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광수라는 이름의 영화감독이 있어요. 팟캐스트 좀 들어본 대중에게는 “나는 딴따라다”로 잘 알려진 분일 거예요. 게이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작년에 공개 결혼식도 하신 분이세요. 네, 그분에 대한 이야기에요. 김조감독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저술과 강연과 결혼 등을 통해 성소수자의 인식개선에 열심히 임해주신 분이에요. 지금껏 그가 겪었을 무수하게 많은 부당한 일들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아요.
그런데요.
때는 작년 2013년, 김조감독이 집행위원장으로 있는 <서울LGBT영화제>와 매년 열리는 성소수자의 축제인 <퀴어퍼레이드>(이하 ‘축제’) 사이에 분쟁이 있었어요. 전 김조감독님이 해당 영화제를 도덕적 정당성 없이 법적인 정당성만으로 꿀꺽 챙기신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어요. 네 맞아요. 영화제의 소유권을 둘러싼 싸움 이야기에요. 그 재미있다는 싸움 구경이에요. 신나게 감상해주세요.
성소수자 영화제의 역사
요 부분은 살짝 지루하실 거에요. 역사 이야기거든요. 지금으로부터 무려 14년 전인 2000년, 한국의 성적소수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퀴어문화축제>라는 것을 개최했어요. 그땐 저 같은 트랜스젠더는 어떻게 정의할지 아무도 모르는, 빨간통 파우더의 광고모델이 남자니 여자니 떠들던, 그런 엄혹한 시절이에요.
올해도 축제는 신촌에서 열렸고 혐오세력들이 길막하고 땡깡 부려서 삼보일배를 해도 그거 보다 빨리 갈 행진이 되는 등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게 제 글의 주제는 아니니 생략하구요, 14년 전의 축제와 올해의 축제는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확연히 달랐어요. 동네 경로당 윷놀이 토너먼트 수준의 행사들이 지금은 꽤나 그럴싸해졌어요.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 작은 보폭이지만 발전했어요. 많은 분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어요.
2001년 제2회 <퀴어문화축제>에서는 영화제까지 만들었어요. 무려 출품작 달랑 한 편에 총 관객수 일백명을 자랑한, 무늬도 영화제가 아닌 이름만 영화제였죠. 비록 갈 길은 멀지만, 이제는 후원사도 빠방해졌고 영화도 다양하고 대관도 훌륭해졌어요. 이제는 어디 가서 영화제라고 방귀 좀 뀌고 다녀도 돼요.
그동안 영화제는 계속 축제의 주관이었고 축제의 한 프로그램이었고 축제의 한 팀이었어요. 축제의 팀 형식으로 존재하던 영화제는 2010년도에 따로 법인을 냈어요, 영화제의 더 나은 질적 성장을 위해서이고요, 영화제의 이름으로 사업 신청을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1년 후 2011년 축제 및 영화제는 더 큰 성장과 전문성을 위해 김조감독을 영입하고 그를 집행위원장으로 위촉해요. 하지만 영화제는 아직 재정적 독립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어요. 김조감독 영입 당시인 2011년에 축제는 영화제에 500만원을 지원했구요, 2012년에는 영화제 사무국을 구성하지 못해서 축제 사무국이 영화제 사무국 역할까지 해줬어요. 한집안 식구니까 서로 돕고 살아가며 우리는 한겨레고 단군의 자손이었던 거죠.
이건 아니잖아요!
2013년 4월 초 영화제 포스터가 나왔는데 주관사에서 축제의 이름이 빠진 걸 발견했어요. 축제는 따져 물었죠. 왜?! 그러자 돌아온 답변은 “그거 이제 뺄 때가 되었다.”라는 것이었어요. 그건데 그 결정은 김조감독 혼자 내린 거에요. 당시 영화제 프로그래머도 몰랐어요. 축제도 몰랐어요. 우여곡절 끝에 그 해 영화제는 축제의 일환으로 진행되긴 했어요.
축제는 김조감독에게 연락을 했어요. 독립을 원해서 그렇게 한 것이라면 독립에 대해 긍정적으로 논의를 해보자는 입장이었어요. 사실 영화제의 독립은 관계자들 사이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해도 된다는 합의는 있었던 것으로 보여요. 이미 영화제는 축제의 관리 없이 독립적으로 운영되었거든요. 무려 5개월 후, 김조감독께서 약속을 미루고 미루셔서 9월 중순에야 만남을 가지게 되었어요.
