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MS Health의 「Why we need generic medicines」 시리즈를 기초로 다른 자료를 취합해 재구성한 글입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의약품을 소비하며 살아간다. 현대인의 친구라는 비염이나 아토피 약에서부터 생리통에 먹는 진통제, 중장년 이상에서는 흔한 고혈압·당뇨 치료제까지. 이렇게 사용하는 약이 2016년 기준 한국에서만 연간 14조 원, 세계적으로는 1,400조 원가량이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소비되는 의약품 대부분이 제네릭 의약품(generic medicine)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제네릭 의약품이란 의약품 시장이라는 굉장히 특수한 시장에서만 나타나는 재화의 한 종류다. 의약품은 대표적인 비탄력재(inelastic goods) 중 하나로 일반적인 시장의 가격균형 메커니즘과는 달리 가격이 증가한다고 하더라도 수요가 쉬이 줄기 힘들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 당장 감염으로 죽어가는 환자가 항생제 가격이 비싸다고 재화 구매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차라리 다른 지출을 줄이든가 대출을 받으면 받았지.
이런 특징 때문에 의약품에 대한 특허권은 일반적인 재화에 대한 특허권처럼 무한대로 보장할 수 없는데(특허를 가진 독점기업이 약가를 수백 배 올린다고 생각해보라), 신약은 보통 15-20년 정도의 독점권을 보장한다. 특허 기간이 만료된 이후 원래 개발된 신약과 동일한 물질로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데 이것이 바로 제네릭 의약품이다. 이 시점 이후 원래 신약은 제네릭 의약품에 대한 대응어로 ‘오리지널 의약품’이라고 불린다.
여기서 한 가지 눈여겨볼 부분이 있다. 원래부터 쭉 쓰던 오리지널 의약품이 있는데 왜 굳이 제네릭 의약품을 만들고, 그게 또 팔릴까? 이런 이유로 한때는 제네릭 의약품을 카피약(copy drug)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나 제네릭 의약품은 오리지널 의약품과 별로 다른 점이 없다. 성분도 동일하고, 인체 내에서 약효 작용을 일으키는 정도(생물학적 동등성)도 어느 정도 동일해야 승인해주니까. 그러면 오리지널 의약품을 쓰면 되는 거 아니냐고 반문할 텐데 둘의 가장 큰 차이는 가격이다.
한 가지 신약의 개발에는 보통 10년 정도가 걸리고 (제약사가 비용을 조금 부풀리는 경향도 없지 않지만) 비용은 1조 원을 조금 넘는다. 앞서 특허 기간이 15-20년이라고 했던 것을 기억하시는가? 제약회사 입장에선 그 비용을 독점판매가 가능한 5-10년 사이에 뽑아내야 하는 셈이니 오리지널 의약품의 가격은 높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글로벌 제약사가 생산한 의약품들은 다시금 각국으로 통관비용까지 붙어야 하니 가격이 더 올라갈 수밖에. 이 차액을 파고드는 것이 제네릭 의약품이다.
실제로 데이터를 보면 2009년 1분기에서 2015년 4분기 사이에 기존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가 만료되면서 각국에서의 제네릭 의약품 비중이 훨씬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Protected’가 특허로 보호되는 의약품이며 ‘No longer protected’는 더 이상 특허로 보호되지 못하는 오리지널 의약품이다.
2012년에 신약들이 대거 특허만료가 된 영향으로 제네릭 의약품들이 쏟아졌고 미국 같은 곳은 거의 15%나 그 비중이 증가했다. 중국이나 브라질 같은 소위 ‘파머징 마켓(pharmerging market)’은 조금 예외지만 전반적으로 6-15% 사이의 대체율을 보인 것. 이러한 제네릭 대체로 절약한 금액은 과연 얼마나 될까?
미국의 경우 2009년에만 약 161조 원 정도다. 앞서 말했던 한국의 의약품 시장 규모가 14조 원 정도니 한국 10개가 1년간 쓰는 의약품값을 전부 더한 값보다 많은 돈이 제네릭 의약품으로 절약되는 셈이다. 미국 정부에서는 오리지널 의약품이 아닌 제네릭 의약품으로의 대체를 정책적으로 추진 중이라 이 비율은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제네릭 의약품은 국가 복지 재정 면에서 굉장히 큰 도움이 된다.
제네릭 의약품의 이점은 이뿐 아니다. 소비자에게도 두 가지 측면에서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데, 하나는 접근성의 강화이고 다른 하나는 전체 치료비용의 감소다.
위의 표에서 보듯 기존 선진국의 경우 2005년 1분기에서 2014년 4분기 사이에 7대 의약품 군에 속하는 약물 사용량이 그리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반면에 제네릭 의약품 대체로 인한 가격 하락 폭은 커서, 전체 치료비용이 감소하는 효과를 나타냈다.
