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작
링크드인을 통해서 메시지를 받았다. 아마존의 IMDB 자리인데, 경력이 어느 정도 맞는 것 같으니 한번 지원해보지 않겠냐는 요량이다. 요즘 공을 들여 포트폴리오 업데이트를 했는데, 그게 쓸데없던 일들은 아니었나 보다. 잃을 건 없겠다 싶어서 한번 전화 통화를 해보자고 했다.
1-1. 리쿠르터랑의 전화 통화
뭐랄까, 재수 없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리쿠르터와의 전화통화는 굳이 준비할 필요는 없었다. 리쿠르터는 사실 어떻게 보면 job description이랑 job requirement에 따라서 글로만 그 직무에 대해서 알고 있을 뿐, 직접적인 지식은 없다. 그 말인즉슨, 내 역량과 스킬이 직무와 얼마나 잘 맞느냐 하는 여부는 잘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 또 다른 말로 하면, 리쿠르터는 내 작업들을 판단할 만한 지식이 없다.
말 그대로 리쿠르터는 좋은 사람을 적절한 자리에 데려가 주는 사람일 뿐, 내 역량과 스킬을 직접 판단하지는 않는다. 링크드인에서 연락을 줬을 때는 내 이력서와 그쪽의 직무에서 요구하는 게 어느 정도 맞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 연락을 준 게 아닐까 싶었다.
시간이 되었고, 전화 통화를 시작했다. 쿨하게 전화 통화에 임하려 했지만, 나는 어느새 최대한 나를 어필해보려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한 마리의 새가 되어 있었다. 백그라운드를 최대한 포장해서 이야기하고, 최대한 프로젝트의 기여도를 부풀여 말하려는 나의 노력에, 혹은 나의 본능에 나도 놀랐다.
리쿠르터는 내 이력서를 하이어링 매니저에게 넘길까 말까를 나에게 물어봐 주었고, 나는 살짝 망설인듯한 어조로 이런저런 질문들을 했다. 나도 밀당을 하다니. 이런 건 연애할 때나 잘 써야 했었는데 말이다. 내가 오랫동안 숙원하던 직장이 아니어서 그런지 여유가 생기는 듯했다. ‘이것 아니면 안 돼’라는 생각은 가끔 반대로 작용하기 때문에 ‘안되면 말고, 그러나 최선을’이라는 태도가 사실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다.
2. 준비
생각보다 빨랐다. 당장 다음 주 되는 날짜와 시간을 고르란다. 나는 날짜와 시간을 적어서 답장을 보냈다. 하이어링 매니저와의 전화 통화 인터뷰다. 이제 진짜로 이제 프로세스가 시작되어 가니 준비해야 한다. 리쿠르터는 나에게 아마존 리더십 프린시플이라는 문서를 건네주며 숙지하라고 한다.
메모장을 켜고 양손을 키보드에 놓고 시작했다. 이런 이런 카테고리를 만들어 준비해야겠다 싶었다.
- 백그라운드: ‘어릴 적에 자상하신 아버지와 인자하신 어머니 아래서 자랐습니다’ 이딴거 하지 말고 디자인과 관련된 경력 및 학교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도 경력만 1번, 2번, 3번이니 나 괜찮지? 이렇게 말하기보다는 그 경험에서 뭘 배웠는지 키워드 및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 프로젝트 1번, 2번, 3번: 프로젝트에 대해서 줄줄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1번은 조금은 오래된, 직무와 관련 있는 걸로, 그래야 ‘뒤에 뭔가 더 괜찮은 게 나올 거야’라는 기대감을 줄 수 있으니까. 2번은 직접적으로 관련된 프로젝트로. 3번은 뭔가 마지막 한 방, 임팩트를 날릴 수 있어야 한다.
- 예상 질문들: 아마존은 특히나 ‘어려움’을 겪은 경험에 대해서 많이 물어본다고 한다. 글라스 도어에 들어가서 질문들을 죽 복사 &붙여넣기했다. 디자이너들이 받은 질문에 대해서 모든 걸 다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수집은 쉬우니까.