당시 김조감독의 말은 “영화제는 이미 3년 전에 독립했었다”는 거에요. 즉, 김조감독의 합류와 동시에 사업자 등록관계가 바뀌면서 독립이 된 것이라 말했어요. 그것은 독립이 아니다. 축제 내부에서 논의를 해야 하지 않겠냐는 제안에 김조감독측은 그런 절차는 필요 없다는 식으로 대응했어요. 영화제는 독립된 기관이니 축제의 관리를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죠. 한참을 싸우다 영화제 내부에서 일단 논의한 후 다시 이야기하기로 했어요. (당시 회의의 녹취록)
관계자 증언에 따르면, 영화제 내부의 안건은 “영화제가 독립하는지의 여부를 축제에 위임할 것인가에 찬성, 반대”였대요. “우린 독립된 법인인데요, 우리 독립을 축제가 결정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어요.”, “아니, 중요한 문제를 이렇게 결정할 순 없어요!”, “땡. 시간 관계상 그럴 수 있어요. 다수결. 땅땅땅.”
간단히 지지고 볶은 후 축제와 대립하는 방식의 독립을 반대하는 세 명의 활동가가 사퇴했어요. 그 세 명을 제외한 모두는 김조감독이 위촉된 후 영화제에 참여한 사람들이에요. 축제는 김조감독측에 이런 법이 어디있냐며 항의했지만 그런 법은 법전에 있다며 배를 째시라 했어요. 축제는 자신들이 키운 조직을 명의가 내 것이라며 홀라당 들고 튄 김조감독의 영화제와 함께할 수 없었어요. 사퇴한 활동가+알파로 <퀴어영화제>를 급조할 수 밖에 없었어요.
법적으로는 김조감독이 옳아요. 분명 독립된 법인이고 이제 반대파도 다 숙청하셨으니 마음대로 하셔도 돼요. 따지고 보면 김조감독이 무슨 잘못이 있어요? 그 흔하다는 이면계약서 한 장 없이 감독님 믿고 대표직 맡긴 축제 측의 순진함 때문이죠.
영화제라는 사업으로 봤을 때도 영화계 거물이신 거장 김조광수 감독 맘대로 운영하는 게 더 큰 발전을 가져올 수 있어요. 그런데요, 그래도 앞뒤가 맞아야 말이 되는 거죠. 법적인 거 말고요, 정황증거를 보도록 할께요. 핵심쟁점은 “과연 2011년에 영화제는 축제에서 독립한 것인가?”라고 생각해요.
그럴리가 없죠!
김조감독측 주장 1 : 사업자 등록
김조감독님은 3년 전 독립의 근거로 첫째, 사업자등록증을 이야기해요. 자신의 명의로 사업자 등록을 새로 했으니 그것이 독립의 근거라 해요. 2011년 당시 기존의 사업자등록증 대신 새로운 사업자로 등록을 했어요. 하지만 이는 축제에서 공개한 자료에 의해 그 속 사정이 밝혀져요.
원래 영화제 내부 회의에서는 통장 관리 등의 수월성을 위해 그 전에 가지고 있던 사업자의 대표자 명의만 김조감독님으로 바꾸기로 했어요. 그런데 아예 새로운 법인으로 사업자 등록을 한 거여요. 이건 오른손도 몰랐어요. 왼손도 몰랐어요. 그럼 누가 했나요? 애덤스미스가 했나요? 그걸 뒤늦게 안 축제가 따져 물었을 때, 감독님은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인감을 잃어버려서… 어짜피 절차가 똑같아요.’
비겁한 변명입니다!
김조감독측 주장 2 : 구두 약속
김조감독님은 또 독립의 근거로 3년 전의 구두 약속을 언급해요. 축제의 조직위원장으로 알고 있던 한채윤씨에게 집행위원회 체제로의 조직 개편과 상영작의 선정권을 합류의 조건으로 제시했으며, 이를 수락했다 해요. 자신은 그것을 독립을 요구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서로 대화를 받아들이는 ‘온도차’ 때문에 이야기가 다른 것이라 해요. 최근까지도 한채윤씨를 조직위원장으로 알았다네요?
뉘앙스를 잘못 알아들으셨으면 이후에 다시 잘 생각하시면 될 일이에요. 어느 누가 조직 개편과 당연히 집행위원회의 권한인 상영작의 선정권을 독립이라는 단어로 치환해서 받아들일 지는 잘 모르겠어요.
