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zzfeed에 올라온 Matt Stopera의 글을 전문 번역한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세 개의 챕터로 나눴다. 이렇게까지 될 일은 아니었지만, 인터넷은 신비로운 방식으로 작동하곤 한다. 이 이야기의 어떤 일도 이전에 일어난적이 없었다. 완전히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다. 진짜 대단하달까.
아주아주 오래전 (2014년 1월이다 ㅋㅋ)…
이 이야기는 2014년 초, 뉴욕의 이스트 빌리지에 있는 내가 좋아하는 바인 EVS에서 시작된다. 여태 몇 번 얘기하기는 했지만, 그 바는 St. Marks에 있고 그렇게 재수 없지도 않다. 그 곳에 가지는 않길 바란다. 거긴 내가 가는 바고, 뉴욕에서 사람이 붐비지 않는 바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거긴 가지 말았으면 좋겠다.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때는 2014년 2월 즈음이었고, 내가 20달러짜리 와인을 마시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누군가 바에 들어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내 폰을 훔쳐갔다. 솔직하게 말해서 그는 천재였다. 나는 내 폰을 훔쳐간 그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겠다.
나는 그가 그 날 밤 20개의 폰을 훔쳤다는데 돈을 걸 수도 있다. 그 바는 폰을 훔치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어쨌든, 나는 내 폰에 전화를 걸었고, 곧바로 보이스메일로 연결되는걸 알 수 있었다: 그건 폰이 사망했다는 국제 신호다. 나는 그 폰을 다신 볼 수 없었다.
폰이 완전히 사라졌다. 약 1년 후… 나는 쇼파에 앉아 친구들과 함께 내 새 폰에 있는 사진 스트림을 살펴보고 있었다. 내가 찍지 않은 사진들이 폰에 나타난게 그 때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건 웬 남자가 오렌지 나무 옆에서 20여장의 셀카를 찍은 것이었다. 웃겼지만 무섭기도 했다.
나는 분명 기겁을 했다. 모두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다같이 한 시간 동안 내 폰에 어떤 빌어먹을 일이 생긴건지 추측했다. 우리는 몇 가지 이론들을 상정해봤다. 아이클라우드 사진 스트림에 문제가 생겼거나, 북한의 해킹이라든가, 귀신이 들렸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내 폰은 뭔가에 홀려있었다.
한 달 동안, 오렌지맨의 사진은 계속해서 내 폰에 나타났다. 나는 매일같이 올라오는 사진들에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점점 폰에서 그 남자의 사진을 확인하는게 재밌어졌다. 신비한 일이었다. 내 폰에 올라온 사진 중에는 불꽃놀이를 하는 수백장의 사진들도 있었다 (누가 한걸까?!)
작은 손과…
웅크린 사람이 진짜 더러운 창을 통해 보이는 정말 무서운 사진도 있었다.
나는 내 친구와 얘기를 나누기 전까진 이 이상한 사진들을 가지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내 친구는 나를 기겁하게 만들었다. 그는 나에게 최근에 폰을 잃어버린 적이 있냐고 물었다. 최근은 아니었고, 1년이나 지난 일이었다.
그는 도둑 맞은 아이폰의 종착지가 중국이라면서, 내 폰이 중국에 있을거라고 얘기했다. 사건은 해결됐다. 내 도둑 맞은 아이폰은 중국에 있었고, 이 남자가 여전히 내 아이클라우드에 로그인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애플 스토어를 향했고, 내 예전 아이폰이 온라인 상태라는걸 확실하게 확인했다. 나는 폰을 지워버렸다.
이제 그 폰은 벽돌이 됐다. 내 폰을 가지고 있는 남자는 더 이상 폰을 쓸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안심했고, 행복했다. 나는 내 미스테리를 풀었다. 사건은 종결됐다.
그 후 난 유명해졌다. 나는 버즈피드에 “이 남자는 누구이고, 도대체 왜 이 남자의 사진이 내 폰에 계속 보이는걸까?”라는 글을 썼고, 발행했다. 그게 다였다. 몇 시간만에 나는 중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트위터에서 멘션을 받았다. 그 글이 중국어로 번역돼서 중국인들의 트위터인 웨이보에 올라갔다는 얘기였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들은 내가 오렌지맨을 찾을 수 있게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나는 중국에서 인기 있는 화제가 됐다.
나는 내가 중국에서 유명하다고 말하는 트윗들의 폭격을 받았다 ㅋㅋㅋ
몇 시간 후, 그들은 오렌지맨을 찾았다.
한편 나는 웨이보에 가입했다. 가입 첫날 50,000명의 팔로워를 얻었고, 1주일 쯤 지나자 팔로워는 100,000명이 됐다.
웨이보에서 나는 오렌지맨과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 사람이 브라더 오렌지(Brother Orange)다.