이제 해야 할 것들은 정리되었다. 모든 질문에 스토리를 채워 넣고, 프로젝트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 글자 한 글자 채워 넣고 있지만, 왠지 하다 보니 페이스북이 생각난다. 친구들이 카톡을 보내온다.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집중이 안 된다며 ‘내일 아침에 6시에 일어나서 할 테야’라고 하고 잠이 든다. 하지만 막상 일어난 시간은 8시. 바로 회사로 가야 한다.
다음날 집에 와서 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느새 12페이지가 되었다. 포인트는 이거다.
모든 것을 스토리화 시킨다.
스토리의 기본 구조는 도입부에 콘텍스트를 설정하는 한편 상황을 설명하고, 갈등을 소개한다. 그러다 갈등이 정점에 달하고, 갈등이 해결되는 전환점이 나타난다. 대단원에서는 이야기 내의 갈등이 해소되고 결말을 맞는다.
단순한 팩트라 하더라도 이렇게 스토리화 시켜 놓으면 어떤 질문이 나와도 끼워 맞추기 쉬워진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고 하자.
웹디자인을 단순화시켜서 PM과 엔지니어들에게 제안했다. 그런데 PM은 여기에 많은 내용을 집어넣어서 사용자들이 가치를 많이 얻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그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고 숙고하고 고심하였다. 어떤 의사결정이 맞을까 고민하던 와중 리서처에게 질문하였다. 그러자 리서처는 데이터를 주면서 ‘단순화된 디자인’ 쪽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그래서 나는 이 데이터를 PM과 공유하였다. 이렇듯 함께 의사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할 수 있었다.
이 스토리를 이런저런 질문에 끼워 맞춰 보자.
- 본인의 디자인을 어떻게 서포트하는가?
- 협업을 어떻게 하는가?
- 데이터를 본인의 디자인에 어떻게 사용하는가?
- 리서처와의 관계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약간의 핀트만 잘 잡으면 같은 스토리라 하더라도 위와 같은 모든 질문에 대답이 가능하다. 문제는 이런 비슷한 스토리를 많이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what metrics you use to evaluate your design’이라는 질문이 떨어진다면, 저 내용을 준비한 건 소용 없어진다. 이처럼 모든 질문을 대답할 수 있는 만능 스토리는 없다.
이런저런 스토리들과 위에서 말한 기본적인 설명에 대한 준비가 끝났다. (아니, 사실 끝났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이제 실전연습 차 존경하는 디자이너에게 부탁을 드려 모의 면접을 했다. 약 한 시간 동안 상대방이 나에게 이런저런 질문들을 하고, 나는 준비한 대로 혹은 준비하지 않은 대로 대답하는 연습을 했다.
모의 연습이 끝나자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다음날 면접을 준비했…으면 좋겠었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다. 스토리를 이야기하는 방식이든 내가 쓰는 단어든, 모자란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자야지.
3. 전화 통화
다음 날 아침, 회사에 출근을 늦게 하겠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내 놓고 집에서 전화를 기다렸다. 초조하였지만 뭘 해야 할지도 몰랐다. 이제까지 써놓은 스토리와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을 프린트해 놓고 찾기 쉽게 표시해 놓으면서 마음을 위안시킬 수밖에.
전화가 왔다. 좀 긴장되어서 엄청 버벅였다. 느린 인터넷으로 재생하는 유튜브 영상처럼 생각에 버퍼링이 많이 걸렸고, 그 창피함을 무마하기 위해 전화가 잘 안 들리는 척했다(사실 미국에서는 흔한 현상이다). 그러니 다시 걸겠다고 한다. 다시 전화를 받으니 뭔가 안정감이 생겼다. 그래서 하나하나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뭔가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생각보다 말을 더 많이 했다. 첫 번째 프로젝트 설명이 끝날 즈음이 되니 이미 40분이 지나 있었다(약속된 시간은 1시간이었다).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중간중간 매니저는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졌다. ‘이 프로젝트에서 PM들과 파트너의 관계는 어땠는가?’, ‘프로토타이핑 툴은 무엇을 썼는가?’ 등등. 그리고 프로젝트 설명이 끝나갈 즈음 디자인 관련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뭔가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지 생각보다 말을 더 많이 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첫 번째 프로젝트 설명이 끝날 즈음에 시계를 보니 벌써 40분이 지나 있었다. (약속되어 있는 시간은 한 시간이다)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중간중간에 매니저는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졌다. ‘이 프로젝트에서 피엠들과 파트너와의 관계는 어땠는가?’, ‘프로토타이핑 툴은 무엇을 썼는가?’ 등등. 그리고 프로젝트 설명이 끝나갈 즈음에 디자인 관련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 본인의 디자인 프로세스는 무엇인가요?
