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병 환자 대부분이 발병 초기에 후각을 잃어버리는 증상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후각상실 검사로 알츠하이머병을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을까. 이와 관련된 연구에 따르면 알츠하이머병에 관여하는 뇌 단백질인 ‘타우’(tau)를 과잉생산하는 실험용 생쥐는 후각상실 증상을 보인다고 한다. 따라서 타우가 후각상실의 원인 물질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후각상실이 알츠하이머병이 아닌 다른 환자에서도 발생한다는 점이다. 많은 파킨슨병 환자도 발병 초기에 후각상실 증상을 보인다.
우리의 뇌속에 단단히 기억되면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된다. 이것은 후각기능의 진화론적 이유를 생각해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사슴은 사자의 냄새를 공포감과 함께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 냄새의 효과는 즉각적이다. 뇌가 감지한 라일락 향기는 강렬한 이미지와 감정을 자극해서, 라일락 향기와 연관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냄새로 인한 향수는 언어나 사고에 의해 희석되지 않는다. 보는 것, 듣는 것이 쉽게 기억의 쓰레기더미 속으로 사라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일부 전문가가 ‘아이들에게 어떤 문장을 후각 정보와 함께 주었을 때, 후각 정보를 주지 않았을 때보다 훨씬 더 쉽게 기억하고 오래 간다’고 주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갑작스런 한파에 종종걸음으로 퇴근길을 재촉할 때. 어디선가 낙엽을 태우는 냄새가 나는가 싶더니 갑자기 어릴 적 어머니와 아궁이 앞에 앉아 짚불에 고구마를 구워 먹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코끝을 스친 냄새에 옛 기억이 문득 떠오른 까닭은 무엇일까. 과학자들은 뇌에 향기의 추억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뇌에 새겨진 과자의 향기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Proust)는 어느 겨울날 홍차에 마들렌 과자를 적셔 한입 베어 문 순간, 어릴 적 고향에서 숙모가 내어주곤 했던 마들렌의 향기를 떠올렸다. 프루스트의 머리에 펼쳐진 고향의 기억은 그의 대표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집필로 이어졌다. 이후 향기가 기억을 이끌어내는 것을 ‘프루스트 현상’이라고 부르게 됐다.
과학자들은 프루스트 현상의 비밀을 뇌와 진화에서 찾고 있다.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의 야라 예슈런(Yeshurun) 박사는 이달 17일자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향기와 기억 간의 연관관계를 추적한 실험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16명의 성인에게 사진을 보여주면서 달콤한 배나 눅눅한 곰팡내를 맡게 했다. 90분 뒤엔 같은 사진에 다른 냄새를 맡게 했다. 1주일 뒤 여러 가지 냄새를 맡게 하면서 뇌의 활동을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으로 촬영했다. 뇌의 특정 부위가 작동하면 그쪽으로 피가 몰리는데, fMRI는 이를 영상에서 불이 반짝이는 형태로 보여준다. 실험 결과 참가자들은 1주일 전 두 번의 실험 중 첫 번째 맡았던 냄새에 노출될 때 사진을 더 잘 기억했다. 이때 뇌에서는 기억을 담당하는 영역인 해마에 불이 켜졌다.
특히 첫 번째 맡은 냄새 중에는 곰팡내처럼 기분 나쁜 냄새에 더 강력한 반응을 보였다. 예슈런 박사는 “뇌는 좋든 싫든 가장 먼저 맡았던 냄새의 기억을 각인한다”며 “나쁜 냄새에 대한 기억이 강한 것은 진화과정에서 독초나 썩은 음식물, 천적의 나쁜 냄새를 빨리 알아채야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대로 좋은 향기는 기억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
2007년 3월 독일 뤼벡대 얀 본(Born) 박사는 깊은 잠에 들었을 때 장미향을 맡으면 기억력이 높아진다고 ‘사이언스(Science)’지에 발표했다.본 박사는 실험참가자에게 잠들기 전 카드의 그림과 위치를 외우게 했다. 절반은 자는 동안 장미의 향기를 맡았고, 나머지는 아무런 향을 맡지 않았다. 다음 날 카드에 대해 묻자 깊은 잠에 빠졌을 때 장미향을 맡은 그룹의 정답률은 97%였다. 장미향을 맡지 않은 그룹의 정답률은 86%에 그쳤다. 본 박사는 장미향이 뇌 기억 중추인 해마를 활성화한다고 설명했다.