웨이보는 내 폰을 가지고 있는 남자에게 브라더 오렌지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중국 문화에서 형제(brother)는 존중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형제는 정말 좋은 친구라는 얘기다. 오렌지는 셀카에 찍혀 있는 것이었다. 웨이보는 오렌지 또한 아주 좋아했다. 어쨌든, 브라더 오렌지와 나는 몇 주 동안 메시지를 교환했다. 그는 나를 초대했다. 중국 인터넷이 보고 있었다. 나는 날짜를 정했다: 3월 18일로.
브라더 오렌지가 오케이했다.
나는 웨이보에서 놀기 시작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에게 영어를 가르쳐달라고 했고, 나는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들을 나를 “도비(doubi)”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나를 그렇게 부르는 코멘트를 엄청나게 많이 받았다. 그건 나를 중국으로 이끌었다. 그건 기본적으로 콩씨(Mr. Bean) 같은 뜻이었다. 나는 받아들였다.
나와 오렌지 브로(Bro Orange)는 웨이보에서 계속해서 대화를 했다. 우리는 매일 메시지를 교환했다. 우리는 이제 우리가 서로 사랑에 빠지길 원하는 진짜 팬을 갖게 됐다. 나는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걸 믿을 수가 없었다. 반갑습니다, 중국.
나는 내가 가고자 하는 곳에 도착하기 위해서 4개(!!!)의 서로 다른 공항을 거쳐야 했다. 브라더 오렌지의 고향은 메이저우(Meizhou)라 불리는 곳이었다. 중국의 남쪽에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곳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었고, 심지어 중국인 중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 곳엔 450만명의 사람이 산다. 그 얘긴 로스 앤젤레스보다 크다는 얘기다.
한번 계산해봐라. 그게 중국이다. 브라더 오렌지의 고향으로 가는 비행은 정말 끔찍하게 길었다. 먼저 베이징에 가야했고, 그 다음엔 산터우, 그리고 1시간 반 정도 차를 타고 메이저우로 가야했다. 약 20시간이 걸리는 여행이었다. 브라더 오렌지의 친구가 공항에서 우리를 마중나오기로 했다. 또, 일전에 예약해놨던 호텔들을 전부 취소했다. 브라더 오렌지는 자신이 모든 것을 계획해놨다고 얘기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채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브라더 오렌지는 내가 공항에 있을 때, “WELCOME MATT”이라고 쓰여진 현수막 아래에서 찍은 사진을 올렸다. 나는 깜짝 놀랐다. 응?!
여행은 베이징에서 산터우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전까진 아주 평범했다. 나는 그 비행기에서 팬과 처음으로 얘기를 나눴다. 그 여성은 나에게 다가와서 깜짝놀라며 물었다. “Matt? 오 맙소사~!” 나는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비행기 안에서 내가 잠을 청하고 있을 때, 그녀가 내 팔을 톡톡 쳤다. 그녀는 나에게 메모를 남겼다. 엄청나게 기분 좋은 편지였다. 그녀는 “당신의 중국 팬으로부터”라는 사인을 남겼다. 나는 좋아 죽을 것 같았다.
비행은 세 시간 정도 걸렸다. 나는 편지로 받은 어마어마한 흥분을 간직한채 비행기에서 내렸다. 나는 날 기다리고 있는 말도 안되는 일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는 수화물 벨트로 향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카메라 플래쉬가 터지기 시작했다. 나는 카메라와 팬들을 향해 유명인처럼 손을 흔들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 일어난거지?
군중들이 잔뜩 있었다.
나는 브라더 오렌지가 날 환영하기 위해 공항에 나와 있는지는 몰랐다. 나는 완전 깜짝 놀랐다.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정말로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우리의 만남은 순식간이었고 너무 정신이 없어서 난 그 때를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카메라 세레를 받는건 무서운 일이었다! 나는 마침내 킴 카다시안이 로스앤젤레스 국제 공항을 떠나는게 어떤 것인지 이해했다. 그건 좀 난감한 일이다. 비행이 끝나고나면 모두가 그지꼴로 보인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사는게 다 그렇지 뭐. 나는 브라더 오렌지의 얼굴이 붙어있는 차에 올라탔다. 놀라웠다. 나는 사진가들이 떼지어 움직일 때 “차에 탄 유명인의 순간”을 겪었다. 우리는 한시간 반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는 호텔로 급히 떠났다. 모든 것이 미쳐있었다. 브로(Bro)는 내 아이폰을 돌려줬다. 나는 내가 폰을 떨어뜨렸을 때 생긴 움푹 들어간 자국을 알아챘다. 좀 이상한 기분이었다. 나와 오렌지 브로는 통역가를 통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화의 첫 주제는 내 폰이었다. 내가 배운 것은 이렇다:
- 내 폰의 종착지는 홍콩이었다. 홍콩은 도둑 맞은 폰들 대부분의 시작점이다. 폰은 홍콩에서 선전으로 향했다. 선전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중고 휴대폰 시장이다. 선전에 있는 2,000개가 넘는 가게에서 중고폰이 거래되는 시장을 보여주는 엄청난 영상이 여기 있다. 이걸 누가 알았겠는가?!