당시도 지금도 축제의 조직위원장은 강명진님이라는 분이에요. 강명진님은 감독님이 합류할 당시 2011년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확인된 것만 9번을 같이 회의를 했어요. 2013년 영화제에서는 폐막 선언을 했고, 2011년 말, 혹은 2012년 초에 김조감독께 축제의 조직에 대한 설명을 조직도 까지 그려가며 설명하신 분이에요. 이 때 분명 영화제는 축제라는 큰 연대체에 묶인 조직이라는 설명도 드렸어요.
김조감독측 주장 3 : 회의록 상의 독립 결정
감독님이 주장하신 마지막 근거는 회의록이에요. 2011년 영화제 준비 회의에서 독립을 결정했다는 거에요. 그것을 근거라 제시하시며 당시 회의록을 보내오세요. 그것을 본 축제는 보내주신 회의록은 축약본이라며 회의록 원본을 공개해요. 원본에는 독립에 대해 논의했지만 재정 지원 등의 문제로 추후 논의한다 나와있어요. 이에 대한 답변은 아직도 없으세요.
십여년을 일궈온 행사를 그동안에 영화 몇 편 출품하고 자기 영화 GV 정도 진행하던 사람에게, 조직 기여도가 <라스트 갓파더>에 감동 받아 눈물 흘린 (돈 아까워서 말고) 관객 비율 보다 낮은 외부인사를 대표로 앉히면서, 받으시오 받으시오, 공짜로 주는 짓을 누가 해요? 그렇게 독립시키고 그해 500만원을 지원하고 다음 해에는 사무국을 대행해주는 건 마더 테레사의 상식도 뛰어넘는 일이에요. 독립을 하자마자 또 인큐베이팅 됐다는 이야기는 워렌버핏도 울고 갈 투자 테크닉이네요 저도 누가 십 년간 키워온 비영리 단체 하나 외부인에게 으리으리하게 쾌척하는 영화계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싶어지네요.
밥그릇 싸움?
이를 두고 영화제의 소유권을 둘러싼 분쟁이라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제가 볼 땐 그건 오해에요. 왜냐하면 축제는 영화제를 소유할 마음이 없어요. 적어도 3년 전 부터 독립에 대한 논의를 해왔고, 지금까지 독립적인 운영을 보장해 왔어요. 축제가 원하는 건 절차를 거친 독립이고, 독립 이후에도 축제에서 시작된 영화제의 역사를 존중하며 연대를 가지고 활동하길 원하는 거에요.
축제는 지속적으로 정당한 절차를 거쳐서 독립을 하라. 함께 논의하자고 제안했지만, 김조감독은 계속 거절했어요. 이상해요. 3년이나 영화제를 운영하시면서 독립성을 침해당할 만한 일이 특별히 있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요. 왜 그러셨을까요? 김조감독님은 입을 열지 않아요. 제가 수차례 요청 드려도 여전히 묵언수행 중이세요. 저도 그래서 예상 밖에 못해요.
왜? : 무지개 공장 공장장은 김조공장장이고 김공장장이니까
여기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바로 <레인보우팩토리>에요. 설립 이후 김조감독님의 거의 모든 행보는 이 회사와 연관되어 있어요. <레인보우팩토리>는 2012년 10월에 설립되었죠. 대표자는 김조감독님과 배우자인 김승환씨에요. 한달 후 영화제의 공식 페이스북에 회사 홍보가 올라왔구요 (링크) <레인보우팩토리> 트위터의 구RT도 있었네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제 포스터에서 축제의 이름을 제하는 사건이 발생해요. <레인보우팩토리>의 설립 시기와 독립을 주장하는 시기, <레인보우팩토리>가 영화제와 밀접하게 연관되는 과정들을 보면 <레인보우팩토리>는 영화제의 독립 논의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소설 함 써봐요.
그에게 영화제란 <레인보우팩토리>의 영화들을 홍보할 수 있는 주요 수단이 될 수 있었죠. 실제로 2012년 부터 일부 그렇게 해 왔었고, 2014년에는 그 행태가 극단적으로 나타났어요. 영화제 출품작이 모두 <레인보우팩토리>의 작품은 아니었지만, <레인보우팩토리>의 주요 작품은 모두 영화제에 출품되었어요. 영화제 기간 전 부터 이후에도 영화제의 소셜 계정들이 <라잇온미> (2012년 개막작 및 2013년 재상영), <로빈슨주교의두가지사랑> (2013년 상영), <원나잇온리> (김조감독 자신의 영화로 2014년 상영), <호수의 이방인> (2014년 개막작) 등의 영화를 홍보했어요.
