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도 비슷한 글을 썼던 기억이 나는데 생각 이상으로 시장의 크기는 많은 것들을 결정한다. 시장 크기로 인한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점은 다양성이다. 당장 서울과 지방의 소도시를 비교해보면 두 지역이 제공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차이가 매우 명확하다.
지방 소도시는 시장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딱 시장의 평균이라 할 수 있는, 국내에서 가장 잘 팔리는 상품과 서비스만을 취급하고 있다. 반면 서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것은 서울의 시장이 크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소비가 적은 상품이더라도 취급할 만큼의 수요 규모가 나오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심지어는 지방 소도시와 서울에서 접할 수 있는 정보의 양과 질에서도 차이가 난다.
이 때문에 도시를 다룬 다양한 책들도 도시를 다양성의 원천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도시에 거주하는 수많은 인구가 다양성이 자리 잡게 하는 것처럼 시장의 규모가 각각의 다양성 들에 충분한 시장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틈새시장의 존재 가치도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절대적인 시장의 규모가 크면 틈새시장이라 부르는 것이 그렇게 부를 수 없는 사이즈로 커진다. 이것이 엄청난 양적 질적 차이를 부른다.
예를 들어 드라마를 생각해보자. 미드, 영드 같은 해외 드라마를 즐기는 국내 시청자들은 국내의 이상한 막장 드라마를 보면서 한 숨을 내쉰다. 컨텐츠의 질적인 측면에서 너무 차이가 크게 나서다. 물론 막장 드라마의 시청률이 매우 높은 것은 그것을 원하는 소비자 취향의 질에도 원인이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라고 그런 막장 드라마가 없겠나? 소프 오페라라고 해서 이 장르도 엄청나게 잘 팔리는 장르다.
미국이라고 전부 왕좌의 게임 같은 드라마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드라마들이 국내에선 찾아보기 힘들고 웰메이드급 이상만 주로 국내에 유입되서 입소문을 타기에 과대포장 된 것이다. 말 나온 김에 얘기해보자. 왕좌의 게임과 같은 드라마를 왜 우리나라에선 못만들까? 이유는 간단하다. 국내 시장이 작아서다.
왕좌의 게임을 제작, 방영하고 있는 HBO는 미국의 유료 케이블 채널이다. 이 HBO의 미국내 유료 시청자수는 2016년 기준으로 약 49백만명이고 월드와이드는 130백만명이다. 미국 시청자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KBS에 시청료를 내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돈을 HBO에 내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된 드라마를 만들기만 하면 돈을 내고서라도 볼 사람들이 49백만명이나 되는 시장이니 왕좌의 게임 같은 드라마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왕좌의 게임 이전에 나온 소프라노스, 보드워크 엠파이어, 더 와이어 등과 같은 걸작 드라마도 이 토양이 밑받침 되니 가능했던 것이다.
FT나 WSJ, NYT 같은 언론들은 거대한 미국시장에 기반해 글로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매체들이다. 이 정도 초 거대시장에 기반해 있으니 기사의 질만 좋다면 돈을 내고서라도 구독해줄 유료 구독자 수를 확보하기가 비교적 쉬운 것이다. 인구 5천만의, 게다가 한국어를 사용하는 제한된 언어권에서 유료 구독자를, 질을 떨어뜨리지 않고서 회사를 운영할 수준으로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서비스 등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나는 국내에서 마윈이 다소 과대평가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마윈이 대단한 사람인 것은 알고 있으나 국내에서 마윈을 추앙하는 것은 엄청난 규모의 거대기업의 창업자라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 회사가 기반한 나라는 일당 독재 계획경제 국가에다 13억의 인구라는 엄청난 시장 규모가 밑받침 된 나라다. 어느 곳에서나 승자는 존재할 수 밖에 없는데 시장의 규모가 클 수록 승자가 독식하는 규모도 커진다. 그렇기에 만약 마윈을 칭송하는 이유가 알리바바 텐센트라는 기업의 사이즈 때문이라면 과대평가라 할 수 있다. 큰 시장에서 거대 기업이 나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시장의 규모는 정말 많은 것을 결정한다. 물론 여기엔 소비자들의 평균적인 수준도 영향을 미치나 애초에 시장이 크면 틈새 또한 거대하기에 충분한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다. 시장의 크기가 제약되어 있으면 이 부분이 어렵다. 앞에서 언급한 것 처럼 돈을 주고서라도 고급 서비스를 이용할 충분한 인구는 거대시장에서 확보가 쉽다.
인구뿐만 아니라 언어 또한 시장의 크기를 제약한다. 영미권 국가들은 영어라는 언어로 이 제약을 어느 정도 낮추고 있으며 EU권 국가들은 문제점이 계속 터져 나오고 있으나 역내 통합을 통해 단일시장화 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문제를 해결하긴 했다.
흔히들 우리나라에서 외국의 유명하고 거대한 기업이나 서비스 같은 것들이 나오지 않는 것으로 규제의 문제를 주로 들곤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규제보다는 시장의 크기 문제가 더 클 것이라 보고 있다. 하긴 시장의 크기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지만 규제는 그나마 책임 돌리기 쉽긴 하다. 그래서 더 쉽게 타겟이 되는지도 모른다.
덧붙임
국내의 경제구조가 수출로 갈 수 밖에 없었던 데는 이런 필연성이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내수 증진의 해법이 오직 수출이라고 보는 것도 이런 이유가 있다. 내수를 그냥 키운다고 해서 될 정도로 우리가 인구가 많거나 동일언어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글은 모티브가 된 글인 이충재님의 글과 본문에 달린 이상은 기자님의 댓글을 읽고 쓴 글입니다.
원문: 김바비님의 블로그