- 브라더 오렌지의 사촌은 내 폰을 구입해서 그에게 선물로 줬다. 그래서 내 폰은 뉴욕 —> 홍콩 —> 선전 —> 메이저우를 거쳤다.
- 브라더 오렌지가 폰을 받았을 때, 내 모든 사진들은 여전히 폰에 있었다. 내 폰을 훔친 사람은 심지어 사진을 지우지도 않을 것이다. 거기엔 도둑놈의 사진도 있었다. 뭐 이런 개자식이 있는건가.
- 브라더 오렌지는 8월에 폰을 받았다. 이상한 것은 그의 사진이 1월 말이 되기 전엔 내 새 폰에 뜨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건가? 답은 아무도 모른다. 솔직히 말해서 완전히 수수께끼 같다.
- 내가 새로운 폰에서 찍은 사진들은 브라더 오렌지의 폰에도 떴다. 으시시한 일이었다. 그는 그냥 계속해서 지웠다고 말했다. 나는 즉시 내가 내 폰에서 찍은 사진들을 떠올려보기 시작했다. 그가 뭘 봤을까?!?! 골치 아팠다.
우리는 호텔에 들어섰다. 호텔엔 세 명의 카메라맨이 로비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무서운 일이었다. 내 삶은 도대체 어떻게 된건가?! 나는 자러 갔다.
누군가 아침 일찍 내 방문을 두드렸고, 짐을 모두 싸라고 얘기했다. 우리는 이 호텔에 겨우 하루 있었을 뿐이었다. 이건 앞으로도 계속 됐다. 나는 우리가 오늘 뭘 할지 몰랐다. 이 또한 앞으로도 계속 될 일이었다. 우리는 호텔 직원과 함께 사진을 몇 장 찍고 우화 현에 있는 브라더 오렌지 소유의 식당으로 향했다. 우화 현은 1백5십만명이 사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그건 필라델피아와 같은 크기다. 브라더 오렌지의 식당은 강 옆에 있었다. 그는 말 그대로 자신의 식당 이름을 “브라더 오렌지의 식당”이라고 바꿨다. 오 하느님. 대단하다.
우리는 그의 식당으로 향했고, 식당에 들어가자마자 수많은 카메라로 둘러싸였다.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브라더 오렌지는 날 환영해줬고, 우린 차를 마시며 인터뷰를 하기 전까지 5분 가량 우스꽝스럽게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해야했다. 다시 한번, 공항에서와 같이, 미친 것 같았다.
차를 마시면서 나는 똑같은 질문에 계속해서 대답해야만 했다. 중국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음식은 어떤지 같은 질문들 말이다. 나는 이제 왜 마돈나가 똑같은 질문을 여러번 받을 때 지루해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건 정말 지치는 일이었다. 나는 이미 그 질문에 다섯번이나 대답을 했단 말이다. 도대체 유명세가 나한테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건가? ㅋㅋㅋ
20여분간의 인터뷰를 끝내고 우리는 밖으로 나가 중국과 미국의 우정을 기념하기 위해 오렌지 나무를 심었다. 중국/미국의 무언가는 이 여행을 관통하는 커다란 테마가 된다. 미국과 중국이 아주 좋은 역사적 관계를 갖고 있는건 아니지만, 나는 이게 둘 모두에게 “우리는 서로 잘지내.” 같은걸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50명의 사람들이 내가 구멍을 파고 있는걸 보는 것도 웃기는 일이었다.
그리고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됐다. 점심은 브로 뿐만 아니라 내 얼굴을 향하고 있는 20대의 카메라와 함께 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이게 내 점심 시간의 광경이다. 아마 내가 먹는걸 찍은 있는 그대로의 사진이 15,000장은 있을 것이다. 아무도 먹을 땐 멋져 보이지 않는다. 또 하나 알아둬야 하는건, 내가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익숙하지 않은 음식을 먹었다는 것이다. 그건 진짜 중국 음식이었다! 아래에 있는 사진에서 나는 생선회(raw fish)를 먹고 있다. (평소라면) 아마 다른건 몰라도 생선회는 먹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하카(Hakka) 회라고 불리는 지역 음식이었는데 맛있었다. 나는 이제 음식에 대한 인터뷰를 할 때면 “맛있다”보다 더 나은 표현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는걸 깨달았다. 나는 “맛있는 음식이었어요.”라는 말을 1주일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수백번은 말했을 것이다. 새로운 단어를 떠올린다는건 어려운 일이다.