- 디자인으로 통한 이노베이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데이터를 본인의 디자인에 어떻게 사용하시나요?
위에서 준비했던 것처럼 실제적인 사례를 통해서 대답을 하니 뭔가 먹히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전화를 마쳤다.
사실 면접이 끝났을 때 당락에 대한 예감이 온다. 끝났을 때 ‘나 좀 괜찮은 놈인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면 합격, 끝났을 때 ‘아, 좀 더 노력해야 하나 봐’라는 생각이 들면 실패. 다행히도 첫번째 생각이 들었다. 전화 인터뷰다 보니 커닝 페이퍼들이 한몫했다.
4. 2차 전화 통화
자, 1차 면접은 무난히 통과되었다. 2차 면접이 다가왔다. 리쿠르터는 역시 ‘다음 주 시간 언제 되니’라고 질문했다. 가능한 시간을 골랐는데, 그는 내가 고른 시간과 다른 시간을 주었다(이럴 거면 왜 물어봐).
결국 금요일 아침에 다시 전화 통화를 하기로 했다. 2차 면접관은 내가 1차 면접 봤던 사람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자만했던 것 같다.
설마 매니저가 OK했는데 밑에 사람이 자르겠어?
설렁설렁 준비했다. 미리 말해두지만 이건 실패기다. 설렁설렁 준비하니 결과도 설렁설렁 나오더라.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승부는 정해져 있다.
– 마이클 조던
맞다. 면접은 그야말로 본인을 얼마나 잘 꾸미느냐에 달려 있고, 말을 얼마나 잘 돌려서 멋진 사람처럼 보여야 하는 게 면접이다. 슬프지만 그렇다. 꾸미는 것에 치중해야 하고, 나의 진실된, 솔직한 모습을 받아줄 사람들은 친구나 가족에게 찾는 게 더 빠르다. ‘솔직히 대기업에서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임팩트가 얼마나 크겠어요. 주어진 일 하는 거죠’라는 대답을 하는 사람을 붙여줄 면접관은 아무도 없다. 인맥의 고리가 타이트하게 짜여 있지 않는 이상.
그때 다른 회사랑도 이야기하고 있었고, 그 회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마존 전화 인터뷰에는 시간을 덜 썼다. 아무래도 자만을 했고, 전화 인터뷰라 우습게 봤었던 것 같다. 그래서 깨달았다. 면접의 당락을 가늠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기 위해서는 본인의 마음가짐의 진지함이 필수적이다. 마음가짐을 진지하게 가지지 않는다면, 사실 무조건 탈락이라고 봐도 되겠다.
내가 어떻게 망했는지, 이제부터 설명 들어가겠다.
A. 준비
예전과는 다르게 스토리를 짜도 포인트를 정해놓지 않았다. 스토리는 거들 뿐, 포인트를 정확하게 내려찍지 못하면 그 스토리는 중구난방이 되기 일쑤다. 아마존에서 리더십 프린시플이라는 걸 잘 숙지하라고 하는데, 이걸 제목만 알고 있었지 내용은 정확히 이해하고 있지 못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하나의 리더십 프린시플마다 3개 정도의 스토리는 준비해야 한단다. 갑자기 생각났다. 육군 복무 신조와 병영 생활 행동강령. 이해는 하지 못하고 한 글자 한 글자 외우는 게 목적이었던 의미 없는 조항들(군대 갔다 오신 분은 무슨 말인지 알 게다).
