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Atlantic에 Jean M. Twenge가 기고한 「Have Smartphones Destroyed a Generation?」을 번역한 글입니다.
지난여름 어느 날 휴스턴에 사는 13살 아테나(가명)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12시가 다 돼 해가 중천이었는데, 아테나는 이제 막 잠에서 깬 듯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11살 때부터 아이폰을 쓴 아테나와 좋아하는 노래와 TV 프로그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죠. 그리고 아테나에게 친구들과 무얼 하는 걸 좋아하냐고 물었습니다.
“같이 쇼핑몰에 가서 놀아요.”
“그럼 부모님이 차로 너랑 친구를 데려다주시면 쇼핑몰 안에서는 친구들끼리만 다니는 거니?”
제가 중학생이던 1980년대의 기억을 떠올리며 물었습니다. 쇼핑몰에서 보내는 몇 시간은 부모님 없이 오직 친구들하고만 보내도록 허락된 얼마 안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죠. 하지만 아테나의 답은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아니요, 가족과 갈 때 친구도 같이 따라와요. 엄마랑 오빠들이랑 같이 가면 보통 저랑 친구는 좀 뒤에서 따라가죠. 어디 다른 가게에 가거나 할 때는 어디 가겠다고 말씀드리고 가죠. 30분에서 1시간마다 어디에 잘 있다고 말씀드리고요.”
사실 이렇게 친구들과 쇼핑몰에 가는 일은 한 달에 한 번 정도로 드문 편입니다. 그보다 아테나와 친구들은 스마트폰을 하는 데 시간을 훨씬 많이 보냅니다. 당연히 보호자의 지도는 없죠. 저녁엔 그날 있던 일을 시시콜콜한 것까지 가족끼리 나누던 제가 자랄 때 청소년과는 달리 요즘 청소년들은 스냅챗으로 대화합니다.
스냅챗 안에서 주고받는 사진과 동영상 메시지는 빠르게 사라지곤 합니다. 친한 친구라면 며칠 연속 스냅챗에서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았는지 나타내는 스냅스트레이크 기록을 관리하는 데도 신경을 써줘야 합니다. 가끔은 친구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바보같이 나온 사진을 캡쳐해 두기도 합니다.
“나중에 약점으로 잡고 놀려야죠.”
아테나는 말합니다. 아테나는 사실 여름 내내 방에서 스마트폰을 하며 대부분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습니다. 또래 친구들도 다 그렇게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저희는 아이패드나 아이폰 없는 삶을 경험해보지 못했잖아요. 상상도 못 할 일인 거죠. 저와 제 또래 친구들은 실제 사람보다 폰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심리학 박사과정을 시작한 22살부터 지난 25년간 세대 차이에 관해 연구했습니다. 보통 한 세대의 특징은 점차, 연속적으로 나타납니다. 세대의 가치관이나 신념, 행동 특징도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해 점차 굳어지곤 합니다. 예를 들어 밀레니얼 세대는 개인주의 성향이 무척 강한 세대입니다.
하지만 개인주의는 사실 앞서 베이비붐 세대 때부터 나타나 조금씩 늘었다 줄기를 반복했죠. 제가 하는 연구 결과를 그래프로 그리면 대개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완만한 경사를 보이는 추세선이 나타나곤 합니다. 그런 완만한 변화에 익숙하던 제게 아테나의 세대는 완전히 새로운 종이었습니다.
2012년 무렵, 저는 10대 청소년의 행동과 감정 상태가 돌연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완만하던 그래프 상의 경사가 갑자기 삐쭉 솟은 봉우리와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처럼 들쭉날쭉해졌죠. 밀레니얼 세대에게서 나타나던 여러 가지 특징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습니다. 멀게는 1930년대에 태어난 세대부터 세대별 특징을 데이터로 모아 살펴봤지만 이렇게 급격한 변화는 본 적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할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추세는 몇 년 동안 이어졌고 전국적인 규모의 조사에서도 빠짐없이 나타났습니다. 그냥 정도가 심한 변화일 뿐 아니라 아예 전에 없던 새로운 양상이 나타났습니다.
밀레니얼 세대와 그다음 세대 사이에 나타나는 가장 큰 차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청소년들은 세계관뿐 아니라 시간을 보내는 법에서도 밀레니얼 세대와 사뭇 다릅니다. 이는 아마도 불과 몇 년 전에 청소년기를 보낸 세대와 비교하더라도 오늘날 청소년들이 겪는 하루하루의 삶이 크게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2012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청소년의 행동이 이렇게 급변한 걸까요? 밀레니얼 세대가 일자리를 구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데 크게 어려움을 겪은 심각한 경기 침체도 공식적으로는 2007-2009년 일어난 일이니 2012년이면 여러 지표가 회복세로 돌아선 뒤입니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수치라면 2012년은 바로 미국인 중 스마트폰을 보유자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선 해라는 점입니다.