나는 브라더 오렌지의 모든 가족을 만났다. 그는 네명의 아이가 있었다. 무려 네명이었다!!! 그는 매우 멋진 아내와 사촌, 삼촌, 여동생, 형제들이 있었다. 나는 바로 이 가족들이 순수하게 날 환영하고 있다는걸 느꼈다.
점심이 끝났다; 우리는 그의 오리지널 셀카에 나온 실제 오렌지 나무 앞에서 몇 장의 셀카를 함께 찍고 차에 올라탔다. 나는 그의 딸이 내 폰에서 봤던 사진의 대부분을 찍은 사람이라는걸 알게 됐다. 사진에 왜 작은 손이 나왔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유명한 축국 선수의 집에 잠시 들렸다. 혹시나 궁금해할까봐 얘기하자면, 우리는 귀엽다는 생각이 들어서 셔츠를 맞춰 입었다. 축구 선수의 집은 아름다웠고, 활기에 차 있었다.
안타깝게도, 카메라맨 중 한 명이 나를 찍으려다가 미끄러져서 심하게 다쳤다. 모두 진정들하라구! 모두 다 사진을 찍을 수 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여전히) 경쟁이 심했다.
축구 선수의 집을 들린 후, 우리는 돌을 깎는 장소로 향했다. 그 곳에서 나는 거대한 돌 염소를 끌로 조각했다. 몇 가지 이유 덕에 그들은 나에게 그렇게 할 수 있게 해줬다. 나는 내가 정치인이 되어 기자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지역 상점들을 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칭찬했다.
나는 셀카를 찍는 것도 잘 할 수 있게 됐다. 어디에서나 셀카를 찍었다.
마침내 우리는 이 날 일정의 마지막 목적지에 도착했다. 진흙 목욕을 하는 리조트였다. 오렌지 브로와 나는 25명의 리포터들이 우리를 보고 있는 와중에 진흙 목욕을 했다. 아주 우정이 넘치는 자리였지만, 동시에 너무나 이상하기도 했다.
진흙 목욕을 하고 나서 나와 브로가 정말로 끈끈해졌다. 비록 우리가 똑같은 언어로 말하진 않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많은 말을 했다. 그는 언제나 우리가 있는 곳에 대해서 나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가르쳐줬다. 우리는 또한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미쳐돌아가고 있다는데서도 끈끈함을 느꼈다. 미치게 들리는 만큼이나 스팟라이트에 대한 우리 둘의 공감대는 우리가 빠르게 가까워지게 해줬다. 우리는 하나의 팀이 됐다.
그 날 밤 저녁은 많은 술과 달콤한 와인으로 이루어졌다. 중국인들은 축하할 일이 있는 자리에서 술을 마시면서 저녁 식사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끊임없이 건배를 했다. 저녁 식사 자리는 오렌지 브로를 진정으로 알게 된 곳이었다. 이 남자는 먹는걸 좋아했고, 모든 걸 먹었다. 나도 좋았다. 그는 마치 이탈리아 할머니 같은 속도로 내 접시를 채워줬다. 저녁 식사가 끝났다. 우리는 차를 마시고 자러 갔다.
우리는 일찍 일어나서 짐을 챙겼다. 새로운 하루였고, 새로운 호텔이었다. 오늘 우리는 기자 회견 (잠깐 뭐라고?)을 가졌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휴대폰 가게에 멈춰섰다.
휴대폰 가게도 미쳐 있었다. 나는 사진을 찍는 사진사들과 팬들에게 폭격을 당했다. 그들은 중국에서 보낸 시간을 떠올리라는 의미에서 나에게 휴대폰을 줬다. 어느 순간엔 중국에서 다섯 대의 폰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나에게 폰을 줬다. 그리고 우리는 기자 회견을 하러 갔다. 기자 회견은 호텔에서 열렸다. 나는 이게 기자 회견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건 그냥 사전 기자회견이었다. 아…
진짜 기자 회견은 엄청났다.
기자회견은 완전히 진짜였다. 마치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멕시코에서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했던게 진짜였던것처럼 말이다. 내가 회견장에 걸어들어가자 사람들은 환호했다. 카메라가 플래쉬를 터뜨리기 시작했고, “사랑해요, Matt”이라는 보드판을 들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저 배경이 보이나!??! 그 때가 내가 성을 버려도 괜찮겠다고 결정한 때였다. 지금부터 나는 그냥 “Matt”이다. 마돈나, 비욘세, 브리트니, 케샤, 그리고 Matt인 셈이다. 다들 알아들었다.
기자 회견의 하이라이트는 이랬다:
- 내가 중국어로 말할 때면 모두가 환호했다.
- 내가 뭔가를 말할 때면, 사람들이 환호했다.
