㅋㅋ 듣고 있나 한국 연구재단? 갓 교수가 된 분이 아니고 최소 5년 이상 교수생활을 했는데 위 링크에 이름쳤는데 안나오면… 그런 분 선택하지 마셈. 돈이 없다고 연구를 못 하나염? 하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너님 인건비 안 받고 대학원 생활 하고 싶지 않잖아.
훌륭한 멘토인 지도교수를 얻으라
Pick an Advisor Who Is a Good Mentor
과학적으로 훌륭한 연구자를 선택하면 그걸로 땡인감? 물론 그건 전제조건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중 ‘좋은 멘토가 될 분’ 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뭐 모든 좋은 과학자가 반드시 좋은 멘토가 아닐 수가 있거든…
그렇다면 좋은 멘토가 갖추어야 할 요건은 뭘까? 좋은 멘토는 결국 학생이 과학적으로 중요하면서도 수행가능한 문제를 찾도록 도와주고, 그 문제와 의문을 찾을 수 있는 실험 디자인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학생이 독자적으로 일해서 나중에 독립적인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게 멘토가 할 일임.
좋은 멘토는 과학적으로 시시한 문제를 학생에게 주지 않고, 학생 수준에서 해결할 수 없는 그런 어마무시한 프로젝트를 주지도 않는다. 만약 학생 시절, 혹은 포닥 시절에 중요한 과학적 문제가 무엇이고, 이것을 어떻게 규명할 수 있을지 배우지 못한다면, 아마 그 사람은 나중에 독립적인 PI가 되기도 힘들고, 된다고 하더라도 분명 망할걸?
즉 좋은 멘토라는 것은 학생과 함께 많은 시간을 연구에 대해서 디스커션해야 하고, 실험 디자인 및 해석을 도와주어야 하고, 논문 작성 및 발표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 외에 앞으로 장래를 위해서 보탬이 될 수 있는 여러가지 활동들(조교, 학회 참석, 학교 외에서의 교육 등)에 참석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가령 대학원 도중에 출산휴가 등을 갈 경우가 있는데, 남녀를 불문하고 이런 것에 대해서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몇 년에 걸쳐 진행되는 프로젝트 도중 몇 개월의 공백이 큰 문제가 되겠냐고.
그렇다면 좋은 멘토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뭐 가장 좋은 방법은 지금 현재 혹은 이전에 그 사람 밑에서 있었던 학생, 포닥들과 이야기 해봐야지. 이 사람이 학생들을 충분히 신경써주는 사람인지, 랩 생활이 즐거운지, 랩의 사기가 좋은지, 아니면 구성원들이 서로 돕고 협조적인 관계인지, 혹은 랩미팅 시간에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의견개진을 하고, 새로운 의견과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분위기인지, 그렇지 않고 교수가 너 이거 해 저거 해 하는 분위기인지 등등.
다음으로 살펴봐야 할 것은 포닥과 대학원생(혹은 학부생)의 비율. 아마 랩의 구성원 다수가 포닥인 연구실의 경우, 대개 그 교수님은 일일이 학생들에게 신경 쓰기 싫어한다는 것을 반영하는 걸 수도 있다. 그러므로 대학원생이 랩을 선택할 때 사람이 수십 명 있는(소위 말하는 유명한 대가랩) 큰 랩에 갈 때는 매우 주의해야 한다. 뭐 가장 좋은 것은 랩 로테이션을 해보며 분위기를 보는 거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면, 그 랩 출신의 졸업생들이 결국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연구를 잘 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밑에서 학위/포닥한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크게 다를 수 있다. 가령 그 랩 출신의 사람들 중 약 70% 정도가 독립연구자가 될 수도 있고, 그 비율이 10%가 안 될 수도 있다. 물론 요즘과 같은 상황에서는 제 아무리 멘토링의 신이라고 해도 졸업생의 50% 이상이 자기랩을 갖게 되기는 힘들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랩 출신의 사람 중에서 극히 일부만이 나중에 PI가 되었다면(학교, 기업, 정부연구소 어디든) 그건 별로 좋은 징조는 아닐것이다.
특정한 랩을 평가하는 가장 현실적인 기준은 여기서 나온 논문, 혹은 노벨상 같은 지표뿐만 아니라, 여기 출신들의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일 수도 있다. 물론 학위를 따고 연구직 이외의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지만 이런 경우에도 좀 더 나은 멘토링을 받을 수 있었다면 다른 분야에서 일자리를 얻어도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자신의 장래를 학생의 장래보다 우선시하는 양반은 좋은 멘토라고 할 수 없는데, 그런 사람들을 구분하는 방법이 있을까? 대충 이런 사람들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 학회발표를 하면서 (실제로 일을 한) 학생/포닥의 이름을 전혀 언급하지 않거나, 아니면 나중에 그냥 랩원 전체리스트를 발표하면서 슬쩍 넘어가는 경우
- 학생이 발표를 하게될 때 발표 연습을 같이하지 않는 경우
- 같은 프로젝트를 학생 두 명에게 주고 서로 경쟁시키는 경우
- 무슨 실험 뭐뭐 해라에 대해서 시시콜콜하게 다 정해줘서 이야기하는 경우
- 학생이 논문 쓸 기회를 주지도 않고 자기가 논문 다 써버리는 경우
- 학생이 써온 논문은 책상 위에서 잠자게 내버려두는 경우
- 학생이 나갈 때 진행하던 프로젝트 혹은 시료 등을 가지고 나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경우
그외에도 매우매우 계속 긴데, 나머지는 직접 읽어 보시라. 중간에 뭐 하다가 귀찮아지면 관두는 건 안 좋은 멘토의 특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