청소년들의 태도와 행동에 관해 매년 진행한 설문조사를 자세히 보면 볼수록, 아테나와 같은 청소년들과 실제로 대화를 해보면 해볼수록 스마트폰의 보급이 늘어나고 그로 인해 자연히 늘어난 소셜미디어 사용에 엄청난 영향을 받은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는 사실이 명확해졌습니다. 저는 이들을 i세대(iGen)라 부릅니다.
1995-2012년 사이에 태어난 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스마트폰을 쓰며 자랐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인스타그램 계정을 열었고 인터넷 없이 살던 시절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밀레니얼 세대도 인터넷을 하며 자라기는 했지만 지금 어린이, 청소년처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한 채로 살지는 않았습니다.
i세대에서 가장 나이 많은 이들은 아이폰이 처음 선보인 2007년, 이제 막 유년기를 지나 청소년이 됐습니다. 아이패드가 등장한 2010년에는 고등학생이었죠. 2017년 미국 청소년 5,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4명 중 3명이 아이폰을 갖고 있습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등장과 함께 가장 먼저 대두된 문제는 어른·아이 할 것 없이 “폰에서 얼굴을 떼지 못하는” 현상이었습니다.
새로운 기기가 어떤 영향을 얼마나 미치는지는 아직 다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분명한 건 주의력을 떨어뜨리는 정도보다 훨씬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입니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청소년들의 삶은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부터 정신 건강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모든 면에서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이는 사회적 계층, 가정 형태, 인종, 지역을 불문하고 그 나잇대 청소년 전체에 영향을 미친 변화입니다.
전화가 터지고 인터넷이 되는 곳, 다시 말해 스마트폰을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청소년들이 스마트폰을 붙들고 삽니다. 소위 아날로그 감수성으로 물든 청소년기를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이런 현상이 특히 낯설고 불편할 겁니다. 하지만 세대 연구의 목적은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며 예전 방식을 미화하는 게 아니라 현재 새로 등장한 세대의 특징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밝혀내는 데 있습니다. 새로운 세대의 특징 가운데는 긍정적인 것도 있고 부정적인 것도 있으며 사실 좋다, 나쁘다 구분하기 어려운 것도 많습니다.
오늘날의 청소년은 차를 타고 어디에 가거나 파티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귀찮아하고, 대신 그저 자기 방에서 스마트폰만 하기 좋아합니다. 사실 집 밖에 잘 나가지 않기 때문에 그 어떤 청소년 세대보다 안전합니다. 집 밖에 나가면 으레 몸을 다치거나 사고를 당할 위험에 노출되는데 그럴 염려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전 세대의 청소년에 비해 교통사고를 당할 위험도 낮고 술도 덜 좋아하니 알코올 관련 질환을 앓을 확률도 낮습니다.
문제는 정신적인 부분입니다. 포스트 밀레니얼 세대는 바로 앞선 밀레니얼 세대보다 정서적으로 훨씬 취약합니다. 청소년기 우울증과 자살률이 2011년 이후 급증했습니다. i세대의 정신 건강이 지난 수십 년간 그 어떤 세대와 비교하더라도 가장 안 좋다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정신 건강 문제의 원인을 따져 보면 적잖은 부분이 바로 스마트폰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쟁, 비약적인 기술 발전, 혹은 머드축제장에서 열린 무료 콘서트 등 결정적인 공통의 경험은 또래 젊은이들을 하나로 묶어내 세대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사실 단 한 가지 사건이나 특징으로 구분되는 세대란 있을 수 없습니다. 자녀를 어떻게 기를지 결정하는 부모의 가치관, 학교 교과 과정과 문화도 바뀝니다. 이런 요인이 모두 영향을 미칩니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의 부상은 유례없는 일까지는 아니더라도 분명 아주 오랫동안 본 적 없는 정도의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어려서부터 폰을 손에 달고 살게 되면서 자라나는 세대의 삶과 가치관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스마트폰 때문에 청소년들이 훨씬 불행해졌다는 근거가 대부분입니다.
1970년대 초 사진작가 빌 예이츠는 플로리다 주 탬파에 있는 한 롤러스케이트장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 속에는 윗옷을 벗어젖힌 남자아이 한 명이 바지에 두른 허리띠에 진의 일종인 페퍼민트 슈냅을 한 병 찬 채 당당하게 서 있었고, 또 다른 사진 속에는 기껏해야 초등학교 6학년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가 입에 담배를 물고 포즈를 취했습니다.
롤러장에 모인 청소년들은 부모의 감시에서 벗어나 자기들만의 세계를 마음껏 누리고 있었습니다.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자동차 뒷좌석에서 좋아하는 사람과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는 그런 세계였습니다. 예이츠의 흑백 사진 속에 담긴 어린, 혹은 젊은 베이비붐 세대의 눈빛에는 누가 뭐라고 하든, 심지어 부모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건 하고야 말겠다는 넘치는 자신감과 당돌함이 엿보입니다.