- 거기엔 내 팬이 있었다. 그들 중 한명은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그녀는 집을 떠났던 적이 없었는데 날 보기 위해 오늘 집을 나섰다고 말했다. 그는 나에게 춤을 춰달라고 부탁했고, 그래서 나는 춤을 췄다. 나는 모두의 앞에서 케이티 페리의 “Roar”에 맞춰 우스꽝스럽게 춤을 췄다. 또다른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거야”의 순간이었다.
- 나는 꿈에서 깨려고 했다. 이게 어떻게 진짜일 수 있겠어?
기자 회견이 끝났다. 우리는 호텔을 떠났다. 두 대의 차와 한 대의 버스엔 이제 내 얼굴이 붙어 있었다. 멋졌다.
그 날의 점심은 전 날과 거의 같았다. 수많은 사진사들이 있었고, 그들이 테이블을 둘러쌌다. 나는 우연히 지방의 술을 보증(endorse)했다. 여행을 하면서 나는 서로 다른 수많은 제품들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냥 모든 것을 보증했다!
나는 이 아기들도 칭찬(endorse)했다. 나는 이제 선거 유세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완벽한 정치인이 됐다.
우리는 점심을 마치고 호텔에 체크인했다. 나는 사인을 했다. 그때부터 나는 모든 사인에 “당신은 끝내줍니다.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에요.”라고 썼다. 그게 내 사인이 말하는 거였다. 중딩스러웠지만, 중국인들은 아주 좋아했다.
우리는 호텔을 둘러보고 이 멋진 약혼 사진 스튜디오 세트를 발견했다. 십여쌍의 커플이 결혼 의상들을 입고 서로 다른 십여가지의 세트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정말 멋졌다. 브라더 오렌지와 나는 모든 세트에서 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심지어 한 신부에게서 면사포를 빌려 쓰기도 했다. 정말 웃겼다. 이 때 나는 오렌지 브로가 정말 쿨하고 재밌는 사람이라는걸 알게 됐다. 그는 웃겼다. 그가 나와 함께 약혼 사진을 찍으면서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는 나와 비슷한 종류의 사람이었다. 그도 완전히 더비(doubi)였다.
삼일째의 나머지 시간들은 호텔을 투어하면서 보냈다. 그들은 나에게 전통 중국 여성 복장을 입혀보기도 했다. 재밌었다. 오렌지 브로도 재밌어 했다. 나는 정말로 이 사람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나는 언어와 문화적인 장벽이 더이상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은 2015년이고 이 곳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었다. 너무 행복했다. 이 사진을 찍기 전에 우리는 각자 빨간 리본에 소원을 적어 나무에 매달았다. 우리는 둘다 우리가 남은 삶 동안 계속해서 친구로 지낼 수 있기를 기원했다.
나는 이 날 내 폰에 대한 얘길 더 들을 수 있었다. 아래에 있는 사진은 브라더 오렌지의 조카와 함게 찍은 것이다. 그는 이 모든 일이 일어나게 한 원인이었다. 나는 내 이야기가 중국인들에게 퍼진 이유 중 일부가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중국의 설날에 들었기 때문이라는걸 알게 됐다. 오렌지 브로의 조카는 실제로 설 명절 첫날밤에 퍼진 내 이야기를 들었다. 이건 우연이 아니라 신호였다. 나는 점차 더 많이 운명에 대한 중국인들의 견해를 믿기 시작했다. 운명은 중국의 문화에서 중요한 것이고 이 이야기가 그렇게 널리 퍼진 또다른 이유이기도 했다. 우리의 삶을 바꾼 이것은 단순히 미친, 랜덤한 우연의 연속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었다 — 운명 말이다.
저녁 식사를 하러 갔을 땐, 열성적인 팬이 거대한 표지판을 들고 우리를 환영해줬다. 나는 나를 몰래 찍은 사진들을 알아채기 시작했다. 정말 재밌었다. 나는 몇몇을 위해 포즈를 취해줬고, 그런 사진을 찍은 사람들은 당황해 했다. 너무 좋았다. 내가 마침내 해낸 것이다! 또한 나는 — 그리고 이게 정신나간 것처럼 들릴거라는걸 알지만 — 유명해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인식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당신은 하나의 사물이 되어버린다. 프라이버시는 없다. 꺼버릴 수 있는 스위치도 없다. 사람들은 당신의 얼굴에 언제나 카메라를 들이대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기묘한 일이었다. 나는 이제 레이디 가가를 이해한다.
우리는 중국 나이트클럽도 갔다. 둘다 완전히 지쳤다. 멋진 하루였다. 이제 자러 갈 시간이다.
이 날은 지역 공산당 리더의 기념 묘비를 방문하면서 시작했다. 나는 내면의 빅토리아 베컴 같은 특성을 보여 진지한 포즈를 취했다.
나는 나의 가장 나이 많은 팬을 만나기도 했다. 그는 78살이었고 내가 뉴스에서 춤을 추는 것을 봤다고 한다. 그는 나와 함께 춤을 췄고, 나에게 이상한 젤리 같은걸 줬다. 재밌는 때였다.