뇌 감정 중추 자극해 추억 불러
낙엽 태우는 냄새는 군고구마를 먹었다는 단순한 사실만 떠올리지 않았다. 오히려 어머니의 사랑을 받던 따스한 감정이 더 생생했다. 프루스트 효과의 세계적 전문가인 미 모넬화학감각연구센터 레이첼 헤르츠(Herz) 박사는 향기가 뇌의 감정영역에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실험참가자들에게 특정 향기를 맡으면서 감정이 들어간 개인적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자 이번엔 뇌 영상에서 편도의 활동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편도는 뇌의 감정 중추다. 반면 시각적 자극에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헤르츠 박사는 “향기는 감정이나 향수(鄕愁)와 깊이 연결돼 있다”며 “추수감사절 때 오랜만에 찾은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시는 요리나 거실의 양초에서 나는 냄새가 없다면 어릴 적 추억이 떠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향기와 감정의 관계는 뇌의 진화과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헤르츠 박사는 편도가 있는 뇌의 변연계가 원래 후각을 담당하던 조직에서 진화했다는 사실을 들었다. 감정을 경험하고 표현하는 능력은 후각 덕분이라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에 빗대 헤르츠 박사는 “나는 냄새를 맡는다. 고로 나는 느낀다”고 말했다.
2001년 미국 모넬 화학감각연구센터의 레이첼 헤르츠 박사는 이 현상을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연구팀은 사람들에게 사진과 특정 향을 함께 제시한 다음, 나중에는 향만 맡게 했을 때 사진을 볼 때의 느낌을 훨씬 더 잘 기억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므로 어린 시절 뇌에 입력된 마들렌 과자의 냄새 기억은 당시의 다른 여러 기억들과 함께 하나의 사건에 대한 기억으로 연결돼 있었는데, 냄새 기억이 자극되자 이와 연결돼 있는 다른 기억들이 연결되면서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난 것이다. 거꾸로 다른 기억을 자극하면 그와 연결된 냄새 기억이 되살아날 수 있다는 실험결과도 있다. 역(逆) 프루스트 현상인 셈이다.
영국 런던대 제이 고트프리드 교수는 헤르츠 박사팀에게 사진과 특정 향을 함께 보여준 뒤, 나중에 향 없이 사진만 보여줬을 때도 사람들의 뇌에서 냄새를 처리하는 부위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트프리드 박사는 “이번 연구는 하나의 기억으로 연결된 시각, 청각, 후각 정보가 한데 모여 있지 않고 뇌 여러 곳에 흩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므로 뇌에 분산돼 있는 하나의 감각 기억만 자극해도 이와 연결된 전체 기억이 재생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냄새는 어떻게 분위기를 좌우할까? 비밀은 연상학습에 있다. 예를 들어보자. 수술을 받았던 환자 중 나중에 병원 냄새만 맡아도 불안해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병원의 포르말린 냄새가 수술을 기다리면서 불안 ·초조했던 감정과 함께 학습됐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병원 냄새만 맡아도 조건반사처럼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코의 냄새 신경세포는 뇌의 변연계에 존재하는 편도체와 해마에 연결돼 있다. 편도체는 감정을 만들어 내고 해마는 연상학습을 담당한다. 다른 감각은 이처럼 감정과 연상학습을 담당하는 뇌 부위와 연관되어 있지 않다. 오로지 냄새만이 감정과 추억을 자극하는 것이다.
향기 나는 상품 더 오래 기억한다
물건을 파는 매장에서 좋은 향기가 나는 것보다 특정 상품에서 좋은 향기가 날 때 사람들은 그 상품에 대한 정보를 더 오래 기억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주변의 향기는 모든 물건에 대해 좋은 인상을 남기지만 특정상품을 기억하는 데 도움을 주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미시간대학 아라드나 크리시나 교수팀은 151명을 대상으로 두 가지 실험을 했다. 먼저 연구진은 대상자에게 아무 향기도 나지 않는 것과 흔한 소나무향, 흔하지 않은 차나무 향이 나는 연필을 주고 어떤 것을 더 오래 기억하는지 비교했다. 그 결과 향기 나는 연필을 더 오래 기억했으며 특히 흔하지 않은 차나무 향의 연필을 가장 오래 기억했다.
두 번째로 특정 상품에서 향기가 날 때와 주변에서 향기가 날 때의 효과를 비교하는 실험을 했다. 연구진은 향기가 나는 고급화장지와 아무 향기도 나지 않는 고급화장지, 향기가 나는 방과 향기가 나지 않는 방에 실험 참가자를 노출시켰다. 그 결과 상품에서 향기가 날 때 상품과 관계된 정보에 대한 기억이 오래 지속됐다.