15년이 흘러 나를 포함한 X세대가 청소년기를 보낼 때 담배는 이제 더 이상 ‘멋진 것’이 아니었지만, 누군가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여전히 청소년들의 꿈이었습니다. 저는 친구들과 우리가 운전면허증을 딸 수 있는 나이가 되는 열여섯 번째 생일날 바로 면허시험장에 면허 접수를 예약해두었다가 당장 고물차 한 대에 끼워 타고 차 없이는 갈 수 없는 교외로 자유의 여행을 떠났습니다. “언제 집에 들어올 거니?”라는 부모님의 질문에 반항기를 적당히 섞어 “언제까지 돌아오면 되는데요?”라고 맞받아쳤죠.
하지만 앞선 세대가 청소년기에는 어김없이 갈구하던 독립을 향한 의지도 오늘날 청소년들에게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오늘날 청소년들은 오히려 부모님이 함께 가는 게 아니면 집을 나서려 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다른지 들여다보면 놀라울 정도입니다. 2015년 고3 학생들은 2009년 중2 학생들보다도 더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 머물렀습니다.
오늘날 청소년들은 실제 데이트도 덜 하는 편입니다. X세대끼리는 “야, 쟤가 너 좋아하나 봐!” 정도로 표현하던, 상대방에게 반하고 서로 알아가는 교제의 첫 단계를 요즘 아이들은 말을 튼다는 뜻에서 “talking”이라고 부릅니다. 실제 대화보다 가볍게 문자 주고받는 것을 더 편하게 여기는 세대에게 대화하는 것이 좀 불편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주고받다가 서로 잘 맞는 것 같으면 사귀기 시작하겠죠. 2015년 고등학생들 가운데 사귀는 사람이 있는 학생들은 56%에 불과했습니다. 베이비붐 세대나 X세대의 경우 85%였죠.
데이트가 줄어드니 첫 경험 시기도 늦어지고 성관계 횟수도 자연히 줄어듭니다. 중3 학생들 가운데 성관계 경험이 있는 학생의 숫자는 1991년 이후 무려 40%나 급감했습니다. 평균적인 미국 청소년이 첫 경험을 하는 시기는 고2 봄으로 X세대의 평균 첫 경험 시기보다 1년 늦습니다. 성관계를 하는 10대들이 줄어들면서 나타난 긍정적인 변화도 물론 있습니다. 지난해 10대 출산율은 근래 가장 정점을 찍었던 1991년보다 무려 67%나 낮은 수치를 기록해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영화 〈이유 없는 반항〉에서부터 〈페리스의 해방〉에 이르기까지 미국 대중문화 속에서 운전은 청소년기 자유의 상징과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요즘 청소년들은 앞선 세대가 그토록 꿈꾸던 운전에도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베이비붐 세대는 고등학교 3학년 봄이 되기 전에 거의 예외 없이 모두 운전면허를 땄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고등학생 4명 중 1명 이상이 졸업할 때까지 운전면허를 따지 않습니다. 부모가 필요하면 늘 차를 태워주기 때문에 굳이 직접 운전할 필요가 없는 청소년도 있습니다. 샌디에이고에 사는 한 21살 학생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모님이 제가 가는 곳 어디든 매번 태워주셔요. 그러는 걸 딱히 싫어하시지도 않고요. 저만의 전용 택시가 있는 셈이죠. 운전면허를 따긴 했는데, 그것도 엄마가 계속 학교에 차로 태워다줄 수 없으니 언젠가 필요할 거라고 하셔서 땄어요.”
그녀는 18세 생일이 지나고 6개월 뒤에 운전면허를 땄습니다. 청소년들과 대화하다 보니 부모님의 잔소리 때문에 마지못해 운전면허를 딴 사례가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운전석에 앉을 수 있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이전 세대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죠.
물론 독립에는 돈이 듭니다. 당장 운전만 해도 (차야 부모님의 고물차를 빌릴 수 있겠지만) 기름값은 스스로 내야 할 테고 차를 타고 어딘가 가서 몰래 마실 술을 살 돈도 있어야 할 겁니다. 예전에는 아르바이트하는 학생들도 많았습니다. 자유를 누리는 데 필요한 돈을 스스로 벌겠다는 학생도 있었고, 돈 한 푼 버는 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몸소 느껴보라며 부모가 아르바이트를 권하기도 했습니다.
i세대에는 아르바이트하거나 스스로 번 돈을 관리하는 청소년이 많지 않습니다. 1970년대 말에는 전체 고등학생의 77%가 학기 중에도 일을 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2010년 중반에 이 수치는 55%로 낮아집니다. 중2 가운데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의 수는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특히 2007~2009년 경기침체 때 이런 추세가 가속화됐는데, 경기가 회복하면서 다시 아르바이트 자리는 많아졌지만 일하는 청소년들의 숫자는 다시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어른에게 따르는 책무를 뒤로 미루는 행동은 i세대만의 특징은 아닙니다. 앞서 1990년대 X세대 청소년들도 어른이 되는 표식과도 같은 일을 미루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어려서부터 운전하고, 술을 마시고, 베이비붐 세대와 마찬가지로 데이트도 하며 성관계도 일찍 가져서 10대 임신율도 비슷하게 높았습니다. 하지만 X세대는 평균적으로 이전 세대보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결혼하는 시기가 늦었습니다.