면접 전날, 리쿠르터한테 연락이 왔다. 면접관이 내 포트폴리오에 있는 프로젝트 A와 B를 보고 싶어 한다고 그걸 준비했으면 좋겠단다. 하나는 아직 프로세스가 정리가 확고히 되지 않아서 사이트에 올려놓지 않았었다. 나는 “OK! not a big deal”이라고 대답해놓고 x줄이 타기 시작했다.
이게 첫 번째 실수다. 무슨 핑계를 대서든 프로세스 정리가 되지 않은 프로젝트를 보여줘서는 안 되는 거였다.
B. 전화 시작
올 것이 왔다. 나름 최선을 다하려고 했지만, 도박도 자본금이 있어야 하지 자본금도 없이 테이블에 앉아서 일확천금을 바라는 느낌이었다. 스토리들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고, 포장해야 할 재료들이 없었는데, 그냥 옆에 보이는 거적데기 같은 종이 주워 가지고 포장하려는 느낌이었다. 그냥 말 그대로 ‘포장을 위한 포장’이지 이쁜 포장은 아니었다.
처음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있었다. 6년 정도 지난 프로젝트였지만, 나름 임팩트가 컸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중간중간에 면접관은 질문을 던졌다.
지금 이 디자인 피쳐가 나왔는데, 이거 어떻게 나온 거예요? 너무 갑툭튀 아닌가요?
UX 프로세스를 설명할 때 진짜 조심해야 한다. 갑툭튀, 이게 진짜 위험한 거다. 리서치랑 아이데이션이랑 마지막 디자인 설루션들이 굵은 선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나는 대답을 잘 못했다. 6년이나 되어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청문회에 나오는 정치인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두 번째 프로젝트, 준비되지 않은 프로젝트 설명을 시작했다. 이게 UX 디자인 프로세스라는 게 사실 중구난방이다. 이 디자인이 맞다고 밀고 나가는데, 어느 정도의 프로세스가 지나면 ‘이게 아니었나 봐’ 하고 다른 아이디어 파보고, 그러다가 또 다른 아이디어 파 보고 한다. 그런 과정의 반복이 일어나서 하나의 디자인으로 수렴하곤 하는데, 이걸 잘 종합하지 않으면 어쩌다 마지막 디자인으로 가게 되었는지 희미해지곤 한다.
그래서 꼭 프로세스의 정리가 필요하고, 프로세스를 잘 정리해 두지 않으면 누구 앞에서 이야기할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나는 그랬다. 큰 실수였다.
어쨌든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정리가 되어 있지 않으니 질문은 막 들어오고, 질문에 잘 대답은 못 하니 ‘어버버버’ 거리고 있더라. 어떻게든 잘 대답해보려 노력했지만, 그게 될 리가 있나.
그렇게 망했다. 이것들 좀 챙겨가자. 제이슨 므라즈가 <I am yours>라고 노래부르지 않았나. Win some or learn some. There’s no losing.
- 준비 안 하면 준비 안 하는대로 나온다. 특히 면접은.
- 프로세스 설명할 때 갑툭튀 나온다 싶으면 경계하고 잘 잡아야 한다.
- 정리되지 않은 프로세스는 설명하려다 망할 수 있다. 정리 안 되어 있으면 설명이 잘 될 리가 없다. 특히나 UX 디자인 프로세스는 더더욱!
이런저런 일반적인 질문들을 마친 후 면접관이 그러더라.
리쿠르터한테 오늘 오후에 피드백 줄게요. 근데 오늘이 금요일이라 결과 들으려면 월요일까지는 기다려야 할 거예요.
이 문장에서 직감했다. 실패다.
면접은 결국 ‘호감’을 얻어내는 작업이다. 그 호감이란 게 스킬과 인성과 이런저런 것이 버무려져서 나오는 비빔밥 같은 거다. 어떤 재료가 들어가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먹어보면 맛있는 그런 것. 호감만 얻는다면 면접은 성공이라 생각한다. 그 여부는 면접 후반부 정도 가면 알 수 있다. 소개팅에서 밥을 다 먹어갈 때쯤 디저트를 먹으러 갈지 안 갈지 대충 결정되는 것처럼.
아무튼, 아마존한테 호감을 얻어내는 건 실패. 그래도 괜찮다. Let’s move on.
원문: 길리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