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입시철만 돌아오면 교사들을 괴롭히는 일이 있다. 원서 작성하는 일이 아니다. 그건 바로 추천서를 작성하고 각종 전형에 필요한 생활기록부의 각종 특기 사항을 입력하는 일이다. 학생들을 위해 추천서 쓰고 생활기록부 입력하는 일을 힘들다고 해서야, 교사의 본분을 다하지 못하는 것 같아 보이겠지만, 실상 추천서나 생활기록부 자체가 힘든 것이 아니라 거기에 써야 하는 사탕발림이 힘든 것이다.
원래 추천서는 문자 그대로 추천할만한 사유가 있을 때 그 내용을 쓰는 것이다. 추천서 양식에도 특별히 추천할 만한 사항이 없으면 쓰지 않아도 된다고 되어있고, 허위나 과장된 사실을 쓰지 않았다는 서약문까지 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교사가 추천서를 써달라는 학생을 냉정하게 거절하고 돌려보내는 경우도 자주 있다. 귀찮아서가 아니다. 추천할만한 사유가 없고, 그렇다고 거짓말로 추천서를 쓸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통하지 않는 이야기다. 학생이건 학부모건 일단 추천서를 써달라고 하면 써야 하며, 일단 쓰기로 했으면 합격할 수 있는 ‘모범답안’ 이나 ‘용한 처방’으로 써주어야 한다. 아예 대놓고 이런저런 내용으로 추천서를 써달라고 요구하는 학부모도 있고, 글 잘 쓰는 것으로 알려진 교사는 쇄도하는 추천서 요청에 수업준비가 힘들 지경이다.
생활기록부도 마찬가지다. 생활기록부가 입시 자료로 활용되는 이유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록이기 때문에 학생의 학교에서의 생활과 학업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종 단체가 주관한 활동이나 시상내역을 모두 무시하고 오직 생활기록부에 기재된 내용만을 입시에 반영한다. 또 학부모 서비스를 통해 생활기록부를 열람하게 하는 것 역시 집에서는 알 수 없는 학교에서의 자녀의 학업과 생활에 대해 파악하라는 것이 목적이다.
감언이설로 꾸며지는 공적 기록
그러나 생활기록부가 중요한 입시자료로 활용되면서 이것 역시 추천서처럼 학생을 합격시키기 위해 온갖 미사여구와 과장된 경력으로 점철된 포장도구가 되고 말았다. 일부 학부모는 자기 자녀에 대해 조금이라도 부정적이거나 평범하게 기술된 부분이 있으면 항의전화를 걸어 문구수정을 요구하기도 한다.
물론 학부모가 교사도 미처 알지 못한 학생의 배경을 알려주어 정확한 내용을 기술해 달라고 요구할 수는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항의전화는 특목고, 자사고 가는 데 불리하니까 바꿔 달라는 것이다. 심지어 1년 전, 2년 전 생활기록부 기재내용까지 좀 더 그럴듯하고 폼나게 바꿔달라고 요구하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다.
이런 풍토에서 어떤 교사도 냉정하게 추천할 만한 학생, 그리고 학생의 추천할만 자질에 대해서만 추천서를 쓰기 어렵다. 어떤 교사도 철저하게 사실에 기반하고 자신의 전문성과 양심에 기반한 객관적인 생활기록부를 작성하기 어렵다. 어느새 추천서와 생활기록부는 서비스가 되고 말았다. 학생이 입시에 유리하도록 도와주는 포장서비스가 되고 말았다.
더 나쁜 것은 학생이 이걸 보고 배운다는 것이다. 생활기록부는 학생에게 가장 중요한 공적 기록이다. 그런데 이 공적 기록이 이해관계나 편의에 의해 얼마든지 과장되거나 미사여구로 꾸며지는 것을 경험한 학생들이 장차 사회에서 공적기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관리할지 걱정스럽다. 더 나아가 이런 일이 절대 용납되지 않는 세계무대에서 활동을 할 때 어떤 실수를 할지 참으로 걱정된다.
학생들의 진로를 위해 바쁜 것은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입시를 위한 거짓과 과장, 그리고 온갖 미사여구와 감언이설 서비스라는 고역은 참으로 견디기 어렵다. 그나마 올해는 추천서를 한 장만 썼고, 더구나 원래부터 추천하고 싶었던 학생에 대해 쓸 수 있었음을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