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독이란 이름의 이데올로기
고백하건데 나는 인터넷 중독자이다. 매일 평균 5시간 이상 인터넷에 접속해 있으며, 하루에도 몇 번씩 메일 박스를 확인해야 하는 나는 아주 중증의 환자임에 틀림없다. 개인 홈페이지를 비롯해 이리저리 관련하고 있는 사이트와 온라인 동호회 몇 군데 둘러보는 일에만 매일 한 두 시간씩 소비하고 있는 나의 인터넷 중독증은 도저히 치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여기저기 강연이나 원고를 통해 “앞으로는 현실세계의 사이버화가 이루어짐으로써 현실공간과 사이버스페이스라는 이분법적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세상이 될 것이다”라며 떠들고 다니고 있으니, 분명 가상과 현실을 구분 못하는 심각한 상태까지 와 있는 듯 싶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중독 증세를 보이는 것은 인터넷만이 아니다. 나는 책 중독자이기도 하다. 대학 시절에는 당시 널리 읽혀지던 <태백산맥>이나 <장길산> 같은 대하 장편소설들을 읽다가 밤을 꼬박 샌 적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으니, 밤새 잠 한숨 못 자고 온라인 게임에 빠져있는 인터넷 중독자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상황이다.
또 요즘은 정보사회 관련된 신간 서적만 나오면 언제 읽을지 기약은 없어도 일단 구입해서 책장에 꽂아 두어야만 직성이 풀리니 쇼핑 중독이라는 합병증세까지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또 나는 한때 김현식의 노래에 중독된 적도 있었다. 그의 유작 ‘내 사랑 내 곁에’가 들어있는 테잎은 방 안 오디오에, 운전 중 카스테레오에, 그리고 길을 걸을 때는 휴대용 카세트에 어김없이 꽂혀 있었으며, 얼마나 많이 들었던지 오래 못 가서 늘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우리는 보통 이런 경우 ‘중독자’라는 말을 붙이지는 않는다. 심지어 여행 중에 117,000권에 달하는 책을 4백 마리의 낙타에 알파벳 순으로 싣고 다녔다는 페르시아의 수상 압둘 카셈 이스마엘이나, 전쟁터에 나가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는 나폴레옹 같은 사람에게도 책 중독자라는 불미스러운 용어 대신 독서광이나 책벌레라는 식의 우호적인 호칭을 선사한다. 음악에 깊이 빠져있는 사람 역시 음악애호가, 매니아 혹은 열성 팬 정도로 불릴 뿐 결코 중독자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지는 않는다.
인터넷에 빠져 있으면 중독자 취급을 당하는데, 책이나 음악에 몰두하면 오히려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이건 어딘가 불공평하다. 도대체 무슨 차이란 말인가? 인터넷은 성격상 마약, 알콜, 니코틴보다는 차라리 책이나 음악 쪽에 더 가깝다. 그런데 ‘중독’이라는 잣대로 놓고 보면 오히려 마약, 알콜, 니코틴 같은 것들과 같은 부류로 분류되고 있다. 이건 분명히 짚고 넘어가 볼 문제이다.
어쩌면 인터넷에게 덧씌워진 ‘중독’이라는 굴레는 정신 병리적 측면보다는 사회 규범적 측면이 더 강하게 작용한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즉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되는 독서나 음악감상 같은 행위와 달리 인터넷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하고 나아가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음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인터넷 중독’이란 개념 속에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효과가 감추어져 있다는 의혹을 가져볼 만 하다.
2. 인터넷 중독 초강국, 대한민국?
그렇다면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인터넷 중독은 어느 정도의 수위에 이르러 있을까? 최근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산하 사이버중독정보센터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네티즌 중 약 20% 이상이 인터넷 중독증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특히 네티즌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경우 더욱 심각한 상태인데, 작년 말 한국청소년상담원의 조사에서는 약 30%에 이르는 청소년들에게서 인터넷 중독증세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사실이 이렇다면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충만 환산해 보더라도 우리 나라 국민 중 400만 명 정도가 인터넷 중독 환자이며, 청소년 3명 중 1명 꼴로 인터넷 중독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야말로 한국은 인터넷 중독 초강국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이렇게 엄청나게 우글거리는 인터넷 중독자들과 함께 이 사회에서 온전하게 살아가고 있다는게 신기한 일 아닌가? 여기서 문득 두 번째 의혹이 떠오른다. 뭔가 침소봉대 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상태가 인터넷 중독이란 말인가?
