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문은 앱센터 전문위원이자 앱센터 블로그 필진 고영혁 고넥터(Gonnector) 대표의 블로그 글 ‘스타트업 창업 전에 자신으로부터 반드시 답을 구해야 할 질문’입니다.
트위터의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인 에번 윌리엄스(Evan Williams)가 만든 블로그형 미디어 미디움(Medium) 에는 좋은 글이 종종 올라오기에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는 방문해서 읽곤 합니다. 미디움에서 문득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글이 시선을 확 잡아끌었습니다.
How quitting my corporate job for my startup dream f*cked my life up
번역하면 ‘스타트업 꿈을 이뤄보겠다고 회사를 그만둬서 내 삶이 어떻게 X 됐는가’ 정도의 느낌입니다. 글의 대표 이미지마저 이 제목과 엄청난 앙상블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정말 근래 들어 읽은 모든 글 중에서 가장 몰입해 읽은 글이었습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미국 유수의 MBA를 졸업하고 최고 수준의 컨설팅 회사에 입사해 화려한 컨설턴트의 삶을 살던 글쓴이 알리 메세(Ali Mese)는 자신의 삶에 환멸을 느낀 후 청운의 꿈을 품고 스타트업을 창업했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여러 고난에 허덕이다가 이제 좀 안정을 찾고(여기까지의 스토리도 간결하지만 굉장히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경험에서 배운 몇 가지 것들을 정리해 이야기한 글입니다.
잘난 사람이 좀 고생하다가 역시 잘난 만큼 성공을 이루는 뻔하디뻔한 스토리의 느낌은 없습니다. 아직은 삐까뻔쩍한 성공을 이룬 상태가 아니라 일단 한숨 돌린 정도이기도 하지만, 그가 겪은 ‘이럴 줄은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고통을 굉장히 생생하고 직관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그냥 에피소드의 기술로 끝난 것이 아니라 ‘X 된 것’으로 다소 강하게 표현한, 자신의 경험을 통해 배운 교훈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질문의 형태로 깔끔하게 정리해서 말해줍니다. 역시 뛰어난 컨설턴트 출신답다는 생각도 듭니다.
창업하기 전에 반드시 답을 구해야 하는 5가지 질문
글의 앞부분은 흥미진진하면서도 스타트업 현장에서 창업가의 험난한 길을 걸어본 사람은 누구나도 깊게 공감할 수밖에 없는 내용입니다. 뒷부분에 정리된 교훈은 다시 한번 심금을 울리면서 곰곰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특히나 제 경우 인터넷 포털과 전자상거래 회사에서 ICT 서비스/사업을 만들어가다가, 회사를 나와 커리어 컨설턴트로서 수많은 사람의 커리어와 삶을 살펴보고 연구하고 보살피다가, 창업가로서 스타트업 현장에 뛰어들었기에 메세가 이야기한 창업하기 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5가지 질문이 남달리 더욱 강하게 와 닿았습니다.
과연 어떤 질문일까요? 소비자에게 어필하면서도 최소한의 요소를 갖추어 실제로 구현된 제품(Minimum Vialble Product, MVP), 팀 만들기(Team Building), 비즈니스 모델 캔버스(Business Model Canvas), 창업아이템에 대해 소비자 관점에서 느끼는 가치의 척도(Customer Value Position, CVP), 준비해둔 창업 자금의 소진 속도(Burn Rate) 같은 것들일까요?
전혀 아닙니다. 5가지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 사회적인 압박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Are You Ready For The Social Pressure?)
- 미혼이거나 당신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애인이 있는가? (Are You Single Or Do You Have An Extremely Supportive Partner?)
- 최소한 1년을 버틸 수 있는 충분한 현금이 있는가? (Do You Have Enough Cash To Last At Least A Year?)
- 하루에 서너 시간만 잘 준비가 되어 있는가? (Are You Ready To Sleep Only Few Hours A Day?)
- 성공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How Do You Define Success?)
어떤 느낌이 드나요? 이건 그야말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일상, 삶의 문제입니다. 서비스 디자인이니, 플랫폼이니, 비즈니스 모델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 이전의 삶의 문제입니다. 창업가/기업가로서 스타트업을 만들고 꾸려 나간다는 것은 그 자체를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이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간에 이것이 현실입니다.
3번과 4번 질문은 스타트업 판에 뛰어든 사람이라면 그래도 한 번쯤은 생각해볼 만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그냥 선문답일 뿐이지 이것이 얼마나 지옥 같은 현실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2번 질문은 처음에는 이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다가 창업하고 겪어보게 되면 처절하게 와 닿는 부분입니다. 애인에게 차이는 건 아무것도 아니고 기혼자의 경우 창업했다가 가정이 파탄 난 경우도 심심찮습니다. 제가 아는 여러 기혼자 스타트업 대표님들 중 사업이 어느 기준 이상의 궤도에 올라가신 분들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반려자의 절대적인 지지가 있었습니다.