크리시나 교수는 “향기는 주변 사물들 중 어떤 상품의 식별력을 높여주는 기능이 있는데 이번 연구로 상품에서 나는 특정 향기가 상품정보에 대한 기억을 높여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며 “향기로 강화된 기억력은 적어도 2주 동안은 지속된다”고 밝혔다. 이 연구결과는 ‘소비자연구 저널(Journal of Consumer Research)’에 발표됐으며 미국 온라인 과학뉴스 사이언스데일리, 과학논문 소개사이트 유레칼러트 등이 2009.12.14일 보도했다.
브랜드 마케팅에도 활용
향기와 감정의 연결은 마케팅에도 활용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닐라 아이스크림이다. 아이스크림용 향료는 수십 가지가 있지만, 바닐라향 아이스크림이 매출의 절반을 확고하게 유지하고 있다. 바닐라향은 엄마의 모유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고 한다. 소비자가 무의식적으로 바닐라향 아이스크림에 친근함을 느끼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브랜드 마케팅에도 향기가 필수적이다. 인간은 정보의 80~90%를 시각과 청각을 통해 얻는다. 하지만 LG생활건강 김병현 향료연구소장은 “브랜드를 오랫동안 기억하게 하려면 향기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청각 정보는 단기 기억이지만 후각은 장기 기억이기 때문이다.
냄새는 기억에 감정을 덧입힌다
간단한 실험을 해보자. 화장실에 가서 한동안 냄새를 맡아보지 못했던 향수나 샴푸, 비누의 냄새를 맡아보자. 만약 그 물건이 가족 중의 누군가가 평상시에 사용하던 것이라면 더 좋다. 이번에는 그 물건을 조용한 장소로 가지고 가서, 뚜껑을 열어놓고 눈을 감은 다음 천천히 그 냄새를 들이마셔 보자.
그 냄새가 불러일으키는 기억에 정신을 집중해보자. 무엇이 떠오르는가? 오래 전의 파티? 로맨틱한 저녁식사? 머리를 감겨줄 때 비누 거품이 눈에 들어갈까 봐 눈을 잔뜩 찡그리던 아이의 얼굴? 어떤 기억이든 그 기억은 생생하고, 자세하고, 감정이 풍부한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에게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Remembrance of Things Past>를 쓰게 만든 것도 냄새(차에 적신 쿠키 냄새)였다. 이처럼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생생한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데 냄새가 강력한 단서로 작용한다는 것을 가리켜 ‘프루스트의 가설(the Prousitian Hypothesis)’이라고 한다.
냄새로 떠올리는 기억은 비효율적
하지만 사실 냄새는 정확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데 있어서는 소리나 영상에 비해 비효율적이다. 브라운대학교의 레이철 헤르츠(Rachel Herz)교수는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는 많은 연구를 실시했으며, 이는 그녀의 책 <욕망의 향기(Scent of Desire)>에도 저술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의 가장 명백한 증거는 위의 책이 나온 후에 논문으로 출판되었다.
이 실험은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진행되었다. 먼저 피실험자에게 살아오면서 겪었던 일 중 ‘캠프파이어’와 관련이 있는 사건을 떠올려보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그 사건(예를 들면, 가족과의 캠핑 여행 등)에 대한 기억을 다음과 같이 평가해보라고 한다. 그 기억이 얼마나 생생하고 구체적인가, 그 기억이 떠오를 때 어떤 감정이 얼마나 느껴지는가, 그 기억이 어느 정도나 떠오르는가. 예컨대 얼마나 그 순간으로 돌아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가를 가늠해보라고 하는 것이다.
그 사건에 대한 묘사가 끝나면, 이번에는 피실험자에게 캠프파이어를 연상시키는 세 가지 형태의 감각적인 단서(캠프파이어를 소리 없이 영상만 촬영한 짧은 동영상, 캠프파이어 현장을 녹음한 오디오 클럽, 냄새 샘플로 주어진 캠프파이어의 냄새)를 제시한다.
그런 뒤 피실험자에게 다시 한 번 캠프파이어의 기억을 되살려줄 것을 요청하고, 역시 그 생생함, 구체적인 정도, 감상, 기억의 정도(범위)를 평가해달라고 한다(이 실험이 끝나면, ‘팝콘’과 ‘갓 손질한 잔디’를 가지고 같은 실험을 반복한다.)