사실 인터넷 중독을 질환으로 인정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학계 내에서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으며, 아직까지는 정신과 진단체계 내에서 하나의 장애로서 정식으로 인정받고 있지는 못한 상태라고 한다. 또 인터넷 중독을 화학물질로 인한 중독성 질환(Addiction disorder)과 구분해서 도박 중독이나 쇼핑 중독과 마찬가지로 충동조절장애(Impulse-control disorder)나 강박장애(Obsessive-compulsive disorder)로 인한 행위 중독(Behavior Addition)의 한 증상으로 보는 것이 최근의 추세이다.
정신병리학자들에 따르면 인터넷 중독이란 “인터넷에 지나치게 탐닉해 현실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의 신체적, 정신적 이상 증세를 나타내는 것”으로 정의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의존성, 내성 및 금단증상이 나타나게 될 경우 중독으로 판명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인터넷 중독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은 마음이 복잡하거나 허전할 때 자기도 모르게 인터넷에 접속하여 시간을 보내며 마음의 위안을 얻는 ‘의존성’과, 컴퓨터를 끄고 빠져 나오기가 점점 힘들어 지며 오래 있어도 작업효율은 떨어지는 ‘내성현상’, 그리고 인터넷을 떠나 있으면 왠지 불안하고 인터넷상에 무슨 중요한 일이 일어났을 것 같은 생각이 들며 몹시 궁금해하는 ‘금단증상’을 보인다고 말한다.
3. 인터넷 중독, 질병이 아닌 사회현상이다
실제로 인터넷으로 인해 수면장애나 학업성적 저하, 부부간의 갈등, 원활하지 못한 직장생활 등의 문제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병리적 현상으로서의 인터넷 중독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또한 지난 3월에는 게임에 빠진 한 중학생이 동생을 흉기로 살해하는 충격적인 사건까지 벌어지면서 인터넷 중독의 위험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부쩍 높아졌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다음부터이다. 채팅을 통해 불륜관계를 맺거나 원조교제를 하는 사람들, 자살사이트를 매개로 동반자살을 시도하거나 촉탁살인을 저지른 사람들, 그밖에 인터넷과 관련된 각종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모든 사람들을 통째로 인터넷 중독자라고 진단해 버리는 식의 단순하고 소박한 논리야말로 정말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말이다.
이 논리를 그대로 따른다면 인터넷을 통해 일어나는 온갖 부도덕과 범죄 행위는 사회구조적 차원으로부터 비롯된 문제가 아니라 단지 인터넷 중독에 빠진 비정상적 인간들에 의해서 자행되는 일이다. 따라서 이것은 어디까지나 예방과 치료의 대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터넷 중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인터넷 사용 시간을 줄이고, 알람이나 타이머를 사용하여 시간을 제한하고, 운동 등 현실세계에서 몰두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고, 극단적으로는 전화선을 끊거나 컴퓨터를 없애라고 처방한다. 마치 마약, 알콜, 니코틴 같은 화학물질의 체내 흡수로 인해 나타나는 중독 증세를 치유하기 위해 제시되는 처방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내용이다.
하지만 인터넷 중독은 결코 모니터가 내뿜는 전자파 때문에 일어나는 증상이 아니다. 의사들조차도 행위 중독으로 분류한 인터넷 중독증에 대하여 약물중독 치료하듯이 인터넷 이용을 줄이고 끊으라고 처방하는 것은, 전화나 신문을 줄이고 끊으라는 것과도 같은 이야기이다.
인터넷 중독은 단순히 병리적 현상이 아니라 복합적인 사회현상의 한 반영으로 보아야 한다. 즉 사람들은 현실세계에서 충족시킬 수 없었던 자신의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인터넷에 몰입하는 것이다. 게임, 채팅, 성인물이 인터넷 중독을 유발시키는 주범이라는 사실이 단적으로 이를 증명해 준다. 사람들은 게임을 통해 현실에서 억제된 공격본능을 해소하며,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성취감을 맛본다. 그들은 채팅을 통해 자유롭게 새로운 자아정체성을 창출하며, 낯선 이와 허물없는 대화를 나누면서 현실에서 자신을 가두었던 고립과 단절의 장벽을 뛰어 넘는다. 그리고 그들은 성인물을 통해 뒷골목에서나 쑥덕거려야 했던 성적 욕망을 마음껏 표출하는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인터넷 중독은 질병이라고 생각하여 치료를 고집하려는 분들께 나는 이렇게 권하고 싶다. 중독자를 치료하는 것보다도 중독을 유발시키는 억압된 현실세계를 치료하는 것이 훨씬 더 시급하고 효과적인 처방일 것이라고.
편집자 주 : 이 글은 12년 전, 월간 How-PC, 2001년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