5번 질문은 약간 추상적이면서도 식상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이 기준을 명확하게 잡지 않고 창업을 한다는 것은 지도도 없고 끈도 없이 한 손으로 벽 짚어가며 걸어갈 생각도 안 한 채로 무턱대고 거대한 미로에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의외의 가장 큰 복병이 바로 1번의 사회적 압박감(social pressure)입니다. 미디움은 단락 별로 댓글을 달고 확인할 수 있는 재미있는 구조를 취하는데, 16개로 가장 많은 (공감의) 댓글이 달린 단락의 내용은 바로…
유일하게 편안함을 느낄 수 있던 것은 몇 안 되는 창업가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뿐이었다. 정말이다. 창업가만이 창업가를 이해할 수 있다.
The only comfortable place was next to my few entrepreneur friends. It was true, only an entrepreneur could understand an entrepreneur.
사회적 압박감에 짓눌릴 때의 도피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회적 압박감이란 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Sooooooooo, how is your business doing?! Is it growing?!”
위 말은 메세의 어머니가 아들내미가 창업하겠다고 선언해서 복장이 뒤집어진 날 바로 다음 날에 전화해서 한 말입니다. 부모님, 연인, 친구, 온갖 지인들… 스타트업이 탄생하고 성장하는 과정은 잘 모르지만 언론매체를 통해 구글이니 애플이니 페이스북이니 하는 이미 성공한 상태의, 이제는 스타트업이 아닌 거대 기업에 익숙한 주위 사람들. 이들의 기대심 가득한 ‘하는 일은 어때? 잘 되고 있지?’는 정말 가슴 정면에서부터 거대한 말뚝 하나가 심장으로 푸우욱 처박히는 느낌으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이 말뚝이 바로 사회적 압박감의 실체입니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성향이 강한 사람일수록 이 사회적 압박감은 가장 견디기 힘든 장해물이 됩니다. 안타깝게도 스타트업을 해보겠다고 하는 예비 창업가의 상당수는 나름 자타가 공인하는 잘난 사람이고 이들의 과거의 삶은 그 잘남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남들과의 비교(자신이 하든 남이 하든)가 친숙한 형태인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어떤 계기로 인해서 남들이 뭐라든 신경 끄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스타일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에 스타트업을 하면서도 이런 사회적 압박감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별로 없었습니다만, 이런 압박감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해서 엄청난 스트레스로 삶이 망가져 가는 창업가들도 주위에서 적지 않게 보았습니다.
스타트업=창업가의 삶
앞서 말했듯이 스타트업은 곧 창업가의 삶입니다. 삶이 망가지면 스타트업도 망가집니다. 스타트업이 망가지면 삶도 망가지지만 불공평하게도(?!) 스타트업이 잘 되어 간다고 해서 삶이 건강해진다고 단언하기는 애매합니다. 여전히 부족한 수면과 해당하는 단계에 새롭게 나타나는 사회적 압박감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삶이 건강해지면 스타트업도 건강해질 확률이 높아집니다. 앞의 다섯 가지 질문은 창업 전 준비에 대한 질문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삶의 자세와 가치관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건 스타트업과 상관없이 적용되는 것이기도 하고, 스타트업이라는 길을 선택한 창업가에게는 스타트업과 상관있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삶에 대한 질문입니다. 커리어 컨설턴트 경험이 있고 지금도 유지하고 있는 제게는 메세의 5가지 질문이 남달리 더욱 강하게 와닿았던 것입니다.
예비 창업자이거나 이미 창업을 했지만 뭔지 모를 혼란 속에 빠져 있는 창업가들은 위 5가지 질문, 특히 1번과 5번을 토대로 곰곰이 자신을 되돌아보시기를 권합니다. 창업 전에 반드시 체크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나름의 체계를 만드는 중인데, 위 다섯 가지 질문에 하나를 추가해봅니다.
언제 기업 활동을 그만둘 것인지 고민해보지 않고는 창업하지 마세요.
죽지 못해 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 못해 질질 끌고 가는 기업의 창업가는 죽지 못해 사는 것과 마찬가지의 삶을 사는 셈입니다. 나름의 기준에 따라 정리해야 할 기업은 정리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 창업가의 삶에서는 가능하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이런 불사조와 같은 삶의 창업가로서 살아가는 인생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