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위성을 가진 간디
컴퓨터가 아직 군사무기 정도로 여겨지던 1980년, 앨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에서 산업혁명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정보화 시대가 도래할 것을 예측했다. 토플러는 이를 ‘정보화 혁명’이라 명명했다. 그가 예측했듯 그 후 세계는 “탈대량화, 다양화, 지식기반 생산”의 시대로 옮겨왔다.
토플러는 정보화 혁명이 “인공위성을 가진 간디”의 삶을 가능케 할 것이라며 희망에 차 있었다. 여기서 ‘인공위성’은 누구나 어디에서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세상을, ‘간디’는 2차 산업시대의 대도시보다는 농촌 지역으로 분산된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상징한다. 토플러의 예언처럼 세계는 정보화 시대로 빠르게 이행했다.
GM, 토요타, 엑손 등 산업시대를 대표하는 기업들은 그 자리를 구글, 아마존, 애플 등 IT기업들에게 내어줬다. 여전히 중앙집중식 전력공급망이 대세지만 매년 신설되는 에너지에서는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가 화석연료를 추월하기 시작했다. ESS 등 새로운 기술의 발전은 토플러가 꿈꾸던 그리드(grid)에서 분리된 에너지의 독립을 가능케 한다.
농업 분야 역시 지난 20여 년 동안 정밀농업과 스마트팜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기술혁명의 소용돌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농업의 제한 인자였던 경지면적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까지 나가진 못했다.
4차 산업혁명이 의미하는 것
그럼 우리나라는 어느 위치에 와있을까?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3차 산업혁명’의 핵심 요소로 재생에너지, 협업 사회, 그리고 개인의 민주적 사회 참여를 꼽았다. 리프킨의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나라는 아직 3차 산업혁명 시대의 중반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ICT 기술에도 여전히 중앙집중적인 위계 문화, 도시 집중, 컨베이어 벨트로 대변되는 생산 효율에 최적화된 산업구조 유지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선진국은 벌써 4차 산업혁명을 논한다. 4차 산업혁명이 미칠 경제적인 여파와 사회적인 변혁을 대비 중이다. 2016년 1월 스위스에서 개최된 다보스포럼의 주제는 ‘4차 산업혁명의 이해’였다. 석학들은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주역으로 바이오산업, 3D 프린터, 로봇, 인공지능(AI), 스마트폰 등을 거론했다. 4차 산업혁명은 정보화 기술을 바탕으로 한 3차 산업혁명의 연장선에 있지만 기존의 산업혁명과는 크게 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1차, 2차, 3차 산업혁명은 손과 발을 기계가 대체해 자동화를 이루고, 연결성을 강화해 온 과정이었다. 그에 비해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의 출현으로 사람의 두뇌를 대체하는 시대의 도래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4차 산업혁명에서는 기대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산업기술 혁명이 생산구조의 변화와 사회구조의 변혁을 초래했다면 4차 산업혁명은 인간의 존재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디다스의 스피드 팩토리
4차 산업혁명을 가장 앞서 선도하고 있는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은 사이버 물리 시스템(Cyber-Physical System)이라는 기반 기술 아래 ‘인더스트리 4.0’이란 개념을 두고 있다. ‘인더스트리 4.0’은 유망 기술과 친환경 기술, 안전 등 인류 친화적 기술을 포괄하는 제조업 분야의 미래 기술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또한 독일의 미래기술 비전을 담은 “하이테크 전략 2020″의 핵심분야(환경, 에너지, 모빌리티, 통신 등) 10대 실행과제로 ‘인더스트리 4.0’을 2012년부터 포함한다. 4차 산업혁명이 제조업을 어떻게 바꿀까?
아디다스 스피드 팩토리(Adidas Speed Factory)를 살펴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아디다스의 독일 본사 인근 안스바흐(Ansbach)시에 위치한 스피드 팩토리에는 6대의 로봇이 2개의 생산 라인에 설치되어 있다. 한 라인은 신발 바닥을 생산하고 한 라인은 신발 윗부분을 생산한다. 소비자가 온라인 주문을 하면 3D 프린팅 기술과 로봇이 결합해 5시간 만에 신발 한 컬레를 만들어 낸다. 기존에는 수 주가 걸리던 일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공장에는 관리자 역할을 하는 160명 정도만 근무할 뿐이다.
아디다스는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도 스피드 팩토리를 건설 중인데 2017년부터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갈 것이라고 한다. 스피드 팩토리가 보편화된다면 세계의 신발산업 지형도는 완전히 바뀌게 된다. 각국 소비자의 차별적인 기호를 반영할 수 있는 생산 공장을 나라별로 지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신발 가게에 3D 프린팅 기계와 로봇이 설치되어 개인 소비자별로 맞춤형 운동화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디다스는 중국과 베트남 등에 있는 생산공장에서 100만 명을 고용하고 있다. 그들은 어떻게 될까? 2차 산업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저임금에 기반 둔 대량 생산체계는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사라질 운명일까? 단순 노동이 미래에도 존재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에게 4차 산업혁명은 유토피아보단 디스토피아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이런 의문도 들었다. 우리나라의 2차 산업혁명을 선도했던 신발 산업이 다시 그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 로봇, 인공지능, 사물인터넷(IoT) 등 우리나라가 모두 뛰어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분야이다. 안 될 이유가 뭐가 있을까.
