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이 글의 1~3은 The Atlantic의 「Why do witches ride brooms」를 번역한 글이며, 4는 역자가 이해를 위해 보충한 부분입니다.
서양 동화에 나오는 마녀들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닌다. 그런데 마녀들이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마녀의 빗자루를 이야기하려면, 먼저 빵 얘기부터 해야 한다.
1. 빵과 맥각
중세 유럽에서부터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기까지, 빵은 주로 호밀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호밀과 그 유사식물들에는 맥각(ergot)이라는 진균이 기생하는데, 이것은 맥각 알칼로이드라는 활성성분을 분비하므로 고용량의 맥각을 섭취하면 치명적일 수 있다. 하지만 저용량의 맥각은 강력한 환각 효과를 발휘한다.
14~17세기의 유럽 문헌을 찾아보면 무도병(dancing mania) 이야기가 심심찮게 등장하는데, 무도병 환자들은 거리에 떼로 쏟아져나와 헛소리를 지껄이고 게거품을 물며 춤을 추다가, 마침내 탈진해 쓰러진다고 한다. 무도병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나중에 깨어나, ‘광란의 댄스를 추는 동안 헛것을 봤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20세기에, 알버트 호프만은 맥각을 연구하다가 LSD의 환각 효과를 발견했다.)
맥각의 효능에 눈뜬 사람들은 늘 그렇듯 그것을 재배할 궁리를 했다. 물론 환각제로 사용할 목적으로 말이다. 그와 동시에 환각제로 사용할 후보 식물들이 다양하게 검토되었다. 포브스의 데이비드 크롤에 의하면 벨라돈나(Atropa belladonna), 사리풀(Hyoscyamus niger ), 만드레이크(Mandragora officinarum), 독말풀(Datura stramonium)에도 환각성분이 함유되어 있다고 한다.
16세기에 스페인의 궁정의(court physician)를 지냈던 안드레스는 “사악한 마법사의 집에서 독당근(hemlock), 가지속 식물(nightshade), 사리풀, 만드레이크 등으로 만들어진 녹색의 연고 한 항아리를 발견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이쯤 되면 이렇게 한마디 하는 사람이 나올 법도 하다.
“맥각도 좋고, 환각제도 좋아요. 그런데 그게 빗자루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요?”
서두를 것 없다. 이제부터 슬슬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보기로 하자.
2. 마녀와 빗자루
초기 마약 사용자들은 환각 효과를 얻기 위해 단지 마약을 꿀꺽 삼키는 것보다 복잡한 투여방법을 사용해야 했다. 구식 마약을 경구투여할 경우 구역질·구토·피부발진과 같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약쟁이들이 누군가? 극강의 적응력을 자랑하는 그들은 새로운 투여방법, 유식하게 말해서 약물 전달 방법(drug delivery system, DDS)을 고안해 냈으니, 바로 피부를 통해 마약을 흡수시키는 것이었다.
피부를 통한 약물흡수, 유식하게 말해서 경피흡수(percutaneous absorption)는 불쾌한 위장관 부작용을 회피하면서 환각 효과를 누릴 탁월한 방법이다. 문제는 약을 바르는 부위가 좀 남사스럽다는 거였다. 그곳은 다름 아닌 겨드랑이의 땀샘, 여성의 경우 외음부 점막(mucus membranes of the genitals)이었다.
사람들은 약리학적 지식을 총동원해서 약물이 함유된 향유(balms), 일명 마녀약(witch’s brews)을 개발했다. 그리고 이 ‘신비의 약’을 가장 효과적으로 바르기 위해 약쟁이들은 가정에서 사용되는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비장의 무기란 비(broom),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빗자루(handle of the broom)였다. 빗자루를 이용하여 피부에 ‘마녀약’을 바르는 방법은… 그냥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갑자기 많이 당황한 독자들의 얼굴이 눈앞에 선하다. 안 되겠다. 당황한 독자들을 위해 힌트를 드려야겠다. 1324년에 한 마녀를 조사한 문헌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마녀의 다락방을 뒤지니 연고가 가득 담긴 통이 나왔다. 마녀는 연고를 빗자루에 덕지덕지 바르고 그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느릿느릿 걷다가 때로는 쏜살같이 달렸다.
또 15세기의 역사가 요르다네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음탕한 마녀의 고백에 의하면, 그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정해진 시간에 연고 바른 막대기를 타고 약속된 장소로 달려갔다고 한다. 또한 그녀는 연고를 겨드랑이나 사타구니에 직접 바르기도 했다고 한다.