한편, 내 팀은 끝내줬다. 나는 그저 그들에게 환성을 지르고 싶었다. 내 팀은 두 명의 통역사(Camby와 Quingqing)와 버즈피드의 ABe, 그리고 오렌지 브로로 이루어졌다. 우리는 언제나 함께였고 점점 더, 빠르게 가까워졌다. TV에서나 유명인들과 그들의 “팀”을 볼 수 있었기에 그건 재밌는 일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팀에게 감사를 표한다. 나는 이제야 그걸 이해하게 됐다. 미친 상황에서 편안함을 느끼려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나는 내 팀을 사랑한다!
그 날 나는 Citaslow라고 불리는 진짜 아름다운 마을의 여행 대사가 되었다. 늘 그렇듯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내가 여행 대사라는걸 믿을 수 없었다. 또다른 비현실적인 순간이었다. 나는 정중하게 테일러 스위프트의 놀라운 얼굴을 가장하고 영예를 받았다. 나는 이런 일을 점점 더 잘하고 있었다. 우리는 옛날엔 학교였고, 지금은 호스텔과 식당으로 운영되고 있는 곳에서 게임을 했다. 멋졌다. 우리는 자전거도 함께 탔는데, 정말 훌륭했다. 멋졌달까.
나와 오렌지 브로는 점차 서로를 보호해주기 시작했다. 우리는 팀이었고, 둘 중 하나가 원하지 않는 일이 있으면 우리는 그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사진에서도 볼 수 있다. 우리는 점점 더 서로에게 편해졌다. 우리의 웃음은 강요된 웃음이 아니었고, 점점 더 진정을 담게 됐다. 우리는 서로에 대한 감정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건 — 이 말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 브로맨스였다. 확실했다. 그리고 우리는 정말 멋진 차 밭을 보러 갔다.
우리는 수시간 동안 차를 땄다. 경치를 함께 보기도 했다. 그는 나에게 중국 노래를 가르쳐줬다. 그는 나에게 “Ooops!… I Did It Again.”을 가르쳐줬다. 그날 밤, 나는 웨이보에서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받았다. 나를 보기 위해 다섯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와서 내가 묵고 있는 호텔에 도착했다는 메시지였다. 대단한 일이었다. 유명세는 무서운 것이다.
그 날 우리는 노래방을 갔다. 우리는 엄청나게 마셨다. 그는 중국 노래를 불렀고, 나는 미국 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함께 춤을 췄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수박을 함께 먹었다.미국의 노래방은 노래방 게임을 들여놓을 필요가 있다. 나는 그에게 “I Want It That Way”를 불러줬다. 그 날 밤이 끝났다.
오늘은 멋진 날이다. 우리는 내가 여태 본 곳 중 가장 아름다운 장소를 여행했다: 메이저우 근처에 있는 오지봉(Five-Finger Peaks)였다. 나는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사실상 절벽이나 다름없는 산을 다같이 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절벽에 있었다.
조심해요! 조심하라구요! 사진은 나중에도 찍을 수 있어요. 산에서 떨어지지만 마세요!
내가 케이티 페리였다.
이 말도 안되게 아름다운 경관 속에서 거대하고, 푸르른 산을 보고 있자니, 나는 내가 이 장소를 좋아한다는걸 깨달았다. 옆에 있던 브로도 좋았다.
산을 떠나서 우리는 와이너리로 향했다. 중국인들은 와이너리라고 불렀지만, 실제로는 산 아래에 있는 증류주 양조장이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캘리포니아의 와이너리는 결코 아니었다. 나는 거기서 몇 가지 와인을 칭찬했다.
와이너리에서 나는 마치 고위 인사처럼 대우를 받았다. 나는 고위 인사들이나 할만한 일들을 했다. 나는 중국인들처럼 글씨를 써줬고, 내 (이상한) 손글씨로 와인을 칭찬했다. “Nan Tei Wine. 아주 멋져요!” 방 안에 환호가 가득찼다. 나도 기분이 좋았다.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게 믿기지 않았다. 나는 이 모든 일들이 내가 휴대폰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걸 상기했다.
우리는 모두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 사람들은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았다. 나는 내 이름이 끊이없이 불려지는걸 들었다. 모두가 우리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싶어했다. 나는 마치 정치인이 된 것 같았다. 또다른 재밌는 일도 있다: 내 단골 포즈는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들거나 평화 사인을 하는 것이다. 재밌는건 나와 함께 사진을 찍은 사람들이 내가 하는 포즈를 따라한다는 것이다. 레이디 가가의 “손톱을 치켜 세우는 것”과 같았다. 내껀 엄지 손가락이었을 뿐이다. 나는 시대에 뒤쳐졌다. 왠지 내가 싫었다.