이것은 영화제 출품작이라는 배경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죠. 영화 수입 시점과 영화제 출품 시점은 조금씩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의 수입사 혹은 제작사가 <레인보우팩토리>에요. 특히나 김조감독님 자신은 2014년의 영화제에서 본인이 감독하신 퀴어영화 중 단편인 <사랑은 100℃>를 제외하고 모든 필모그라피를 선보이시는 기염을 토하세요. (다음 영화 기준)
2012년으로 시점을 옮겨볼께요.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라잇온미>가 상영되었고, 이후에도 영화제의 이름으로 홍보가 되었겠죠? 물론 영화제의 활동은 홍보를 위한 활동은 아니었어요. 지역순회상영 같은 거죠. (링크) 정상적인 영화제 활동이니까요. 다른 공동체 상영들도 많이 했겠죠.
이걸 보고 사업 아이디어가 떠오르신 거죠! 수입하는 영화를 족족족족족 홍보할 수 있는 플랫폼이 보인 거에요! 와우! 천재! 김승환씨와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어떤 길이 보인 거에요! 200년 빈도의 가뭄도 견딜 수 있는 방법! 김승환씨를 대표로 ‘한국 최초의 퀴어 영화 전문 수입사’ <레인보우팩토리>를 설립하고 <라잇온미>를 수입해요. 살펴 보았듯, 이 사업 모델을 2013년, 2014년에도 그대로 구현하죠.
영화제는 그와 김승환씨 등 <레인보우팩토리>의 구성원들에게 사회적 직위를 줄 수 있는 플랫폼이기도 했어요. 특히나 김조감독에게는 집행위원장이라는 고추장급 직위요. 김승환씨는, 물론 결혼식의 영향도 있지만, 갑자기 미디어 노출도 잦아지시고 직함도 여러개 생기셨죠. 영화제가 축제에 종속된 조직인게 싫었던 거에요. 김조감독 자신이 대빵이 아닌 것으로 비추어지는 게 싫었던 거에요. 모든 대표성이 자신에게 있기를 바란 거죠. 아주 극단적인 형태의 자리욕심이죠.
또한 이러한 식의 운영이 감시받는 걸 원하지 않으셨을 수도 있죠. 김승환씨는 <레인보우팩토리>와 영화제 이전의 영화계 경력이 전무한 분이에요. 대학생이었죠. 그런데 이 분? 이번에 베를린 영화제 테디베어 어워드의 심사위원까지 하세요. 와~ 자리 욕심 낼 만 하네요.
그들에게 중요한 건 독립이고 뭐고가 아니에요. 애시당초. 마음대로 굴릴 수 있는 ‘플랫폼’이죠. 아! 그 욕심 덕분에 한국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큰 족적 남기시게 생겼어요.
현재까지의 진행상황
때는 약 한달 전 6월 중순이었어요. 제가 블로그에 문제 제기를 했어요. 그리고 감독님의 답변을 요청했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답변이 없으세요. 대신 제 문제 제기가 이 바닥에서 꽤나 공론화가 되었어요. 중재단이라는 것이 만들어져요. 정황상 김조감독님이 명망있는 분들 연락 돌려서 도와달라고 하신 것 같아요.
이 전 까지 김조감독님의 대표성 때문에 다른 퀴어 운동의 동력 상실을 우려해 크게 문제 삼지 않았던 축제는 이 것을 계기로 입장서와 당시 자료를 공개했어요. 여전히 감독님은 중재단의 그늘에 숨어 계셔요. 중재단이 요청한 자료는 제출하셨지만 그 공개는 거부했어요. 비공개 이유는 더 큰 논란이 있을 수 있어서래요. 공론화 하시겠다고 저에게 약속 하신 분이…
성소수자판이 이렇게 소유권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정도로 파이가 커진 것을 기뻐해야 할까요? 그게 기뻐도 그 파이 김조감독님 거 아니죠. 제 것도 아니고 축제 관련자 누군가의 것도 아니에요. 감독님이 그거 뜯어 드시고 싶으시면 지금까지처럼 영화 만드시고 책 쓰시고 강연 다니시면 돼요. 저도 이렇게 트랜스젠더입네 하고 다닐 수 있는 거, 그 성과 뜯어 먹는 거에요. 커뮤니티가 일임한 조직을 홀라당 잡수시라고 커진 파이는 아닐 거에요. 김조감독에게 일정 정도의 대표성을 부여해준 것은 커뮤니티를 위해 봉사할 기회를 준 것이지 커뮤니티 자체를 헌납한 거 아니에요.
하루빨리 감독님측의 자료가 공개되어 이런 제 오해가 풀어졌으면 좋겠어요.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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