3. 날아다니는 빗자루
이만큼 설명했으면 마녀의 필수 소지품인 빗자루를 가리키며 “뭣에 쓰는 물건인고?”라고 고개를 갸우뚱거릴 독자들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남아 있다. 서양 동화나 해리포터를 들여다보면 빗자루는 공중 운송수단이지 육상 운송수단은 아니다. 그렇다면 ‘날아다니는 빗자루’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빗자루’와 ‘비행’ 간의 상관관계는 일차적으로 이교도의 종교의식에서 빗자루가 차지하는 위치와 관련이 있다. 즉 빗자루는 막대기와 빳빳한 털(bristle)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자는 남성적 에너지를, 후자는 여성적 에너지를 상징한다. 따라서 빗자루는 음과 양의 균형을 상징하며 종종 결혼식의 소품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빗자루’와 ‘비행’ 간의 상관관계는 좀 더 실질적이다. 다시 말해서 약쟁이들은 실제로 ‘마녀약이 발라진 빗자루’를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데 사용했다. 1966년 구스타프 솅크는 몸소 체험한 트로판 알칼로이드(tropane alkaloid) 중독의 효과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나는 엄습하는 현기증에 이를 꽉 다물었다. 그러나 잠시 후 나는 발이 점점 부풀어 오르며 가벼워져,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의 사지가 각자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아, 이러다가 몸이 산산이 부서지는 건 아닌지 두려워졌다. 이와 동시에 나는 훨훨 날아오르는 것처럼 몸이 가벼워졌다. 그건 중독 증상이었다. 하늘이 낮게 드리우고, 내 옆에는 구름이 두리둥실 떠 있고, 잎이 떨어졌다. 이름 모를 짐승들이 떼 지어 지나가고, 시뻘건 쇳물에서 뜨거운 김이 솟아올랐다.
그것만 갖고 있으면 호밀은 날으는 빗자루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러한 문화적 상상력 속에서의 “마녀들”은 물론 마법 좀 부리겠다고 목적이 재정의된 청소 도구 따위를 갖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
1976년 미국의 행동심리학자인 린다 캐포랠(Linnda Caporael)은 연구를 통해 17세기 후반의 매사추세츠가 맥각병의 알려지지 않은 희생 지역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녀의 연구는 여전히 논쟁거리가 되고 있으나 후대의 학자들에 의해 꽤 입증되었는데, 1692년 매사추세츠에서 발생한 곰팡이가 또 다른 맥락에서 “마녀의 맥주”로 불리기도 했다는 것이다.
4. 뉴잉글랜드의 마녀사냥
이쯤 됐으면 아무리 둔한 독자들이라도 “날아다니는 빗자루를 탄생시킨 범인은 바로 호밀에 기생하는 맥각이다”라는 사실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비록 문화적 상상력의 산물이기는 하지만) 모든 마녀가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녔던 것은 아니다. 괜스레 (청소도구에서 약물투여 도구로 용도가 뒤바뀐) 빗자루를 타고 다니다 마녀로 낙인찍히면 화형장에서 한 줌의 재로 사라지기밖에 더하겠는가!
‘빗자루를 타고 다니지 않는 마녀’가 등장하는 대표적인 사건은 169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세일럼 마을(Salem Village)에서 일어난 일명 ‘뉴잉글랜드의 마녀사냥’ 사건이다. 당시 이 마을에서는 1년여에 걸친 재판을 통해 28명이 마녀로 몰렸다. 그중 5명은 죄를 자백하여 목숨을 건졌고, 2명은 도망쳤고, 임신부 1명은 사면되었지만, 나머지는 모두 처형되었다.
캐포랠은 “뉴잉글랜드의 마녀사냥 사건이 사실은 LSD(Lysergic Acid Diethylamide)라는 마약 때문이었다”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당시에는 LSD가 없었지만, 호밀에 기생하는 (LSD의 천연연료가 되는) 맥각 곰팡이는 있었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그녀의 연구는 여전히 논쟁거리지만 후대의 학자들에 의해 상당 부분 입증되었다.
독극물 연구자들에 따르면 맥각에 오염된 식품은 경련, 망상, 환각, 그리고 (세일럼 재판기록에도 나와 있는) 다양한 증상들을 유발한다. 당시 호밀은 세일럼의 주산물이었고 ‘마녀들’은 곰팡이가 번식하기 좋은 습한 목초지에 살고 있었다. 결국 17세기 후반 매사추세츠에서 마녀 소동을 일으켰던 것은 날아다니는 빗자루가 아니라 맥각 곰팡이 속 마약 성분에 오염된 식품이었던 것이다.
참고
- 강준만, 『미국은 세계를 어떻게 훔쳤는가』, 인물과사상,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