그 날 밤, 우리는 노래방을 또 갔다. 우리는 함께 발 마사지를 받았다. 우리는 우리의 우정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 우리는 아무 말 하지 않아도 편안함을 느꼈다. 우리는 함께 할 수 있었고 서로의 사람들과도 즐거울 수 있었다. 우리는 Charlie’s Angels 포즈도 취했다. 나는 우리 둘 모두가 좋다.
모든 것이 변한 날이다. 가장 사적인 하루였다. 나는 이 날의 사진을 많이 갖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정말로 매우 개인적인 날이었기 때문이다. 브라더 오렌지는 정말 멋진 남자다. 그는 훌륭한 아빠고 동시에 자랑스러운 아들이다. 그는 어려운 시기를 보냈었다. 나는 그의 부모님이 두 분 모두 2012년에 돌아가셨다는걸 알았다. 그는 그의 고향으로 이사와 부모님을 돌봤었다. 게다가 그가 어선에 했던 투자들도 결과가 좋지 않았다. 홍수가 난 후 정부에서 그에게 보트를 물 밖으로 꺼내라고 명령했던 것이다. 요즘들어 브로에겐 일들이 전부 좋지 않았던 셈이다. 오늘은 언론들이 마침내 우리를 홀로 두고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여유를 줬다. 나는 우리가 마침내 브로가 원하던 것들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느꼈다. 그는 나에게 자신의 삶을 보여줬고, 그게 우리가 한 일이었다. 그는 나에게 자신의 삶에서 아주 개인적인 부분을 보여줬다. 나는 그가 어릴 적 올랐던 나무와 지역의 사찰, 부모님의 집을 함께 갔다. 우리는 심지어 그의 조상들을 함께 기리기도 했다. 그는 나에게 나는 어떻게 조상을 기리냐고 물었던 순간이 있었는데, 나는 답을 하지 못했다. 미국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나쁜 놈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문화 차이라구! 중국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자신들을 보여주지 않는다. 나는 이제 그의 가족이 됐다. 우리는 형제다.
우리는 그의 사촌 집을 방문했다. 나는 그 곳이 모든 불꽃놀이 사진이 찍힌 장소라는걸 알게됐다. 나는 정말로 오렌지 브로의 가족과 친구들이 좋았다. 나는 주변 사람들로 사람을 평가하곤 하는데, 오렌지 브로는 최고의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모두가 그를 좋아했다. 모두가 그와 함께 있고 싶어했다. 그는 좋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다.
서서히 일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 날 밤은 우리가 함께하는 마지막 밤이었다. 그건 솔직하게 정말로 슬펐다. 우리는 짧은 시간에 엄청나게 가까워졌다. 우리가 만나는 것은 정말로 운명처럼 느껴졌었다. 이건 운명이 맞았다. 우리는 물론 또 한번 노래방에 갔다. 거기서 서로 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서로 선물을 교환했다. 모두가 울었다. 나는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걸 믿을 수가 없었다. 우리를 제외하면 아무도 이런 엄청난 경험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도 함께였다. 하나의 팀이었다. 여행이 끝났다.
작별의 날인 줄 알았다. 나는 혼자 베이징에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오전 3시가 되기 전까진 자러 가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떠나고 싶어하지 않았다. 우리는 7시에 일어나야 했다. 우리는 둘다 숙취에 시달렸다. 우리는 아침을 먹기 위해 만났다. 비행기를 타기 세 시간 전에, 오렌지 브로는 베이징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구입했다. 그가 나와 함께 가는 것이다. 그건 정말로 로맨틱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공항에서 비행기가 지연됐다. 뭘 해야 할까? 우리는 칼리 레이 젭슨의 “I Really Like You”에 맞춰 뮤직 비디오를 만들었다. 그건 만들자마자 아이코닉했다. 나는 정말로 이 남자가 좋다. 그는 나를 이해했다.
우리는 그 날 밤 베이징에 도착했고 좀 쉬고 싶었다. 지난 24시간 우리 모두를 지치게 했다. 우리는 전날 밤 겨우 4시간을 잤을 뿐이다. 완전히 지쳤다.
