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나는 자신의 능력에 비추어 조금 만만한 판을 골라 승부를 거는 것이 승리의 지름길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라는 것은 저 글을 쓴 양반의 지론이고 본 블로그 주인은 여기에 반드시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어쨌든 한때 축구천재라는 말을 들었던 박주영이라는 선수가 슈팅 한번도 못하는 잉여원탑 공격수로 전락한 데에는 아래 세 가지 요인이 크다는 것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1) 아스날에서 주전경쟁에 밀려 벤치신세만 진 것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전으로 뛸 수 있는 임대에 적극적이지 않고 미적미적거린것
(3) 결국 몇 년 동안 제대로 경기를 뛴 적이 없는 선수가 된 것
월드컵이므로 너님까지 축구이야기 할거임? 아, 본 블로그 주인은 축구에는 그닥 관심이 없다. 단, 박주영의 처지를 우리분야에 비추어 보면 몇 가지 생각해볼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본인이 관여하는 생명과학은 특히 더 그렇지만 한국에서 이공계에서 연구를 한다고 한다면 학위과정이 되었건, 혹은 포닥과정이 되었건 언젠가 ‘빅리그’ 에서 한번 뛰어보는 경험을 갖는 것이 중요하게 되었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아마도 학위과정에서 어느정도 성과를 내서 드디어 박사를 취득한 사람이라면 어느정도 자신감도 붙었을테고, 따라서 해당 분야에서 다들 알려진 유명한 기관에 있는 유명한 빅가이 랩에 들어가서 중추신경 어쩌고 하는 논문도 팍팍 내고~ 이러한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을 것이다. 마치 축구선수가 K리그 혹은 다른 해외리그에서 어느정도 활약을 한다면 소위 말하는 빅리그의 유명팀에 들어가서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와 함께 뛰고 싶은 것처럼 말이다.
누구나 이러한 빅 랩의 장점은 다 알고 있다. 일단 보스가 유명하므로 재정적으로 안정되어 있으며 (어느날 갑자기 그랜트가 리뉴가 안되서 너네들 빨리 자리 알아보삼 하는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이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실감할 듯), 명성이 있으므로 코웍하기도 쉽고, 리뷰어들의 되도 않는 딴지를 피하기도 쉽고, 테크니션 등의 풍부한 인프라와 시설을 갖추고 있고, 네트워크가 빵빵하여 나중에 자리잡은후에 코웍하기도 쉽고 등등등…
…..학위를 받고 어느정도 성과를 내서 이러한 빅 랩에 들어가기로 하고 오퍼를 받았다고 하자. 여기서 한번쯤 생각해보자.
“당신은 ‘박주영 박사’ 가 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마치 아스날과 같은 빅 리그의 명문팀이 풍부한 인적자원이 있어서 까닥하면 주전경쟁에서 밀려서 박주영처럼 벤치만 열라 엉덩이로 데우고 있는 신세가 될수 있는 것처럼 이러한 빅 랩도 인적 자원은 풍부하다.
물론 연구실은 축구팀처럼 11명만 경기장에서 뛰고, 나머지는 벤치에 앉아있는 상황은 아니기에 일단은 어떤 연구실에 들어가든 뭔가 연구를 하긴 하겠지만, 이러한 연구실에도 엄연히 ‘주전’ 은 존재한다. 즉 연구실을 이끌면서 팬시한 스토리를 가진 논문을 팍팍 뽑아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째 일은 열라 많이 하는 것 같고, 집에 가는 시간은 맨날 10시이고 휴일도 없이 일하지만 결과는 쉽사리 나오지 않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기껏 일을 해서 데이터를 만들었더니 일도 많이 안하고 세미나 시간에 뺀질뺀질한 질문만 하던 친구가 나님 제 1저자, 너님 제 4저자 쳐드삼 하고 ㅋㅋ 이런 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좀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가부다 하고 휴일도 없이 일은 해보지만 논문은 없고… 이게 다 ‘박주영 박사’가 되는 길이다.