X세대는 우리가 청소년기라 부르는 시기를 앞뒤로 모두 늘려놓은 세대입니다. 즉 이들은 일찍 어린이 티를 벗었고 반대로 또 완전한 어른이 되는 건 이전 세대보다 늦었습니다. 이어 밀레니얼 세대와 i세대가 되면 술 마시는 나이, 데이트하는 나이, 어른의 감시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나이 등을 기준으로 봤을 때 청소년기는 다시 줄어듭니다. 즉 오늘날 18살은 예전 15살처럼, 15살은 예전 13살처럼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여러 기준에 비추어 봤을 때 어린이 같은 고등학생이 많아졌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청소년들은 왜 어른으로서 져야 하는 책임과 그에 상응하는 즐거움을 누리기를 미루는 걸까요? 경제 상황이 변했고, 자녀를 기르는 부모들의 가치관이 변한 것이 분명 큰 역할을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하고 경력을 쌓는 것보다 더 많이 교육을 받을수록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 유리한 지식경제 사회에서 요즘 부모들은 자녀들이 밖에 나가서 일찍 세상을 배우는 것보다 집에서 공부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도 집에 머무는 걸 전혀 싫어하지 않는 듯합니다. 다들 공부를 좋아하는 공붓벌레라서가 아니라 어차피 스마트폰만 있으면 친구들과 소통하고 사회생활을 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집 밖에 나가야만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세상이 아닌 겁니다. 요즘 청소년들이 공부에 매진한다면 이런 성향이 데이터에 나타날 겁니다.
하지만 2010년대 8학년, 10학년, 12학년이 숙제하는 데 쓴 시간은 1990년대 같은 학년 학생들이 쓴 시간보다 오히려 적었습니다. 4년제 대학교 진학을 준비하는 고3 학생이 숙제하는 데 쓰는 시간이 앞선 세대 청소년들의 숙제 시간과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동아리 활동이나 방과 후 체육 활동 등에 고등학생들이 쓰는 시간은 지난 몇 년간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버는 학생이 줄어든 상황까지 종합해 보면 i세대에게 주어진 여가는 X세대보다 많으면 많았지 절대 적지 않습니다. 그 많은 시간을 청소년들은 무얼 하며 보내는 걸까요? 폰을 합니다. 대개 자기 방에 혼자 틀어박혀서.
이들의 마음 상태는 대단히 지쳐 있거나 고통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집 밖에 잘 나가지 않고 부모와 집에 있는 시간이 앞선 세대보다 훨씬 많은데도 오늘날 딱히 부모와 가깝다고 볼 수 없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 아이러니입니다. 아테나도 제게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친구들이 가족과 함께 있는 걸 봤는데요, 가족끼리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친구들은 거의 없었어요. 통화할 때도 친구들이 가족과 하는 말은 ‘알았어. 알았다고. 아몰랑.’ 정도죠. 가족에게는 별 관심이 없어요.”
아테나도 또래 친구들처럼 부모님의 잔소리는 최대한 차단해 버리고 스마트폰에서 벌어지는 일에 집중하는 데 도가 텄습니다. 아테나는 이번 여름방학 대부분을 친구들과 안부를 주고받고 이야기하는 데 보냈습니다. 물론 친구들과 직접 만난 경우는 손에 꼽죠. 대부분 스냅챗이나 메신저를 통해 문자를 주고받았습니다.
“사람들을 직접 만나는 것보다 폰을 보는 데 쓴 시간이 더 많아요. 대개 침대에 누워서 폰을 하다 보니 침대에는 제가 누운 모양 그대로 자국나 있죠.”
아테나의 모습은 전형적인 요즘 청소년의 모습입니다. 친구들과 거의 매일 직접 만나서 노는 청소년의 숫자는 지난 2000-2015년 사이 40% 이상 줄어들었습니다. 최근 들어 감소세는 훨씬 가팔라 졌습니다. 단지 파티를 하고 노는 청소년이 줄어들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과 어울려 시간을 보내는 걸 어색해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전에는 다들 주로 친구들끼리 몰려다니며 시간을 보내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범생이든 매일 밖으로 싸돌아다니는 아이든, 가난한 아이든 돈이 많은 아이든, 성적이 안 좋은 아이든 좋은 아이든 다르지 않았습니다. 롤러장, 농구장, 동네 수영장, 아니면 자기들만의 아지트든 청소년들이 주로 모이는 곳이 어디든 있었습니다.
