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전 한 율법교사가 예수님에게 시험삼아 물었다.
“선생님, 율법 가운데 어느 계명이 중요합니까?”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 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으니,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으뜸 가는 계명이다.
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은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한 것이다.이 두 계명에 온 율법과 예언서의 본 뜻이 달려 있다. [마태복음 22:36~40]
성경에 많은 가르침이 있어도, 예수님은 명쾌하게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이 두 계명이 가장 중요한 계명이라고 말씀하였다. 하지만 현재 기독교인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측정할 수 없으니 말할 수 없다치더라도, 바로 자기 주변에 보이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에는 명백히 실패하는 것 같다.
총동원 전도 주일이나 특별한 전도집회를 앞두고 교회에 호감을 나타내는 잠재적으로 교인이 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 아니면 교인들은 직장동료든, 바로 옆에 사는 이웃이든 별로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교회를 안 다니는 이웃의 삶에 대해서는 아예 무관심하거나, 신촌 퀴어 퍼레이드를 통해 드러나듯 신앙적으로 자신이 용납할 수 없다고 규정하는 타자에 대해서는 이웃이라고도 여기지 않으며 극도의 혐오심만을 드러낸다.
이웃의 생각과 가치관이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그 모습 그대로 이웃들을 존중하고 너그러운 사랑과 관용으로 함께 어울리는 교회와 교인들의 모습은 여간해선 찾아보기 힘들다. 교회에 충성스러운 교인들은 그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교인들하고만 사귀며, 교회 일에만 몰입하고,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이 없어서 교회 울타리 너머에 있는 이웃들의 삶에 관심이 없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내가 외면했던 이웃들에 대한 나의 부끄러운 이야기이다.
용산 남일당의 이야기
2009년 1월20일, 난 통영에서 이틀째 단기선교중이었다. 사역을 마치고 하루의 피로를 풀겸 들른 목욕탕에서 TV를 통해 용산참사 뉴스를 보았다. 용산역 바로 앞 아주 익숙한 거리, 한강로2가에 위치한 남일당 건물에서 경찰, 용역, 세입자와 전국철거민연합회 회원들의 충돌가운데 대형화재가 발생해서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부상을 입었다.
TV화면에 비친 거센 불길은 통제할 수 없는 듯 했고, 결국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교회가 현장 근처이기도 하고 아주 낯익은 거리라 충격이 컸지만 나는 왜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는지 자세히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흔한(?) 건물주나 재개발조합과 세입자들간의 갈등가운데 우발적으로 갈등이 심해져 그런 일이 벌어졌을 거라는 것을 기사의 제목들로만 피상적으로만 추측할 뿐…깊이 관심을 두진 않았다. 안타깝긴 하지만 당시 살아남느냐 마느냐 고군분투하고 있던 개인사업과 내 앞가림이 더 급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얼마 안있어 사무실을 옮겨야 할 일이 생겼다. 마침 교회와도 가깝고 내 거처와도 가까운 넓고 괜찮은 사무실이 있어 계약을 했는데, 공교롭게도 그곳이 남일당 사고 현장에서 채 1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남일당 사고 후 유족들과 그들을 돕는 시민단체, 전철연 회원들, 천주교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은 남일당 건물 1층에서 추모 미사 드리는 처소와 농성장 겸 숙식을 겸하고 있었고 난 매일 그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난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매일 그 앞을 지나며 피해자 유족들이 그 거리에서 노숙하고, 추모 미사를 드리며, 집회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그러면서 점차 그분들의 슬픔 가득한 표정과 외롭고 고단한 싸움이 마음 속에 남기 시작했다. 점차 관심을 가지고 인터넷으로 ‘남일당’사태에 대한 글과 기사들을 상세히 찾아보았다.
남일당 사태가 벌어진 전후사정을 자세히 알아 보면서 경찰이 필요 이상의 과도하고 무리한 진압을 시도했다는 점(이 부분은 2012년 개봉한 다큐영화 ‘두개의 문’에서 상세히 다루고있다),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그분들이 너무도 억울하게 삶의 거처를 빼앗겼다는 점, 그분들이 요구한 것은 최소한의 생존권이었다는 것을 하나하나 알아가며 분노했다.
‘왜 국가 공권력은 부자와 강자의 편에만 서는가?’라는 회의와 함께, ‘이 지역에서 가장 크고 영향력있다고 자랑하는 대형교회인 우리교회는 왜 이들을 돕지 않을까?’라는 궁금증이 솟아났다. (내가 다닌 교회와 남일당은 버스정류장으로 두 정거장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그리고 ‘시스템과 제도의 부조리함에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을 위로하고 돕는 것에는 무관심하거나 무력한 기독교인과 교회의 역할’에 대해 점차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남일당 앞 거리에서 드려지던 추모 미사 곁을 지나가는데 내 앞에 걸어가던 아저씨들의 대화가 내 귀에 꽂혔다.
‘천주교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은 저런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 항상 앞장서는데…개신교 새끼들은 코빼기 한번 안비춘단 말야’
‘맞아, 그 새끼들은 교회예배당 큰 거 짓는 거 빼곤 관심없잖아’
그분들 바로 뒤에서 걸어가던 난 얼굴이 화끈거려서 일부러 다른 골목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더는 그 아저씨들의 대화를 들을 자신이 없어서…
얼마 후 다시 사무실을 옮겨서 그곳을 떠난지 얼마 안되어 용산참사 유족들과 정부측과의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으나 ‘남일당’은 내가 왜 이 사회의 부조리와 시스템의 문제에 대해 알아야 하며, 관심을 두어야 하는지, 이런 사안에 대해 기독교인과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했다.
남일당에서 목격한 고통받는 이웃들의 모습은 내 신앙의 관심과 방향이 ‘지금 이 사회에 고통받고 있는 이웃들’에게 눈을 돌리게 되는 전환점이 되었다.
※ 노숙인 김웅래 아저씨: 기독교인인 내가 외면한 이웃으로 이어집니다.
burberry outlet onlineBreezy Style in a Gucci Handba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