세 가지 감각적인 단서 중 냄새가 가장 생생한 기억을 불러왔을 거라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실제 실험 결과에 따르면, 시각적 단서와 청각적 단서도 냄새와 마찬가지로 생생한 기억을 불러오는 데 효과가 있었다. 이 연구는 냄새가 기억을 생생하게 불러일으킨다는 우리의 직관과 배치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허츠 교수나 다른 연구자들의 과거 연구 결과와는 완전하게 일치하는 것이다.
이제는 감각적 단서에 의해 유도된 기억의 차이란 기억을 불러오는 환기성과 정서적 강도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냄새로부터 유도된 캠프파이어의 기억이 훨씬 더 감정적으로 풍부하고 환기성도 강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캠프파이어의 기억은 후각이나 다른 감각적 단서들이 주어지기 전에 이미 떠올랐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느낌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후각적 단서가 더 감상적인 기억을 불러냈다기보다는 그 기억이 더 감상적이라고 생각하게끔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냄새가 기억을 더 감상적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는 연구 결과는 헤르츠 교수와 동료들이 과거에 실시했던 연구와도 일맥상통한다.
이 같은 사실은 또한 뇌 영상 연구 결과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허츠교수와 동료들이 실시했던 다른 실험을 살펴보자. 연구진은 피실험자들에게 fMRI 스캐너에 들어가게 한 후, 주어지는 후각적 단서나 시각적 단서를 통해 연상되는 개인적인 경험을 떠올리도록 요청했다.
후각적 단서는 피실험자들이 fMRI 스캐너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개인적으로 즐거운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분류했던 향수 냄새였다. 시각적 단서는 그 향수의 병을 찍은 사진이었다.
이 단서들을 준 뒤, 피실험자들에게 이 단서들이 어떤 기억을 상기시키는지, 떠오른 기억이 있다면 그 기억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요구했다.
fMRI 결과는 분명했다. 뇌에서 감정을 담당하는 핵심 영역(편도체)은 향수 병의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 보다 낯익은 향수 냄새를 맡게 했을 때 훨씬 더 활발하게 활동했다(이 활동은 또한 낯선 향수 냄새를 맡게 했을 때 훨씬 더 활발하게 활동했다(이 활동은 또한 낯선 향수 냄새를 맡게 했을 때보다 훨씬 더 커졌다).
이러한 결과는 낯익은 냄새가 감정을 주관하는 뇌 영역의 활동을 유도하는 데 있어서 특별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일상적인 경험과도 일치하는 결과다.
하지만 앞서도 언급했듯이, 이 연구는 또한 냄새에 의해 유도된 기억들은 더 생생하지도, 더 구체적이지도, 더 정확하지도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우리는(그리고 프루스트는)왜 그런 것처럼 느끼는 걸까?
섬광 기억과 냄새의 환영
그 답은 일반적인 감상적 기억의 특징에서 찾을 수 있다. 감상적인 기억은, 사실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보다 생생하고 정확한 것처럼 느껴진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있다. 목격담에 대한 연구를 보면, 감정의 포화상태를 이끈 사건들은 우리가 그 기억을 더 생생하고 정확하다고 믿게끔 만든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감정이 크게 실리지 않은 다른 기억들보다 이런 기억들이 더 정확한 것은 아니다. 개인적인 경험(출산, 범죄 목격 등)이든, 사회적인 의미가 있는 보다 큰 경험(챌린저 호 폭발 사건, 9·11 테러,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 등)이든, 감정이 크게 실린 이런 기억들을 가리켜 ‘섬광 기억(flashbulb memory)’ 이라고 한다.
마치 카메라의 플래시가 터졌을 때처럼, 그 경험의 구체적인 부분까지 기억이 생생하게 각인되기 때문이다.
감정이 실린 경험들을 기억해낼 때, 그 감정까지 기억해낼 수는 있지만, 떠오른 기억의 세부사항들은 그다지 감정이 실리지 않은 기억의 세부사항들과 견주었을 때 대개 큰 차이가 없다. 감상은 기억의 정확성에 대한 우리의 자신감을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놓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냄새로부터 비롯된 기억들은 종종 실제보다 더 생생하고 정확한 것처럼 여겨지게 된다. 냄새는 과거에 있었던 사건의 감상을 환영처럼 되살리고, 이와 더불어 실제 사건의 세부사항들을 사실과는 다르게 회상하게 만든다.
우리가 어떤 사건에서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던 세부사항들을 마치 실제 있었던 것처럼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냄새가 인간의 감정과 대뇌변연계의 반응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강력한 증거다.
인간의 후각은 우리가 살아온 흔적을 기억하는 데 있어서 감정을 덧씌운다. 마르셀 프루스트 역시 이 생각에 동의할 것이다.
원문 : 최낙언의 자료보관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