4차 산업혁명과 농업
농업 분야라고 예외는 아니다. 아디다스의 스피드 팩토리처럼 농업에서는 ‘스마트 팜’이 새로운 변화를 주도한다. 스마트 팜은 각종 자동화 기기와 로봇에 사물인터넷(IoT)과 ICT 기술이 접목되면서 임계점에 근접하고 있다. 최근에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이 접목되면서 우리가 상상한 계획을 실현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우리나라에선 아직 개념단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스마트 팜은 농업의 근본적인 생산체계를 바꿀 수 있을까?
우리가 생각하는 전통적인 농업은 토양에서 농작물을 재배하고 수확하는 것이다. 생산량과 경제성은 기술보다는 경지면적에 더 크게 좌우되었다. 농업은 경지면적당 낮은 수익을 가지는 산업이었다. 이런 제약조건 때문에 우리 농업은 빠른 기술 발전에도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점점 더 축소되었다. 정밀농업이 일반화되더라도 식량 작물 등 일부 품목에서 상황이 개선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과채류 분야에서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시설재배와 스마트 팜의 결합은 새로운 생산 혁명을 실현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시설재배는 기후가 강제하는 조건을 뛰어넘게 했고, 수경재배 기술은 토양의 생산성에 더 이상 기대지 않게 했다. ICT, 농업용 로봇, 인공지능의 결합은 토지 및 기후의 제약 조건을 뛰어넘는 것은 물론 시장의 상황에 맞추어 생육 속도를 조절하는 것도 가능하게 되었다. 바야흐로 농업(최소한 과채류)은 본격적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들었다.
우리 농업을 침체시킨 환경적 제약조건을 극복하면서 축적된 경험과 기술은 농업이 새로운 미래산업으로 도약하는 밑거름이 된다. 이미 스마트 팜을 주력으로 하는 농기업이 하나둘 자리를 잡아간다. 농업의 침체 때문에 가능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새로운 기술을 적용해 혁신을 이루어 낼 게 더 크다고 볼 수도 있다. 전설적인 월가의 투자가 짐 로저스의 기대처럼 농업이 미래산업으로 각광받는 것은 이런 혁신 가능성 때문이다.
농업과 글로벌 가치사슬
그럼에도 여전히 한 가지 문제는 남는다. 바로 규모의 경제다. 2015년 우리나라는 61억 달러의 농축산물을 수출하고 301억 달러를 수입했다. 무역적자가 무려 240억 달러에 달한다. 농축산물 수입액은 전체 농업 GDP의 73% 정도에 해당한다. 가뜩이나 좁은 시장은 농업 무역수지 적자로 인해 1/3이 더 줄어들었다. 설사 스마트 팜 기술이 실현된다 하더라도 현재의 시장구조로는 활성화되기 어렵다.
새로운 접근 전략이 요구된다. 최근 농업기술실용화재단에서는 중국과 베트남을 중심으로 농업 기술의 수출을 위한 테스트베드를 운영한다. 국내 기업이 생산한 농기계, 농자재, 종자 등 기술집약적인 상품을 국가별 환경에 적합한지 테스트하고 현지인 대상 마케팅도 동시에 진행한다. 이를 통해 농산물이 아니라 농업기술과 자재 등 농업생산에 필요한 기본 요소를 공급한다.
이 사업의 의미는 국내 시장 중심으로 한정 짓던 농업 가치 사슬을 글로벌 수준으로 확장한 것이다. 수세적인 농업에서 글로벌 차원으로 인식을 전환했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결국 스마트 팜 시대의 농업은 더 이상 토지 면적이 제한 인자로 작용하지 않는다.
미래의 농업은 점점 더 기술과 시장이 주도할 것이다. 글로벌 생산 정보와 국가별 소비자의 기호를 파악하는 게 더 중요해질 것이다. 어떤 산업이든 그 시설과 자재, 농업 분야에서는 종자, 생산 정보와 수요 예측은 우리 농업이 글로벌 경영을 해나가는 기반이 될 것이다. 단 우리가 이 기회를 살릴 수 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끝으로 4차 산업혁명은 기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기술 수준 및 R&D 투자 규모를 고려하면 오히려 기술은 쉬울지도 모른다. 근본적으로는 그 기술이 초래하는 변화이다. 4차 산업혁명은 분권화, 자율성과 다양성, 수평적 연대와 협업, 단순한 노동의 종말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기술 그 자체보다는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4차 산업혁명이 무르익어 갈 때쯤이면 앨빈 토플러가 그려왔던 “인공위성을 가진 간디”의 꿈이 실현될 수 있을까? 4차 산업혁명을 보면서 미래의 모습이 머리 속에서 그려지는가? 그 결과가 어떻든 침체된 우리 농업은 다시 도약할 기회가 될 것이다. 농업이 진정한 미래산업이다.
원문: 에코타운(ecotown)
참고
- 최동석, 「제4차 산업혁명(인더스트리 4.0)은 무엇인가?」
- 장필성, 「2016 다보스포럼: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우리의 전략은?」, 《과학기술정책》 26권 2호, 과학기술정책연구원
- 박형근,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됐다. 기계가 소통하는 사이버물리시스템 주목하라」, 《동아비즈니스리뷰》 166호
- 농림축산식품 수출입 동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