이제 그런 장소는 모두 인터넷 홈페이지나 스마트폰 앱을 열어야만 접속할 수 있는 온라인상의 장소로 대체됐습니다. 청소년이 예전에는 없던 새로운 가상 공간에서 그렇게 오래 머무는 것이 거기 있으면 행복해서 그럴 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실제 데이터를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전국 약물 오남용 방지연구소가 후원하는 “미래 관찰 연구(Monitoring the Future survey)”에서 1975년부터 매년 미국 전역의 고3 학생들에게 1,000개 넘는 질문을, 1991년부터는 고1과 중2 학생에게도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모았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여가를 어떻게 보내는지, 화면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누군가를 만나 교류하거나 운동하는 데는 얼마나 시간을 쓰는지, 최근에는 소셜미디어나 메신저 앱, 인터넷 검색 등을 하는 데 얼마나 시간을 쓰는지와 같은 질문이 문항에 포함돼 있습니다.
결과는 이견을 제시하기 어려울 만큼 확실합니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등 스크린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평균 이상인 청소년은 불행하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컸습니다. 반대로 스크린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또래 평균보다 짧은 청소년들이 자신의 삶에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스크린 앞에 묶여야 하는 모든 활동은 불행과 관련이 있었고, 반대로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끄고 해야 하는 모든 활동은 예외 없이 행복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10시간 이상 소셜미디어를 하는 중2 학생은 자기가 불행하다고 답할 확률이 소셜미디어에 시간을 덜 쓰는 또래 친구들보다 56%나 높았습니다. 일주일에 10시간은 좀 심하긴 하죠. 그보다 조금 덜한 학생들의 상황도 비슷했는데, 일주일에 6~9시간 소셜미디어를 하는 청소년이 자기가 불행하다고 답할 확률은 그보다 소셜미디어를 덜 하는 학생들보다 47% 높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직접 만나 무언가를 하는 빈도와 행복의 관계는 정확히 반대였습니다. 또래 평균보다 더 많은 시간을 직접 친구들과 만나 노는 데 쓰는 청소년은 친구들과 대면하는 시간이 평균 이하인 청소년들보다 자기가 불행하다고 답할 확률이 20% 낮았습니다. 이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행복한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도록 조언을 해준다면 답은 그야말로 간단합니다.
“당장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랩톱 컴퓨터도 꺼라. 스크린 앞에서 떨어져서 할 수 있는 일이면 뭐든지 해라.”
물론 이 설문조사 결과를 두고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이 불행을 유발하는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성급한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되겠지만, 어쨌든 스스로 불행하다고 여기는 학생들과 스마트폰 혹은 인터넷 사용시간 사이에 상관관계가 나타난 건 분명합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특히 소셜미디어가 직접적인 불행의 원인이라는 연구들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대학생에게 2주 동안 간단한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설문 내용은 간단했습니다. 참가자들에게는 하루에 5번씩 현재 기분이 어떤지, 오늘 얼마나 페이스북을 많이 했는지 기록하는 링크가 문자 메시지로 갑니다. 답변을 모아봤더니 페이스북을 더 많이 할수록 참가자들은 불행하다고 답했습니다. 반대로 불행하다고 느껴서 페이스북을 더 많이 하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SNS는 온라인상에서 우리를 친구들과 연결해준다지만 여러 설문조사 결과 드러난 건 대개 SNS상에서 고립되고 갈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모습입니다. 매일 SNS를 통해서는 친구를 만나지만 정작 친구를 직접 만나는 일은 많지 않은 청소년들일수록 “외로울 때가 많다” “무언가로부터 소외된 것 같다고 느낀다” “친구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 같은 문장에 동의하는 비율이 높았습니다. 외로움이나 소외감, 혹은 고립감을 느끼는 청소년의 숫자는 2013년 폭발적으로 증가한 뒤 다시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설문조사 결과를 섣불리 개개인의 사례에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말해 인터넷을 더 많이 하는 어린이, 청소년이 그렇지 않은 어린이보다 반드시 더 외로움을 느끼고 소외됐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소셜미디어를 많이 하는 청소년일수록 실제로 친구들과 평균적으로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도 합니다. 온라인,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잘 어울리는 성격은 통하기 마련이죠. 반대로 친구를 많이 사귀지 않는 청소년은 소셜미디어도 상대적으로 덜 하게 됩니다.
이를 개인 차원이 아니라 세대 차원에서 보면 스마트폰은 더 많이 하면서 친구들과 직접 만나 교류하는 건 덜한 청소년이 외로움을 더 느끼는 건 분명합니다. 우울증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마트폰이든 컴퓨터든 스크린 앞에 묶여 있으면 분명 부정적인 효과가 나타납니다. 스마트폰을 더 많이 하는 청소년일수록 우울증 증세를 겪을 확률이 높습니다. 소셜미디어를 지나치게 많이 하는 중2 학생은 또래 평균보다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27% 더 높습니다.