그 날 밤, 우리는 저녁을 함께 했다. 가장 조용한 저녁 식사였다. 꽤 멋졌다. 그리고 재밌는 일이 일어났다. 왜냐하면 내가 정말 멍청이라서 그렇다. 내가 휴대폰을 식당에 두고 온 것이다. 나는 내가 호텔에 돌아와서야 내가 폰을 두고 왔다는걸 알게됐다. 브로는 완전히 맏형 모드로 변해서 나와 함께 레스토랑으로 뛰어갔다. 물론 폰은 발견했다. 나는 폰을 가지면 안되는 인간이다. 멍청이는 어쩔 수가 없다. 브로와 나는 크게 웃었다. 그리고 우리는 자러 갔다. 다음 날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둘 모두에게 베이징은 처음이었다. 사실 오렌지 브로는 몇 주 전에 TV 쇼에 출연하기 위해 며칠간 머물렀던 적이 있었지만 도시를 여행하진 못했다. 그는 시골 사람이었다. 나는 중국 사람들에게 있어서 베이징에 방문해 천안문 광장에 가는건 “여행의 관례”라는 얘길 들었다. 브라더 오렌지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었고, 말 그대로 상기되어 있었다. 그는 완전히 흥분했고, 행복해 했다. 나도 행복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행복의 사인을 만들었다. 우리가 행복을 느낄 때면 가슴을 치면서 “행복해 행복해 행복해 행복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정말 많이 그랬다. 우리는 잘 감동했다. 우리는 언제나 서로 어깨동무를 했다. 멋진 일이었다. 우리는 정말 가깝다.
우리는 브로의 고향인 메이저우에서 온 여행자 그룹과 함께 했다. 그건 말도 안되게 환상적이었다. 이 여행의 목표 중에 하나는 메이저우를 지도에 표시하는 것이었고, 그걸 우리가 해냈다! 우리 이야기는 중국에서 가장 큰 방송국인 CCTV 뉴스에서 보도됐고, 메이저우는 이제 유명해졌다. 인구 450만명의 “작은” 도시는 마침내 인지도를 갖게 됐다. 하카(Hakka)족 (메이저에 있는 소수 민족) 사람들은 마침내 알려졌다.
우리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는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해준 사람들과 함께 했다: 웨이보 말이다. 웨이보가 없었다면 우리는 서로를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만난 이야기는 웨이보에서 7천만 뷰 이상을 기록했다. 그건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다. 웨이보는 많은 부분에서 버즈피드와 비슷했다. 열린 사무실 공간을 갖고 있었고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젊은 사람들이었다.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중국에서 웨이보는 예전만큼 유명하진 않다. 중국엔 왓츠앱 같은 위챗이라는게 있고, 그게 점점 더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우리 이야기는 웨이보의 힘을 증명했다. 중국 인터넷의 힘 말이다.
웨이보에서 우리는 완전히 유명인 같은 대우를 받았다. 우리는 직원들과 함께 셀피를 찍었다. 엄청났고 미친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이 미친 여행의 완벽한 마무리였다. 나는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걸 믿을 수가 없다. 약 한시간 반 동안 우리는 사용자가 올린 지문을 라이브 채팅으로 대답했다. 기본적으로는 레딧의 AMA와 비슷했다. 수천개의 질문이 있었고, 빠르게 질문이 올라갔다. 방 안의 분위기가 변하고 있었다. 이제 거의 끝났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거기에 있는 동안 또다른 뮤직 비디오를 만들었다. 이번엔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였다.
나와 브로는 서로 따뜻해졌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갔다. 그때부터 그는 나와 수십장의 셀카를 찍었다. 우리는 불안했다. 우리는 서로의 호텔 방에 앉아 30분을 함께 더 보냈다. 이제 곧 작별이었다.
우리 여행의 마지막 아침이었다. 이 때는 통역이 없었다. 때가 됐고, 여행이 끝났다. 더 이상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우리는 차의 뒷편에 함께 앉았다. 우리는 둘다 눈물을 참았다. 우리가 다음엔 언제 만날 수 있을까? 그 만남은 어떤 모습일까? 그가 언제 뉴욕에 날 만나기 위해 올 수 있을까? 모든 것이 막연했다.
그 순간 나는 우리가 깨버린 경계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은 2015년이고 ㅎ대폰과 컴퓨터는 모든 것을 바꿔 버렸다. 언어의 장벽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는 번역 앱을 이용해서 즐겁게 수다를 떨 수 있었다. 모든 것을 위해 앱이 있었다. 어떤 것이든 가능했다. 스티브 잡스에게 감사한다.
우리는 동화책에 나올 것 같은 작별 인사를 나눴다. 그는 게이트 앞에서 기다리며 내가 더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잘 있어요 브로! 예전이라면 이걸로 끝이라고 얘기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제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도 안다. 도대체 누가 도둑 맞은 아이폰이 이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와 문화를 넘어선 진정한 우정을 만들어낼거라고 생각했겠는가? 나는 이 말을 멈출 수가 없다: 이건 말도 안된다(THIS IS INSANE). 나는 챕터 4가 있을거라는걸 안다. 나는 내가 브로를 다시 보게 될 거라는 것도 안다. 이건 운명이다. 나는 이제 운명을 믿는다.
Brother Orange Trailer: A story about one of the most unlikely friendships, that could only happen in 2015.You can read about the story now at: bzfd.it/brotherorange Posted by BuzzFeed IRL on Tuesday, March 31, 2015
Matt과 브라더 오렌지의 이야기는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위에 있는 예고편을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