슬로베니아나 폴란드, 슬로바키아 같은 국가들은 가격 하락으로 인해 의약품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덕분에 의약품 사용량 총량은 증가했지만, 기존의 오리지널 의약품은 가격 부담으로 실제 수요가 있더라도 구매하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으니 환자들 입장에선 이득인 셈.
계속 해외 위주로만 얘기하니까 피부에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국내에서 가장 이 효과가 극적으로 나타난 건 바로 발기부전 치료제 부분이다. 화이자의 특허약 ‘비아그라’가 2012년 특허 만료되면서 한미약품 ‘팔팔’이 제네릭 의약품으로 출시됐다. 그리고 2016년 기준 ‘팔팔’이 오리지널인 ‘비아그라’의 매출을 뛰어넘는다.
기존의 비아그라 약가는 1만 5,000원 선이었는데 팔팔은 이것의 1/10 수준인 2,000원대 수준으로 약가를 확 낮춘 것. 남성들의 수요는 꽤 많은데 약가는 높고 대체재도 없으니 하루에도 몇 통씩 중국산 짝퉁 비아그라 광고가 활개 쳤다. 그것이 제네릭 의약품의 도입으로 훨씬 안전하게 해결된 셈이다.
이에 더해 제네릭 의약품은 제형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이점도 있다. 비아그라 성분을 구강에서 녹여서 흡수되게 만든 필름형 제재 같은 것들도 비아그라 특허가 만료된 이후에야 개발된 제네릭 의약품이다. 가격은 물론이고 다양한 특수 제형도 개발되니 소비자 및 환자의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선택지라 할 수 있다.
이 분야에 조금 관심이 있다면 보통 여기까지를 제네릭 의약품의 장점이라 생각할 테다. 국가 입장에서는 복지재정이 줄어서 좋고, 환자 입장에서는 접근성이 높아지고 가격 부담이 줄어서 좋으니까. 그런데 제네릭 의약품이 인류에게 기여하는 가장 큰 이점은 정작 따로 있다. 바로 기존 의약품들보다 훨씬 더 좋은 신약이 개발됐을 때 시장이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현재 극히 일부 분야를 제외한 중증질환은 모두 치료제가 어느 정도 개발된 상태다. 역사가 깊은 분야 몇 개는 약물치료 방법이 거의 고정되었고, 이미 특허가 만료된 약이 많은 만큼 제네릭 의약품 처방이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앞서 살펴봤던 것과 같이 제네릭 대체로 절감되는 비용이 상당한데도 시장 규모는 매년 증가 추세인데, 노령화로 인한 부분도 분명히 있긴 하지만 주된 이유는 신약이 지속적으로 시장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만약 제네릭 의약품으로의 대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시장 규모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게 될 것이다. 그런 것을 감당할 수 있는 국가나 소비자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앞서 설명했듯 의약품은 대표적인 비탄력재 중 하나이다. 의약품에 지출할 수 있는 거의 최대치를 쓰고 있는 상황에서 비싼 신약이 새로 들어온다면 그것을 시장이 감당할 수 있을까?
제네릭 의약품은 비용 절감을 통해서 재정적 여유를 제공해 신약이 들어올 공간을 마련해준다. 제네릭 의약품이 없다면 사실상 신약의 진입도 불가능해지고, 그만큼 신약개발도 둔화된다는 얘기다. 이것이 제네릭 의약품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뱀발
물론 이건 외국 얘기고 한국에서는 2015년 기준 아직 제네릭 의약품 비중이 36.4% 정도에 불과하다. 제네릭 의약품 약가가 오리지널 약가의 50% 수준이라도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본인 부담률이 30%라, 실제 5,000원 저렴해도 1,500원 저렴하다고 느끼는 식이니 소비자들은 별로 실감하지 못하는 듯하다.
거기다 실제로 처방을 내리는 보건의료인 입장에서도 생물학적 동등성 차이라던가 업계 전반의 제네릭 의약품에 대한 불신이 존재한다. 리베이트라는 ‘독이 든 당근’이 있어도 처방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현재 적립된 한국의 건강보험 재정은 거의 고갈 상태다. 어느 누구도 쉬이 추진하자는 얘기를 하긴 힘들겠지만 건강보험료 인상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현재 건강보험 총 진료비 중 25%를 차지하는 약품비에서 제네릭 의약품 대체율이 지금보다 증가하면 건보 재정지출도 미국과 같이 절감될 수 있다.
지금의 불법적인 리베이트가 아닌, 정부에 의한 적극적인 인센티브형 유인 제공 정책을 펴서 제네릭 의약품 처방 비율을 늘린다면 건보공단의 재정 부담이 조금이라도 줄지 않을까? 이 부분은 아직도 여타의 수가 얘기에 비해 논의가 활발하지 않은 것 같아 개인적으로 조금 안타깝다.
원문: Coldtongue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