꾸준히 운동을 하거나 종교 활동을 하거나 아니면 심지어 또래 평균보다 열심히 숙제를 꼬박꼬박해가기만 해도 우울증에 걸릴 확률은 크게 낮아집니다. 하루에 3시간 이상을 전자기기 앞에서 보내는 청소년들에게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는 등 자살 위험 요인이 발견될 확률이 35% 더 높습니다. 이는 다른 활동에서 비롯된 요인보다 훨씬 높습니다. TV를 많이 본다고 이 확률이 35%나 높아지지는 않습니다.
청소년이 어떻게, 얼마나 외로움을 느끼고 소외되었다고 생각하는지 간접적이면서도 아주 놀라우리만치 잘 보여주는 데이터가 있습니다. 2007년 이후 10대 청소년 사이 살인율은 낮아졌지만 자살률은 높아졌습니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다툼이 번져 상대방을 죽이기에 이르는 일이 줄어든 대신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만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많아진 겁니다. 지난 2011년 자살률이 살인율을 앞질렀는데, 이는 24년 만에 처음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우울증과 자살을 일으키는 요인은 무척 다양합니다. 스마트폰 중독이나 인터넷 중독은 다양한 요인 가운데 하나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청소년 자살률은 사실 스마트폰이 나오기 한참 전인 1990년대에 지금보다 더 높았습니다.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 가운데 하나인 심각한 우울증 증세를 치료하는 데 효과적인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미국인이 그때보다 지금 4배나 더 많다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스마트폰과 새로운 세대가 겪고 있는 명백한 정신적 스트레스 사이에 정확히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요? 우선 소셜미디어는 쉬는 시간이 없습니다. 즉 밤낮 쉬지 않고 접속할 수 있기 때문에 반대로 잠깐이라도 접속을 끊고 다른 일을 하다 보면, 청소년들은 혹시 ‘내가 친구들끼리 하는 이야기에서 소외되는 건 아닐까’ 불안해지기 십상입니다.
요즘 청소년은 예전 청소년에 비해 다 같이 모이는 파티에도 덜 가고 직접 만나는 횟수도 적지만 반대로 한 번 모여서 놀면 그 기록을 수많은 사진과 포스팅으로 요란하게 남기죠. 모임에 초대받지 않은 사람에게는 씁쓸하다 못해 잔인할 만큼 소외감을 부추기는 사진들로 타임라인이 도배됩니다. 소외감을 느끼는 10대 청소년의 숫자는 모든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외로움을 느끼는 청소년이 높아진 것처럼 어딘가에서 소외됐다고 느끼는 청소년의 증가 속도도 아주 빨랐습니다.
특히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이런 경향이 더 두드러졌습니다. “종종 자신이 소외됐다고 느낀다.”고 답한 여자아이들은 2010년보다 2015년에 48%나 늘어났습니다. (남자아이들은 27% 증가) 여자아이들이 소셜미디어를 더 많이 하다 보니, 자기만 빼놓고 같은 반 친구들이 어울려 노는 사진을 보게 되면 따돌림당했다고 여기거나 외로움을 느낄 일이 많다는 겁니다.
글이나 사진을 올리는 10대 청소년들은 또한 친구들의 댓글이나 ‘좋아요’에 말 그대로 목을 맵니다. 아테나는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릴 때 다른 사람이 이 사진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지, 뭐라고 말할지 무척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습니다.
“가끔 제가 올린 사진이 특별히 ‘좋아요’를 많이 못 받으면 어디가 문제였을까 자꾸 생각하게 돼요.”
오늘날 청소년 우울증 증세가 빠르게 증가하는 가운데 특히 여자아이들이 훨씬 많이 호소합니다. 2012-2015년 사이 남자아이들의 우울증 증세는 21% 증가한 반면 여자아이들은 그보다 두 배 이상 많은 50%나 늘어났습니다. 자살 문제도 심각합니다. 청소년 자살률 자체는 남녀를 불문하고 높아졌지만 2015년 12~14세 여자 자살률은 2007년에 비해 3배나 높아졌습니다. 같은 나이 남자 자살률은 2배 증가했습니다.
전체 자살률은 여전히 남자가 여자보다 높습니다. 남자아이들이 더 치명적인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자아이들의 자살률이 남자아이들을 따라잡고 있는 건 심각한 문제입니다. 특히 사이버폭력이 자주 일어난다는 것도 심각합니다. 남자아이들이 누군가를 괴롭힐 때 물리적인 폭력을 가하는 경향이 높은 데 반해 여자아이들은 괴롭히는 대상의 평판을 깎아내리거나 친구 관계를 망쳐놓는 방법을 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소셜미디어는 중고등학생 아이들이 끊임없이 누구 하나를 따돌리고 배제하는 식으로 손쉽게 피해자를 공격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소셜미디어 회사들도 이 문제를 잘 알고 특히 사이버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해 왔습니다. 하지만 소셜미디어 회사들이 신경 써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죠.