(아마 축구선수들도 비슷한 상황이 아닐까. 이런 명문팀에 들어갔더니 주전경쟁 밀려. 그래서 훈련 좀 오버함. 부ㅋ상ㅋ 시즌아웃. 이런 경우 많지 않은가)
이러한 빅 랩의 또 한가지 특징이라면 인적자원이 많으니 여러가지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의 프로젝트들도 많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프로젝트들 중에서는 포닥이나 박사과정 등의 아이디어로 진행되는 것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고. 이러한 프로젝트들을 얻어걸리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아마 보스 입장에서는 만만하고 어리버리한 외국에서 갓 온 포닥 누군가에게 던져주는 것이 제일 손쉽겠지? ㅋ
개중에는 이런 것을 성공해서 하이 리턴을 챙기는 사람들도 있겠지. 그러나 그런 사람들보다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하이 리스크를 짊어진다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한다. PI의 입장에서는 열명의 포닥이 하이 리스크 프로젝트에 뛰어들어 한 명이 성공하면 그건 성공이지만, 아홉명의 포닥은 걍 인생 몇년 낭비한 것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된다.
게다가 해외구단에 입단한 축구선수들이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듯이 (갸네들이야 통역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학위하고 포닥을 하는 분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라면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떨어진다는 것. 언어 문제도 언어 문제지만 한국인의 그 뭐시냐 ‘잘난척 하지말고 결과로 보여준다’ 식의 마인드도 문제고..랩 동료들간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자신이 ‘박주영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하긴 요즘 같은 세상에서 이런 빅 랩에서 오퍼를 받는 분이라면 어느정도 크게 포텐을 터트린 분일 가능성이 높음. 그러나 세상만사가 언제나 그렇듯이 크게 포텐을 터트리지 못해도 어떻게 운빨로 ㅋ 이러한 랩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며, 이런 경우에는 특히 더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임.
주전 경쟁에 밀리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면, 당장 이적하라
그렇게 해서 그닥 이렇다할 결과도 없이 시간만 낭비하다가 그닥 결과를 내지 못하고 이러한 빅 랩을 뜨게 되는 사람들은 참으로 많다. 유수의 기관에 있었다, 빅 랩에 있었다 (그닥 여기서 결과는 뽑지 못했지만) 만으로도 이력에 보탬이 되던 시기도 분명히 있었겠지만 지금은 어디 그런가. 그나마 박주영이야 거액의 연봉이라도 받아서 평생 먹고살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는 하지만 ‘박주영 박사’ 가 되버린 성공 못한 전직 빅랩 출신 포닥은 참으로 암울한 신세가 된다.
그런데 사실 자신이 박주영처럼 주전 경쟁에 밀릴지 아닐지는 해보기 전에 어떻게 아남. 뭐 그런 패기로 빅랩, 대가랩에 들어가는 것 자체는 나쁘진 않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만약 그런 데에서 뛰어보다가 ‘주전 경쟁’에 밀렸고 앞으로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면 빨리 다른 곳으로 이적하는 것이 낫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해서 이적을 할 때는 다음 랩에서는 반드시 당신이 주도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 중요하다. 즉 랩이나 소속기관의 지명도도 지명도지만 일단은 그쪽에서 ‘주전’, 즉 랩을 주도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 극히 중요하다. 축구에서 주전이 되려면 당연히 경기력이 좋아야겠지.
그렇다면 랩에서 ‘주전’ 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저 일 많이 하고 데이터를 많이 뽑아내면 주전이라고 생각할까? 노노노노노노노. 연구에서의 ‘주전’ 이라면 랩의 연구를 이끌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특히 자신의 캐리어 목표가 독립적인 연구자가 되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암튼 결론은 “자신이 주전으로 뛰면서 랩을 이끌 수 있는 랩 중 가장 좋은 랩에서 열심히 연구를 하세염”
P.S. 그래도 과학자가 축구선수보다 나은 점은 축구선수는 박주영짓 몇번 하면 은퇴지만 과학자는 그냥 늙어서까지 할수도 있다는 점일듯..
제가 박주영놀이 해봐서 아는데 인생이 피곤해지더라구여.
원문: Secret Lab of a Mad Scien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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