최근 유출된 페이스북 내부 문서에는 페이스북이 청소년들의 감정 상태를 파악할 수 있으며 심지어 “언제 젊은 이용자들이 자신감을 심어줄 무언가를 원하는지” 그 시점을 특정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광고주들에게 피력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페이스북은 해당 문서 자체가 있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이용자의 감정 상태를 바탕으로 특정 광고를 내보내는 식의 접근은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2014년 7월, 텍사스 북부의 13살 소녀는 타는 냄새에 잠에서 깼습니다. 스마트폰이 과열돼 침대 시트가 녹아 들어간 겁니다. ‘당신의 휴대폰이 온 집안을 태워 먹을 수 있다’는 식의 뉴스가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불타는 휴대폰 말고도 여러모로 입을 다물기 어려운 뉴스였습니다. 우선 왜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핸드폰을 보다가 그냥 대충 폰을 옆에 두고 잠이 든 건지부터 궁금했습니다. 잠자는 순간에도 인터넷으로 무엇을 검색할 생각은 아니었을 테죠. 핸드폰을 바로 옆에 두고 잠이 들면 숙면을 취하지도 못할 겁니다.
다른 젊은이들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제가 몸담은 샌디에이고 주립대학교 학부생들에게 잘 때 휴대폰을 어떻게 해놓고, 어디에 두고 자는지 물었죠. 이 질문에 대한 답만 보더라도 학생들이 얼마나 스마트폰에 묶여 사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학생이 폰을 옆에 두고 잔다고 답했죠. 베개 밑이나 침대 위 등 어쨌든 아침에 일어나 손을 뻗으면 바로 닿을 곳에 폰을 두고 잔다는 대답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휴대폰을 알람시계로 썼기 때문에 너무 멀리 두고 잘 수야 없긴 했지만, 그래도 잠들기 직전에도 소셜미디어를 하고, 아침에 눈 뜨자마자 하는 일도 소셜미디어 체크라는 건 문제가 있어 보였습니다. 한밤중에 어쩌다 잠이 깼을 때도 자연히 폰을 들고 보게 됩니다. 중독을 진단할 때 기준으로 삼는 어휘를 쓰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폰을 보는 것에 관해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도 그러면 안 좋은 거 알죠. 그런데 멈출 수가 없어요.”
어떤 학생들은 폰을 자기 몸의 일부로 여기거나 마치 사랑하는 연인처럼 대하기도 했습니다.
“잘 때 폰을 가까이 두고 자면 어딘가 모를 편안함이 느껴져요.”
실제로 편안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스마트폰 때문에 청소년들의 건강에 특히 중요한 수면이 방해받는 것도 사실입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기에 하루 9시간씩 잠을 자야 한다고 말하지만 많은 청소년이 하루에 7시간도 안 자고 심각한 수면 부족에 시달립니다. 청소년의 수면 부족 비율은 1991에 비해 2015년에 57%나 늘었습니다. 2012-2015년, 불과 4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하루에 7시간을 못 자는 청소년의 숫자가 22%나 늘어났습니다.
수면 부족을 일으킨 주범 또한 꽤 명백해 보입니다. 청소년들이 스마트폰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수면 시간이 눈에 띄게 줄었으니까요. 전국 단위 조사 결과를 보면, 하루에 3시간 이상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등 전자기기를 하는 청소년은 그렇지 않은 청소년보다 하루에 7시간 이상 자지 못할 확률이 28% 더 높고, 매일 소셜미디어를 하는 청소년은 수면 부족에 시달릴 확률이 19% 더 높았습니다.
어린이들의 전자 기기 사용을 분석한 여러 연구를 종합해 살펴본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잠들기 직전에 전자기기를 보는 어린이는 숙면을 취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고, 그 결과 이튿날 낮에 졸려서 집중력이 떨어질 확률이 두 배나 더 높았습니다.
전자기기와 소셜미디어는 숙면에 결정적인 방해 요소인 것처럼 보입니다. 책이나 잡지를 또래 평균보다 자주 읽는 청소년은 수면 부족에 시달릴 확률이 조금 낮습니다. 무언가를 읽다 보면 자연스레 잠이 들 수도 있고, 책을 읽다 보면 잠들어야 하는 시간을 놓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루에 몇 시간씩 TV를 보면 잠을 덜 자게 될 확률이 조금 높아집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말 그대로 저항 불가일 때가 많습니다. 한 번 하다 보면 좀처럼 놓기 어렵죠.
잠을 제대로 못 자면 정말 많은 문제가 일어납니다. 사고력이나 추리력이 떨어지는 건 물론이고 면역력도 낮아지며 살이 찌고 고혈압이 올 수 있습니다. 잠은 기분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칩니다. 잠을 충분히 못 잔 사람들은 우울증 증세를 보이거나 근심, 걱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물론 이 문제도 정확한 인과관계를 밝히기는 쉽지 않습니다.
스마트폰은 어떤 식으로든 수면 부족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는 우울증의 한 원인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스마트폰이 우울증을 일으키는 더 직접적인 원인일 수도 있습니다. 우울증 때문에 잠을 잘 자지 못할 수도 있죠. 우울증과 수면 부족을 일으키는 또 다른 원인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두컴컴해야 할 침실을 밝히는 스마트폰의 푸른 빛이 여러모로 범인일 가능성이 큽니다.
우울증과 스마트폰 사용 사이의 상관관계는 대단히 높습니다. 정확한 인과관계는 밝히기 어렵지만, 강력한 상관관계만으로도 부모가 자녀에게 스마트폰을 너무 많이 보지 말라고 지도할 필요성은 충분해 보입니다. 이는 실리콘밸리에서 사업을 이끄는 기업가들이 집에서 세운 원칙이기도 합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세상에 내놓은 스티브 잡스도 자신의 자녀들이 한없이 전자기기만 쓰고 있게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어떤 식으로 청소년기를 보내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스마트폰은 지금의 청소년이 어른이 되어서도 삶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것이 자명합니다. 한 번 우울증을 겪은 사람의 절반은 또다시 우울증에 걸린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청소년기는 무엇보다도 사회성을 기르는 아주 중요한 시기입니다. 10대 청소년들이 친구들과 직접 얼굴을 맞대고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사람을 사귀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법을 배울 기회도 줄어들었습니다. 앞으로 어른이 되는 이들 중에는 어떤 상황에 어울리는 이모티콘은 기가 막히게 찾아내지만, 정작 누군가 앞에서 상황에 따라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는 도무지 모르는 사람이 꽤 많을지도 모릅니다.
이미 항상 온라인상에 접속해 있고, 전자기기를 사용하는 데 익숙해진 세대에게 기술의 사용을 제한하는 건 현실적인 대책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딸만 셋이 있는데 각각 2006, 2009, 2012년에 태어난 딸들은 아직 i세대의 특징이 나타나기에는 좀 어린 편입니다. 그래도 저는 이미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수많은 뉴미디어와 전자기기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알아왔는지 충분히 봐 왔습니다.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아이는 아이패드를 집더니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저렇게 스크린을 터치하고 아이콘을 눌러댔습니다. 6살밖에 안 된 딸이 자기도 전화기가 필요하다며 제게 휴대폰을 사달라고 했습니다. 9살 난 딸은 4학년 자기 반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 최고인 최신 앱에 관한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삽니다. 이런 아이들에게서 스마트폰을 빼앗는 건 아마도 우리 부모 세대가 케이블 채널 MTV에 푹 빠져 있던 우리에게 리모컨을 빼앗아 TV를 끄고 밖에 나가 산책이라도 하고 오자고 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미션일 겁니다.
그럴수록 청소년들이 스마트폰을 절제하며 사용하는 건 더욱 중요한 과제입니다. 당장 무엇이든 적당히 즐기는 게 중요하다는 점만 가르칠 수 있다면 그로 인해 아이들이 누리게 될 혜택도 상당합니다. 전자기기를 하루에 2시간 이상 사용하게 되면 그때부터 정신 건강이나 수면의 양과 질이 큰 영향을 받습니다. 청소년은 하루에 전자기기에 쓰는 시간이 평균 2시간 반이죠. 스마트폰을 평균보다 조금만 덜 쓰도록 아이들을 지도할 수 있다면 당장 몸과 마음에 해로운 습관을 들이지 않게 하는 셈입니다.
10대 청소년들 가운데는 자신들이 겪는 문제의 원인이 지나친 스마트폰 사용에 있다는 걸 인지하기 시작하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거기서 작은 희망을 봤죠. 아테나는 친구들과 만났을 때도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보다 각자 스마트폰을 꺼내 온라인상에서 이야기할 때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직접 친구들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해도, 걔들이 저를 쳐다보지를 않아요. 다들 자기 폰이나 애플 워치만 쳐다보고 있죠.”
“그럴 때 기분이 어떠니? 그러니까 네가 누군가에게 말을 하는데 그 사람이 너를 쳐다보지 않을 때 말이야.”
제가 물었습니다. 아테나의 솔직한 답 속에 해법의 실마리가 보였습니다.
“솔직히 좀 속상하죠. 자칫하면 상처를 받을 수도 있겠더라고요. 우리 부모님 세대는 그러지 않았다는 걸 알거든요. 제가 정말로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수도 있는데, 상대방이 듣는 척도 안 한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죠.”
아테나는 또 한 친구와 놀고 있었을 때 일어난 일을 이야기해줬습니다.
“제가 우리 가족에 관해 무척 중요한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었어요. 근데 글쎄 그 친구는 ‘어? 어, 알았어. 그러든지.’라고 말하면서 제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거예요.”
그 친구는 그때 남자친구에게 한창 문자를 보내는 중이었다고 합니다. 아테나는 말을 이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했게요? 친구 손에서 전화를 빼앗아 든 다음에 제 방 벽에다가 전화기를 냅다 던져버렸죠.”
저는 갑자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아테나 너 배구 선수 아니니? 스파이크하는 힘이면 엄청날 텐데?”
아테나는 으쓱하며 답했습니다.
“당연하죠.”
원문: 뉴스페퍼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